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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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선의 왕들의 치적을 담은 이 책은 태조의 함흥차사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조선이라는 왕조의 시작부터 피비린내나는 형제간의 골육상쟁이 일어났다. 태조 이성계는 이를 보다못해 함흥으로 가버리고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를 부르기 위해 차사들을 보내지만 돌아오지 못한다는 이야기. 결국 태조가 돌아오지만 아들에게 활을 쏘려하기도 한다. 권력앞에서는 형제도 가족도 없는 비정한 일면이다.
조선은 왕권과 신권의 조화와 균형으로 500년간 나라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삼권분립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듯 조선에 왕들은 세종이나 정조처럼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룬 임금들도 있으나 모든 임금들이 반드시 그랬던 것은 아니다. 태종이나 세조같이 힘으로 신권을 누른 임금이 있는가하면 반정으로 신하들에 의해 추대된 인조나 초기의 중종, 그리고 철종으로 대표되는 세도정치 시기의 임금들 처럼 신권에 눌려있는 임금들도 있었다. 또한 신권에 반하여 내키는대로 행동했다가 왕위에서 쫒겨난 연산군이나 광해군도 있었다.

조선의 왕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 첫째로 건강이 아닐까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수신은 심신의 수양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건강도 포함된다. 개혁군주인 정조도, 효명세자나 헌종도 모두 건강을 얻지 못해 자신의 치세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수명을 다했다. 물론 마음대로 조절하기 힘든 질병이나 과한 격무에 의한 질환들일 수 있겠으나 운동 등을 통한 기본적인 건강관리는 왕이 치세를 이어가는 첫번째 덕목이다.  
두번째는 소통이다. 세종은 대립파였던 황희를 끌어안았고 천민이었던 장영실을 중용하는 등 폭넓게 인재를 썼고 세조는 신하들과 술자리를 나누며 만남의 장을 가졌다. 정조는 신하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비속어를 하기도하고 화성행차를 통해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며 왕권을 과시했다.
세번째는 개인적인 능력이다. 세종이나 정조는 학자군주로써 이름나있고 신하들을 휘어잡을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이와는 반대로 어린 왕들이나 철종같이 배움이 없이 왕이 된 사람들은 신하들에게 휘둘려 세도정치같은 어지러운 세상을 맞이한다.
네번째로 주변을 보는 외교적인 눈을 가져야한다. 주변 열강들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못한 경우가 많다. 선조나 인조, 고종까지 강성해지는 외부세력을 제대로 보지못하여 침략을 당하는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반면 광해군은 선조대의 왜란을 겪고 주변국들의 사정을 알고 국내의 친명여론에도 불구하고 중립외교를 펼쳐 현대에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강조되는건 숙종의 치세이다. 숙종부분은 영조나 정조와 함께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나온다. 영정조 시기의 기반을 닦은 군주로써 인현왕후와 장희빈에 휘둘린 군주가 아닌 왕의 적장자라는 신분적 정통성으로 송시열을 사사하고 환국을 주도하여 탕평책을 시작한 왕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사육신의 사당이나 이순신의 현충사와 같은 충신들의 사당이나 명나라의 유교문화를 계승하는 의미의 대보단을 세우고 상평통보를 유통시키기도 했으며, 국방을 강화하고 지도를 제작하고 청과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영역을 확정하였다.
조선의 왕들의 정치가 현대에 있어서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서평은 거인의 서재를 통해 매일경제신문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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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의 역설 - 비난의 순기능에 관한 대담한 통찰
스티븐 파인먼 지음, 김승진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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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회는 오래전부터 비난이 만연해왔다. 비난은 일상에 너무도 깊숙히 스며들어 당연시되어 왔다.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비난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답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세부터 이어온 마녀사냥, 나치가 일으킨 유대인과 집시, 동성애자들의 학살과 최근 들어서 비난의 대상이 된 난민들과 무슬림 등 비난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와 뗄 수 없는 관련을 맺고 있다. 비난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계층, 상대편을 공격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키고 자리매김하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결혼생활을 깨뜨리며 직장동료와의 관계나 중요한 사회적 프로젝트를 망치는 등 기업에 심각한 손해를 입힐 수도 있다. 때로는 정부를 뒤엎거나 전쟁을 일으키고 인종학살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비난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정부의 잘못으로 상처를 받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소송을 통해 그들을 비난하고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기업과 사회를 감시하게 만들어 감사사회가 되어버린다. 의사는 필요없는 검사들을 하여 책임을 회피하고 경찰은 중요범죄보다 경범죄를 해결해 해결건수를 높이려는 작업 등이 일어난다.

기업이나 정부는 홍보나 감시활동 등을 통해서 비난을 피하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기도 한다.

저자는 비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는 비난이 파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과 불의를 바로잡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즉 비난이 사회에 필요한 순기능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일반적인 비난은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기업이나 국가의 행위를 비난하여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이들이 자신의 활동이나 의사결정에 대해 합당한 설명을 할 책무에 해당하는 ‘설명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난에 대하여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의 모양새는 취하되 정작 비난받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비(非)사과성 사과’나, 과거사에 대해 현재의 국가수반이 하는 등의 형식적 사과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문제해결법은 바로 비난사회보다는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문제점을 해결하는 공정사회, 그리고 처벌적인 사법체계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상호 이해를 하고 가해자의 뉘우침과 피해자의 용서를 위한 장을 마련하는 회복적 사법이다.


이 책을 통하여 필요한 비난도 있지만 많은 비난이 또한 분열을 유발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회복적 사법을 해법으로 내놓기는 했는데 과연 중요범죄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같은 범죄자들에게 이 방법은 무용일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서평은 글담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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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미래 - 49가지 단서로 예측한
마르테 셰르 갈퉁.스티그 스텐슬리 지음, 오수원 옮김 / 부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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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최근 압박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들이 나온다. 사드배치를 가지고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압박을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모양세다. 최근의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 중국은 세계경제를 뒤흔들만한 크기를 자랑한다. 중국의 인접국가로써 우리는 중국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지만 멀리서 지켜보며 중국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는 서구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 책은 노르웨이의 국방부의 중구과 아시아 전문가가 쓴 책이다. 그들은 중국을 분석함에 있어서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49 Myths about China 즉 중국에 대한 49가지 신화라는 부분을 이야기한다. 책안에서는 이것을 49가지 통념이라고 적었다. 또한 통념은 '널리 퍼져있는 그릇된 관념'이라고 정의하고 책의 내용은 그러한 중국에 대해 알려진 통념들을 반박하는 것들이다.

경제, 정치, 국민, 세계와 중국, 역사, 미래로 나뉘어진 각 장에서 중국에 대한 통념들을 반박하고 있는데  경제에서는 중국 경제가 국가주도로 세계경제를 잠식해나간다거나 중국경제의 성장이 수출주도형이라는 통념, 베끼기만 잘하는 나라다라거나 동부는 부유하고 서부는 가난하다는 통념들을 모두 깨어준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이 인용한 책들이 예측한 것과 같이 항상 들어맞는다고 볼 수는 없다. 반박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조금은 우호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중국에 대한 통념들이라는게 조금은 부정적인 부분들이 많다보니까 그것을 반박하는 저자들의 의견이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이 정말로 기업의 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민간의 기업들만의 힘으로 실물자신을 사들여 세계경제를 뒤흔드는지는 책의 내용만으로는 알기 힘들거 같다.

정치에 있어서 놀란 것은 공산당 독재의 중국이 중앙정부 아래에서 주도적으로 관리되는게 아니라 지방정부에 경제와 정치적 자유까지 어느정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미얀마의 경우처럼 중앙정부의 방침과 반대되는 상황까지 연출할 정도로 말이다. 사실 이것은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물론 대륙의 크기가 크다보니 그런 것이겠지만 지방정부의 권한이 그토록 큰 것은 과거 왕조시대의 것을 보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공산당의 지휘를 받는다는 중국군의 이야기는 좀 의아한 부분이 있다. 당을 지배하지 않고 당의 지배를 받는 군대가 단독으로 행동한다는 부분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당이 명령했으되 모르쇠로 나서지 않고 군부의 단독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언론통제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는 느낌이었다. 중국의 언론통제나 SNS 통제는 어느나라보다 강력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앱이나 사이트는 아예 막아놓는 수준이니까. 파룬궁은 국내에서도 피켓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파룬궁이 정말로 정치적인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들은 파룬궁이 광신적이며, 이미 정치적인 행동을 했기때문에 중국정부의 금지를 받고 있다고 하지만 파룬궁이 리훙쯔의 말에 복종하고 의료처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건 파룬궁이 사교에 가깝다는 말과 같은데 왜 중국외에 해외에 파룬궁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나라에서 다른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중국의 문화는 확실히 서구와 오해할만한 것들이 있다. 하지만 몸에 안좋은 콧물이나 가래를 배출하는게 좋다는건 알겠는데 아무데나 배출하는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 덕분에 중국의 한아이 정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많은 예외 상황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중국이 마오쩌둥 시대를 거치면서 남녀평등에 앞서 있다는 사실도 통설에 불과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특히나 남녀불평등을 다시 조장하게 된게 자본주의의 도입이라는 점은 씁쓸해진다. 공산당 여성의 정치진출보다는 중국여성 자신들의 인식개선도 필요해보인다.

중국 타국에 불간섭한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은 처음알게 되었다. 중국인들의 경제활동이 서구와 어느정도 차이인지는 이 책의 내용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중국의 환경오염문제는 점차 대두되고 있다. 물론 중국도 점차적으로 환경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겠지만 저자들이 말하는대로 이때까지의 중국이 환경오염에 무관심하다(기보다 외면하고 있었다는) 통설은 틀린게 아니다. 단지 앞으로는 줄이려고 노력하겠지만 이미 망가진 부분이 심각한거같다.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두려워하는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걸 용인할 정도일지는 모르겠다. 핵무기가 나중에 어떻게 사용될줄알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정도는 아닐거같다. 다만 북한이 중국과 상관없이 핵무기 개발을 성과가 있는 수준까지 밀어붙였다는게 더 믿을 수 있을 거같다.

 책에 5천년 중국역사라고 나오던데 요즘엔 6천년이라고도 하는거 같다. 중국의 긴 역사를 서구인인 저자들은 신화부분을 제외한다. 그래도 적지 않다. 그리고 중국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를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함으로써 한족중심으로 통합된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오래된 중국의 역사가 고유성을 부여하여 다른 나라의 경험과 차별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이라는 한자 용어의 어원에 대한 의견은 재미있다. 지금은 세계의 중심에 있는 국가로 알고 있지만 본래는 시기에 따라 도시나 성을 말하거나 수도, 수도인근까지 이르던 말이라는 것이다.  

  도시나 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의 소국과 거의 같은 개념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저자들은 중국인들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나 민족주의자를 제외한 지금의 중국인들이 정말로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궁금하다.

티베트가 달라이 라마로 대표되는 평화의 나라가 아닌 무사의 나라이고 야만적인 형벌의 나라였다는게 중국이 티베트를 차지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티베트에 대해서 새롭게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티베트는 중국에 속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중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들은 공산당의 정치를 중국인들이 어느정도 만족해하고 있어 근시일내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지도층이 장기적인 사고에 능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일당독재의 순기능이랄 수 있는 정책의 연속성은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뛰어난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왕조시대보다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저자들은 위안화가 달러화를 제치고 기축통화가 되거나 미국과의 전쟁 가능성이나 중국의 전쟁역량, 중국어가 세계어로써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중국이 21세기 초강대국으로 중국의 시대가 되는 것은 현상황에서 어렵다고 생각되는 결론이지만 중국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저자들의 이야기에서도 그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거 같지 않다. 

이 책은 중국에 대한 통념들을 반박하면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펴보고 서양에서 보는 중국의 모습과 미래 중국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거 같다. 



<위 서평은 부키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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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해지는 연습 -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법
조너선 페이더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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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의 스포츠 심리닥터이자 상담심리 박사인 저자 조너선 페이더가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스포츠 심리학의 지혜와 기술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현역 스포츠 심리학자로서 메이저리거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 선수들,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과의 상담 경험, 그리고 그들이 들려준 정신력 단련의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단단해지는 연습'이라는 스포츠 심리학 기술을 만들었다.  

 

 

 

조너선 페이더가 알려주는 단단해지는 연습의 토대는 사진과 같은 구조이다.

즐거움, 객관적 낙관주의, 현재와 미래에 지향점 두기, 과정에 집중하기 같은 기둥들이 그윗단계의 것들을 떠받치는 중요한 것들이라는 뜻 같다.

즐거움을 가지고 순간에 집중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성과라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일을 하는 순간순간의 집중을 통해 일을 즐기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즐거움에 집중하도록 저자는 ME기술을 강조한다. 동기(Motivation)와 즐거움(Enjoyment)을 뜻하는 것으로 분명한 동기를 확인하고 이를 떠올리며 즐거움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한다.

객관적 낙관주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3의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불안을 가지고 있고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객관적 낙관주의는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사실적 증거를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와 미래에 지향점을 두는 것은 과거에 우리가 잘못했거나 잘했거나 현재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 과거와 상관없이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에 집중하기는 결과에 우리가 목매도 결과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시작한다. 결과에 대한 희망과 집착이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결과는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결과를 이루기 위한 최선의 과정은 수행할 수 있다. 이는 현실적인 실천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과가 아니라 행동과 반응(과정)에 집중할 수 있어야하고 그것들이 연결되어 이어지는 루틴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목표란 결과 기반의 목표가 아니라 과정기반의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들은 현실가능한 것으로 단기적인 작은 목표에서부터 장기적인 최종목표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이어야하고 이를 위해 로드맵이나 마스터리맵을 작성해 정리해볼 수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동기는 자신이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내적동기이며 그중에서도 자신이 진짜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핵심가치'가 중요하다. 동기를 부여하는 원천인 핵심가치를 확인함으로써 이를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의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많은 자기계발서에 나온듯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스포츠 심리학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이후에 나오는 것들로 불안을 이기기 위한 호흡법, 실제상황을 미리 그려보는 시각화, 내면의 힘을 일깨우는 자기 대화, 몸과 마음을 질서를 통해 준비시키고 실패를 잊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루틴이다.

불안에 앞서 심호흡을 하는 것이나 마음속으로 곧 닥칠 경기나 프레젠테이션, 또는 해야할 일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는 것들은 스포츠 선수들의 방법이지만 역시 다른 책에서도 볼 수 있을법한 방법들이다. 그러나 루틴에 대한 것은 새롭다고 생각되었다. 시합이나 일하기 전 꼭 해야하는 일종의 미신으로 치부되던 행동들과 달리 루틴은 앞서말한 심호흡, 시각화나, 자기대화 등을 모두 포함하여 루틴에 깊이 몰입함으로써 불안감 등 잡음을 제거하고 집중력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루틴은 비단 처음에만 하는게 아니라 중간에 있는 실수를 잊고 다시 집중하기 위한 리셋루틴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심리적, 육체적으로 단단해지게 하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서평은 거인의 서재를 통해 어크로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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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1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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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4번째로 전 3권으로 구성된 카이사르의 여자들의 첫번째 권입니다. 콜린 매컬로의 역작으로 불리는 이 작품을 저는 아직 읽지 않았었습니다. 요즘에는 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모두나오면 한꺼번에 사서 읽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로마인이야기는 참 오랜기간 기다려서 한권한권 구입했었는데 말이죠...ㅎㅎ

어쨌든 이번에 YES24의 YES블로그 이벤트로 독자원정단이 되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처럼 그 시작은 카이사르의 여자들 중에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제외하고 로마인으로는 가장 유명한 세르빌리아가 등장합니다. 그녀의 아들은 바로 그 브루투스구요. 세르빌리아는 비록 여자이지만 로마귀족인 파트리키 특유의 거만함이나 혈통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혈통이 이상이 없는 아들 브루투스를 그토록 아끼며 집안의 큰 재산을 가진 카이피오나 이복남동생 카토를 혈통상의 이유로 싫어하고 카이피오를 암살까지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소설에서는 실제와 달리 카이사르의 큰딸 율리아와 브루투스가 약혼을 하다가 세르빌리아와 카이사르가 눈이 맞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같은 설정은 사실 연회 같은 곳에서 대화를 하다가 세르빌리아를 만나지 않았을까하는 저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것이었지만 소설에서 훗날의 복선으로써는 충분히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브루투스를 위한 변명(?) 내지는 그가 왜 카이사르를 죽였는가에 대한 원인중 몇가지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죠. 첫번째는 율리아와의 약혼인데 실제로 율리아는 폼페이우스와 결혼하게 되니까 당연히 브루투스와는 파혼하게 될거같고, 두번째는 역시나 소설적인 설정으로 세르빌리아의 3번째딸이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는 설정으로 브루투스에게 카이사르가 그의 어머니와 함께한건 물론 아이까지 있다는 분노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우러러보는 외삼촌 카토의 적수라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해적으로 고통받던 로마에서 로마의 전통을 지키려는 보니파를 이겨내고 폼페이우스가 독재관급의 작전권을 부여받고 해적소탕을 하고 루쿨루스의 미트라다테스 전쟁 원정을 마무리 짓는 부분입니다. 이때문에 루쿨루스의 원정군이 그려지는데 뜻밖에도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라는 인물이 천방지축으로 그 간사한 혀로 군중을 농락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왠지 익숙하지만 누군가 싶던 이 이름은 결국 생각났는데 바로 파트리키가 대접받던 로마에서 완전 뜻밖의 선택을 한 인물인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크루스 입니다. 그는 훗날 이름까지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로 바꾸며(소설에서는 스스로 바꾸네요?) 평민의 양자가 되어 카이사르를 위해 호민관이 되는 인물입니다. 즉 호민관이 되기 위하여 귀족의 지위를 내던진거죠. 이 소설에서는 매형들을 괴롭히다가(?) 아라비아족한테 할례를 당하고 돌아와 수치스러워하다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 돈과 인맥이 많은 집안의 풀비아와 결혼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아직 폼페이아와 연관된 신전침입 등 그의 여정이 다음권에 남아있는 것이죠. 

카이사르는 소설 속에서 고등조영관과 최고신관이 됩니다. 고등조영관으로써 그와 함께 뽑힌 파트라키 출신은 비불루스로 바로 훗날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이 되기도 하는 사람인데 그해는 율리우스와 카이사르가 집정관이었다는 말로 조롱받았죠. 소설 속 고등조영관으로써도 카이사르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카이사르는 큰 경기대회를 열고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복권하고 부친을 기리는 장례 경기를 엽니다. 하지만 엄청난 빚을 지게 되고 빚쟁이들을 막기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늘어난 피호민들을 좁은 집에 들이지 않기 위해 최고신관 직위를 다시 평민회 선거로 바꾸고 선거에 나가 보니파 후보들을 꺽고 종신직인 최고신관이 되어 최고신관의 관저를 얻게 됩니다.


중간중간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를 중심으로 소설을 이끌어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카이사르의 최대 채무자가 크라수스라고 알려져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크라수스가 채권자들을 소개만 할뿐 카이사르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와서 좀 의아했고 클로디우스의 할례이야기에 이어서 폼페이우스의 편지에서도 할례에 대해서 나오는데 작가가 할례를 특이하다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폼페이우스가 편지를 통해 클로디우스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상황을 암시한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직접적인 암시가 아니라서 왜 또 할례를 이야기한거지?하고 의아한 생각도 좀 들었거든요. 아라비아의 두목이 폼페이우스에게 전말을 말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암시라고 생각해도 될거같긴합니다.

새로이 알게 된건 그게 작가의 상상인지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로마의 시민이나 로마에 속한 곳의 사람들이 신전에 유언장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도 신녀에게 이야기를 듣고 감탄하지요. 시리즈의 다음이야기, 이전의 가이우스마리우스나 술라의 이야기도 궁금해지게 만듭니다.



<이 서평은  교유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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