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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 2 (완결) ㅣ 고요한 연못에 내린 비 2
원주희 지음 / 로코코 / 2017년 11월
평점 :
어린 소녀의 글선생으로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홍연랑이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한, 연하당 아씨 송정연.
정연의 제자인 채희의 오라버니이자, 과거에 합격하고도 출사하지 않고 1년 내내 밖으로만 떠도는, 허 진사 인우.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는 여주와 돈을 잔뜩 벌고서 방랑하고 있는 남주의 이야기입니다.
둘 모두 아픈 상처를 안고, 전형적인/평범한 것과는 먼 삶을 선택한 혹은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그래서인지 제목이며 표지처럼 잔잔해 보이는 분위기 속, 캐릭터들의 행보는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았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정연은 이름처럼 고요한 연못을 떠올리게 하는 여주입니다.
연못에 무수한 돌이 던져져도, 그것은 한 순간의 파문일 뿐, 이내 고요한 그대로 남아있죠.
역경 속에서도 누군가를 배려하고, 용서하고, 온화한 마음씨를 잊지 않는.
답답해 보일 수 있고 복수의 통쾌함을 바랄 수는 없지만, 차분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인우는 이름처럼 비라면, 아마 폭풍이거나 따가운 비이거나 할 것 같은 남주입니다.
과거에는 잔잔하게 내려 평화로운 비였겠지만, 바람이라는 주변 환경이 그의 날을 세워버린.
그 비는 다른 이들을 상처입히기 전에, 우선 제 속을 할퀴고 자신을 좀먹게 했습니다.
이야기가 인우의 집에 정연이 글선생으로 머물면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야기 중심은 인우입니다.
인우는 어떤 사람일까,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상한 뜬소문의 진상은 무엇일까.
그리고 인우가 겪은 일은―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지고 목숨을 잃었는데, 벌 받고 책임지는 이가 없다는 것.
피해를 입은 자들의 삶이 고통의 한가운데인데도, 가해자는 태연하기 그지없는 현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 사실이 피해자들을 더욱 괴롭게 하는 것 같아요.
심지어 벗이라는 자들은 아픔을 감싸기는 커녕, 죽은 자의 명예를 더럽히며 제 욕심을 채우네요.
인우가 겪은 고통에는 여러 가해자가 있었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직접적인 가해자, 그 상황으로 이끌어 간 간접적인 혹은 진정한 가해자,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상황을 악용하여 제 욕심을 채운 새로운 가해자.
전자 둘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일어난 사건이 명확하게 악행임은 알고 있습니다. (반성의 여부는 둘째치고)
그러나 세 번째 가해자의 경우, 사실 행동 자체는 전자 두 명보다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가벼운 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끔찍한 악인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볍게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지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밀어놓고서, 그리 했다는 죄책감도 후회도 없이, 되려 그 시체의 품을 뒤지는 듯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정말 치가 떨렸습니다.
최종 장면은 인우가 어떠한 잔혹한 사적 복수를 이루더라도, 정당하게 느껴지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정연은 인우를 막습니다. '그러지 말라'고.
정연이 그 전에 자신을 학대해 온 이를 용서하였기에, 더욱 그 마음이 다가오는 말이었지요.
한 번 법에게 외면당하여 상처입은 피해자가, 복수 대신 다시 법에 맡기고자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피해자들의 한 점 흐림 없는 행복이야말로 가해자에게 진정한 복수가 된다고 생각하기에, 인우의 선택이, 인우와 정연의 행복한 결말이 기뻤습니다.
"네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한 것밖에는 없어요. 당신을 구한 건 당신 자신이에요."
제목부터 아련한 풍경을 연상하게 만들어서인지, 끝까지 읽고 나니 제목처럼 <고요한 연못에 내리는 비>, 풍경묘사가 유난히 기억에 남습니다.
진부하지만, 진흙 속에서 피어나 더욱 향기롭다는 연꽃처럼, 이들의 행복은 서글프고 아팠던 세월 위에 쌓인 것이라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나 봅니다.
작가님이 후기에서 이 작품을 '샬롯 브론테에게 보내는 팬레터이며 지친 나를 위한 응원', <제인 에어>를 모티브로 하셨다고 하는데요.
확실히 읽노라면 <제인 에어>가 떠오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연이 마냥 제인 에어와 겹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제인 에어>를 좋아해서 연상되는 부분에 익숙함을 느꼈고 <제인 에어>를 다시 읽고 싶어졌지만, 이 부분은 아마 취향이 맞는 분도 있고 아닌 분도 계실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 완연히 <제인 에어> 조선시대 버전 같은 느낌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