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 ㅣ 나와 그녀와 시리즈 1
토지츠키 하지메 지음,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토지츠키 하지메.
<나와 그녀 시리즈> 이전에 토치츠키 하지메의 작품으로 출판 된 것은 전부 BL로, 솔직히 이 작품이 나왔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종종 비엘 작가들 중 순정으로 전선을 갈아타시는 분들이 계시곤 하는데, 그게 잘 되면 독자로써는 기쁘지만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이 작품 읽기 전에 살짝 긴장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 실망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웬 걸! 이 작가 순정도 잘 그린다. 하지만 순정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 힘든 부분이(비엘 때도 그랬다.) 정말이지 너무나 좋다. 순정도 공포도 아닌,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이야기, 죽음 이야기. 특히 이 작가는 죽음 이야기가 많다. 사후라던가. 그런걸 가볍게 다루지 않고 재미도 있으면서 깊게 얘기하는 점이 너무나 좋다. 특히 그 분.위.기! 이건 읽지 않으면 모르는 토치츠키 하지메 특유의 분위기!
<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켄신이다. 그는 유라쿠류 다도 집안의 손자로, 전화로 걸려온 할머니의 부탁으로 '선생'(스즈키)의 한도(다도 모임에서 주인의 보좌역을 맡는 사람을 이르는 말) 역할을 맡게 되면서 '선생'의 조카인 '그녀'(코마치)와 '선생'(스즈키)과 '나'(켄신)는 얽히게 된다. 그래서 <나와 그녀와 선생의 이야기>.
그래, 여기까지는 좋다. 마치 다도 이야기 같다. 하지만 '선생'의 집을 방문하자 튀어나오는 건 사람 손. 뭐지? 놀라서 넘어지는 켄신이지만 일단 할머니에게 부탁받은 일이라 코마치는 스즈키랑 얽히면 죽을거라고 켄신에게 으름장을 놓음에도 끝까지 다도에 임하기로 한다. 하지만 다도에 오는 손님을 봐도 괜찮지만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지만 켄신은 그만두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알게 된다. 다도에 오는 손님이 사람이 아님을. 그리고 자신의 할머니가 이미 봄에 돌아가셨음을.
어떻게 '나'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었을까? 시기에 맞지 않는 밤에 열리는 다도회에는 왜 사람이 아닌자가 찾아오는 걸까? 그런 다도회를 여는 스즈키 선생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코마치는 왜 그렇게 선생을 싫어하는 걸까?
주술사인 스즈키는 자신의 죽은 누이이자 코마치의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다도회에 인간이 아닌 존재를 초대한다. 누이를 향한 기이한 집착.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세히 풀어놓지 않는 과거는 무엇일까. 왜 그는 그렇게 죽은 사람을 반쯤 지상에 묶어놓고 나머지 반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 그런 스즈키를 막기 위해 지상에 묶여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풀어주는 코마치는 잘못 하는 걸까. 신만이 관장할 수 있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걸까. 이렇게 기존의 질서를 흔들지 않는 사상이 있기에, 그러니까 죽은 사람은 되살아 날 수 없다는 정설을 지키고 있기에 이 만화가 현실감을 띄는게 아닐까 생각된다.
여하튼 스즈키는 삼도천 근처를 헤매고 있는 자신의 누이의 반쪽을 찾기 위해 떠나고 그를 찾아 켄신이 또 떠난다. 그런 와중에 지상에 묶여 있던 어머니의 반쪽을 풀어준 코마치. 스즈키의 누이가 정말로 삼도천을 건너는 배를 타고 건너려자, 마침 도착한 스즈키는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무너져내린다. "이제 더는 찾을 수 없다."(p.151). 완전한 상실이 있다면 이게 아닐까. 스즈키가 무너지듯, 책을 읽던 나도 같이 무너져내렸다. 어찌나 먹먹하던지, 울컥했다.
사람에게 필연적인 두 요소인 삶과 죽음. 그리고 또 사람을 갈라놓기도 하는 삶과 죽음. 그 두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스즈키. 정말 사후 세계는 있을까. 삼도천이라는 것도, 주술이라는 것도 정말 있을까. 얼마나 필사적이면 죽은 사람을 되살려놓고 싶어지는 걸까. 얼마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죽음조차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건 그냥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설명 될 수 있을까.
이건 어떻다,라고 단정내리기 힘든 만화책이다. 장르 구분도 어렵다. 책이 한 권이 끝나도 미스터리는 아직 남아 있다. <나와 그녀와 선배의 이야기>에서 이 궁금증이 조금 더 풀릴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