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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라 하면 국내에서 무척이나 인지도 높은 일본 추리 소설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들고 온 작품은 <플래티나 데이터>이다.
<플래티나 데이터>의 줄거리를 짧게 말하자면 전 국민의 DNA를 데이터 베이스화해서 범죄 발생 시 현장에 남겨진 범죄자의 머리카락, 피부조각 등의 DNA자료를 입력해 범죄자를 빠르게 찾아내고 범죄 검거율을 높이는 동시에 범죄율을 낮춘다는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둘러싼 정부의 음모이다.
현재도 DNA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DNA수사를 훨씬 뛰어넘는 수사가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범죄자의 머리카락 하나만으로도 그의 키,생김새 등은 물론이고 그의 혈연의 DNA가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 있으면 이 역시 검색하여 연관성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빠른 시간내에 수많은 용의자로부터 단 한명으로 까지 줄일 수 있다. 즉 DNA 하나만으로 프로파일링을 하는 것이다. 보통 프로파일링이라 하면 범죄자가 남긴 현장을 보고 그 범죄자의 심리 분석을 해 범위를 좁혀나가는 것을 말하나, 이는 사실상 검거율이 많이 높지 않다. 하지만 이런 수사 방법을 쓴다면 정확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검거율도 높아지며 괜한 수사 인력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무척이나 효율적이며 좋은 시스템인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인간의 모든 것은 DNA로 결정된다는 바탕하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시스템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시스템의 완전함을위해 국민들의 DNA를 수집하려 하지만 DNA만으로 인간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은 어쩐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함과 동시에 그런 목적을 가지고 DNA를 채집하고 데이터 베이스화하며 분류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이 시스템을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은 범죄 NF13이 발생하고 경찰청 특수해석연구소의 연구원인 가구라는 본 시스템을 개발한 핵심인 천재 수학자를 살해한 혐의가 씌워지게 되면서 도주하게 된다. 그리고는 가구라는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벗기기 위해 도주하는 중에 완벽한 줄만 알았던 이 시스템에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플래티나 데이터'이다.
'플래티타 데이터'라는 것은 DNA 수사 시스템에서 국가 고위 간부층의 DNA만을 모아둔 것으로, 이것은 고위 간부층만을 위해 고안된 고약한 데이터였다. 예를 들자면 만약 고위 간부층의 자제가 범죄자일 경우 NF13처럼 검색이 되지 않으며 찾을 수 없다고 뜬다. 즉 범죄자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순전히 고위 간부층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이 플래티나 데이터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며 모든 국민의 DNA를 평등하고 올바르게 관리하며 이용한다는 이 시스템의 취지에 어긋난다.
고위 간부층과 관련된 사람중에 범죄자가 나오면 곤란하다? 이것은 단순한 변명에 불과하다. 다들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에 급급해 정의는 뒷전이다. 자신의 안이가 먼저인 것이다. 그런 주제에 정부는 평등을 앞세워 국민의 DNA를 모아 관리하려고 한다. 즉 전국민의 DNA는 전 국민중의 소수에 의해 관리되는 불합리함의 그 자체인 것이다.
국민의 DNA수집이라는 윤리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전 국민 모두가 이 시스템 안에서는 평등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정부가 발표한 것일 뿐이지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아무리 평등을 지향하더라도 그 안에서는 신분이 있으며 위 아래가 나뉜다. 위에 선 자들은 지배하려하고 그 방법은 더욱 더 교묘해져가는 것이다. 즉 이 시스템에서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시스템 구축 당시부터 이미 뒤틀려있었던 것이다.
이중인격자이자 정보가 곧 전부라는 사고방식을 지닌 가구라는 점점 사실에 근접해가며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을 알고 난 뒤 환멸에 빠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스템의 불완전한 점을 세상에 공표해 국민들에게 알리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은 자연주의자로 돌아가 자연으로 돌아가 살 뿐이다. 그는 결국 정부라는 커다란 괴물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이 싫어 할 수 없는 것은, 국가 권력 앞에서 우리 일개 국민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소수의 고위 간부들의 앞에서는 국민 하나 둘 쯤이야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것이다. 사회란 그런 것이다. 늘 평등을 내세우지만 정작 평등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사미라는 형사를 통해서 이는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평소 경찰계가 위계 질서가 확실한 집단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본 소설에서는 그것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위계 질서가 확실한 정도가 아니다. 아주 선이 뚜렷하다 못해 눈에 보일 정도다. 하지만 이런 선을 아사미 형사는 무시하고 가구라와 함께 진실을 향해 걸어간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오던 두 사람이 단 하나의 진실을 위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 전까지는 아사미라는 형사 캐릭터가 어찌나 매력이 없던지 형사캐릭터가 원래 이렇게 재미없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아사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둘이 의기투합하기 시작하며 플래티나 데이터를 해석하기 시작했을때가 아닌가 한다. 아사미 뿐만 아니라 가구라 역시 초반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점점 뒤로 갈수록 매력적이게 변해갔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보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 캐릭터나 심리묘사는 내 기대치에 못 미쳤다. 이야기의 초반에는 DNA 시스템의 우수성을 보여주었고 그 뒤로는 점차 그 시스템의 불완전성을 가구라의 도주를 통해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콕콕 마음에 와 닿는 직설적인 대사들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캐릭터들을 따라 책 한권을 읽어나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스토리라인 자체를 따라 읽는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무엇보다 소재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며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 사회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아마 가구라의 이중인격이나 스즈랑이 환상이었다는 것, 아사미가 가구라를 만나기 전 미나타카와 만난 다는 점등은 일부 반전을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오는 족족 눈치 채서 조금 어이가 없었다.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등장하는 것마다 눈치를 채버리면 김이 새버린다. 읽는 독자마저 속일만큼의 책 한권에 걸친 스토리텔링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스터리로써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NF13의 범인이 밝혀지고 그 이유를 보았을 때는 나 역시 다소 놀라긴 했다. 그렇지만 역시 본 책은 그런 점에 초점을 두기보단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미스터리적인 면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개인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다.
소재가 소재인지라 읽어보기 전에는 어렵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건 무척이나 술술 잘 넘어간다. 애매하게 둘러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쉬운 내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며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개인으로서도 중요한 문제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그것을 어렵게 만들지 않고 이야기로 풀어내어 의문을 던지게 만들고 작가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는 것은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문제를 다룰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까지도 이야기하는, <플래티나 데이터>. 만만치 않은 분량임에도 술술 잘 읽히는 심플한 문장과 가구라와 아사마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되는 빠른 전개와 긴장감, 긴박감이 있다. 사회파물로써 손색이 없지만 다소 미스터리한 부분이 조금 진부했지 않았나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야기다.
히가시노 게이고 책중 <변신>이라는 책을 가장 재밌게 읽었는데, 오늘부로 <플래티나 데이터>는 <변신>과는 또 다른 재미를 지닌 히가시노 게이고 베스트 책 리스트 목록에 들어갈 듯 하다. 시간이 나면 다시 읽고 인물의 입을 통해 나온 말들에 대해서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천천히 되짚어보고 싶다.
*오타로 생각되는 부분.
p152 밑에서 첫째줄 중
도아마 ㅡ> 도야마
p247 밑에서 첫째줄 중
향방 ㅡ> 행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