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 - 종달새 꼬제뜨
빅또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에서 접하게 된 프랑스 문학관련 수업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나의 뇌리에 각인된 작가 빅토르 위고... 그의 최대업적인 <레미제라블 1>을 읽고 감동에 뒤엉킨 나의 내면을 글로써 표현해 보고자한다... 가난한자에게 신의 은총이 있길... 레미제라블은 1850년대 프랑스의 암울했던 시대상황을 설정하여 그 속에서 찢어발겨지는 빈민층들의 생활상들을 매우 주관적인 필체로 객관적인 (사건의)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불가피한 가난... 사회제도의 희생량으로 존재하는 굶주림... 안식과 행복의 미덕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들만의 절망과 슬픔은 빅토르 위고가 그토록 경멸했던 국가권력의 방관자적 태도를 난도질하기 위한 충분한 밑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거칠것 없고 명쾌하고 날카롭기만 한 빅토르 위고의 필체는 독자들에게 어떤 '통쾌함'마저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레미제라블은 바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자들에 의한 의식적인 반항이요, 정신적인 지주가 된 소설이 아닐까...

'친'크리스찬적 사상과 이념이 난무하는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는 일단 접어두고 그 스토리 자체와 소설의 내적인 의미부여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함은 레미제라블을 읽기 위한 우리의 자세임이 분명하다.

나는 '장발장'을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이 소설을 탐닉해 나갔다. 19년간의 교도소 수감생활 끝에 비로소 세상과 맞딱드리게 되는 '영광'을 얻게되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외면하고 그는 세상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비앵브뉘 각하라는 (절대자의 모습을 한)주교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다. 장발장의 눈에 비친 비앵브뉘는 '예수'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신과의 극적인 조우... 프랑스인들에게 이보다 더 가슴 설레이고 뜻깊은 사건이 또 있으랴... 하지만 그는 비앵브뉘에게 선의의 농락을 당한 후 다시 방황하게 된다. 그를 몽뢰이유 쉬르 메르의 시장 '마들렌'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가능케 한 사건의 전말은 소설속에서 여러분들 스스로 헤아려나가길 바라며...

거두절미하고 레미제라블(1/5)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팡틴이 딸을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보여지는 비참한 모습들과 끝없는 분노가 복합적인 정신적 장애로까지 이어지는 그 가슴아픈 사연과 마들렌과 자베르와의 갈등이 빚어내는 수많은 감정들의 나열들이다... 특히 마들렌(장발장)의 용기와 의지의 절정이라 할만한 중죄재판소에서의 열변은 소설속 배심원들만큼이나 우리의 가슴에 진한 감동과 자신감을 심어준다.(안타까움은 이미, 벌써 내재해 있으리라...) 그리고 소설은 마지막 반전의 묘미를 외면하지 않고 또 한번의 반항을 표출하고 있다. 그것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같다. 신은 장발장을 감싸주고 장발장의 업적을 기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팡틴이나 장발장(비천한 소외계층)을 통해 빅토르 위고는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너무도 완벽하고 너무도 세련되게 말이다. 어쩌면 영원한 좌절과 헤메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것도 같았던 그들의 삶에 자유와 희망을 불어넣어준 사람은 다름아닌 빅토르 위고 바로 자신일 것이다. 그가 묘사하고 표현해 나가는 그 한구절 한구절이 신의 계시이며 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신의 보살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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