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신 -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
서경식 지음, 김석희 옮김 / 창비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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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서경식씨의 책. 자기전 조금씩 읽기에 딱 좋았다. 과거의 폭력적인 사건들 속에서 화가들이 남긴 그림들을 한편씩 소개해준다.

히틀러 체제하의 독일에서 퇴페미술전에 출품된 작품이 여럿이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싸운 샤갈, 피카소, 모딜리아니 그리고 그 외 처음 알게된 화가들.

서경식씨를 처음 만난 십여년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 책이 좀더 다르게 다가온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중이고 한때 피해자였던 민족은 가해자가 되었으며 세계를 수호한다던 미국은 노골적이며 공격적이다. 혐오의 말들이 거리 곳곳에 현수막으로 나붙이고 핸드폰만 열면 끔찍한 사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라는 고민으로 결국 책을 덮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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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에 대한 실태를 담았다. 저학년 대상 동화다. 현재 학교에서 빚어지는 우스꽝스러우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을 좀 더 담은 동화가 나오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이건 동화에게 바라면 안되는건가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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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여자 저격수하면 떠오르는게 영화 <밀정>의 전지현이다. 근데 이 동화의 주인공은 결이 다르다. 일본에 의해 잔혹하게 키워진 살수!이다. 그런데 사고로 기억을 잃고 조선인 할아버지에게 키워진다.(영화 마녀가 조금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일본인에 의해 돌아가시면서 기억을 서서히 되찾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와 자아를 확립해간다. 그리고 일본군에게 복수를 한다. 2편이 나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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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 여주는 독립운동하다 빈털털이가 된 집안의 딸이다. 엄마, 아빠는 일찍 돌아가시고 고고한 할머니와 함께 산다. 하지만 여주는 양반이고 고고함이고 독립운동이고 뭐고 할머니한테 약도 사주고 배불리 먹고 살고 싶다.

이때 일본에서 미용을 배웠던, 예전에 할머니의 도움을 받았던 멘토가 등장한다. 이 멘토의 아래로 들어가 여주는 미용기술을 배운다. 미용을 배우면서 겪는 고생 에피소드가 잔뜩이다.

일제강점기 배경이라 단발령 등 여러 요소가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려나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머리카락을 소중히 여기는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에게 단발머리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자라나는 새싹들의 꿈을 위해서라면 이런 머리 하나도 아깝지 않다면서. 일제강점기 배경 동화는 ’독립운동’과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제를 멋지게 바꿔버린다.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꿈을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에 관한 동화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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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표지에 있는 설명이 기가막힌다.

상갓집에 가서 울어야 하지만 눈물이 막혀 버린 곡비.
죄인의 아들이라 아버지의 죽음조차 볼 수 없는 오생.
뒤주에 갖혀 죽은 아버지를 위해 울지도 못하는 정조.
가슴속에 슬픔을 켜켜이 쌓아 온 세사람은 언제쯤 눈물을 펑펑 쏟아 낼 수 있을까요?

이름이 없는 그래서 이름이 ‘아이’인 곡비가 있다. 곡비는 곡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다. 아이는 당돌하다. 오생은 죄인의 아들이라 원하는 과거급제도 보지 못하고 아비가 죽었지만 장례도 제대로 치루지 못한다.(아이가 망을 보고 몰래 장례를 치뤘따) 아이들은 서로 우정을 키운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정조를 만난다. 정조는 정체를 숨기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오생의 사정을 들으며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왕의 행차 때 오생은 용기를 내어 격쟁을 신청한다. 왕은 아이들을 모조리 데려가고 마지막에 자신의 정체를 밝혀 오생의 소원을 들어주고 아이의 이름에 좋은 뜻을 붙여준다.

달래라는 악역 캐릭터가 인위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체를 숨기고 만난 정조가 오생과 아이로 인해 위로받는 장면은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알레고리가 이런거구나 싶다. 몰래 오생의 장례를 치룰 때 다같이 떼를 지어 울고 정조도 울때 뭔가 해소되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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