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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기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5년 9월
평점 :
#내돈내산책📚
아사이 료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드는 생각은, 참 고약하다는 것이다.
솔직히 난 전작인 <정욕>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출간 시기가 길다는 것은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팬들에게 있어서 그보다 괴로운 일도 없지 않을까.
생식기의 제목에 특이점이 있다면, 生殖記에서 ‘기’자가 그릇 (기) 器자가 아니라 기록할 (기) 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글인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주인공인 다쓰야 쇼세이, 그의 직장 동료인 야나기 다이스케, 오카무라 이쓰기, 후배인 다와다 소우, 쇼세이의 상사인 기시, 그리고 이야기의 화자인 쇼세이의 ‘생식기’라고나 할까.
쇼세이는 동성애자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성향인 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을고립시킨다. 그러나 그의 주위의 사람들이 그에게 물으려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내밀한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레이와] 시대인 현재 일본의 모습이자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정말 이 글을 쓰면서 준비를 많이 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장면을 위해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등장시킬 때 말이다. 예를 들면, 다듬이벌레, 물벼룩, 푸른줄무늬청소놀래기 등이 그런 경우이다. 그 외에도 결말부에 등장하는 인공자궁 시스템 바이오 백이나 AI 내니(유모) 등이 있다.
생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 글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생식과는 동떨어진 ‘쇼세이’이다. 그는 동성애자이나 자신의 성향을 밝힐 생각도, 파트너를 만들 생각도 없다. 그저 그는 자신의 [온전함]을 손에 넣기 위해서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회피]이자 [다이어트-디저트]의 사이클을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의 제목은 생식기일까? 그것은 아마도 생식에 대한 다양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이쓰키, 그리고 무성애자 임에도 아이를 갖고 싶어 임신한 이쓰키의 친구. 동성혼 관계이나 양자를 입양하는 사람 등의 다양한 형태의 ‘생식’에 관해서 나온다. 물론, 이쓰키와 쇼세이의 공원에서 나누는 대화야 말로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만약, 인간의 성기를 이쓰키의 말대로 어느 정도 머리가 굳은 다음에 자신이 정할 수 있었다면 (수정란이 형성될 때 이미 정해진 결과값이 아니라!) 아마도 이 책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일종의 판타지 소설로 나오지 않았을까.
아무튼, 아사이 료 작가의 책들은 고약하다. 불친절하다. 왜냐하면,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 넣고 꽁꽁 싸맨다고나 할까. 이 책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회적 고립형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적응기처럼 보인다. 아니면, 그냥 흔히 있는 말수가 적은 샐러리맨? 하지만 이 글의 화자는 그의 ‘성기’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아차, 하는 순간에 그 말을 한 게 쇼세이 인지 아니면 그의 성기인지 헷갈리게 되니까.
이 책의 특이점은 화자 말고도 더 존재한다. 뭐랄까, 일본인의 눈에서 본 일본인에 대한 글이랄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왜 쇼세이는 자신의 비밀(동성애자)을 꽁꽁 숨기고 ‘의태’까지 하는 것에 대한 모습들에 있다. ‘일본’만큼 ‘공동체’ 의식에 민감한 나라는 없기 때문이랄까, 아니면 성별에 따라 쓰는 호칭이 따로 있는 나라도, 물론 결혼해서 부부의 성이 같아지는 경우의 수는 많지만 그것까지도 넣는다고 한다면,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가 바로 일본이 아닐까.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다양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도 어딘 가에 속하고 싶은 듯하나, 결국엔 홀로 고립되길 선택한 쇼세이, 고목나무와 매미 같은 키가 큰 이쓰키와 키가 작은 다이스케, 자신의 성향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고, NPO에 가서 자신의 성향을 위한 활동을 자신을 위해 한다고 하는 소우, 그리고 소우 같은 젊은 부하직원이 이직한 것에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모르지만 젊은 직원들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기시, 그리고 이 책의 화자이자 여성기와 남성기 모두 경험하고 심지어 다듬이벌레까지 거쳐갔던 쇼세이의 ‘성기’까지 정말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책은 ‘생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가장 이야기하려는 것은 ‘다양성’이 아닐까.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독특한 화자를 등장시킨 것은 아닐까. 더구나 책의 주인공인 쇼세이가 누구보다 독특한 캐릭터성을 띄기 때문에 도리어 더 강조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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