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마법과 쿠페 빵
모리 에토 지음, 박미옥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인생의 실패와 좌절, 쓴맛 단맛 끝에
노리코는 자신의 학창시절, 사춘기를 돌아본다.

지금은 '영원'을 꿈꿀 만한 여유도 없는 나날이지만
'영원'을 두려워했던 아홉 살에서 시작되고,
'영원'을 꿈꾸었던 사춘기를 돌아보며 노리코는
"자주 넘어지지만, 넘어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웃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리 에토의 긍정과 희망이 여전히 녹아들어 있는 이야기다.
다만 연애담은 조금 지루했다.
읽으면서 내가 연애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나 보네, 하며 구시렁거릴 정도였다. 그래도 호흡이 빠른 글이니 뭐 별수 없이 읽었지만 말이다. ㅎㅎ

일부러 그러는 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강조법이겠지.)
회상을 하면서 결과를 미리 예측하게 한다거나,
복선을 과감하게 드러내야 있다.
처음에는 어? 하고 궁금증이 생기지만, 반복되니 흥미를 잃게 했다.
예를 들면


그러나 그 '언젠가'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95ㅉ)

대소동이 발발한 것은ㄹ 그로부터 몇 시간 후의 일이었다.(220ㅉ)

사랑의 어두운 그림자를 깨닫지 못했다.
뒤쫓으면 도망친다는 사랑의 법칙도, 연애에서는 지나치게 베푸는 것이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지혜도, 사랑의 불꽃은 3개월을 정점으로 꺼져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교훈도, 그 무엇 하나 아직 배우지 못한 채 시작된 최초의 연애였으므로.(295ㅉ)


이런 식으로 말이다. ㅎㅎ

주인공이 같다는 것뿐, 주인공 이름을 바꿔 놓으면 9장의 이야기들은 짧은 단편으로 따로 떼어 놓을 수 있을 듯하다. 이야기가 이어져 있으면서 장마다 이야기의 끝맺음을 열어놓는다.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 독자에게 맡기듯 말이다.

3장의 <검은 마법과 쿠페빵>도 좋았지만,
5장의 <늦가을 비>도 좋았다. 사춘기의 절정에서 방황을 시작한 노리코를 바라보는 시선과 진짜로 사춘기를 보내는 노리코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어른들은 그렇게 아이들의 사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도 그렇게 보내왔는데? 세대가 다르니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리고 얼마나 가능한 일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우주의 고아>>에 나왔던 말인가,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더 인상적이었다.^^;;)다.

8장 <사랑>에서도 시선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노리코와 켄이치의 만남부터 독특하지만, 여자와 남자의 차이랄까 그런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사랑을 해보았다는 생각보다는 짝사랑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리코의 모습은 짝사랑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아니 내가 사춘기 시절, 짝사랑만 해서 그런가? 나도 노리코처럼 그 애 앞에만 서면 떨렸었지. 하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았는데... 내게 사랑은 만나면 편하고 기분 좋고 나른해지고, 그리고 헤어지면 보고 싶지만 없는 동안 혼자 잘 지낼 수 있었으며, 만날 준비를 하며 설레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사랑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때, 아주 짧은 시간, 나는 그것을 실천했고 충만했다. 그런 사랑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추억만으로도 지금 나는 아름답다는 것을 안다. 지금도 또 다른 사랑에 힘겨워하고 있지만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건 어쩌면 그때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다 그렇게 깨닫게 되는 걸까? 음..... 그 사랑얘기가 보편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실감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에필로그>가 있다.
이 소설적 장치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조금 직설적이구나 싶다. 그래도 좋다.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들으면 안 좋다고 했던가?
무뎌져서 그런가?
그래도 내게 "연료"가 되어준다.
어느 때, 어느 순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
나는 어떤 미래도 가능했던 것이라고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한다. 막대 아이스크림에 나오는 당첨과 꽝에 일희일비하면서, 자전거를 주된 이동수단으로 삼아, 키스도 하지 않은 연애에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었던 그때, 나는 미래는 그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끝없이 넓은 것이기도 했다. 저쪽으로도 갈 수 있었고, 이쪽으로도 갈 수 있었다. 누구나가 엄청난 양의 연료를 비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거나 무의미한 곳에 써버리면서, 지금은 각자가 발견한 길을 걷고 있다.
........
그러나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복잡하다. 어렸을 때 그리던 '어른'과는 전혀 다른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암중모색 상태이고, 한 치 앞도 안보이는 나날 속에서 태평스럽게 '영원'을 꿈꿀 만한 여유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건강하다. 아직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연료도 아직 남아 있다. 전과 다름없이 자주 넘어지지만 넘어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직은 웃을 수 있다.
살아가면 살아가는 만큼,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사람은 대담해지는 모양이다.
부디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푸릇푸릇하던 시절을 함께 지내온 여러분들이 건강하게 연료를 비축하면서 혹 연료가 다 떨어져도 어딘가에서 보충하면서 넘어져도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

 

2007.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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