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뒷권이 나오지 않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이 2013년, 완결되었다.

2014년 1월,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라는 이름으로 전집 중 10종이 선정, 발매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빨간 책등과 빨간 띠지, 모노톤의 멋진 표지들. 옮긴이도 출판사도 같으니 전집과 다른 점은 디자인 정도겠다. 책 안의 편집이 어떨지 좀 궁금하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의 10종 목록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BC 살인 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나일 강의 죽음

살인을 예고합니다

서재의 시체

다섯 마리 아기 돼지

0시를 향하여

비뚤어진 집


실물판이 공개된 카페글 주소 : http://cafe.naver.com/brcbook/2322


실물 책 사진을 보니 지름신이 오셔서 낱권으로 우선 질러볼까 했는데, 예약주문받는 세트만 있어서 다행히 좀 더 기다려보기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 기본적인 컨셉을 유지했다면,

<다섯 마리 아기 돼지>는 완전히 컨셉이 바뀌었다. 이 표지 분위기를 꽤 좋아했는데(찾아보니 2012년 초에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전집 컨셉이 유지된.. 에디터스 초이스 표지가 오히려 드물다. <비뚤어진 집>이나 <ABC 살인사건>도 완전히 바뀌었다. 다 나름의 맛이 느껴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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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구판절판


몽테뉴의 『수상록』. 누렇게 바랜 문고판을 다시 읽는다. 이런 구절, 늙어서 읽으니 새삼 좋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근심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 삶에 대한 걱정 때문에 죽음을 망쳐버린다."-14쪽

머리가 복잡하다. 기억을 잃어가면서 마음은 정처를 잃는다.
*
프랜시스 톰프슨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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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추리 - 강철인간 나나세
시로다이라 쿄 지음, 박춘상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3년 7월
품절


설사 내가 사키 씨와 헤어지지 않는 미래를 잡으려고 했어도, 아마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곳에 있었을 거야. 미래의 변화는 무한하고 복잡해. 붙잡을 수 있다고 해도 노력 없이 바라는 곳에 닿기란 불가능해. 결정적으로 놓쳐버린 무언가를 되돌리려면 사람의 힘을 뛰어넘는 기적이 필요한 거야. 내 힘은 그저 사소한 불운을 맞닥뜨리지 않고 피해갈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게 고작이야.-205쪽

거짓말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거짓말은 진실보다 더 진실처럼 보이는 법이다.
"그건 무리야. 한 번 퍼져나간 소문은 합리적 해석이나 진실의 힘으로 이기기 어려워. 재미없는 진실보다 충격적이고 그럴듯한 소문이 훨씬 매력적이기에, 모순이 좀 있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거야. 무조건 진실이니까 소문에 이길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안이하지 않아?"-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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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추리 - 강철인간 나나세
시로다이라 쿄 지음, 박춘상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시로다이라 쿄 하면 떠오르는 만화 <스파이럴>. 상상조차 못했던 '판타지적'인 면으로 굴러떨어졌던 스토리는, 그럼에도 나름의 논리를 유지하며, 재미있었다. 그리고 원작자의 이름에 '시로다이라 쿄'가 보이면 주저하지 않고 집어들었고, 언제나 반전을 각오했다. 그리하여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 스토리는 '뒤집어질' 것인가. 이제 시로다이라 쿄의 '소설'―그것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걸머진―을 집어들었을 때, 나는 이미 호의 가득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추리'란 조각조각 흩어진 단서를 꿰어맞춰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고, 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해, 매듭짓는다.

그렇다면 '허구 추리'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17세의 일안일족一眼一足 소녀 이와나가 코토코岩永 琴子가 우연히 마주친 남자 사쿠라가와 쿠로를 2년간 짝사랑한 끝에 연인과 헤어진 22세의 쿠로에게 사귀어달라고 고백한다. '갓파를 만나 연인과 헤어졌다'는 쿠로는 쿠단과 인어 고기를 먹어 예언과 불사 능력을 지니고 있고, 이와나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요괴들에게 유괴당해 지혜의 신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여 한쪽 눈과 한쪽 다리만 남았다.

그리고 2년 반 뒤. 쿠로의 헤어진 연인 유미하라 사키가 경찰이 된 마쿠라자카 시에서 괴이한 일이 벌어진다. 올해 초 마쿠라자카 시에서 철골에 깔려 사망한 아이돌, 나나세 카린이 아이돌 시절 의상을 입고 철골을 든 모습으로 밤마다 나타나 사람을 습격한다는 것. 일명 '강철인간 나나세'와 마주친 사키의 앞에, '강철인간 나나세'를 쫓아온 전 남자친구의 현 여자친구가 나타났다.

 

 

"사키 씨, 강철인간은 괴물이에요. 그것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망상과 바람이 빚어낸 '상상력의 괴물' 이죠." - p.156

 

 

강철인간은 요괴였다. 그것도 현대이기에, 인터넷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현실이기에 태어날 수 있었던 괴물이었다. 게시판들이, 괴물을 믿는 자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는 괴물은, 그렇기에 비현실적인 어떤 수단이 아니라 현실적인 추리와 논쟁을 통해 괴물의 존재를 믿는 자들의 마음을 꺾어냄으로써 쓰러진다. 어떤 판타지라도 그 판타지 나름의 규율이 존재하고, '논리'와 동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 속 의회와 비유되는 인터넷 논쟁에서, 이와나가는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괴물인 강철인간으로부터 '이기기 위해' 거짓이라는 허구 위에, 그러나 믿는 자의 마음 속에는 진실이 되어 강철인간을 쓰러뜨리게 할, 논리의 탑을 쌓아올린다.

 

 

애초에 '올바르다'는 게 뭘까? 범인을 지적한다는 일은 또 뭘까?

실제 사건이라면 알맞은 자료와 추리로 진상을 분명하게 밝혀내는 일쯤으로 정의할 수 있으리라. 진실은 언제나 하나다. 그 모습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으니, 논리로 명확하게 밝혀지기도 하리라.

하지만 이와나가가 하려는 것은 있지도 않은 범인과 진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한정된 단서에서 놀라운 진상을 도출해내는 것. 현실에 없는 것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밝혀낼 수 있을까? - p.240

 

시로다이라 쿄는 친숙한 장치와 비현실적인 장치를 서로 잘 섞어내 허구추리라는 또 한 편의 멋진 이야기를 선보였다. 그가 원작자로서 선보인 만화들에 못지 않은, 멋진 소설이었다. 이와나가와 쿠로 콤비의 이야기를 또 어딘가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며.

 

/131201

p.161 / p.169 / p.200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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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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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놀랍고 아름다운 까닭은 목련이 쑥잎을 깔보지 않고, 도토리나무가 밤나무한테 주눅 들지 않고, 오직 타고난 천성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데 있지 않을까.-132쪽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나를 애지중지하셨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자신이 소중해진다. 그분이 사랑한 나의 좋은 점이 내 안에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것처럼. 그건 삶이 비루해지려는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아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자꾸 사진을 찍어대듯이 사람이 한세상 살고 나서 남길 수 있는 게 사랑밖에 없다면 자꾸자꾸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136쪽

기 살리기와 응석받이를 혼동하지 말았으면 한다. 덮어놓고 집을 나가 거리를 떠돈다는 것은 일종의 응석이다. 성인이라면 이 어려운 때 누가 누구에게 기대고 떠맡기는 식의 응석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 기는 소통이 돼야 비로소 살아 있는 기고, 소통이란 일방적인 게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다. 가장 힘들 때 그 고통의 현장에 부재不在하려는 남편들의 가출을 너무 동정하지 말았으면 싶다. 동정과 격려를 받아야 할 사람은 졸지에 생활고와 남편의 행방을 몰라 애간장이 마르는 이중고를 겪는 아내들이다.-141쪽

시간, 지는 형체도 마디도 없으면서 우리 몸엔 어김없이 마디를 긋고 지나가는구나.-193쪽

노욕도 가지가지라고 웃어넘겼지만 지지리도 못사는 시절을 겪었던 늙은이들에겐 물질적 풍요가 전적으로 대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면 이렇게 잘살게 되었을까, 휘황한 겉보기가 꿈만 같으면서도 아직 돈 벌 나이가 안 된 미성년의 씀씀이나, 도처에서 지천으로 낭비되고 버려지는 음식이나 입성을 보고 있으면 문득 하늘 무서운 생각까지 들 적이 있다. 풍요의 그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통으로 겨우겨우 사는 사람도 잘 상상이 안 되는 극빈지대에 버림받은 청소년,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이 도움을 호소하는 소리를 매스컴을 통해 듣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205쪽

내가 죽도록 현역작가이고 싶은 것은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노년기 또한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삶의 가장 긴 동안일 수도 있는 노년기, 다만 늙었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여긴다면 그건 삶에 대한 모독이다.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삶에서 소설이 나올 수는 없다.-212쪽

사람이 살다 보면 이까짓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싶게 삶이 비루하고 속악하고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부지기수로 많다. 이 나이까지 견디어온 그런 고비고비를 생각하면 먹은 나이가 한없이 누추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삶은 누추하기도 하지만 오묘한 것이기도 하여, 살다 보면 아주 하찮은 것에서 큰 기쁨,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과 만나질 때도 있는 것이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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