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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 산책 2 - 20세기, 유럽을 걷다
헤이르트 마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유럽사 산책 2
헤이르트 마크/옥당
2011년 7월 노르웨이의 오슬로, 유소년 캠프가 열리던 평화롭던 해변의 한 마을이 순식간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옥으로 변했다. 32살의 무장한 한 남자가 무차별적으로 가한 총격으로 77명의 젊은이들이 살해되었다. 그는 전형적인 백인 남성으로 현장에서 붙잡혀 연행될 때에도 얼굴빛하나 변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자신의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언론에 집중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흡족한 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요즘 그의 재판이 시작되어서 그의 기이한 얼굴을 TV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노르웨이가 이슬람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자살 테러를 시도 했으나 자신은 계획대로 죽지 못했으며, 한국과 일본이 이상적인 단일국가라고 말했다는 황당한 주장들을 펼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노르웨이 뿐 아니라 유럽은 큰 충격에 빠졌으며 이것이 단순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개인이 저지른 사건인지, 유럽이 현재 처해있는 이민자의 문제, 경제적,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이후 또 다른 역사 여행 서적을 집필한다면 노르웨이에서는 이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1권에 이어 2권은 현재와 가깝기에 더 친숙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전쟁의 기억들, 러시아의 등장, 60년대 비틀스의 등장으로 시작된 문화 격변, 러시아 공산주의 붕괴를 이끌어냈다고 평가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체르노빌에 다시 사람들이 산다는 이야기, 코소보 사태,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 발음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전쟁과 살육의 현장,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의 이야기까지다. 현재의 유럽이 있기까지, 아니 아시아,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까지 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저자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그 시대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 그 역사적 사건의 어떤 부분을 담당했던 사람들,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끔 아흔을 바라보시는 아버님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일제 식민지를 어찌 어찌 넘기고, 한국전쟁이 터진 후 결혼을 했다고 한다. 큰 아들을 낳고 나서 저녁밥 먹다가 잡혀가 5년을 살고 오니, 아이가 자기도 못 알아보더란 이야기, 양구에서, 춘천에서 휴전을 앞두고 죽을 뻔한 이야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지낸 기억들, 그 당시에는 그저 그런 옛날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증언하는 유럽의 역사를 기술한 책을 읽다보니 지금 내가 함께 살아가는 이 분들이, 우리가 바로 역사를 이루어가는 존재란 사실이 깨달아진다. 몇 달 후면 유럽을 갈 텐데, 유럽을 여행할 때도 아름다운 성, 번화한 도시의 모습, 박물관에 감탄하기보다는 이들이 살아온 과거의 시간을 읽으려고 노력하며 현재의 유럽을 본다면 훨씬 중요한 것을 경험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