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그 책>.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책들도 많지만, 꼭 그 책 그대로가 아니더라도 개정판이 나와 있기 때문에, 한 번쯤 읽어보면서 새록새록 옛 추억도 찾아보고 그 시절 읽었던 책도 다시 들여다보고, 또 이런 책도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예전 읽었던 그 책을 찾아 헤매지는 못하겠지만, 다른 판본으로나마 읽을 수 있는 것은 다시 읽어보려 한다. :-)



<말괄량이 쌍둥이>. 어릴 적 '크레아의 쌍둥이'를 학급 문고에서 본 기억이 난다. 퍽 낡았고, 얇고, 하지만 동글동글한 삽화와 멋진 기숙사 생활은 내 맘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직도 은은하던 그 시절 추억은 '세인트 클레어의 쌍둥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나와 있었다. 이 책을 구입했지만, 저자의 학과 후배처럼 '세인트클레어'와 '크레아 학교' 사이를 뛰어넘지 못한 나도 재출간본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 한 사람이다.










그리고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내겐 지경사판의 크레아 쌍둥이와 함께 기억하는, <로즈의 계절>. <말괄량이 쌍둥이>를 학급문고에서 접했다면 <로즈의 계절>은 바자회에서 '그냥 표지 예쁜 책이라서' 내 손에 덥썩 들려, 가볍게 들린 만큼이나 가볍게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책이다. 그 때야 다시 구하기 이렇게 힘들 줄 몰랐으니 태연하게 떠나보냈지만...



<사랑스런 소녀 로즈와 일곱명의 사촌들>, <열세 살 로즈의 아주 특별한 일년>으로 나왔다는데 이 책들도 어느새 절판이다. 같은 작가의 <작은 아씨들>이 수십 권으로 나와있는 걸 보면, 이 책 판본은 적다못해 죄다 품절/절판이라는 게 새삼 아쉽다.



 책 안에서는 <집 나간 아이> 로 나와있는, <클로디아의 비밀>. 내 어릴 적 책은 <프랭크와일러 부인의 유언장> 이었다. 나의 '클라우디아'가 아니라 '클로디아'이긴 했지만, 이건 꽤 위화감 없이 잘 읽었다. '클라우디아' 판본에서 봤던 삽화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일까?








어릴 적 그 책과는 달리, 새로이 읽었었던, 이 책을 읽으니 또 다시금 읽고 싶어진 <소공녀>와 <작은 아씨들>. 특히 펭귄클래식의 <소공녀> 표지가 정말 좋다. 내 어릴 적의 큰 눈의, 굵게 컬이 진 흑발에 아기자기하며 컬러풀한 세라와는 다르지만, 어쩐지 보면 딱 '세라'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 :)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크게 왔던 지름신은 계몽사 <어린이 세계의 명작>과 <어린이 세계의 동화> 였다. 정말 누가 살 핑계만 만들어 준다면 당장 주문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복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걸 사면 읽을 사람은 나 뿐이라는 현실에 번번이 지름신을 떼어놓고 있다. 





그리고 읽어보고 싶은, <초원의 집>과 <장미와 반지>, <폴리애나의 기쁨놀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 <쌍무지개 뜨는 언덕>, <슬픈 나막신>, <뉘른베르크의 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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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를 통해 기억된 과거는 체험처럼 생생하지는 않지만, 체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아무리 생생한 기억이라 해도 체험 따위야 사적인 수다의 소재일 뿐이지만, 사회학적으로 공유되는 기억은 거대한 효과를 낳는다. 역사라는 기억은 우리를 국민으로 만들어주는 학교이다. 역사를 배우며 우리는 민족의 전통과 뿌리를 배웠다. - p.81

위험은 더 깊은 곳에서 자란다. 위험의 생산자는 정신줄을 놓은 관리자의 태만도, 설계상의 실수나 예측하지 못했던 돌발 변수도 아니다. 위험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리라 믿었던 "무지가 아니라 지식에, 자연에 대한 불충분한 지배가 아니라 완전한 지배에, 인간이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산업시대에 확립된 규범과 객관적 제약의 체계"에 따라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돌진하는 근대화의 논리 속에서 잉태된다. - p.97

부동산 가격의 변동을 통제할 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에게, 지금 살고 있는 그곳은 정주의 터가 아니라 허가받은 임시 거주지에 불과하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 위에 터전을 짓지 않고, 등기부등본이라는 추상의 세계 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경향신문 취재팀이 발로 뛰어 밝혀낸 자료에 따르면,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우리나라는 인구의 19퍼센트가 매해 이사를 다닌다. 전 인구 다섯 명에 한 명꼴, 1년에 약 870만여 명이 이삿짐을 싸고 푼다는 얘기"이다. - p.117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갈수록 늘어나고, 금력 앞에서 권력도 맥을 못 추는 자본주의의 법칙이 확장되는 사회에서 성공은 인생의 옵션이 아니라 정언명령과도 같다. 위인전에는 훌륭한 사람의 스토리가 담겨 있지만, 훌륭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과 동의어가 된 사회에서 위인전은 돈을 향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위인전을 아동문학으로 취급한다. 위인전을 읽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돈의 힘을, 그리고 그 힘이 제공하는 돈맛을 알게 되면 위인전을 덮는다. 위인전을 덮은 어른들이 찾는 책, 그 책을 부르는 일반명사가 자기계발서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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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건, 표지 그림이 눈에 쏙 박혀들었기 때문이다. 두어 장 넘기고는, 김미화 작가님의 그림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리고 탄성을 올렸더랬다. 모 배경화면 제공 어플에서였던가, 동화처럼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미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책의 한 구절이거나, 짤막한 이야기이거나, 무겁지 않지만 각자 무게를 지닌 짧은 에세이가 곁들여져 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갈 때면

혹시나 길을 못 찾을까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곤 해.

두리번거리며 이정표를 따라가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길을 찾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으로 갈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처음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와 길을 찾아.

방향감각 무딘 나를 탓하며

조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헤매기는 하지만

한 번 갔던 길이 옳은 길이 아니었음을 알기에

같은 곳으로 들어서는 실수는 반복하지 않지.

두 번째 선택한 길 역시 잘못된 길이어도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찾아가면 돼.

목적지까지 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야.

다시 시작하면 그뿐인 거야.

그리고

한 번 어렵게 찾아간 길은

다시 헤매지 않잖아. - p.126 '다시 하면 돼지'



책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우선 일러스트에 끌려서 펼쳐보고, 그리 길거나 빽빽하지 않은 글에 부담 없이 넘겨볼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 라는 포근한 제목대로 응원의 의미로 한 권 선물하고픈,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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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나드에 가시면 근사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왕자님이 왕자님이시든 아니시든 개의치 않고 사랑하는 강하고 똑똑한 아가씨가 말이죠." - 전나무와 매/p.350


<전나무와 매> 이후로 나온 아키에이지 연대기 작품 <상속자들>. 단편집의 희미한 기억이 남은 채 집어든 <상속자들> 두 권은, 일찍이 전민희 작가의 아룬드 연대기와 룬의 아이들 속으로 빠져들었듯 아키에이지 연대기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했다.


도서관을 품은 위대한 도시, 델피나드에 한 자매가 찾아온다. 도서관 출입을 거부당하여 도서관의 비밀통로에 대해 이야기를 듣던 중 그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소란 와중 동생 나나가 납치당한다. 언니 로사는 진과 타양, '그림자 매' 두 사람에게 동생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나나가 납치당해 있던 곳은 전쟁 영웅 니케포루스 장군의 저택이었다. 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한 나나와 함께 로사는 '그림자 매의 집'에서 식사를 만들어 주러 갔다 머무르며 위조 신분증으로 도서관을 찾아가게 된다. 누군가를 찾는 로사, 장기 연체자를 찾는 진. 한편 나나를 납치했던 이들과 함께하던 니케포루스 장군은 '그림자 매', 과거의 카론과 현재의 진에게 심상찮은 집착을 드러낸다.


"그 정도로는 안 돼. 철저한 굴욕을 줘야지. 잃을 것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해. 자신에게 지킬 것이 있음을 깨달으면 약한 자는 강해지지만 강한 자는 오히려 약해지는 거야. 그놈도 지금은 젊고 완전하겠지.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나도 한때는 그랬지만 내 명예는 한순간에 투기장 바닥에 처박혔어. 이제 그놈도 알게 될 거야. 그때의 내 기분을." - 상속자들 하/p.13


급기야 니케포루스 장군이 그림자 매의 집을 공격하여 공성전이 벌어지고, 로사와 진의 부하들이 싸우는 동안, 진은 진짜이자 첫 번째 '그림자 매' 카론 벤디게이트와 자신의 스승에 대해 알게 된다. 나나가 납치당하면서 시작된 로사와 니케포루스 장군 곁에서 암약하는 '싱의 유민'의 대립은, 니케포루스 장군과 한때 그를 패배시켰던 이름을 상속한 진의 대립으로 가시화된다. 축제를 만난 듯 들끓는 도시에서 치러지는 숙명의(?) 일대일 대결.


"솔직히 난 내가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우리가 겪는 모든 희비극을 불멸의 언어로 바꿔놓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임무가 아닌가. 하지만 남의 머리 뒤에 숨어 살아남은 대가리로 그런 짓을 해낸대서야 창피함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것 말고 다른 미래가 있겠나?" - 상속자들 하/p.235


그리고 유쾌한 입담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루키우스 퀸토. 그가 말하는 '싱의 비밀' 사건에서 싱보다 중요한 무언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앞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아래 묻혀 있던 것이 조금씩 드러나, <상속자들>을 읽고 <전나무와 매>를 다시금 읽으며 새롭게 보였던 것처럼 후속작을 읽고 <상속자들>을 읽으면 또 무언가 보이지 않을까, 그 기회가 조금 더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자이니 삼십 년이나 이름을 남기는 거지. 그런 이름이 한번 나타나면 뒤따르는 자들이 서로 가지려고 다투고, 어울리려 애쓰고, 해내지 못한 자는 밀려나고, 수없이 되풀이되어 마침내 진짜 상속자가 나타날 때까지 거르고 걸러진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이름이니까. 좨주, 너희는 그런 이름을 알고 있나?" - 상속자들 상/p.77


왠지 <상속자들>이라는 제목이 떠오른 구절. 그림자 매를 '상속한' 진, 그리고 란드리 데이어의 혈연으로 그것을 '상속받은' 로사, 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하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얼굴을 비춘 멜리사라가 상속받은 선대의 인연까지. <상속자들>과 <전나무와 매>를 읽은 후 아키에이지 연대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세계관을 슬쩍 훑어봤다. 다른 캐릭터들은 또 어떤 이들일지, 아직도 캐낼 것이 한참 남은 광맥의 산을 보는 기분으로 로사와 진을― 지금껏 란지에며 키릴을 기다려왔듯이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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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세 권짜리 <국혼>에 비하여 <봄날>은 얇게 느껴지는 두 권의 소설이다. <국혼>보다 이전 시절의, 남주 이헌세결의 아버지 이헌 민과 어머니 한령, 그리고 그들 곁을 지켰고 세결과도 함께했던 미사함 세 명의 이야기.


나라간의 사정으로 인해 북설국의 공주는 대대로 사유타의 공녀로 보내져 왔다. 그러나 사유타의 공녀로 내정되어 있던 한령의 언니 한기 공주는 그녀를 데려갈 사유타 사절들이 도착하기 전에 병으로 이승을 뜨고 만다. 공녀가 없어선 안 되기에, 북설국의 유일한 공주이자 막내인 한령은 열세 살 나이로 열 살 많은 황제의 후비가 되기 위해 공녀가 되어 조국을 떠난다.


황제의 그림자인 비령사의 수밀령 미사함은 황제 이헌 민의 변덕으로 북설국의 공녀를 데려오게 된다. 한기 공주의 병사로 어린 한령 공주를 데려가는 여정에서, 오로지 황제의 그림자가 되기 위해 자라온 미사함은 해맑고 봄날처럼 따사한 한령으로 인해 감정이 움직인다. 무서울 정도로 계산적이고 황제이면서 황위를 싫어하는 남자, 이헌 민 역시 당돌한 한령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몹시 나쁘십니다! 훗날, 깊이 후회하신다 해도 소장은 절대로 위로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

황제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멀어졌다.

"네놈은 네 눈물을 닦느라 바쁠 것이 아니냐." - 1권/p.100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후궁을 이용해 온 민에게 한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느 여인에게 그러했듯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령을 유혹한 민은, 반대로 한령에게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령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없는 몸이었고,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도는 한령을 한마음으로 짝사랑해온 남자, 민의 그림자, 미사함과 맺어지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가져버리고 만 한령의 짧은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민은 무서운 선택을 하고, 어리고 연약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본 한령은 굳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다.


봄날의 제목을 몇 번이나 되새기게 했던, 한령이 아이를 가진 후 민의 진심이 드러나고 (그럼에도 한령에게 한 말과 달리 한 선택을 보면, 황제가 되기 싫어했다 해도 어쨌거나 황제에 참 어울리는 캐릭터다, 민은) 조마조마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했던 후반부가 가장 재미있었다. 초반부는 조금 이거다 하는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민과 미사함의 비중 조절 때문일까?).


<국혼>에 비하자면 음모라거나 사건 같은 큰 스케일은 없고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적 갈등을 제외해도 후궁 암투 정도밖에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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