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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는 숙녀 두 사람 ㅣ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5월
평점 :
<비웃는 숙녀 두 사람 (嗤う淑女 二人)>은 『비웃는 숙녀』, 『다시 비웃는 숙녀』에 이어지는 '비웃는 숙녀'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다. 2009년 『안녕, 드뷔시』로 제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의 대상을 수상한 작가 나카야마 시리치의 '이야미스'이다. '이야미스'는 일본의 미스터리 장르로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나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의 글도, '이야미스'라는 장르도 처음 접해서인지 정말 흥미롭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까닭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나게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마음에서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악의를 키우는 여자. 타인의 목숨 따위 벌레 취급하는 여자.
이야기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라고 한다. 이전 작품에서의 활약상을 모르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캐릭터만으로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까닭이다. 주인공 가모우 미치루(비웃는 숙녀)와 우도 사유리(연쇄 살인마 개구리) 역시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들이다. 두 빌런들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건의 스케일이 어마 무시하다. 살인 대상은 단 한 명뿐인데 폭발물을 이용해 버스를 화염에 싸이게 한다.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났던 평범한 인생들을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아니 쾌감을 느끼면서.
미치루는 자신의 손은 전혀 더럽히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범행을 저지르는 살인교사범이다. 범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설계하고 자신의 설계에 다른 이들을 교묘하게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닌듯한 인물이다. 그에 비해 사유리는 직접 범행에 관여하며 미치루의 하수인 역할을 맡는다. 그래도 한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사유리가 순순히 미치루의 범행에 가담하고 미치루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유리의 살인 본능도 한몫하지만 미치루의 치밀함이 사유리의 단순함을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
대규모 독살 사건, 대형 버스 폭파 사건, 학교 방화 사건, 헬스장 폭파 사건.
숫자 '1'을 시작으로 사건 현장에 순서대로 숫자가 발견된다. 2, 3, 4. 도대체 접점이 없는 이들이 살해당한다. 그래서 경찰은 연쇄살인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 패턴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속도감은 대단하다.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야기의 결말에 도달해서야 책을 놓을 수 있었다. 뜻밖의 살인 의도와 살인 대상은 반전도 아니다. 살인 계획의 일부였던 사유리의 대반격이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이자 매력이다. 역시 그대로 장기짝에 머물고 있을 사유리가 아닌 것이다. 사유리 역시 범죄자인데 사유리를 응원하게 된다. 왜일까?
"왜? 사유리 씨도 시간이 남아돌 텐데? 도망 중이기는 하지만 급한 일은 없잖아. 인생에 목표가 없으면 제한 시간도 없어. 악행이라는 이름의 자유. 자유라는 이름의 지루함."
이 조소야말로 미치루의 본성이다. 타인의 고뇌, 고통, 절망, 단말마. 오로지 그것들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비웃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한다.
지루함을 달래려고.
책의 띠지에 '악惡 대 악惡'이라는 문구가 미치루와 사유리에 대결을 암시하는듯하다. 하지만 각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의 마음을 조정해서 악惡에 빠지게 만드는 미치루가 악惡을 전파하는 진정한 악惡인듯하다. 악惡을 계획하는 것과 악惡을 실행하는 것. 둘 중 더 나쁜 것은 무엇일까? 정말 끔찍한 악녀惡女를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진정한 악惡의 본좌를 놓고 겨루는 두 악녀惡女의 승자는 누구일까? 그녀들의 비웃음을 지워버릴 선善은 누구일까?
"블루홀6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