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꺼운 세 권짜리 <국혼>에 비하여 <봄날>은 얇게 느껴지는 두 권의 소설이다. <국혼>보다 이전 시절의, 남주 이헌세결의 아버지 이헌 민과 어머니 한령, 그리고 그들 곁을 지켰고 세결과도 함께했던 미사함 세 명의 이야기.
나라간의 사정으로 인해 북설국의 공주는 대대로 사유타의 공녀로 보내져 왔다. 그러나 사유타의 공녀로 내정되어 있던 한령의 언니 한기 공주는 그녀를 데려갈 사유타 사절들이 도착하기 전에 병으로 이승을 뜨고 만다. 공녀가 없어선 안 되기에, 북설국의 유일한 공주이자 막내인 한령은 열세 살 나이로 열 살 많은 황제의 후비가 되기 위해 공녀가 되어 조국을 떠난다.
황제의 그림자인 비령사의 수밀령 미사함은 황제 이헌 민의 변덕으로 북설국의 공녀를 데려오게 된다. 한기 공주의 병사로 어린 한령 공주를 데려가는 여정에서, 오로지 황제의 그림자가 되기 위해 자라온 미사함은 해맑고 봄날처럼 따사한 한령으로 인해 감정이 움직인다. 무서울 정도로 계산적이고 황제이면서 황위를 싫어하는 남자, 이헌 민 역시 당돌한 한령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몹시 나쁘십니다! 훗날, 깊이 후회하신다 해도 소장은 절대로 위로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
황제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멀어졌다.
"네놈은 네 눈물을 닦느라 바쁠 것이 아니냐." - 1권/p.100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후궁을 이용해 온 민에게 한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여느 여인에게 그러했듯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령을 유혹한 민은, 반대로 한령에게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한령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없는 몸이었고,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도는 한령을 한마음으로 짝사랑해온 남자, 민의 그림자, 미사함과 맺어지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가져버리고 만 한령의 짧은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민은 무서운 선택을 하고, 어리고 연약하지만 자신을 되돌아본 한령은 굳게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는다.
봄날의 제목을 몇 번이나 되새기게 했던, 한령이 아이를 가진 후 민의 진심이 드러나고 (그럼에도 한령에게 한 말과 달리 한 선택을 보면, 황제가 되기 싫어했다 해도 어쨌거나 황제에 참 어울리는 캐릭터다, 민은) 조마조마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했던 후반부가 가장 재미있었다. 초반부는 조금 이거다 하는 임팩트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다(민과 미사함의 비중 조절 때문일까?).
<국혼>에 비하자면 음모라거나 사건 같은 큰 스케일은 없고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적 갈등을 제외해도 후궁 암투 정도밖에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