견제와 균형은 자제와 관용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국가나 국민이 아닌 정치꾼들,
자기만의 욕망을 실현해 줄 것 같은 黨에
단지 거수기 역할과 이전투구하는 정치
동물들에게 혐오를 느끼게 된다.
허울뿐인 민주주의는 조지 오웰이 묘사하는 돼지가 군림하는 동물농장과 같다.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헌법을 농단하고 사탕발림의 포플리즘으로 국민을 농락하고
난무하는 거짓말을 합리화하며 무지한 개돼지(?)들을 세뇌하는....
지역은 물론 성별, 세대별 갈라치기로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서로가 질시하는 혼돈의 세상이 되었다
한반도 38선 아래 섬과 같이 고립된 작은 나라에서 견제, 감시에 우선해서 협력하고 단결해서 트럼프, 시진핑, 푸틴과 어떻게
실리적으로 대처해야 할지를 모색해야
함에도 우물안 땅따먹기에 정신없다
적성국에 보여주는 정도만큼 이라도 관용의 미소를 상대당에도 보여준다면 국민에게
박수 받는 정치가 될 수 있으리라!!
체제경쟁을 하던 시절, 메기의 역할을 했던 공산주의라는 실체가 없어진 호시절의
민주주의는 공산체제 만큼 무력해 보인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종북친중의
매국세력이 좀비와 같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 규범의 정착]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에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 규범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 두 규범은 미국 사회의 튼튼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의 기반을 이뤘다. 헌법 체계가 우리의 기대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필요한 시점에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그 둘은 민주주의의 감시견이다. 다른 한편 입법부와 사법부는 행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제의 규범이 등장한다. 대통령제 기반의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 서는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 기관이 그들에게 주어진 힘을 최대한 발휘 해서는 안된다. 자제의 규범이 무너질 때 권력 균형도 무너진다. 정당 간 혐오가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정치인 들의 의지를 압도할 때 견제와 균형 시스템 은 두가지 형태로 무너지게 된다.
가장 먼저 야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 하면서 권력이 분열되었을 때 헌법적 강경 태도가 위험 요인이 된다. 이러한 국면에서 야당은 그들의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휘두른다. 그들은 정부의 돈줄을 죄고, 대통령의 사법부 임명을 전면 거부하고, 심지어 대통령 탄핵까지 모의한다. 이럴 때 입법부와 사법부는 대통령을 견제 하는 감시견이 아니라 투견이 된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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