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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ㅣ 문학동네 시집 80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나는 시집을 조아라 하지 않지만 요즘 왠지 가을을 타는지 마음이 한적해
서점에 간 김에 시집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병률작가의 시집....제목이 맘에든다..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이병률작가의 여행 에세이는 아주 맘에 들었고
그의 그런 마음이 잘 드러 나 있을 꺼라고 큰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여행에세이와 시는 다른거...다른 느낌이드라...
비오는 날 인적이 드문 어느 한 동네 어귀의 카페에서 라떼 한잔 시켜 놓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이 시집을 읽노라니 마음이 왠지 센치해지는 것 같았다.
p. 127
좋은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비좁다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적
다 하지만 햇빛은 좁은 골목에서 가루가 될 줄 안다 궂은
날이 걷히면 은종이 위에다 빨래를 펴 널고 햇빛이 들이
비치는 마당에 나가 반듯하게 누워도 좋으리라 담장 밖으
론 밤낮없는 시선들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바쁘고 나는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 내 몇 평의 땅에 골짜기가 생기도
록 뒤척인다 남의 이사에 관심을 가진 건 폐허를 돌보는
일처럼 고마운 희망일까 사람의 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
리워지는 일이 목메게 아름답다 적과 내가 한데 엉기어
층계가 되고 창문을 마주 낼 수 없듯이 좋은 사람을 만나
한 시절을 바라보는 일이란 따스한 숲에 갇혀 황홀하게
눈발을 지켜보는 일 (지금은 적잖이 열망을 식히면서 살
줄도 알지만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안에 갇혀 지내기를 희
망했다) 먼 훗날, 기억한다 우리가 머문 곳은 사물이 박혀
지낸 자리가 아니라 한때 그들과 마주 잡았던 손자국 같
은 것이라고 내가 물이고 싶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노을이
향기로운 기척을 데려오고 있다 날마다 세상 위로 땅이
내려앉듯 녹말기 짙은 바람이 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