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넓이 창비시선 459
이문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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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의 넓이’를 위하여

이문재 시인을 알게 된 것은 20대였나, <기념식수>라는 시를 읽고 나서였다. 형수가 죽고 조카들을 데리고 나무를 심으러 가는 길을 묘사한 시는 너무 뭉클해서 시를 읽고 단박에 울음을 터트렸다. 그 뒤 관심을 가졌지만 애써 찾아 읽는 시인은 아니었는데 몇 해 전(2014년) 나온 "지금 여기가 맨 앞"은 내게 다가온 두 번째 최고의 시집으로 꼽는다.(첫 번째 시집은 김선우의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이다.)

7년 만에 새 시집이 나왔다고 해서 얼른 집어들었는데 역시 마음이 온화해졌다. 예전에 어느 소설가가 독자와 함께 늙어간다는 말을 했는데 이문재 시인도 그러할까 모르지만, 이문재 시인을 바라보는 나는 함께 늙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시집은 "지금 여기가 맨 앞"과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오래된 기도2>도 그렇고 낯설지만 익숙한 이야기 등등의 말에서 그렇게 느껴지는데 꾸준히 사색을 이어가고 있구나 싶다. 그래도 이번 시집은 '혼자'를 되뇌인다. 혼자, 고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는 나아닌 것으로 나"라고 시인은 말한다. 혼자 속에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명료한 사실을 시로 읽으면 먹먹해지면서 뜨거워진다.

시인은 혼자, 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굴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는데 그 부분이 또 뭉클했다. 거울을 좀 보면서 살아야지. 나는 나를 보지 못하니 되도록 나를 보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혼자가 아닌 혼자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 그렇게 내가 혹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도 넌즈시 알려준다. 기후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다.

혼자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혼자의 넓이"를 통해 깨닫게 된다. 감사한 시집이다.

혼자와 그 적들


이문재





‌혼자 살아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 먹는 밥은

언제나 시끄러웠다.

없는 사람 없던 사람

매번 곁에 와 있었다

혼자 마시는 술도 시끌벅적

고마운 분들

고마워서 미안한 분들

생각할수록 고약해지는 놈들

그 결정적 장면들이 부르지 않았는데

다들 와서 왁자지껄했다 저희들끼리

서로 잘못한 게 없다며 치고받기도 했다

혼자 있어보니

혼자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는 나 아닌 것으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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