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

 

막차를 타기 위해 서성이는 발소리가
잠시 버스정류장에 머물렀다가
어느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햇볕이 들면 곧 녹아버릴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 듯
사람들은 자취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쉽사리 떠나 버렸다

나는 막차에 올라 맞은편 좌석을 바라본다
저기 차가운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억척스럽게 채소를 팔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분에게도 어렴풋이 스며들어 있다
막차 안의 사람들도 같은 것을 보는지
사방은 정적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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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아주 가끔은 펼쳐든 우산을 접어 본다.

빗방울이 머리에서 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훑고 지나가면 세상에 대한 내 존재감이 살며시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두가 우산을 쓰고 있는 가운데서 느끼는 사회에서의 일탈이다. 잠시 동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나의 낭만이다.

그렇게 나를 만들어 가는 한 과정이다.

뭐, 빗물에 푹 절어 집으로 걸어와야 한다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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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에 커다란 혹이 달린 할머니. 병명이 "신경섬유종증"이란다.

혹이 얼마나 큰지 축구공만한 것 같다. 당연히 맞는 신이 없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일을 나가야 한다.


싸구려 고무 슬리퍼를 신고 빌딩을 청소하러 가신다. 화장실의 변기를 박박 닦는 모습이 안쓰럽다.


비오는 날, 버스는 할머니의 절뚝거리는 발걸음보다 훨씬 빠르고 사람들의 두 눈엔 무심함만 감돈다.


길거리에 파는 몇 천 원짜리 샌들을 오른 발에만 고이 신어 보시고는 신발을 신고 싶다고 말하시는데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왠지 모를 자책감 때문에 고개 들고 있기가 죄송스러웠다. 


부산에 사신단다. 난 대체 뭘 하고 살았기에 저렇게 가엾은 사람도 못보고 지냈는지 한탄스럽기만 하다.


텔레비전 방송 사이트에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입금 계좌가 떴다. 과자 값을 아껴서라도 할머니의 수술비에 보태야 되겠다. 제발, 그 딸과 연결된 빛쟁이들이 손대지 말아줬으면 할 뿐이다. 그들이 돈에 눈멀기 이전에 사람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픈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그리고 그 아픈 사람들이 외면당하기 쉬운 기득권의 세상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이곳은 모두의 세상이라는 것을.


우주에 비하면 좁고 좁은 땅덩어리 에서 지지고 볶고 싸워봐야 아무런 결론도 나지 않는다.


자신을 생각하는 것만큼의 반만이라도 남을 위한다면 누구나 기원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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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노을이 지기 전

감나무 잎은

낯선 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어린 시절

팔려나가는 강아지를 보는

내 마음이

꼭 저랬습니다.


등굣길 

촐랑촐랑 거리던

꼬리가 생각나

무작정 울었습니다.


나중엔

그 울음소리가 너무 슬퍼

멈출래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감이 떨어지는 이유는

뉴턴이 머리에

사과를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감나무는 바람을 통해

나는 울음을 통해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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