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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종말
윤동하 지음 / 윤문 / 2025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윤문출판사에서 모집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책의 표지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중 하나입니다. 검은 표지 위에 한 인간이 두 발로 척박한 대지를 딛고 서 있는데 하늘에는 빛나는 큰 별 하나가 떠 있죠. 그 하늘 주위로 다른 별들도 있지만 말입니다. 책 표지가 사람을 매혹시킨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책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척박한 대지를 우주의 달로도 해석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인류가 다 종말을 맞은 디스토피아적 ‘지구’로 명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또다른 행성이 될 수도 있죠. 아무런 힌트도 없기에 해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책이 주는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종말>에 담긴 시들은 대체로 철학적인 물음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던지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히 작가님의 생각을 나열한 글로 보일지도 모르지만요. 물론 불교적인 색채도 짙다고 머리글이나 작가소개에 쓰여있긴 하지만 저는 [대지의 말] 구절 중에서 ‘언덕 아래 대지의 그림자/ 평생 뒤를 보지 못하는 존재의 비애’ 부분에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된 이야기는 아마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요. 물론 저 구절에서는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시를 읽는 내내 ‘지진’ 등의 천재지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부스러지는 땅’, ‘사라지지 않는 땅’ 등.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이 죽으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순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달까요. 역시 시는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책의 제목이 너무 묵직하죠. <보통의 종말>이니까요. 과연 보통이란 무엇일까요?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보통’이라는게 생각보다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어릴 땐 ‘보통’이 너무 평범해보여서 별로였고, 뭔가 특별함을 선망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보통’의 평범한 삶이 너무나도 좋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종말’이라고 하면 뭔가 ‘끝’을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해석될 여지를 주지만 끝이라는 말은 곧 또 다른 시작을 의미 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나 [우리의 하늘]이라는 시에서는 ‘매일 다르게 떠오른 하늘을 마주하라// 매일 다르게 떠오르는 삶을 마주하라 // 매일 다르게 떠오르는 하늘로부터 // 매일 새로운 삶을 발견하라.’라는 부분에서 작가님도 온전히 소멸과 종말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매일 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하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이 시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책의 제목이기도 한 [보통의 종말]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님은 보통의 종말 = 사유의 끝이자 철저한 고독, 깊은 심연에 있는 진화의 과정으로 평을 내리고 있는데 이 시가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이유이자 불교적 색채가 진짜 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자기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관찰하는 ‘나’를 들여다 본다고 하죠. 외부와 단절될 수 밖에 없는 철저하게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어쩌면 심연 깊게 들여다본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특히 불교에서 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서 모든 고뇌와 집착에서 벗어난 궁극의 경지, 즉 해탈과 적멸의 상태를 ‘열반’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이를 형상화 해서 우리 일반인의 수준에서 글로 표현한다면 딱. <보통의 종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두께는 얇습니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넘기기만 한다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죠. 하지만 시에 담긴 의미를 사색하기 시작하면 그 시간은 무한대로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만큼 ‘시’는 읽는 자로 하여금 다방면으로 해석할 여지를 주면서 동시에 읽는 자의 감정상태, 지식, 그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읽었을 때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들은 <여행자의 자질>, <작은 생명에게>, <모순의 숲> 그리고 <안식>입니다. 아마 다음에 다시 책을 펼치면 그때는 또 다른 시들이 더 와닿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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