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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독을 품은 꽃 (총3권/완결)
김혜지 지음 / 베아트리체 / 2017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역모 사건에 휘말린 남편과 오라비의 눈앞에서 황제의 검으로 처형당한 여인.
"당신, 복수할 거야."
마지막 말을 남긴 그녀는 12년 전, 오라비 송우가 과거 급제한 날에 눈을 뜬다.
"이번 생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담장 안 내조하는 삶밖에 몰랐던 송화는, 그날의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데……
변방으로 내쳐진 힘없는 황자였던, 화련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황위 쟁탈전을 이겨낸 황제.
그녀는 독을 가진 꽃이었다.
자신이 죽인 황태후가 보인 마지막 눈처럼 매서운 눈의 소녀에게 마음이 향했다.
"기다릴 것이다. 네가 마음을 온전히 줄 때까지 나는 기다릴 것이다."
선은 송화가 이야기한 과거를 안 후에도, 그녀를 향한 마음을 굳게 내보이는데……
※ 스포일러 주의
황제에게 죽고 12년 전으로 돌아온 송화는 다시 그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전과 사뭇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황제의 눈에 띄게 된다. 송화는 자신에게 끌리는 황제가 이전에는 그렇지 않은 데다, 회귀 전 자신을 죽인 살인자 본인이기도 하니 당연히 껄끄럽다.
송화는 달라진 행동으로 인해 회귀 전 부군이었으며, 송화에게 있어서는 미래의 남편이라 여긴 임혁이 사실 회귀 전 황후이자 현재의 황후 내정자인 세도가의 딸 김영이를 연모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송화는 회귀 전 이야기를 황제에게 털어놓게 되고, 송화에게 다가가던 황제는 송화의 눈빛이 드러낸 진실에 고민하며 망설이다가도 결국 그녀에게 기다림을 말하게 된다. 회귀 전 임혁-송화, 황제-영이의 관계가 감정적으로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여기까지가 대략 1권인데, 회귀 이야기며 감정선이 정리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송화의 삶이 시작된다.
송화는 회귀 전에도 의무로 황후 간택에 참가했었으나, 황후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고 황후 내정자인 김영이를 비롯해 구세력 공신가의 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떨어져서 기뻐했을 지경이었다. 황후는 김영이였고, 황제는 여러 공신가의 딸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여 후궁 안 다툼이 살벌했다. 그러나 현재, 송화를 마음에 둔 선은 이전과 달리 간택 과정에 직접 관여하고 송화 역시 스스로 나서서 구세력과 신세력 모두를 포용해 오히려 김영이가 역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듯한 분위기가 될 정도로 화기애애하게 간택이 진행된다.
한편 김영이는 임혁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녀는 겉으로만 세도가의 금지옥엽일 뿐 사실 황후로 만들고자 입양한 서녀라 집안사람들에게 괄시당하기에 황후가 되는 길 외의 자유는 없다. 집안의 힘을 빌리고, 영이 개인이 황제에게 목숨마저 내놓겠다 맹세하여 이전처럼 황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만 황제는 이미 송화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송화를 하나뿐인 후궁으로 맞아들이고 후궁 소생 황자가 태자가 되었을 때 모후가 거처하는 궁을 하사한다.
후궁이 된 송화와 황후가 된 영이의 대립, 황제 아닌 다른 황자들을 지지했던 공신가와 황제가 직접 뽑은 신하들인 신흥 세력들 사이의 대립, 호시탐탐 영토를 노리는 북방 이민족들, 황제가 죽인 줄 알았던 다른 황자가 살아있다는 소문과 황제에게 원한을 품고 진짜 역모를 준비하는 세력들……. 간택이 끝나고 영이가 황후가 되어 정국이 변화하고 송화가 황제의 후궁으로서 존재감을 지니게 되면서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된다. 송화는 회귀 전 지식을 활용하고 겉보다 십여 년 더 쌓인 내공을 이용하는 등 대처하다가, 악역들이 음모를 실행시키면서 어떤 사건으로 캐릭터성이 변한다. 사실 이 부분이 좀 읽기 힘들었다. 남주의 감정선이 좀 급하지 않은가 싶어도, 여주의 캐릭터로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사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간단히 결말을 짓자면 조마조마하긴 해도 위기를 잘 벗어나 송화도 선도 행복해진다.
회귀물 로맨스에서, 사실 으레 신경쓰이는 점이 몇 있다. 회귀 전 남주와 여주 사이에 악연이 있었다면 그것을 해결하고 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는가(보통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하기에 더욱)? 회귀한 쪽은 회귀하지 않은 쪽에게 회귀에 대한 사연 혹은 회귀 전의 이야기 등을 하게 되는가(보통 회귀한 쪽의 캐릭터는 회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기에)? 등이다. <독을 품은 꽃>은 우선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한다. 남주는 빠른 단계에서 여주가 회귀했음을 알게 되며, 여주를 죽인 자가 남주이기는 하였으나 그녀와 그녀의 집안을 죽음으로 몰고간 진짜 원인은 따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후자는 이 소설에서 제일 인상깊은 부분이기도 했다. 회귀 전 송화는 역모에 휘말렸는데, 송화와 그 가족들에게 있어 그 역모가 누명인 것은 진실이지만, 혁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이다.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이자 오라비의 친우인 혁은 짝사랑하는 영이를 위해(아마 회귀 전에도 혁은 송화와 결혼 전 영이와 마음을 나누고, 영이의 처지를 알고, 그 집안의 멸시를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오로지 그녀의 추문을 더 큰 사건으로 덮고자 역모를 꾸몄거나 용인했거나 방관했다. 그것이 자신은 물론이고 십 년 간 같이 산 아내, 어린 아들, 부모, 아내의 가족까지 모두 죽게 할 거라는 것을 알고서도 '너만은 지켜 줄 거'라고 한 것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아무리 소중해도 그렇지, 그 사람을 지키고 싶다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을텐데 어떻게 제 손으로 가족을 죽이는 거나 다름없는 길을 택한 걸까. 아니, 자백을 받기 위해 온갖 고문을 했을 테니 차라리 제 손으로 죽이는 게 고통은 적었을 지도 모른다. 회귀 전 송화와 그 아들, 송화의 시부모=혁의 부모, 저런 인간을 사위이자 친우로서 친애했을 송화의 친정 가족들이 정말 불쌍했다.
황제-송화 커플만큼이나 스토리상 비중 높은 혁-영이 커플이지만, 영이의 캐릭터에는 납득이 가고 좋은 부분도 싫은 부분도 있지만 혁은 어느 쪽인가 하면 싫은 부분이 크다. 사랑에 눈멀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누가 피해를 당하건 파멸로 끌려가건 물불 안 가리는 캐릭터는 회귀 전부터 아주 일관적이리라 짐작되는데... 영이가 여주인공이라면 몰라도(이 경우에는 아마 황후간택 전 혁과 도망엔딩-비극 확률 높음-이거나, 송화의 존재 없이 황제가 서브남이 되어 황후가 되는 걸 피하지 못하지만 사건 전개 중 활약해 해결에 공을 세워 거래를 한다거나 해서 황후위를 내려놓고 잠적하는 해피엔딩이 되겠지) 송화가 여주인공인 이상 회귀 전 여주의 남편이었지만 여주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데다, 회귀 후에도 오로지 영이를 지키고자 아군인지 적군인지 헷갈리고 아군인 듯한데 하는 짓은 적군에게 도움을 주거나 아군의 위기를 불러오는 듯한 미묘한 입장이라 갈수록 정이 떨어졌다;; 악역들은 그냥 악역이니 그러려니 하기라도 하지. 이후 회귀 전에는 혁과 송화의, 회귀 후에는 혁과 영이의 아들인 유민과 선과 송화 사이의 딸 사이의 인연이 암시되는데... 유민이 회귀 전 송화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도, 혁의 아들이기에 영 곱지 않게 느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외전이 두 편 있다. 회귀 전 이야기를 선의 시점으로 그린 것과 송화의 둘째오라비와 송화를 돌본 의녀의 이야기. 후자는 본편에서도 비쳤던 두 사람이 이루어지는 이야기이고, 전자는 사실 선이 회귀 전에도 송화를 연모했음을 이야기한다. 선은 궁중을 견디지 못하는 송화를 차마 곁에 둘 수 없어 내보냈지만 작은 접점마다 그녀에게 마음이 갔으며, 송화를 직접 죽이고 만 끝에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이윽고 자신처럼 어머니를 잃은 아들과 피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송화의 아들 임유민에 의해 독살당하고 그 이름은 폭군의 대명사로 남게 된다. 결국 회귀로 인해 선, 송화, 혁, 영이의 얽혀있던 인연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풍/시대물/회귀물/장편이라는 키워드와 초반부 드러나는 여주인공 캐릭터가 좋아서 구입했고 캐릭터가 변화한 모 사건이 살짝 미묘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한 독서. 혁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지만 주인공들 관계를 납득할 수 있게 하는 스토리상 반전으로서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