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를 성공이나 성과로 본다면 단순히 스마트함 이나 노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공이라는 것은 재능, 노력, 창의력은 물론 우연이라
볼 수 있는 운이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성공한 사람이 성공 할 만한 능력자라는 자부심을 가질지언정 오만함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본다.
반면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조차도 루저라는 열패감으로 가진자에게 증오심을 가질 것이라는 점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편견이지 싶다.
이는 자동차를 직접 만들어낸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의 소유가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 주의자와 같이 극단적인 사고의 논리인 듯하다.

자유 시장경제를 베이스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만들어낸 미국이 자신들의 제도를 세계표준으로 확대
하려는 이상주의는 자유진영에는 큰혜택이 되었으나,
자유무역 정책이 자국내 마이너리티에게는 어려움이
되었다는 점은 옳다. 그러나 모든사람들의 평등권을
위한 하향평준화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모두가 알듯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총량적 성과를 올리는 정책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그런 정책으로 불이익을 보는
계층에 복지라는 수단으로 지원을 해야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능력위주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취약층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고, 이를 적극 활용한 트럼프는 협상의 귀재인 장사꾼이자 정치꾼이었다.
미국 주력으로 인정받아야 할 백인 저학력자들이 자유
경쟁체제하에서 비교열위가 되었다는 점에 분노하는 민심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포플리즘이 승기를 잡은거다. 대외의존도가 10%미만인 미국이기에 트럼프의 고립 주의 정책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미국의 가치와 세계패권을 지키기 위해 고립주의 정책을 지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소득 백인을 위한 대안을 마련 하여야 하지만, 능력주의 또한 포기
할 수도 없고 포기 하지도 않을 것이라 본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 자유, 행복추구라는
미국 독립선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사유재산의
보장이 기본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누구나 충분히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획일적인 평등을 실현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남들보더 좋은 조건의 기회를 주려는 부모의 배경 또한
그부모가 노력해서 만든 성과이니 이것을 부당하다고만 볼일이 아니다. 자신은 물론 자손의 성공 또한 본능적
인간의 욕구이기에 내가 누리지 못했고 누리게 해주지 못했다고 남들이 가지고 태어낸 금수저를 부당하다고 해서는 안된다.

봉건시대 신분상승을 할 수 없는 핑게가 있어서 지금
보다 좋았다는 점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다.
경쟁사회라서 스트레스가 있는반면 성장의 동기가
되고 성취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모든기회가 공평하게 획일적으로 부여 된다면 적성에 맞지 않는 과정이라도 스파르타 전사들 같이 똑같은 교육과정을 받아야 할 것 이므로 비합리적이며,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에 관계없이 결과의 평등을 부여 한다면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 체제가 되는거다.
서유럽과 같이 과도한 복지는 능력자나 무능력자 모두 에게 일할 의욕을 떨어 뜨린다.
사람의 취향이나 가치는 백인백색이므로 성공에 대한
생각도 모두 다르다.

능력주의의 문제가 없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능력주의를
성공과 실패, 오만과 열등감이라는 극단적으로 단순화
함으로써 양극화의 문제를 부각하는 이분법적 정의는 적절치 안다고 본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들 말하고 통계적 수치로 문제를 부각하고 있지만, 나보다 수천배나 부자인 이재용 이나 정의선 회장에 대해 열등감도 증오감은 전혀 없다. 보통 사람들이 시기질투하고 경쟁심을 갖는건 비슷한 사람들이지 극단의 양극에 있는 계층이 아니다.
하이에크나 존 롤스의 생각도 단순히 능력주의를 찬성 하는지 복지를 해야하는지로만으로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옳지않다.
옳음과 좋음에 대한 가치조차도 절대적 일 수는 없다.
끝없는 남과의 비교가 스스로를 무력하게 만든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성장했는지를 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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