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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였다. 스피치라이터에게는 '내'가 없다. 자기를 버리고, 연설하는 사람에게 빠져 살아야 한다. 그분의 논리 전개 방식, 고유의 표현 방식, 어투나 호흡, 즐겨 쓰는 용어와 농담까지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자신의 영혼을 버리고 대통령에 빙의되어 쓰고, 고치고, 쓰는 악전고투의 시간을 보냈지만, 이 시대의 사상가, 문필가였던 두 대통령과 함께 했던 시간은 진정 행복했다고 말한다.
진정한 리더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예전처럼 권력을, 돈을 휘두르던 시대는 지났다. 리더라면 구성원의 마음을 진심이 담긴 말과 글로 설득력있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은 리더로서 필요한 말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고, 말과 글로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데에서 진정한 리더였다고 할 것이다.
두 대통령이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려 했다. 그 결과이겠지만 어떤 주제, 어느 대상에 대해서도 늘 할말이 준비되어 있었고, 어느 사안에 대해서나 자신의 견해와 주장이 있었다. 두 대통령은 저자가 초안을 작성해 오면 한번에 오케이한 적이 없고 몇번을 고치게 했다. 연설문 작성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여, 연설문을 고치고 또 고쳤다.
저자는 고쳐준 내용대로 손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르침을 받는 식으로 대통령에게 글쓰기 지도를 받았다. 대통령으로부터 군더더기 삭제, 접속자 절제, 논리적 전개(불필요한 부분 삭제하고, 좋은 표현 쓰려하지 말고 논리를 정확하게), 선택과 집중, 이정표 제시, 단락의 일관성, 호흡의 일관성, 응집성, 리듬 타기, 논박, 현장감, 근거 제시, 최대한 쉽게, 친근감 표시 등의 지도를 받았다. 어떻게 쓰느냐 보다 무엇을 쓰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배웠다. 명문을 쓸지 고민하지 말고 글의 중심 내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 책에서 비서관으로 재직시 치열했던 현장에 대한 일화들, 웃지못할 해프닝들과 함께, 당시 대통령의 연설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대통령과는 메일로 주고받아 직접 대면할 기회는 적었지만, 노대통령과는 대통령 직무실 바로 옆에 비서실을 마련하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은 비서가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유머 한마디로 풀어준 일화는 서민적이었던 대통령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대통령은 젊어서부터 도전과 응전의 시대, 파란만장한 인생 역전의 시절을 보냈다. 두 대통령은 경청의 대가였으며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여 무엇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이것은 모두 대통령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했다. 두 대통령은 최고의 연설가가 되었고 사후에까지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노대통령은 퇴임후 일련의 사건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독서과 글쓰기를 그렇게 좋아했던 분이 글을 읽을수도 쓸수도 없다고 쓴 메모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절제되고 압축된 글로 표현된 노대통령의 유언과, 김대통령의 추도사는 울컥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두 분이 어디에선가 민주주의의 퇴보를 보고 계실 거라 생각하니 죄송스럽다.
쉽게 읽히는 글이 쓰기는 어렵다 -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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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 - 이덕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