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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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가족 #모리미도미히코 #작가정신 <도서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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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했지만 역시 독특하다. 그의 소설의 맛이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다는 것. 도무지 공을 잡을 수 없게 하는 엉뚱함, 상상력, 즐거움에 중독되어서 계속되는 허들을 넘게 만드는 마력. 이게 뭘까 싶으면서도 결국 빠져든다. 뭐 이렇다고? 하면서 달려들게 된다. 그것이 그의 소설의 힘, 독자를 끝까지 붙드는 힘이라고 말해야겠다.

판타지라고 해서 모든 것이 판타지는 아니다. 우리의 삶과 죽음을, 욕망과 악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인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는 꽤 많은 부채가 있지 않은가. 그런 진실들을 이 소설의 독특한 조합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
신선한 여운이 가득하다. 이 독특한 조합은 헤이안 (교토) 천도 아래 이어져 내려온 인간과 너구리와 덴구들. 인간은 도시에 살고, 너구리는 땅을 기어다니고, 덴구는 하늘을 거침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이들이 얽키고 설켜서 일상은 요지경이다. 정신을 똑바로 챙겨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매년 송년회마다 ‘너구리 전골’을 먹는 금요클럽의 인간들, 위엄을 뽐내며 너구리들을 주무르고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덴구, 덴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동경하면서 인간을 흉내 내기 좋아하는 너구리들을 대표하는 유정천 가족, 너구리 4형제. 이 엉뚱하고 독특한 조합은 재기 바랄 그 자체이다. 먹으려는 자들과 살아남으려는 너구리들, 서로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욕심을 뽐내며 대치하는 너구리들, 좌충우돌 너구리와 덴구, 그 가운데 ‘바보가 피’를 이어받은 시모가모가의 너구리 4형제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

이런저런 일이 꼬이고 때로는 긴박하고 함정에 빠지고 둔갑술이 풀려버려 너구리임을 드러내게 되지만 자고로 너구리는 재미있게 사는 일 말고는 뭐 없다는 삶의 철학은 꽤 마음에 든다. 그래, 그렇게 삶으로 나아가는 거지. 너구리에게서 삶을 즐기는 마음을 배웠다. 너구리 전골이 될 뻔한 위기를 4형제 가족이 똘똘 뭉쳐 헤쳐나가는 이야기, 다시 2편으로 출발.

<274p 바보라서 숭고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긍지로 삼는다. 춤추는 바보로 보이는 바보. 같은 바보라도 춤추는 바보가 낫다고 한다. 그렇게 멋지게 춤추면 된다. >

<441p 올해도 여러 가지 일이 있을 테지만 일단 다들 살아 있고, 일단 즐거우면 그만이다. 우리는 너구리다. 너구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재미있게 사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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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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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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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지나가다 #조해진 #작가정신 <도서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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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쯤이 되면 겨울의 신호들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다시 또 오고야 말았네 이 겨울이 하면서, 피부를 파고드는 추위의 바람과 가슴에 묻었지만 결코 영원히 묻히지 않는 존재의 기억과 아픔을 다시 꺼내들며 겨울을 맞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겨울을 기억하기에, 발목을 붙잡듯 내내 며칠간 내리던 비 내리던 날들을 원망하면서 다시 반복되는 겨울을 어쩔수 없이 통과하는 마음이 된다.

그렇게 두렵고 아픈 겨울을 버티는 것이 일이 된 내게, 겨울의 초입에 이 책이 왔다. 항상 지나서야 뭔가를 조금 알게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옆에 있을 때 알지 못하고, 그때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당장의 일상만을 위해 내 삶의 우선순위들을 좇아가며 사느라고, 소중했지만 진정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을 흘려보낸 이후, 깨닫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낸 이후에야 조금씩 변화하면서 조금은 덜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소설을 읽으며 겨울을 함께 지나고 있는 나의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라는 존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딸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이야기는 아프고 두려운 마음이 되고는 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정연‘을 바라보는 정연이었다. 엄마와의 추억, 엄마의 투병, 떠나보낸 엄마와 그 이후의 시간, 삶과 죽음의 양갈래 모두에서 엄마의 존재를 느끼는 정연의 삶의 흐름들은 언젠가 내가 치르게 될 시간들이기도 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 마음, 그리고 결국 ‘영원히’로 지속될 작별의 시간을 통과하며 그 두렵고 그리운 시간들을 정연이는 엄마의 집에서 살며, 엄마의 옷을 꺼내 입으며, 엄마의 화장품을 바르며, 엄마가 만들어 놓은 김치를 곁들여 엄마의 식당에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으며, 엄마가 돌보다가 결국 가족이 된 개 ‘정미’와 살아간다.

죽음의 이 편에서 나의 자리를 지키는 삶을, 엄마를 간직한 채 엄마의 생전 삶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정연의 별다를 것 없는 삶의 시간들이 좋았다. 우리는 삶의 절망을 품고 무너진 채로 다시 뚜벅뚜벅 살아간다는 것을, 함께 했던 시간들을 위안삼아 또 그렇게 견디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소설은 그려보인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삶의 의무라는 듯 정연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사람을, 삶을,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가는 작가님의 따뜻한 문장들이 너무나 애틋했고 고마웠다. 역시는 역시네 그랬다.

엄마를 보내기 전 정연의 그 복잡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으로 엄마라는 존재를 생각했는데 슬프지만 결과적으로 온전히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연을 삶의 방향으로 다시금 일으켜세우는 것들 때문이었다. 정미, 엄마의 물건들, 동네 사람들과 동생 미연네 가족, 엄마의 김치와 식당 그리고 칼국수.

이 소설이 지금처럼 언젠가의 나에게 빛을 주리라는 것을 깨달으며 마침내 존재와 부재의 그 방식에 대하여, 양립할 수 있는 그 이치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으니 겨울의 문턱에서 슬프지만은 않았다. 소설이 그저 소설일리 없다.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 늘 마음으로 배우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잘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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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p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스스로 깨달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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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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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정처없음 #노재희 #작가정신 <도서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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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문자공화국‘의 시민으로 살아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소설 부문으로 등단하였고 이후 소설집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번 산문집이 그의 두 번째 책인데 당연하게도 나는 처음 만나는 작가였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역시 작가는 작가다, 소설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는 감상이 줄줄이 흘러 나올 만큼 다음을 기대하게 하고 잡아끄는 글의 매력이 있었다. 특히 할아버지의 삶을 담아낸 ‘향로표지원 이부연 씨’는 한 편의 소설처럼 좋아서 자꾸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느끼고 기대하게 됐다.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의 삶, 생각, 일상, 경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책이 되는 것은 어쩐지 좀 특별하고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문자를 통한 교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정성들여 쓴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눈으로 읽히고 가슴에 닿아 스며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공통 분모인 인생.. 위태롭고 생생한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무게를 느꼈다. 두렵고 아찔했다. 그럼에도 작가가 스스로에게 자주 ‘이게 내 인생일까?’ 물었듯이 나 또한 인생이란 그런거였지, 하며 공감을 보내기도 하면서, 같이 인생의 그네를 타는 중만 같았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비슷한 희노애락을 겪으며 삶을 통과하고 있으니까 누군가의 고통, 아픔, 성공과 실패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날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가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이전과는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작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을 두려운 마음으로 대면하기도 했다. 예측불허인 인생, 누구든 언제라도 갑자기 겪을 수 있는 위기들. 그렇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삶에 대한 겸허함이 스멀스멀 흐를 수밖에 없었다.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저자는 정말 정처없이 남편 ‘여름씨’와 함께 2년마다 이곳 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는데 그때마다 나무와 함께다. 작은 나무, 큰 나무 할 것 없이 꾸리고 꾸려서 차에 싣고 함께 새로운 집으로 떠난다. 그렇게 매번 함께 한다. 키우는 나무들을 위해 장소를 물색하는 것, 그리고 같이 살기 위해 나무들과 동행하는 것, 그 애정의 마음이 나는 너무 좋았다.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정처 없음‘의 고단함이 뭐 대수냐는 듯이. 여름씨가 열심히 키워내 점점 그 수가 늘어난 블루베리 나무를 상상하는 것 또한 싱그러웠다.

저자의 경험과 어우러지는 책 이야기, 종교와 과학에 대한 생각, 이사하고 지내는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나무 이야기, 여성의 흡연에 대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거의 기회를 놓친 경험에 대해, 또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 산문집을 쓴 마음에 대해, 독서와 글쓰기를 사랑하는 저자가 앞으로 더 얼마간 나무들과 정처없이 달려나가야 할지라도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의 말처럼 나 또한 내가 가진 에너지만큼 충실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한부의 감각으로 다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녀의 세 번째 책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87p> 사실은 내가 어떻게 살든 무엇을 하든 그게 전부 다 내 인생이었다는 것을 언젠가 알게 된다.

<174p> 집 안에서 내 일을 하다가 문득 창밖을 내다보면 여름씨가 보이는 게 좋았다. 밭에서 일하는 여름이 곁에는 나무가 있고 흙이 있고 햇빛이 있고 바람이 있고 그리고 고요가 있었다.

<226p> 별들을 올려다보면서 우주를 가늠하듯 글자들을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세계를 상상한다.

<234p>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 중 누구도 나에게 그것을 써준 것이 아닌데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성장했다. 심심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슬퍼서 나는 책을 읽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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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소설, 잇다 3
이선희.천희란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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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 이선희와 천희란 #작가정신 <도서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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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잇다‘의 근대 여성 작가 이선희와 현대 여성 작가 천희란의 만남. 이선희 작가의 두 편의 소설과 천희란 작가의 소설과 에세이를 만날 수 있다.

이선희 작가의 첫번째 소설 <계산서>는 짧지만 강력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절름발이가 된 화자인 ‘나’는 비록 다리 하나를 잃었으나 자신의 마음의 바다 위에 있던 오직 하나의 섬인 ‘남편’이 있음을 위안하였건만, 어느새 부부에게는 어둠이 온다.
차라리 남편의 다리 하나가 어떤 사고에 의해 없어지기를… 그래서 서로 동등해지기를 바랐던 아내의 마음.
그러나 남편이 야밤에 매어보는 ‘새 넥타이’는 그녀의 마음을 가열차게 휘두른다. 그로 인해 ‘우리 생활의 총결산‘을 정직하게 계산할 필요를 느낀 아내는 남편의 다리 하나가 아니라, 남편의 목숨값을 원한다. 이것이 모든 아내 된 자의 계산서일 거라는 그 아찔한 결론은 통쾌하고 강력했다. 아내된 사람들의 희생, 인내의 다른 길에 남편의 욕심, 권력이 대치되어 있는 그 아이러니함을 새삼 성찰하며 그 계산서에 서린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고 또 헤아려보는 소설이었다.

이선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 <여인 명령>은 책의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호흡이 긴 소설이다. 그래서였는지 이 소설에 가장 빠져들어 읽었는데 ‘숙채’의 삶의 변모 양상을 추적하며 읽어야 하는 소설이었다. 근대화된 식민지 조선을 배경으로, 여대생 숙채와 유원의 연애, 유원의 징역살이로 인해 좌절되는 그들의 결혼, 숙채와 김의사의 결혼과 그들의 죽음이라는 서사 속에서 한 여성의 삶에 서린 그 시대의 모습, 가부장제의 모순, 연애와 결혼 제도 등에 대해 다각도로 면면을 살필 수 있었다.
특히 숙채가 유원에게 요구하는 그 마지막은 압권이었다.

천희란 작가의 소설 ‘백룸’은, 읽었는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고, 또 다시 읽고 싶다. ‘백룸’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책의 마지막에 실린 해설을 꼭 읽어야만 하는데 그걸 깨치게 되면 천희란 작가가 소설에서 그리고자 한 세계가 더 잘 느껴지고 보인다.

소설 ‘백룸’에서 게임 백룸을 플레이하는 ‘나’와 레즈비언 애인을 둔 ‘나’의 삶을 비교하며 읽는 것이 소설의 관건이었다. 소설은 규범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의 곳곳에 소수의 선택이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그 소수의 사랑 또한 잘못된 방식 위에 세워진다면 좌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스스로를 부족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애라면 그것을 이별하겠다는 ‘나’의 선택이 나는 굉장히 놀라웠다. 비단 소수의 사랑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 너머를 그리고자 한 작가의 그 마음이 읽혔기 때문에.

그래서 뒤이어 읽게 되는 에세이 ‘우리는 이 다음의 지옥도 찾아내고 말 테니까’는 완벽하게 좋았다. 이선희 소설을 이어 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 속으로 내던져지는 경험이기를 바랐’다는 마음도, ‘페미니즘은 도리어 유토파아의 도래를 계속해서 후퇴시키는 동력이어야 한다’는 답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예외를 위해 그래서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선택한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감동스러웠다.

천희란 작가가 정의한 이선희 작가처럼, 두 사람은 한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지옥을 찾아나선, 찾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백룸 너머의 세계, 보이지 않지만 있는 세계, 믿어야만 하는 그 세계, 설령 그곳이 새로운 지옥일지라도, 새로운 미궁일지라도 그녀들은 지옥을 밟고 미궁속으로 뚜벅뚜벅 향했고 또 여전히 걸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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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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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한사람 #최진영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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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정식 출간을 앞두고 받게 된
짧은 분량의 가제본,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오래된 두 나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프롤로그. 작은 나무에서 점점 큰 나무로, 300년에 300년을 몇번씩 더한 세월이 흐르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넘기는 두 나무. 태풍, 비바람과 같은 역경에도 서로를 지키기 위해 두 나무는 뿌리를 움켜쥐며 죽은 듯이 살기로 한다. 그러던 그들에게 다가온 가혹한 운명은 사람 무리의 등장. 줄기를 찍히고 베어지고 쓰러진, 강제적인 죽음.
훼손이자 파괴이자 폭발인 비극.
사람에게 파괴되고 사람을 파괴하는 나무.

두 나무의 이야기에서 소설은 사람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장미수와 신복일의 다섯 자녀, 일화, 월화, 금화, 목화와 목수. 그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가운데에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금화. 금화와 함께 산에 올랐다가 그 일을 겪게된 쌍둥이 목화와 목수. 일어났지만 일어날 수 없는 그 일을 중심으로 가족에 얽힌 비밀이 열린다. 금화와 엄마 장미수와 그의 엄마 임천자의 악몽. 꿈인듯 하지만 꿈이 아닌, ‘단 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일. 신인지 나무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존재로부터 소환되는 일.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목격하는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을 구하는 사명감을 짊어진 세 여자. 대체 누가, 왜 그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 가제본은 거기서 끝난다.

알듯 말듯, 현실인듯 아닌듯 어떤 경계에 있는 느낌이었다. 비밀에 휩싸인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어떤 세계의 문을 열기 직전의 기분이랄까. 삶과 죽음에 얽힌, 그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 여자를 소환하는 존재는 신일까 나무일까. 나무라면 나무의 복수가 시작된 걸까. 인간과 신, 혹은 나무일지 모르는 그 팽팽한 관계의 긴장감 속에서, 사라진 금화의 존재까지 너무 궁금해진다. 금화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걸까? 최진영 작가가 꽁꽁 묶어둔 그 진실의 이야기, 그 비밀 지대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소설 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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