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태양을 삼킨 꽃 6권 태양을 삼킨 꽃 6
조아라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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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가 퇴장하고 렌카이저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공식 커플이 된 두 사람. 꽁냥꽁냥(?) 연애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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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황녀의 시녀였던 소녀가 공작의 손에 이끌려 황녀로서 살아가게 된다.

황제에게 복수하기 위해, 황위를 차지하기 위해.

 

연재 초기에 읽기 시작해서, 좀 늘어지는 것 같았는데, 루드비히와 파사칼리아의 이야기가 올라올 때 즈음 다시 읽기 시작했다. 2부까지 연재분이 완결 난 뒤에 정주행했고, 책이 어서 나와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예판 시작! 책으로 볼 레디메이드 퀸의 이야기와, 박스세트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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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잔뜩 몰입한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을 일찍 알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고, 앞으로 뒷권을 기다릴 생각을 하면 차라리 완결때까지 더 기다릴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그런 소설. '왕은 웃었다'. 4.5권까지 출간되었지만, 1부 완결이라는 1~4권까지 읽었다.

 

#0.

 

메마른 세계에는 물을 내리는 인간, '왕'이 존재한다. 이마에 비를 내리는 자의 징표, 군석君石을 지니고 태어난 그들은 각성하여 비를 내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왕'들 가운데 하늘의 인정을 받은 특출한 왕을 '진왕眞王'이라고 부른다.

 

'왕'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을 대가로 계약하여, 왕을 지키는 호위가 된 자를 '군위君衛'라 한다. 일반 군위는 왕과 계약하면 왕과 왕의 명령 이외의 것은 모두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러나 '진군위眞君衛'는 왕과의 계약에도 신념과 정신이 흔들리지 않는 특별한 군위다. 왕처럼 진군위 역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데, 진군위 가문 한翰의 가주의 아이들은 모두 진군위로 태어난다. 왕에게 군석이 있듯, 그들은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니고 왼손 손등에 진군위의 증표, 신석臣石이 박혀 있다.

 

(이 세계는 오백 년의 혼란기 이후 시작되었다. 혼란기 이전,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휘혁과 휘율 쌍둥이는 하나뿐인 친우 강을 잠들게 하고 동족인 인류를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인류를 몰살하고 자신을 컴퓨터화했고, 쌍둥이 중 여동생 휘율은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을 써서 지구를 재생시켰다.)

 

 

#1.

 

진곡 왕의 딸로 군석을 지니고 태어난 소녀 첸첸, 곧 왕이 될 그녀의 군위가 되고자 하는 소년 라야. 그는 소원이 있어 군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 때문에 군위가 되는 것을 소원하고 있다. 희귀한 자연족, 돌화족 노예를 산 첸첸은 라야에게도 노비 무무를 사 준다.

진군위 가문의 장자이지만, 어머니가 부정을 저질렀기에 흰 머리카락도 군석도 없이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라야는 특이한 소년 무무와 함께 지내는 동안 군위가 되기 위해 외면해왔던 첸첸의 진면목을 마주하고, 이윽고 첸첸을 떠나려고 한다.

 

"고칠 수 없어요. 고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삶의 방식에 불만을 품고 방해하는 자가 있다면! 공주님은 그 자리에서 그를 죽여 버리겠죠. 공주님은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르니까. 공주님은 자신을 변화시킬 모든 사람을 죽일 거예요." - 1권/p.109

 

"너도 왕이니까, 해 봐."

열세 살의 어린왕은,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 1권/p.386

 

무무의 본명은 아기에. 1권은 첸첸의 장이며, 라야와 아기에의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 세계관을 설명하는 외전 역시 수록되어 있다.

 

 

 

#2.

 

부상을 입은 채 가문으로 돌아간 라야. 가주 가연이 라야의 어머니 레나 라온을 내친 뒤 새롭게 이룬 가족들과 그를 가문의 오점으로 못마땅해하는 사람들 틈에서, 라야는 늘 힘들었다. 흰 머리카락에 군석을 지닌 진짜 진군위의 아이들, 릉가와 가륜과 적륜. 실수를 해도 사랑으로 감싸지는 그들과 달리 라야는 무엇을 해도 못마땅하게 바라봐오는 눈길을 감당해야 했다.

라야의 첫 친구 아기에에 대해 자투라가 적은 편지 한 통, 진군위 가주 가연의 왕인 송백의 왕 진화왕의 방문, 왕을 살해한 대역죄인 나얀루가 일으킨 소동, 오두막에서 병들어가던 라야의 어머니가 이윽고 사망하기까지.

 

―죄책감은 사람을 죽인다지.

그 일을 저지르고, 아가씨께서 한 말이었다. 죄책감은 사람을 죽인다. 그 말이 맞았다. 사람이 죄책감을 이길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 2권/p.139

 

"―넌 후회한다."

"저 꼬마는, 네가 사과하고 반성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셈이야!" - 2권/p.470

 

라야는 친어머니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과거를 알게 되고, 가문을 나와 정한으로 친구를 찾으러 떠난다.

 

 

 

#3.

 

정한은 마침 국명부가 열리는 때라 이방인들이 많았다. 정한에 홀로 도착한 라야는 왕을 잃어버린 군위, 미드렌과 리올을 만난다. 정한의 선대 왕에게는 군석을 지닌 첫째아들 로사우와 군석을 지니지 않은 둘째아들 로파우가 있었다. 하지만 왕으로서의 자질은 로파우가 앞서고 있었고, 나라가 없으나 군석은 지니고 있었던 그들의 여왕은 로파우와 약혼하여 정한을 이어갔을 것이었다.

하지만 로파우와 여왕이 행방불명되고, 그 부친인 선대 정한왕이 쓰러지면서, 홀로 남은 로사우가 진명 교활을 받고 즉위하여 소흔 호수를 만들었다. 선정을 펴고 있는 그에게는 군석을 지니고 태어난 두 아들이 있었는데, 쌍둥이인 그들 중 첫째는 정신병으로 감금되었고 둘째는 후계로서 자라나고 있었다.

 

"진명은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하늘의 뜻이 아닐까." - 3권/p.251

"겨우 찾았다." - 3권/p.497

 

2권이 라야의 권이었다면 3권은 아기에의 권. 2권도 그렇지만 만만찮게 혈압이 오르는 권이었다. 과연 아기에와 교활 왕의 악연은 어떻게 끝이 날까. 기해가 더해져 셋이 된 일행은 정한을 떠난다.

 

 

 

#4.

 

무엇을 말하건 어떻게 행동하건 고깝게만 보는 가문의 사람들은, 라야에게 진실을 물으려는 시도를 하지도 않은채 멋대로 그를 재단하고 깎아내린 끝에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가차없이 빼앗는다. 레나 라온이 헛소문으로 인해 소중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로.

라야는 아기에에게 과거를 밝히고, 자신으로 인해 동료를 잃고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가문으로 향하기로 한다. 마침 물오름달(3월)이라 가문까지 가면 푸른달(5월)이 되고, 가문에선 홀수 해마다 누리달(6월)에 큰 행사를 연다. "그 남자가 나에게 사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p.255)"을 도와달라 말하는 라야. 가문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진군위가 있으면 진왕이 될 거라 믿는 유한왕, 군석을 가진 채 아직 각성하지 못한 왕 적오, 라야의 약혼녀 하림…….

 

라야에게 독한 말을 내뱉다 못해 라야의 어머니마저 모욕한 적륜, 그리고 적륜의 멱살을 잡은 라야. 적륜에게 라야가 폭력을 휘둘렀다고 생각한 가연은 라야의 뺨을 치고 라야는 창문 너머로 떨어지다, 아래에 릉가가 있어 제대로 착지하지 못해 머리를 다쳤다. 안경이 부서지고 피투성이가 된 라야의 맨얼굴을 본 이들이 그 얼굴이 가연과 지나치게 닮은 것을 알아채고, 정신을 잃은 라야와 실수했다고 말하는 가연 앞에서 아기에는 레나 라온의 일기장을 읊는다.

 

"당신이 밀었지."

아기에가 불쑥 말했다. 가연의 눈동자가 위층을 향하는 것을 보고, 노리듯이 파고들었다.

"당신 손으로 아들을 떠밀었잖아, 이렇게." - 4권/p.323

 

라야의 머리색이 검었던 이유, 진왕과 진군위의 관계…… 라야를 진군위 시조 라호와 꼭 닮았다고 말하는 현자 강의 등장과 함께, 라야의 비밀이 차츰 풀려나간다.

 

"……진군위는 올바른 감정과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왕이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존재랬지."

그 말이 옳았다.

진군위가 왕을 바른길로 이끌고 있었다.

어째서 '진군위가 모시는 왕이 진왕이 된다'라는 소문이 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어긋난 길로 가는 진왕을, 진군위들이 옆에서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옆에 있는 것이다. 진군위가 모시는 왕이 진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왕眞王의 곁에 진군위眞君衛가 있는 것이다.

아기에는 깊게 숨을 내쉬고 라야에게 다가가 그가 내민 검을 잡았다. 검집은 뭉툭하고 딱딱했다. 이 검은 이제 라야의 수족이 될 것이다. 수족이 되어 자신을 지킬 것이다.

아기에는 그 검을 잡으며 눈을 감았다.

여전히 그자가 밉고, 죽이고 싶지만 라야가 있는 한은 무리일 것이다.

진군위인 라야가 옆에서 지켜 주는 동안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아기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며 조용히 웃었다. - 4권/p.468

 

4권은 여러모로 풀어내는 장이었다. 교활 왕이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되면서도, 아기에와 라야가 어두운 과거로부터 풀려나는 듯하여 다행스러웠다. 4.5권이 나오고 아직 5권이 나오지 않았는데, 5권에서는 이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완결에서 또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 왕은 웃었다 연표 정리

 

진곡력 100년 악몽왕 탄생(각성)

진곡력 200년 악몽왕 사망. 소생왕 탄생(각성)

진곡력 299년 배덕왕 탄생(각성)

진곡력 380년 로사우 탄생

진곡력 388년 로사우(8) 각성

진곡력 398년 미드렌(20) 리올(19) 여왕(19) 정한 도착

    398년 로파우(17)와 여왕 약혼, 로사우(18)와 루가얀(18) 만남

진곡력 400년 교활왕/정한正瀚 각성, 소흔小昕 호수 만들라 명령

진곡력 401년 교활왕(21)과 루가얀(21) 결혼

진곡력 430년 진화왕(20)/송백松白 각성 - 가연(17)과 만남, 계약 체결

진곡력 484년 아기에와 라기에 탄생

    484년 가연(71) 가문으로 돌아와 레나 라온(17)과 결혼

진곡력 485년 라야 탄생

진곡력 487년 라야의 태생이 밝혀짐, 릉가 여덟 달만 채우고 출생

진곡력 488년 가륜 탄생

진곡력 489년 적륜 출생

진곡력 492년 아기에(8) 각성, 루가얀(112) 은둔

진곡력 500년 라야와 아기에 만남

    500년 적자색 군석 각성, 첸첸 왕.

    500년 마지막 달, 가문 한翰에서 라야 떠나다. 대역 죄인 나얀루 참수당하다.

진곡력 501년 라야 정한에 도착, 리올과 미드렌과 만남.

    501년 정한 안에 독이 뿌려져 인명 피해가 남, 교활왕의 세 번째 군위 사망.

    501년 라야(16)와 아기에(17) 재회

    501년 진화(91) 가연(88) 라야(16) 릉가(14) 가륜(13) 적륜(12) 티폿(34)

 

 

 

진곡력 530년 진곡 왕 별세, 첸첸 왕 등극.

    530년 옥좌를 비우지 않고 나라를 외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나라의 기둥이 될 것을 선언.

    530년 그런 진곡 왕의 군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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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청아 예쁜 청아 푸른도서관 28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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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부친의 눈을 뜨고 싶다는 소원을 위해 공양미 삼백 석 대신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효성을 갸륵하게 여긴 하늘의 도움으로 왕비가 되고 아버지도 눈을 뜨게 된다는, 대략적으로 효 하면 떠오르는 옛날 이야기다.

 

이 <청아 청아 예쁜 청아>는 심청전의 재해석이지만 초점을 둔 부분은 효가 아니라 사랑이다. 여주인공이 청이라면 남주인공으로는 새로운 캐릭터 빛나로가 등장한다. 서해 용왕의 아들 빛나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죄를 지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청이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청이는 우연히 스쳐간 한 선비에게 사랑을 했고, 인당수에 뛰어들면서도 다음 생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의무감으로 청이를 원했던 빛나로는 청이를 진정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의 행복을 생각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다.

 

'청아 청아 예쁜 청아. 너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난 이제 용궁으로 돌아가 상제님께 자비를 청할 거다. 날 하늘 뇌옥에 가두어 달라고, 거북이인 채로 영원히 하늘 뇌옥에서 벌을 받겠다고 청할 거다.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와 용궁은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아버지가 그런 죄를 지으신 건 나 때문이니 이제 내가 그 죄를 다 받겠다고.'
'오랜 세월을 다시 기다리는 일도, 또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도 이제 난 할 수가 없어, 내 마음 속에는 오직 너뿐이니까. 어쩌면 상제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내 청을 들어주실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영원히 거북이인 채, 하늘 뇌옥에 갇혀 있어야겠지. 바다보다 깊은 슬픔을 안고. 하지만 내 슬픔이 바다보다 깊어도, 네가 사랑을 이룬다면, 그래서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구나.' - p. 119

 

청이는 행복해진다. 빛나로가 뭍으로 데려간 그녀를 구한 것은 그녀가 연모했던 선비였고, 그는 이 나라의 동궁이었다. 연꽃에서 나타나 효의 보답처럼 왕비가 되는 심청전의 청이와 달리, 이 작품의 청이는 동궁과의 사랑을 이루면서-장 승상댁 수양딸이 되어서 신분적 핸디캡을 극복하는 치밀함까지 더해- 빈궁이 된다. 살고 싶다며 거북이를 상대로 눈물짓거나, 부친이 기적적으로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추는 등, 여러 면에서 타당한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청이에게 그다지 호감을 안을 수 없는 건, 빛나로의 존재 때문이다. 효녀 심청이 소녀 청이로 변해 사랑이 이루어지는 대신, 청이를 왕자비로 꿈꾸었던 빛나로는 영영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짝사랑을 계속해 나간다. 이야기의 중심 가치로 불변의 효보다 불변의 사랑을 택했지만, 어쨌거나 불변의 가치도, 희생하는 사람도 여전히 남아있다. 청이는 보다 현실적으로 원본과 다르지 않게 효와 사랑의 모든 가치를 이루었지만 대신 빛나로는 철저히 비현실적인 희생자적 입장에 섰다. 중요한 건 자신이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라면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죽 이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어떤 희생이라도 부모를 위해 마다하지 않는 효성과 참 닮아있지 않은가 싶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랍니다. 중요한 건 아직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죽는 날까지 끝없이 사랑할 거라는 사실이지요." - p.142

 

빛나로의 용궁은 돌아왔을까? 만약 빛나로가 하늘 뇌옥에 갇히는 대신 어머니 아버지와 용궁에 돌아왔다고 해도, 그건 진짜 완전한 행복은 아닐 것 같다. 빛나로는 상제가 어여삐 여기는 청이라는 소녀에게 사랑을 하는 것으로, 조금 다른 형태지만 결국 죗값을 계속 치르고 있는 게 아닐까.

 

감상이야 가지가지겠지만 책장을 마지막으로 넘기는 순간 청이나 동궁이나 빛나로에게 실망하는 게 아니라 에이 더러운 세상; 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청이에게 실연당한 여러분에게'라는 글 때문인 듯. 녹록한 세상은 물론 없지만... 동화에서나마 녹록한 세상을 꿈꾸어보는 건 안 되는 걸까? 실현되지 못할 고귀한 가치, 현실에서 요구할 수 없는 정당함이라도 그것이 고귀한 정당함이기 때문에 동화의 세계에서나마 이루어지는 걸 꿈꾸는 건. 빛나로가 실연당한 게 현실적이고 이해는 하지만, 해설에서 '이런 게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 이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반감이 치솟는달까; 동화에서 이런 잔인한 현실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난 아직 동화에서는 메르헨을 꿈꾸나 보다.

 

/1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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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1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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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지방 철도와 신데렐라
제2화 저택의 가장파티
제3화 절벽의 교주
제4화 독 만찬회
제5화 죽을 때는 혼자
제6화 깨진 유리창
제7화 덴마 박사의 승천

 

 

표지에는 '방랑하는 명탐정 지장 스님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 수첩'이라고 되어 있지만, 글쎄.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 같은 건 없다는 게 감상이다. 다만 에이프릴 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지장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마다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나가듯, 독자도 함께 이야기를 곱씹으며 용의자 하나하나를 범인의 물망에 올려보는 것이 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즐거움일 것이다. 맞출 수도,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생각해보는 과정 또한 재미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에서 언제나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밀곤 하는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행각승 지장 스님의 이야기에서도 독자를 향해 묻는다.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사건에 사용된 트릭은 어떤 것인가? 지장 스님의 입을 빌려 등장하는 사건들은 가끔은 계기나 수법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결국은 모두 사람이 풀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가볍게 즐기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라는 것이 감상. 그리고 책 내용 말고, 외관에 대해서. 책 제목 디자인 같은 건 마음에 들었지만, 책 표지와 뒷면의 선전문구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작중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이 사건이 실제 체험담인가? 저 사람은 정말로 이런 일을 다 겪은 걸까? 하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던지는 지장 스님의 미스테리한 분위기라거나, 지장 스님의 청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그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그를 좋아하고 있는'게... 책 소개글만 보면 좀 반대의 뉘앙스로 읽혔다. 실제로 소개글을 보고 생각한 에이프릴 바 사람들 사이의 분위기는 소설을 읽었을 때 받은 인상과는 정반대였으니까. 이게 좀 아쉽다.

 

 

 

"선생님께 '보헤미안 드림'을 한 잔 더."
여기서 나는 엉덩이를 들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평소보다 이르긴 하지만 뭐, 슬슬 시작해볼까.
그리고 오렌지색 칵테일이 테이블에 놓이는 것과 동시에 늘 하는 대사를 했다.
"그거 재미있을 것 같군요. 오늘 밤은 꼭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 p.241

 

묻는 쪽이나 대답하는 쪽이나 참 편해서 좋겠다. 실제 범죄 수사에서 대체 누구에게 '범인은 한 명입니까?'하고 물으라는 소리인가. - p.275

 

"그 사람은 분명히 여행하는 추리소설의 화신일 겁니다. 미스터리의 천사예요."
아무렇게나 한 말이건만 일동은 몹시 좋아하며 그 천사를 위해 건배하기로 했다. 마스터를 포함해서 전원이 각자 물 탄 위스키니 진피즈 잔을 들었다.
"천사를 위해."
"천사를 위해."
미스터리의 천사를 위해."
"허튼 이야기를 위해."
"우리들의 천사를 위해."
"명탐정 지장 선생님을 위해."
술잔이 쨍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우리는 모두 그를 사랑했다. 친근한 마음이 웃음을 자아냈을 뿐이었다. - p.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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