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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노는 아이들 - 상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선생님, 파리는 죽여도 되는데 왜 나비는 죽이면 안 되나요?"
띠지에 적힌 문구다. 읽고 순간 흠칫했다. 만약 내가 이런 질문을 받게된다면 나는 뭐라 말해야 할까. 어정쩡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얼버무릴까?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의 츠지무라 미즈키의 두번째 미스터리, <밤과 노는 아이들>. 과연 청춘 미스터리답게 청춘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감상적인 문체에, 매력적인 청춘의 불안정인 내면,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좋아하지만 견재하고 시기하는 불완전한 관계. 그런 점을 잘 그리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의지가 굳지만 여자친구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신경을 쓰고 맞춰주는 츠키코, 뭐든지 열심히 하고 곧고 바르고 꾸준히 하는, 다른 사람들 감싸안고 다정한, 노력파 고즈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붙잡아둬야 될 것 같은 화려함을 지닌 교지, 남을 멀리하는 여자보다 예쁘고 똑똑한 아사기 등 청춘을 불태우고 있는 여러가지 유형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츠키코와 고즈카, 아사기가 주로 화자로 등장한다. 츠키코의 생각하는 부분은 어딘가 자신과 닮아있어서 일부 공감하며 보기도 했다. 고즈카의 그 담담함과 담백함, 성실함, 다정함이 너무나 좋았다. 지나치게 겸손한 점이나 애매하게 넘어가려는 부분은 이 사람 너무 사람이 착한 거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인상이 좋았다. 아사기는 소설에서 존재하기에 더 그 빛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고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머리까지 좋은 아사기. 청춘 소설에서 이런 사람은 빠질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범죄자 하면 추하고 가까이 다가서기 쉽지 않은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요즘은 외모에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말끔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범죄자상으로도 같이 떠오른다. 그래서 안심 할 수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누가 범인일까, 다음으로 선택되는 피해자는 누가될까, 누가 'i'일까.
D대학 공학부의 학생인 고즈카 고타는 미국에 있는 자매결연 대학으로의 유학이 부상으로 걸려 있는 논문 콩쿠르에 응모하게 된다. 수재라고 불리는 고즈카와, 그의 같은 과 친구이자 경쟁자 사이인 기무라 아사기 둘중 하나가 1위로 뽑힐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막상 발표가 나니 그 두 사람을 제치고 'i'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최우수상 후보에 올라있던 것이다. 그들이 'i'의 정체를 궁금해하지만 결국 등장하지 않고 콩쿠르는 없던 일이 된다. 그리고 시간이 2년이 흐른 뒤, 고즈카와 아사기의 주변에서 'i'가 벌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책을 읽고 나면 이 소개문구 자체가 본 책의 핵심을 얘기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서우리만큼 콕 찝어낸다.
책 소개 문구에 조금 더 추가하자면 책 속의 살인 사건은 'i(아이)'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θ(세타)'와 함께 벌이는 '살인게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힌트를 내며 그에 걸맞는 사람을 찾아 번갈아 가며 죽이는 게임이다. 처음 정한 인원은 8명. 각각 4명씩. 사건 현장에는 생명과 관련된 무서운 동요의 한문장씩 남긴다. 다음 살인까지의 유예기간은 한달이며 그 이내에 힌트를 풀어 살인을 마무리 해야하는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살인 사건을 확인하고 메일을 통해 살인 완료 메일과 함께 다음 힌트를 보낸다.
제법 두꺼운 책 2권 내내 중심 사건은 'i'의 정체는 누구인가이다. 정말 'i'는 누구일까. 그 정체는 책이 끝나갈 무렵에야 밝혀진다.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예전에 기시 유스케의 어떤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작품보다 이 작품이 훨씬 좋았다.
심리묘사도 좋았지만 그 외에 벌어지는 '살인 게임'의 힌트, 살인 게임의 일부인 동요에 깃든 속 의미, 주인공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 여기저기 흩어놓은 단서들을 그대로 두지 않는 점, 그 단서들이 딱딱 맞아떨어져가며 사건이 진행되는 점, 여러시점을 오가며 다양한 인물의 각도에서 서술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점, 책 두께를 잊게 만드는 재미, 전부 미지로 두지 않고 독자에게도 같이 범인을 찾고 문제를 풀 여지는 주는 점이 좋았다.
같은 말의 반복인지 모르겠지만 위의 점을 조금 자세하게 말하면, 'θ'가 누구인지 일찌감치 공개함으로써 독자를 안심 시킨 뒤 뒤통수를 치는 반전도 좋았고, 그렇게 살인 게임의 한 명을 밝힘으로써 그 인물의 심리묘사가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살인 게임의 힌트와 동요를 독자와 공유함으로써 독자를 사건에 개입시켜 사건을 전개해나가며 독자 역시 누가 범인일까, 저 힌트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음은 누가 희생자가 될까 등 생각해볼 시간적 여유를 줌은 물론이고 적당한 부분에 가서 경찰을 개입시켜 사건을 해명하는 점도 훌륭했다.
여기저기 던져 놓은 사건과 관련되거나 등장 인물과 관련된 의미 불명의 단서들은 사건이 진행되면서 '아하'라는 말이 나오게끔 적절히 배치해두기도 했다. 대화나 손짓, 생각 하나하나가 뒷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어느것하나 놓치고 지나갈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 좋았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조심스럽고 안타까운 로맨스라인 역시 미스터리마냥 숨겨놓았다. 사실 사람 감정이라는게 가장 미스터리한것이 아닌가. 게다가 로맨스가 없다면 청춘 미스터리로서 부족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맨스부분이 너무 강조되지 않고 아주 미미하면서도 때론 강하게 등장하는 점은 미스터리스러운 분위기도 지키고 청춘의 느낌까지 주었다.
'아이'와 '세타' 시점에서의 심리 묘사는 뭐라 딱 꼬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그야말로 청춘 미스터리에 맞는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안하고 위태롭고 하지만 매혹적일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가끔 그 감상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너무 감상적이다는 생각이 간혹 들곤 했다.
싫어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단어의 의미를 이중적으로 해석하거나 이름에 의미를 붙이고 그 이면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자 자체가 가지는 여러가지 해석을 다방면에서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그런 점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제 1장에서 아이가 세타에게 낸 힌트를 토대로 제 2장에서 세타가 살인을 저지르는데 그녀의 이름에서 아이와 세타가 내는 힌트의 의미를 눈치챘다. 그러면 이들이 서로 번갈아 가며 내는 힌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단 누가 범인이 될지는 미정. 꼭 등장인물과 관련된 사람만이 살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힌트가 전부 한자로 나와 있어, 일본어를 잘 모르면 곤란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데로 그것도 좋았다. 한자를 안다고 해도 힌트의 의미를 모르면 알 수 없으니까. 무엇보다 하권에 가서 깔끔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사건의 보기와는 다르게 흘러간 것 역시 하나의 반전으로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각장의 챕터 제목도 의미가 있어 이번엔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이름과 관련된 경우도 있고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는 등 다양하다.
스포일러는 안 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고 말았다.
그럼 하권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밤과 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