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인생론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최민홍 옮김 / 집문당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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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내가 앞으로 살아감에있어 고통과 욕망의 그늘뿐인 삶이라는 환상에 종속되지않고 사리와 해탈의 편안함에 이르기위한 마음가짐을 다질 수 있게 채찍질해주었다. 쇼펜하우어의 논리정연한 한문장, 한문장을 읽어내려감에따라 인간이란종족이, 인간이 만든 문명이란것이 얼마나 헛되고 거짓되고 가식적인것들인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고 나 역시도 그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약한 종족의 한개체일뿐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삶과 살려는의지, 사랑, 여자, 교육, 죽음, 윤리, 종교, 정치, 사회... 인간에게 주어지고 인간스스로 만들어낸 저 수많은 제도와 가치들속에 내재되어있는 본질.. 그것은 고통과 이기, 배타와 동정이라는것으로 함축시킬 수 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하는핵심은 '인간'을 '삶'이라는것을 '똑바로'바라보자는것이다. 더 이상 욕망과 쾌락에 사로잡혀 착각의 거미줄에 얽매여 살아가지말고... 우리가 그토록 믿고 따르는 이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사랑에 대한 맹종에 대해서도 한번쯤 의심해보고 새롭게 바라보려 노력해보자는말이다..

'그런거 필요없다! 난 낙천주의자이니까...' 거짓말!! 당신은 지금 허울좋은 빈껍데기속에 자신을 완전히 감추려하고 있다. 좀 더 솔직해져라.. 무엇이 그리도 좋아만보이는가? 정말 세상이, 인간들의 저 탐욕과 그늘지고 지저분한 이기심, 자만심, 배타심이 그렇게도 아름다워보이는가? 색안경을 벗어라! 당신에겐 지금 낙천주의라는 콩깍지가 씌어져있다...

쇼펜하우어가 만년에 인간의 삶과 문명의 전반에 대해 자신의 철학세계를 토대로 물음과 의견을 집대성해놓은 본 저서는 우리가 할 수 없이 익숙해져버린 현실생활에서의 이기적인 안녕과 행복을 전복시키면서 하나의 각성을 건네주는 또하나의 지침서가 되어 줄것이라 확신한다.

우린 어치피 죽기위해 살아가고 있는것 아닌가... 그리고 우린 우리가 생각하는것처럼 그렇게 순진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종족이다. 우리에겐 오직 '자신의 이익과 행복'만이 있을뿐이다.. 나머진 모두 가식과 오만일뿐... 궁핍은 괴로움을 낳고 충만은 권태를 낳는다.. 우리모두 착각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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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따라기 감자 외 혜원 월드베스트 21
김동인 지음 / 혜원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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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은 암울한 식민지시대를 살아가다 또 하나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끝으로 숨지게되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천재작가이다. 꽤 부유한 집안에서 평온하게 자라온 어린시절과는 달리 부친을 여의고 유산으로 뛰어든 사업마저 실패하게되면서 방황하게되는 청년시절부터 그의 삶은 분노와 고뇌로 가득채워지는데 1919년부터 쓰여진 그의 작품들은 당시 자신을 농락한 현실의 압제와 부조리에 대항하듯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문체와 스토리가 주축을 이루고있다.

K라는 남작의 집의 가정교사로 있다가 정조를 빼앗긴고 혼자의 힘으로 유산마저 감당해야했던 강엘리자베스의 비극을 다룬 '약한자의 슬픔'은 그의 첫작품이며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와 당시의 뚜렷한 계급사회의 불합리성을 되짚어보는 매우 인상적이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있다.

'배따라기'는 화자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배따라기의 소리를 찾아헤매다 만나게된 (실제 주인공격인)'형'의 회상을 큰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액자소설이다. 자신(형)의 처와 동생간의 관계를 오해하여 벌어지게되는 비극을 담고있는데 이 소설에서 작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누구에게도 쉬운행복, 영원한 행복은 있을 수 없을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얘기한다.

영화로 더 유명한 '감자'는 식민지시대의 하층민들이 얼마나 굶주린 생활을 하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돈이 필요해서 몸을 팔게되는 복녀라는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하여 인간의 목숨과 도덕성보다 돈이 더 중요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냉정하게 심판한다.

백성수라는 천재음악가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광염소나타'는 예술인의 행위적타락은 무죄라는 다소 '불합리한'전제를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기위한 김동인스스로의 변명이다. 위독한 어머니의 병원비마련을 위해 가게에서 돈을 훔치다 잡힌 백성수는 주인에게 간곡히 사정을 얘기했으나 결국 6개월 감옥생활을 면할 수 없게된다. 감옥에서 싹튼 세상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백성수는 출옥후 연쇄방화와 살인까지 저지르며 자신의 분노를 삭이는데 그 범행의 순간순간마다 떠오른 악상으로 곡을 써내려간것이 너무도 훌륭한 곡들이어서 그것이 '죄'인지 '창작'이라는 인고의 과정인지를 가늠할 수 없게되는 상황이 마련된다. 물론 상식적으론 그것은 명백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인 가치를 고려해볼 때 김동인의 변명은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

이 외에도 도회와 시골의 대비를통하여 고향의 소중함을 얘기하는 '시골 황 서방', 천재화가 솔거의 인생역경을 화려한 문체로 다룬 '광화사', 아내의 외도와 자신의 방탕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 현실을 날조하는 한 인간의 노력을 그린 '발가락이 닮았다', 대표적인 민족주의단편소설로 일컬어지는 '붉은산'등이 책한권을 가득 메우고있다. 김동인의 작품은 참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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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의 꼽추 청목 스테디북스 50
빅토르 위고 지음, 김영한 옮김 / 청목(청목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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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에 집필한 빅토르위고 불후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과 함께 대중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낸 작품으로도 손꼽힌다. 이 작품은 15C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주무대로 하여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사회상과 부당한 형벌제도에 관한 고찰, 그리고 역시나 소외된 삶에 대한 위고의 따스한 입김이 녹아있는 전형적인 낭만소설이다.

카지모도, 에스메랄다, 클로드 프롤로... 이 세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전개하는 빅토르위고의 놀라운 필력은 세삼스럽기까지 한 섬세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던져준다. 특히 제2장에서 보여준 노틀담성당 꼭대기에서 바라본 파리시가지의 전경묘사는 위고 자신이 파리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은만큼 읽는 우리들로서도 찬탄을 금할길 없는 글솜씨를 뽐내고 있다..

카지모도는 꼽추이다. 태어날때부터 등이굽고 다리의 짝이 맞지 않았으며 보이는 눈은 하나에 이빨은 한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반은 사람이요, 반은 짐승이라 할 정도였다. 신에게마저 버림받은 듯한 그가 에스메랄다라는 집시를 사랑하게 된 것은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숙명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알았기에 카지모도는 자신의 모든것을 그녀에게 바치면서도 섣불리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는 참으로 기묘한 운명에 처해지는데...

카지모도와 '삼각관계'를 이룬 사람은 다름아닌 그의 양아버지 클로드프롤로였다. 그는 노틀담성당의 부주교로써 성직자의 신분이었다. 그런 그 역시 육욕의 본능을 참지 못하고 에스메랄다에게 연정을 품었으니 사태는 이미 파멸의 끝을 예고 하고 있었던 셈이다.

에스메랄다는 집시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체 이 세계, 저 세계를 떠돌아 다니는 집시... 두 남자의 가슴에 불을댕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그는 잘생기고 용감한(?) 페뷔스장군이었다.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 팽개치고 그녀의 죽음마저 멀리서 방관한 그를 그녀는 사랑했다. 순진무구하고 애절하며 사랑스러운 카지모도의 순결을 비웃으며 여성의 모성애와 감정의 따스함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행위를 한 사람이 바로 에스메랄다이다. 이러한 삼각관계는 어떠한 현실적 의미도 부여할 수 없는 결말로 맺어지는데 마지막 장면들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장에서 에스메랄다가 살인의 누명을 쓴 체 처형을 당하는 모습을 (파렴치하고 영악한) 부주교(그는 이미 미쳐있었다.)프롤로가 멀리서 지켜보며 악마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 카지모도의 눈에 띄었다. 그 다음은 뻔한 사실이다. 결국 프롤로는 카지모도의 손에 도모되고 만다. 비록 자신의 양아버지이긴 하나 태어나서 진정한(그야말로 애틋한) 사랑을 느꼈던 여인이 죽어가는 모습을 쾌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에게 카지모도는 이미 전에 느꼈던 감사와 존경따위의 감정이 있을리 만무했다. 성직자의 본분을 잊은 체 속세의 욕망에 몸을 던져 죽음까지 맞이한 프롤로는 자업자득의 진리를 몸소 체험한 것이라 봐도 되겠다...

소설의 주가 되는 세 사람의 상념과 번민, 사랑과 증오가 계속되는 와중에서도 위고는 잊지않고 당시 사회의 부당한 면과 은폐된 진실을 고발한다. '판사들은 그저 듣는 척만 하면 되는 사람들이다'라는 구절에서 우리는 당시 사법제도의 병폐와 판사들의 안이한 특권의식, 그리고 정의가 몰락해가는 혼란상황을 감지해 낼 수가 있다. 방치된 불한당과 집시, 극형을 관람하는 것이 생활의 큰 즐거움이 되어버린 사회의 매마른 일상... 이러한 비판적 견해와 더불어 사형수였던 에스메랄다를 노틀담성당으로 데리고 가서 외쳤던 카지모도의 외마디 '여기는 성역이다!' 역시 당시 기독교의 위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주었고 성당안은 성역이었다는 시대적 특징을 알려주는 유익한 정보이기도 했다...

소설은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의 시체를 안은 체 유골로 발견되며 끝을 맺는다. 마지막장의 부제는 '카지모도의 결혼'이다.. 죽음으로써 이룬 꼽추의 사랑은 깊은 감동과 함께 사랑이라는 공식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을 보여준 잊지못할 장면으로 내 가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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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1 - 종달새 꼬제뜨
빅또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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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접하게 된 프랑스 문학관련 수업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나의 뇌리에 각인된 작가 빅토르 위고... 그의 최대업적인 <레미제라블 1>을 읽고 감동에 뒤엉킨 나의 내면을 글로써 표현해 보고자한다... 가난한자에게 신의 은총이 있길... 레미제라블은 1850년대 프랑스의 암울했던 시대상황을 설정하여 그 속에서 찢어발겨지는 빈민층들의 생활상들을 매우 주관적인 필체로 객관적인 (사건의)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불가피한 가난... 사회제도의 희생량으로 존재하는 굶주림... 안식과 행복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들만의 절망과 슬픔은 빅토르 위고가 그토록 경멸했던 국가권력의 방관자적 태도를 난도질하기 위한 충분한 밑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거칠것 없고 명쾌하고 날카롭기만 한 빅토르 위고의 필체는 독자들에게 어떤 '통쾌함'마저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레미제라블은 바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자들에 의한 의식적인 반항이요, 정신적인 지주가 된 소설이 아닐까...

'친'크리스찬적 사상과 이념이 난무하는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는 일단 접어두고 그 스토리 자체와 소설의 내적인 의미부여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함은 레미제라블을 읽기 위한 우리의 자세임이 분명하다.

나는 '장발장'을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이 소설을 탐닉해 나갔다. 19년간의 교도소 수감생활 끝에 비로소 세상과 맞딱드리게 되는 '영광'을 얻게되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외면하고 그는 세상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비앵브뉘 각하라는 (절대자의 모습을 한)주교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다. 장발장의 눈에 비친 비앵브뉘는 '예수'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신과의 극적인 조우... 프랑스인들에게 이보다 더 가슴 설레이고 뜻깊은 사건이 또 있으랴... 하지만 그는 비앵브뉘에게 선의의 농락을 당한 후 다시 방황하게 된다. 그를 몽뢰이유 쉬르 메르의 시장 '마들렌'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가능케 한 사건의 전말은 소설속에서 여러분들 스스로 헤아려나가길 바라며...

거두절미하고 레미제라블(1/5)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팡틴이 딸을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보여지는 비참한 모습들과 끝없는 분노가 복합적인 정신적 장애로까지 이어지는 그 가슴아픈 사연과 마들렌과 자베르와의 갈등이 빚어내는 수많은 감정들의 나열들이다... 특히 마들렌(장발장)의 용기와 의지의 절정이라 할만한 중죄재판소에서의 열변은 소설속 배심원들만큼이나 우리의 가슴에 진한 감동과 자신감을 심어준다.(안타까움은 이미, 벌써 내재해 있으리라...) 그리고 소설은 마지막 반전의 묘미를 외면하지 않고 또 한번의 반항을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같다. 신은 장발장을 감싸주고 장발장의 업적을 기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팡틴이나 장발장(비천한 소외계층)을 통해 빅토르 위고는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너무도 완벽하고 너무도 세련되게 말이다. 어쩌면 영원한 좌절과 헤메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것도 같았던 그들의 삶에 자유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사람은 다름아닌 빅토르 위고 바로 자신일 것이다. 그가 묘사하고 표현해 나가는 그 한구절 한구절이 신의 계시이며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신의 보살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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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외 -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항재.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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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출중한 작품들이 많은 작가인 나머지 그 영광의 이면에 가려진 체 잘 알려지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사랑의 이중성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주제로 '어느 몽상가의 추억'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소박한 한 남자와 나스첸카라는 여인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나스첸카에게는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할머니와 옷핀으로 얽혀진(그녀는 장님인 할머니의 병수발을 해야했다. 옷핀으로 할머니와 하나가 된체로...) 막막한 자신의 운명에 절망한 나머지 그 남자에게 갑작스럽운 사랑고백을 하게 된다. 그 남자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을 남긴체 성공해서 다시 돌아오면 그 때 결혼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바로 그 약속시간이 지나고 3일째 되던날 다리위에서 우리의 '몽상가'는 믿었던 사랑의 '배신'에 흐느끼고 있는 나스첸카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접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타고난 말솜씨에 현혹된 나스첸카는 자신의 모든 과거를 그에게 얘기하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서로가 되기에 이른다. 마침내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한 여자의 철저한 이중성에 희생을 당해야만 하는 몽상가의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구실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스첸카는 처음에 그를 만날 때 이미 '나를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전제를 하고 그를 만난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남녀사이라는것이 그런 약속하나만으로 형식화 될 수 있는 것이던가? 그리고 자신도 그 몽상가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기를 버린 남자가 바로 그 몽상가였으면 하는 생각은 조금 이기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현실적인 행복감과 희망을 안겨 주었던 나스첸카와의 언약은 다시금 그녀앞에 나타난 그 세들었던 남자의 등장으로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 모든 고백과 다짐, 백야처럼 밝기만 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에의 도취... 그 모든것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던 것이다. 너무도 철저한 사랑의 이중성과 의미없는 나스첸카의 사과편지 한통앞에서 사랑의 덧없음을 깨달은 우리의 몽상가는 조용히 또 다른 '백야'를 꿈꾸어 보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잣대는 과연 어떠한 기준과 관점으로 정의되어 지는것일까?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랑은 이중적인 것이며 결코 행복할 수만은 없는 모순적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듯 하다. 행복(하기만한)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슬픔과 분노를 동반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언제나 의심을 품고 행하는 적나라한 본능에의 복종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우린 사랑에 자신의 모든것을 내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이중성이다. 영원히 행복해질수는 없지만 영원히 희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매력이며 우리모두의 본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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