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인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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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BC753년에 로물루스에 의하여 건국되었다
조금더 각색하고 미화된 이야기로는 BC1,250년경의 트로이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전후 트로이왕의 사위 아이네아스만이 일족과 함께 탈출하여 로마 근처에 정착한다. 그의 아들 아스카니오스는 아미농가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것이 훗날 로마의 모체가 되었다.
아비농가왕이 죽자 그의 동생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조카인 왕녀를 처녀인채 신을 섬기는 무녀로 만들어 버린다 (왕녀의 아들에게 왕위가 계승됨)
그러나 왕녀는 꿈속에서 군신 마르소와 사랑을 나누고 잉태하여 쌍둥이 로물루소와 레무소를 출산하게되자 왕은 왕녀는 투옥하고 쌍둥이는 버려지게 된다
마침 지나던 늑대가 발견하여 젖을 물려 굶주림에서 구해주고 이후 양치기에게 발견되어 양치기의 우두 머리로 성장한다
후에 출생비밀을 알게된 형제는 아비농가왕을 죽이고 로마를 건국한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만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 (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재력에서는 카르타고인 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융성
할 수 있는 요인을 여러 역사가들은 다음의 3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번째요인으로는 종교에 대한 유연한 사고였다
로마의 종교는 민중을 지도하는 힘이 아닌 버팀목이었다
광신적이지 않으므로 다른 민족을 포용 할 수 있었고 다른종교나 인종을 인정하였다 즉 종교는 수용하거나 공유하지 않으면 아무런 효력을 갖지 못하나 법은 가치관이 틀린 경우라도 보편적으로 적용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인간의 행동원칙을 유대인은 종교에서 그리이스인은 신이 아닌 철학에서 찾은데 반해 로마는 신이나 철학이 아닌 법과 제도를 근간으로 하였다

둘째로는 로마의민주적인 정치체제이다
건국이래 244간의 왕정을 거쳐 공화정의 정치체제를 운영하였던 로마는 이후 소수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왕정, 귀족정, 공화정을 고집하지 않고 각 체제의 장점을 융합하여 집정관, 원로원, 민회라는 독자적인 정치조직의
거국일치 내각을 구성하여 민의를 반영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더 낳은 제도개선을 위하여 선진 그리스에 1년동안 사절단을 파견(BC453)하여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을 제정하는 등의 노력으로 민주 체제를 발전시켰다.
로마는 王조차도 순수 로마인을 고집하지 않아 로물루스 사후에는 첫번째로 합병된 사비니족의 덕망이 있는 인재인 루마를 2대왕으로 등용 하였으며 이후에도 에트루리아인이 왕이 되기도 하였다

세번째로 전쟁을 치루면서도 패자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개방성에 있다
그리스인은 타민족을 모두 야만인으로 취급하였으나 로마인은 모든 라틴족은 물론 타민족에 대하여도 일정 요건이 만족되면 시민권을부여 하였다
비록 노예라도 방면되거나 비용을 지불한 해방노예는 평민이 될 수 있었다
추가로 로마인의 유연한 상황대처 능력과 명예존중에 있다.
로마 또한 귀족과 평민간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대립하였으나 위기시에는 일치 단결하는 모습과 명예를 소중히 하는 사회 저변의 분위기가 있다
평시 임기 1년의 2인의 집정관에 의하여 통치되며 2인의 집정관의 합의가 필수이므로 전시 등의 위급 상황에는 2명중 1인을 독재관으로 임명하여
신속하게 대처하는 등 융통성있는 조직운영과 명예를 위하여 목습을 거는 충성스런 로마인의 긍지를 보여주고 있다.
로마는 설립 당시 아무도 욕심내지 않은 땅이 었으나 내륙으로 해안으로 大路 아피아를 건설하며 소통하고 교통하여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간다
우리 또한 지정학적으로 매우 위험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나 그만큼 중요한 요충지임을 잘 활용하여 세력의 균형을 맞춰가는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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