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 - 스타트업 발굴부터 회수까지, 비상장 실전 투자 매뉴얼
장동진.한정수.김대환 지음 / 성안당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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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0.18%만 들어가던 문이 열린다, J커브 앞에서 읽은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


주식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1,400만 명쯤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중에서 비상장 주식이나 사모펀드에 제한 없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개인전문투자자'는 약 25,000명뿐이래요.


비율로 치면 0.18%.

천 명 중에 두 명꼴이니, 생각보다 훨씬 좁은 문 같아요.

10월도 어느새 하순이고,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서 겉옷을 하나 더 챙기게 되는 계절이에요. 한 주의 허리쯤인 목요일은 늘 몸이 반쯤 방전된 상태인데, 이번에 만난 책은 제목부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 회사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는데 투자 소식은 늘 제일 늦게 듣는 쪽이라, 제목에 살짝 찔렸습니다.


성안당에서 나온 이 책은 비상장 기업, 그러니까 아직 주식시장에 올라오지 않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풀어낸 실전서예요. 스타트업 빌드업 전문가와 서른다섯 곳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그리고 현직 VC 투자 총괄,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썼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저랑은 먼 세계 얘기인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을 프롤로그가 슬쩍 흔들어 놓습니다. 2021년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쿠팡 상장 종소리가 울리던 날 얘기로 시작하거든요. 국내 서학개미들이 그날 하루에만 383억 원어치를 사들였는데, 정작 가장 크게 웃은 건 10여 년 전 비상장 시절에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려 둔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그러고는 이 문장이 나옵니다.


"오늘의 공모주는 어제의 비상장 주식이기 때문이다."

비상장에 투자할 생각이 없어도 공모주 청약 한 번 해 본 사람이라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얘기 같아요. 누가 어떤 가격에 먼저 들어와 있는지, 상장하고 나서 풀려나올 물량은 얼마인지도 모른 채 들어가는 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 꽤 차분하게 설명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에서 가장 특이하다 싶었던 건 구성이에요. 투자 이론이 이어지다가 장과 장 사이마다 평범한 직장인 김민호가 첫 시드 투자부터 엑시트까지 겪는 이야기가 다섯 편 끼어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론이 현실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주인공이 펀드매니저도 재벌 2세도 아닌 그냥 직장인이라는 게 반가웠어요. 저 같은 사람도 그 자리에 앉아 볼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거든요.


1장은 비유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상장 주식이 잘 관리된 실내 낚시터라면, 비상장은 물때와 지형을 모르면 빈손으로 돌아오기 십상인 바다낚시라는 거예요. 거기다 만화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까지 나와요. 정보는 적고 변동성은 큰 비상장 시장을 한번 겪고 나면 상장 시장 흐름이 한결 또렷하게 보인다는 얘긴데, 손오공 보고 자란 세대로서는 이 비유 하나로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직장인으로서 눈이 커진 대목도 있었어요. 개인이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면 3천만 원 이하는 100%,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사이는 70%, 그 이상은 30%까지 소득공제가 된다는 내용이요. 과세표준이 1억 원인 근로자가 3천만 원을 투자하면 세금이 1천만 원 정도 줄어든다는 계산 예시까지 붙어 있어서, 연말정산 때마다 한숨 쉬던 입장에선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위험한 시장이라는 얘기도 책이 거듭 강조합니다. 전문 VC조차 10곳에 투자하면 7~8곳은 날린다고 하니까요.


1장 마지막 문장이 재밌어요. 독자가 "'한번 속는다 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이번 장의 목표다."

네, 저는 제대로 넘어갔습니다.

유난히 속도를 늦춰 가며 읽은 곳은 3장의 J커브 대목이에요. 창업자들은 밤낮없이 일하면서 '노력 → 성장 → 성공'이라는 곧은 직선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초기 하강과 데스밸리를 지나서야 폭발적 성장으로 올라가는 J자 곡선을 그린다는 거죠.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노력한 만큼 딱딱 올라가는 직선은 잘 없다는 걸 다들 알잖아요. 그래서인지 그래프 하나가 남 얘기 같지 않았어요.


데스밸리 설명은 특히 현실적이었어요. 스타트업 90% 이상이 창업 5년 안에 문을 닫고, 그 대부분이 이 구간에서 무너진대요. 이 시기에 투자자가 가장 눈여겨보는 건 고객 잔존율이라는데, 사용자가 들어왔다가 그대로 빠져나가는 '새는 바구니' 구조면 마케팅비를 아무리 부어도 성장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쏙 들어오더군요. 인스타그램이 원래 버븐이라는 위치 기반 체크인 앱이었고 유튜브는 데이팅 앱으로 시작했다는 피벗 사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카페나 세탁소, 치킨집 같은 장사와 스타트업을 나란히 놓은 문단도 기억에 남아요. 쿠팡은 10여 년 동안 수조 원의 누적 적자를 감수했는데, 같은 기간 치킨집 사장님은 한 달만 적자가 나도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예요. 퇴직하면 치킨집이라는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가는 나이라 그런지, 웃으면서 읽다가도 어딘가 서늘했습니다.


"J커브는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지금 이 어둠이 구조적인 것임을, 그리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통의 이정표다."

투자 얘기인데도 어쩐지 응원처럼 들렸어요.

3장 중반부터는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재무제표는 문제 있는 기업을 걸러내는 필터에 가깝고, 결국엔 사람을 봐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거든요. 피터 틸이 창업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던진다는 질문,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도 여기서 나와요.


이 부분은 직장인 처세서로 읽어도 될 것 같아요. 연락에 답하는 속도, 약속 시간, 자료를 준비하는 꼼꼼함 같은 습관은 일부러 꾸며 내기 어렵다면서 이런 문장을 붙입니다. "첫 미팅 약속 시간에 10분 늦게 나타나는 창업자가 대규모 기관 투자자와의 IR에서 제시간에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뜨끔하는 분들 꽤 있을 거 같아요.


레드 플래그 중에는 '"믿어달라"라는 말을 자주 쓰는 창업자'도 있었어요. 회의실에서 근거는 안 보여 주고 "이 분야는 제가 잘 압니다"만 되풀이하는 사람, 어느 회사에나 한 명쯤은 있잖아요. 책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신뢰는 중요하지만, 신뢰는 근거를 대신할 수 없다." 그린 플래그 쪽에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데려와 빛나게 해 주는 창업자가 있었어요. 미팅에서 팀원을 소개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에, 같이 일했던 좋은 팀장님들 얼굴이 몇 떠오르더라고요.


직감 얘기도 좋았어요. "숫자는 좋았는데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는 느낌을 무시하지도 말고 맹신하지도 말라고 해요. 찜찜하면 그게 어디서 오는지 찾는 질문을 더 던져 보라고요. 직감은 수많은 경험과 관찰이 무의식적으로 쌓인 결과라는데, 오래 일한 선배들이 왜 "느낌이 좀 안 좋아"라고 말하는지 이제야 설명이 되는 거 같았습니다.


"다들 투자하던데", "저 유명한 투자자도 들어갔다던데", "이 섹터 요즘 엄청 뜨던데".

FOMO를 다룬 대목에 나오는 말들인데, 투자를 안 하는 사람도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하죠.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면 그건 투자 판단이 아니라 군중 심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라고 봐요. 그러면서 "투자에서 가장 비싼 감정은 탐욕이 아니라 FOMO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이어서 확신은 조용하고 조급함은 시끄럽다는 구분이 나오고, 투자하기 전에 투자 이유와 리스크, 엑시트 시나리오를 한 장짜리 글로 정리해 보라는 방법도 실려 있어요. 써 보면 논리의 구멍이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네요.


솔직히 걸렸던 건 용어예요. GP, LP, LTV, CAC, 리텐션 같은 말이 연달아 나오면 처음 접하는 입장에선 속도가 확 줄어들더라고요. 다행히 용어마다 영어 원어와 풀이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천천히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었습니다. 경제 공부를 막 시작한 분이라면 한 번에 다 외우려 하지 말고 표시해 가며 읽는 게 편할 거 같아요.


에필로그는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한 목소리였어요. "왜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부동산에 갇힌 자본, 끊어진 세대 간 사다리 이야기를 꺼냅니다. 부동산 갭투자에 묶여 있던 수억 원이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시드가 되고, 농촌 소멸 문제를 풀려는 애그테크 창업자의 첫 투자금이 되는 장면을 그려 보이는데, 중년의 자리에서 읽으니 마음이 조금 복잡하더군요. 우리 세대가 만들어 놓은 판이 아래 세대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집값보다 아이디어의 가치가 더 공정하게 인정받는 구조"라는 문장 앞에서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 "여기에 기회가 있다. 여기에 미래가 있다."

두께는 보통 경제서보다 살짝 도톰한 편인데, 한 번 읽고 덮어 둘 책은 아닌 거 같아요. 3장에 나오는 체크리스트 네 축(경영진과 팀, 시장과 타이밍, 제품과 기술, 사업 모델과 수익구조)은 비상장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상장 주식을 고를 때 옆에 펴 두기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은 책장에서도 손이 바로 닿는 칸에 꽂아 둘 생각입니다.


창밖 나무들도 하나둘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하순이네요. 제 통장 J커브는 아직 초기 하강 구간 어디쯤인 거 같지만, 데스밸리만 지나면 폭발적 성장이 온다니 일단 버텨 보렵니다. 가을 하늘처럼 머릿속이 한결 맑아진 기분이라, 이번 주 남은 날들도 든든할 거 같아요.


공모주 창구 앞에서 막연하던 비상장 세계를 J커브와 사람 보는 눈, FOMO를 이기는 확신으로 풀어낸, 직장인도 따라갈 수 있는 실전 투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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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창업가의 J 커브 전략 - 아이디어 검증에서 시장 확장성 확보까지
서원겸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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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기술자에서 기업가로 가는 여섯 계단, 서원겸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


"5시 58분, 5시 59분… '6시 땡!'"

창업 책을 펼쳤는데 이런 문장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만원 지하철에서 체력을 다 쓰고 9시쯤 컴퓨터를 켜고, 오후엔 나른해서 쇼핑몰이랑 웹툰을 몰래 보다가 시계만 쳐다보는 하루.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운동 다녀와 유튜브 보다 잠드는 데까지 그려지는데, 퇴근하면 유튜브만 틀어놓던 예전 제 평일이랑 어쩜 이렇게 닮았나 싶더라고요. 저자는 그 하루를 두고 "위의 삶은 정확히 내가 회사를 다닐 때 평일에 했던 일상이다"라고 덧붙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서원겸 님의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이에요. 제목에 J커브가 들어가 있길래 처음엔 제 뱃살 그래프 얘긴 줄 알았는데, 그쪽은 꺾이는 구간 없이 꾸준히 올라가기만 해서 J자 축에도 못 끼는 거 같더군요. 책에서 말하는 J커브는 창업 초기에 아무리 애써도 꿈쩍 않던 그래프가, 기술과 사람, 고객, 자본,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어느 순간 가파르게 솟구치는 구간을 가리킵니다. 저자는 국내에서 인공지능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AI를 연구해 온 1세대 개발자이고, 지금은 제조 AI 기업 다겸을 이끄는 대표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의외였던 건 서문이었어요.

저자는 처음부터 창업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수능 점수에 맞춰 진학하고, 직장생활이 녹록지 않아 대학원에 갔다가, 다시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고, 몇 번 이직하고, 박사과정에도 들어갔대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인생이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 믿었다는 대목에서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그림을 한 번쯤 그려봤겠다 싶었고요. 그렇게 자본도 배경도 없이 할 수 있는 건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하는 일뿐이었다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책을 내기까지의 사연에서도 사람 냄새가 났어요. 과거를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왜 대표가 일은 안 하고 책을 쓰고 있나?" 하는 비아냥을 들을까 봐 가명으로 낼까 고민했다는 거예요. 결국 자기 이름을 걸었다는데, 그 망설임까지 서문에 그대로 남겨둔 게 좋았습니다.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만의 특이한 점은 성장의 순서를 또박또박 나눠놓았다는 데 있는 거 같아요. 기술자, 1인 사업가, 창업가, 사업가, 경영자, 기업가. 프롤로그에서 이 여섯 계단을 먼저 쭉 보여주고, 단계마다 무엇부터 하고 그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풀어가는 식이에요.


1인 사업가 단계에서 나온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큰돈을 버는 것보다 내가 만든 기술에 누군가 돈을 지불한다는 걸 직접 겪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개발자는 "어떻게 더 좋은 기술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사업가는 "고객은 무엇에 돈을 지불하는가"를 고민한다는 구분도 나오고요. 개발과는 거리가 먼 회사원이 읽어도 뜨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공들인 결과물과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해도 여전히 어렵거든요.


"기술은 경쟁력을 만들고, 영업은 매출을 만들며, 브랜딩은 기회를 만든다."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에서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영업 장이었어요. 저자는 대표가 직접 영업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초기 B2B 고객이 결국 사람을 보고 계약한다는 점을 들어요. 제품에는 하자가 있을 수 있고 회사가 중간에 없어질 수도 있으니, 고객이 기댈 수 있는 건 "이 일을 끌고 갈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거죠. 기술이 부족하고 레퍼런스가 없어도 대표의 눈빛, 태도, 진정성, 비전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는 어떤 영업 인력도 대신 전달할 수 없다는 문장 앞에서 읽는 속도가 확 느려지더라고요.


같은 장에는 대기업 임원이나 부장급을 억대 연봉에 모셔 와서 영업을 통째로 맡기는 경우도 나와요. 삼성이나 LG 출신 임원이 와서 데모 버전 제품과 5개도 안 되는 거래처를 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 거라고 하는데, 큰 조직에서 오래 일한 중년 입장에서는 웃으면서도 어딘가 씁쓸했어요. 명함 속 회사 이름이 해주던 일이 생각보다 컸다는 걸 그 자리를 떠나봐야 안다는 얘기로 읽혀서요.


투자 유치나 영업 자리에서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진짜 잘 되는 거 맞냐"는 말을 수없이 듣던 저자가 꺼낸 한 문장이 있어요.

"저희 회사 제품은 SK하이닉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품 납품 전 1년 넘게 SK하이닉스로부터 기술 검증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상대가 바로 신뢰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이 왜 초기 기술기업에 지름길이 되는지, 이 장면 하나로 설명이 끝나는 느낌이 듭니다. 지인에게 부탁할 때는 "한 곳만", "엔지니어 한 분만"처럼 콕 집어 말하라는 팁도 있는데, 창업과 상관없이 회사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품을 소개해 줄 지인이 있을지 고민하며 전화와 카톡을 돌리고, 단 하루도 지인 영업을 쉰 적이 없다고 해요.


정 많은 사람에겐 조금 서늘한 대목도 있어요.

코파운더 이야기입니다. 초기 멤버끼리는 가족처럼 지내며 도원결의를 하지만, 저자 주변 스타트업 가운데 창업 3~5년 차까지 코파운더가 그대로 남은 곳은 거의 보지 못했대요. 창업자와의 불화, 더 좋은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 본인 창업,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이직, 건강 문제까지 떠나는 이유도 가지가지고요. 그래서 중간에 떠나면 대표가 액면가로 지분을 회수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꼭 넣으라고 하더군요. 평생 갈 거라는 믿음을 반드시 버리라는 말이 냉정하게 들리면서도, 사람이 오고 가는 걸 숱하게 보는 게 회사 생활이라 그런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웃음이 난 대목도 있었어요. 저자의 회사는 오전 중 아무 때나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만 채우면 되고, 재택근무도 되고, 보고 절차는 최소한이래요.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그건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다", "그러다 회사가 개판이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는데, 정작 시행한 뒤로 스스로 그만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니 부러움 반 신기함 반이었습니다.


3F 장의 치과 일화도 빼놓기 아쉬워요. 3F는 family, fitness, freedom, 그러니까 관계와 건강과 자유를 말하는데요. 회사 다니던 시절 어금니가 아팠는데 토요일엔 예약이 안 잡히고 연차는 이미 다 써버려서, 점심을 굶고 치과에 갔다가 30분 늦었다는 이유로 크게 질책을 받았대요. 해명했더니 돌아온 말이 "젊은 사람이 좀 참으라"였다니, 남은 연차부터 세어보는 직장인이라면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장면 같아요.


솔직하게 걸렸던 건 창업 후의 하루를 그린 대목이었어요. 오전 10시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데까지는 마냥 부러웠는데, 6시 이후 전화를 꺼두고 밤 12시까지 실무, 다시 새벽 3시까지 공부로 이어지는 일정표를 보니 40대 후반 체력으로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자유를 이야기하는 장인데 일하는 시간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길어 보이기도 하고요.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는 삶을 수감에 빗댄 표현도 월급쟁이 귀에는 조금 세게 들렸습니다.


그래도 저자는 9시~18시로 출퇴근하는 분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고 그 성실한 삶을 존중한다고 먼저 밝혀두더군요. 기술창업가를 "가장 자유롭게 그러나 가장 치열하게 자기 성장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그 자유가 공짜로 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같았어요. 위의 생활이 매일 똑같이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단서도 달려 있고요.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은 보통 소설책 정도의 두께라 손에 부담이 없고, 문장도 어렵지 않아서 술술 넘어가는 편이에요. 창업 계획이 하나도 없는 저도 읽는 내내 재미있었으니, 노트북 앞에서 밤늦게까지 코딩하며 내 기술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분이라면 훨씬 자주 손이 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섯 단계가 지도처럼 정리돼 있어서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궁금할 때마다 다시 펼쳐보기 좋고, 책장 손 닿는 곳에 꽂아두고 꺼내 볼 책에 가까운 거 같아요.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 서문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하루하루 쌓인 기술과 경험, 고객과 사람, 그리고 실패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창업가에게 하는 말이지만,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사람한테도 그대로 통하는 얘기더군요.


10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주 한가운데 수요일이라 몸은 무거운데, 이런 책을 한 권 만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듭니다. 창업은 아직 먼 얘기지만 제 독서량 그래프만큼은 요즘 J커브를 제대로 타는 중이에요. 떨어지는 건 낙엽이랑 머리카락 정도로만 해두고 싶네요. 좋은 책 만나서 든든한 가을 수요일이었습니다.


"6시 땡"을 기다리던 직장인이 기술 하나로 기업가가 되기까지, 그 순서를 솔직하게 펼쳐 보인 현실 창업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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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 - 어쩌면 당연했던 흔들림의 기록
한정환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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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장님은 없었다, 한정환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 서평


누가 저한테 한 단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아마 잠깐 머뭇거릴 거 같아요. 회사 이름이나 직함을 대면 되긴 하는데, 그게 저를 다 설명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도 딱 그 머뭇거림에서 출발하더라고요. "배우 한정환입니다", "셰프 한정환입니다"처럼 자기를 망설임 없이 소개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는 고백으로요.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는 유튜브 채널 <서울 사는 남자>를 운영하는 한정환 작가의 첫 책입니다. 제목에 레시피가 들어가 있어서 처음엔 요리책인 줄 알았어요. 앞치마부터 둘러야 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앞치마 두른 사람들의 이야기더군요.

저자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했고, 12년째 외식업 관련 일을 하고 있대요. 주변에서는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부른다는데, 정작 본인은 흔들린 순간이 많았다고 털어놓습니다. 대학 시절엔 친구들과 미래 얘기를 할 때면 제 차례를 기다릴 만큼 목표가 선명했는데, 졸업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벽을 만나면서 확신이 흐려졌다고요. 그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마흔 후반인 지금도 그 질문에서 자유롭다고는 말 못 하니까요.


부러웠던 건 직업이 아니라 그 말을 자신 있게 꺼내기까지 버텨온 시간이었다는 문장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그동안 다닌 수많은 식당 가운데 오래 기억에 남은 열두 곳의 사장님을 다시 찾아가요. 질문은 하나. 저 사람이 걸어온 길은 어땠을까.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는 꼭지마다 흘러가는 방식이 재미있어요. 가게 첫인상과 음식 맛 묘사로 시작했다가, 그 맛에서 생긴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사장님 쪽으로 옮겨 가거든요. 맛집 리뷰로 들어갔다가 인터뷰로 빠져나오는 느낌이랄까요. 수백 곳을 다닌 사람이라 그런지 묘사가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고, 꼭지마다 가게 사진이 실려 있어서 그 골목 앞에 서 있는 기분도 들더라고요.


1부 첫 꼭지 (마음을 여는 열쇠 — 덕희커피)는 맛보기로 딱이에요. 입구부터 (응답하라 1988) 촬영지 같은 곳이래요. 평상 위에 바둑판이 놓여 있고, 문 옆엔 '덕희커피'라고 쓴 나무 간판이 걸려 있고요. 다른 카페들이 깔끔한 와이셔츠라면 여기는 체크무늬 남방 같다는 비유에서 가게 분위기가 단번에 그려졌습니다. 좌석을 늘리면 매출이 오를 텐데 굳이 혼자 온 손님을 위한 공간처럼 꾸며놓은 것도 궁금증을 키우더군요.


저자가 주문한 건 땅콩 크림이 들어간 크림 라떼, 피넛스윙이에요. 고소한 크림 위로 크럼블이 바삭하게 씹히고, 마지막에 따라오는 에스프레소가 "해맑은 녀석들 사이로 진중함을 더하는 어른 같은 역할"을 한대요. 커피 맛 설명인데 이상하게 사람 얘기처럼 읽혔어요. 회사에서 저는 해맑은 쪽일까, 진중한 쪽일까.

그다음 장면에서는 크게 웃었습니다. 같이 간 일행이 얘기하다 웃음이 터져서 커피를 창문에 뿜었는데, 사장님이 물티슈를 건네면서 이러셨대요.


"저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손님을 단골로 만들고 그 단골을 팬으로 만드는 카페라는 저자의 말이 그대로 납득되는 한마디 같아요. 인터뷰 요청에 다음 날 온 답장도 그 사장님다웠어요. 고민이 끝났고 재밌을 것 같아서 참여해 보고 싶다며, 끝에 "일정 조율 렛츠기릿".


렛츠기릿이라니.

2부 (어른의 사춘기 — 일이사당)은 제목부터 남 일 같지 않았어요. 사춘기라는 말이 중년에게도 붙을 수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조금 찔리기도 하고요. 저자가 자주 가는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이 '비밀의 방앗간'이라며 알려준 곳인데, 자기만 알고 싶어서 꼭꼭 숨겨뒀던 데래요. 깊숙한 뒷골목의 작은 빵집이고, 문을 열면 진열대에 빵이 가득하고 벽에는 르 꼬르동 블루 디플로마가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 많은 빵을 사장님 혼자 다 만든대요.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문을 열어서 쉬는 날이 많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쉬는 날에 주로 밑 작업을 하신다고요. 쉬는 날이면 소파부터 찾는 저 같은 사람은 괜히 뜨끔했습니다.

솔직히 걸렸던 부분도 하나 있어요. 이 책, 배고플 때 펼치면 곤란합니다. 크로슈는 겉이 바삭하게 부서지고 속은 부드럽게 사라지는데, 그 순간 바닐라빈 크림이 풍미를 터뜨린대요. 퀸아망은 캐러멜의 끈적한 단맛 뒤에 빵의 담백함이 따라오는 게 "진한 반찬 뒤에 먹는 흰밥" 같다고 하고요. 빵에 흰밥 비유를 붙이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은 진짜 음식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경력과 완성도에 비해 가격이 유난히 합리적이어서 그 열정이 쌓인 과정을 들으러 가게를 다시 찾아가는데, 거기서부터는 책으로 만나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3부 (죽음의 문턱에서 마주한 것 — 쇼니노)는 결이 조금 달라요. 용산 골목의 이탈리안 식당인데, 지인이 건넨 "거기는 입구부터 달라."라는 한마디로 소개가 시작됩니다. 저자는 그 입구를 마주하고, 어릴 때 읽은 책에서 문 하나를 열면 전혀 다른 세계로 이어지던 장면이 떠올랐다고 해요. 곳곳에 레몬이 놓여 있고, 천장의 네모난 창으로 햇살이 깊숙이 들어오는 곳이래요.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 굳어 있던 마음도 누그러뜨릴 만큼의 온기."

이 문장엔 밑줄을 긋고 싶었어요. 종이 울리면 다 같이 잔을 드는 '살루테' 시간이나 서비스로 나온 티라미수처럼 즐거운 장면이 이어지는데, 저자는 나중에 사장님이 과거에 백혈병을 앓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작은 이탈리아는 어떤 시간을 지나 만들어진 것일까. 저자가 품은 그 질문을 읽는 저도 똑같이 품게 되더라고요.


다른 꼭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건 에필로그였습니다. 저자는 정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할 때마다 책을 찾았대요. 한 권을 읽으면 정답이 보이는 듯했고, 두 권을 읽으면 서로 다른 정답 앞에서 혼란스러웠다고요. 서평단을 하면서 이 책 저 책 만나다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어요. 여러 권을 읽고 나서야 지겹도록 듣던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 비로소 마음에 들어왔다는데,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그 말을 저자 식으로 바꾼 거구나 싶더라고요.


마지막엔 도종환 시인의 구절이 나와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처음엔 감성적인 구절 정도로 여겼는데 지금은 다르게 다가온다며, 저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나 또한 그 꽃이었구나.'

<인생은 레시피대로 가지 않는다>는 보통 에세이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열두 집을 돌았으니 그럴 만도 하죠. 사진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어서, 한 번 읽고 꽂아두기보다는 마음에 남은 가게를 찾아갈 때 다시 꺼내 보게 될 책 같아요. 저자도 프롤로그에서 마음에 남는 매장이 있다면 언젠가 찾아가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사장님이 만든 음식과 공간,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라면서요. 저는 덕희커피 피넛스윙이랑 일이사당 퀸아망이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맞나 싶은 날이 잦은 분이라면 화려한 성공담보다 이 열두 사람의 흔들림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거 같아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남의 인생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제 얘기를 듣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10월도 하순이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요. 한 주의 허리쯤인 수요일, 따뜻한 라떼 한 잔이 생각나는 날씨네요.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을 열두 번쯤 들은 기분이라 마음 갈무리가 좀 된 거 같습니다. 가을 타는 아재들, 이번 가을엔 이 책이랑 같이 타 보시죠.


 


맛집 열두 곳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온 사장님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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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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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양말 뒤집어 벗는 아재가 뜨끔했던 책, 나태주×김지수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


수요일은 한 주의 허리라서 그런지, 제 허리도 꼭 이날 제일 뻐근합니다.


이번에 만난 책은 표지부터 퍽 귀여워요. 크림색 바탕 위로 물방울 두 개가 똑, 똑 떨어지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물방울이 꽃잎이 되어 피어납니다. 그런데 제목은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예요. 비참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말랑한 파스텔 옷을 입고 있으니 고개가 살짝 갸웃해지더라고요. 띠지에 적힌 시인의 한마디를 읽고 나서야 조금 감이 왔어요.


"산다는 건… 말이지요. 매우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거예요."

'인터스텔라' 인터뷰로 이름난 김지수 기자가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매주 월요일, 공주 풀꽃문학관으로 나태주 시인을 찾아가 나눈 이야기를 엮은 책이에요. 원래 <나태주의 행복수업>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가을을 맞아 새 옷과 새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고 하더군요. 봄 한철의 기록이 낙엽 지는 계절에 돌아온 셈이라, 계절이 한 바퀴 빙 돌아 제자리로 오는 기분도 듭니다.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를 펼치면 금방 눈치채게 되는 게 하나 있어요. 묻고 답하는 인터뷰집 모양새가 아니에요. 두 사람을 '태주'와 '지수'라고 이름으로 부르면서 소설 속 인물처럼 3인칭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거든요. 여든을 바라보는 노시인을 '태주'라고 부르는 게 처음엔 좀 어색했는데, 몇 꼭지 지나니까 그 호칭 덕분에 두 사람이 동네 단짝처럼 보이더라고요. 서문에서 작가는 이 책을 인터뷰 대화록이자 공주의 제철 여행기, 서툰 어른의 참회를 담은 동화, 시 해설서라고 소개합니다. 읽어보니 그 말이 꼭 들어맞는 느낌이었어요. 윤동주의 (새로운 길),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이형기의 (낙화) 같은 시들이 갈피마다 불쑥불쑥 피어나니까요.


다른 페이지보다 걸음을 늦춰 정독하듯 읽은 건 봄맞이꽃 이야기였어요. 정원 한쪽에서 작은 꽃 하나가 하루 종일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까 지수가 묻습니다. "얘는 왜 이렇게 드드드드 떨고 있어요?" 시인의 대답은 이랬어요.


"약하니까. 그냥 있는 게 떠는 거예요."

"가여워라. 꼭 나 같다"는 지수의 혼잣말에, 시인은 "생명체가 다 떨림이니까. 떨면서 나아가는 거예요"라고 받아줍니다. 회사 다니는 사람 중에 안 떨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어요. 보고 들어가기 전에도 떨고, 인사철에도 떨고, 카드 명세서 열 때도 떨고. 그 떨림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표시로 봐주는 시선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7부에 가면 이 꽃이 다시 나와요. 혼자서는 사시나무 떨듯 하던 봄맞이꽃이 동무들과 어울려 핀 자리에서는 미동도 안 하고 새초롬했다고 하더군요.


같은 7부에는 지수가 열 살 소년과 다낭으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45인승 버스에 옵션 관광, 쇼핑센터가 나오고, "여행비보다 비싼 양털 이불과 영양제 앞에서 홀린 듯 카드를 긁은 후" 서로의 어리석음에 안도하는 순간들도 나와요.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났는데, 이 문장에서는 괜히 뜨끔했습니다.


"남자들은 방어적인 수줍음으로 가족을 돌봤고, 여자들은 적당히 방심하며 경계를 풀었다."

가족 여행 가서 괜히 지도 앱만 들여다보며 앞장서는 아빠들 얼굴이 줄줄이 떠오르는 거 같았어요. 재미있는 건 이 패키지 이야기가 곧장 공주로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가이드 뒤를 병아리처럼 졸졸 따라다닐 때의 그 '수동적인 편안함'을 지수는 태주의 등 뒤에서도 똑같이 느꼈다고 하거든요. 최고의 행복 가이드라니, 이런 가이드라면 옵션 관광을 전부 신청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 속 태주는 영락없는 정원사입니다. 농사꾼 모자를 쓰고 전지가위를 들고, 검은 털신 신은 작은 노인이 나뭇가지 같은 손을 뻗어 인사하죠. 탱자나무 가시에 찔려봤냐는 물음에는 "찔려봤다마다. 이게 그 상처예요" 하며 짐짓 심각한 얼굴을 지어요. 열매가 맺히면 "얘는 기분 나쁘겠지만 잘 자라라고 나는 계속 가지를 잘라줘"라고도 하는데, 듣기에 따라 자식 키우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후배 챙기는 이야기 같기도 했어요.


여든의 사랑을 묻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어요. 시인 말로는 "부지런한 사랑"이래요. 아내가 목욕하라면 목욕하고 옷도 깨끗이 입고, "양말도 뒤집어서 벗지 않고. 이불 속에 식탁 아래 벗어 던지지 않고." 세상 아저씨들이 조용히 넘기고 싶은 대목이 아닐까 싶네요. 양말 뒤집어 벗는 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지수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쓴 사람이라 책 곳곳에 이어령 선생의 그림자가 겹쳐요. 두 어른을 나란히 놓고 쓴 문단이 있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어령은 크고 명료한 생각의 스승이었고 나태주는 웃기고 다정한 느낌의 아버지였다고 해요. 한 사람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동작이 컸고, 한 사람은 희극 배우처럼 표정이 변화무쌍했고요. 그러고는 둘 다 충청도 사람이고 유머가 풍부했고 키가 작았다는 문장이 툭 붙어요.


좋은 시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흘러가요.

"습윤이라는 게 있어요. 좋은 시에는 습기가 있고 반짝임이 있답니다." "모이스처네요. 물광 같은 건가요?" "네. 모이스처예요." "습기와 물기는 언제 생기나요?" "솔직할 때 생깁니다."

지수가 나의 솔직을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을지 늘 염려된다고 하자, 시인은 "솔직은, 그런 것조차 다 포기하는 데서 와요"라고 답합니다. 물광이라는 말에 피식했다가 마지막 대답에서 오래 눈이 갔어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까지 내려놔야 솔직해질 수 있다니, 체면 챙기며 사는 중년한테는 제일 어려운 숙제 같더라고요.


시인이 어린 시절 외할머니에게 들었다는 말도 마음에 남습니다. "너는 머리가 좋은 애가 아니야. 열심히 노력하니까 그만큼 하는 거란다." 듣기 좋은 칭찬 대신 건넨 이 한마디가 평생의 지침이 됐다고 해요. 무식한 양반이었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다는 회고까지 읽고 나니, 어른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얼마나 오래 붙들어 주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솔직히 처음엔 마음에 걸린 문장도 있었어요. 글 쓰는 일과 정원 일 중에 뭐가 더 힘드냐는 질문에, 시인은 둘 다 정직한 육체노동이라며 이렇게 말해요. "인생, 편하게 가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안 편할 테니까. 오히려 '인생, 절대 안 편하다'고 생각하면 인생이 더 편해집니다." 매일 조금이라도 덜 힘든 길을 찾느라 머리 굴리는 직장인으로서는 처음에 이 말이 좀 야속하게 들렸어요.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숨통이 트이는 구석이 있더군요. 기대를 내려놓으면 실망할 일도 줄어드니까요.


책 끝에는 나태주 시인이 직접 쓴 글 '흘러서 바다에 닿거라'가 실려 있어요. 첫 문장이 "겨우 1장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먼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예요. 젊은 날의 자신을 "주목받지 못한 변두리 인간"이라고 부르고, 서울 사람에 기자에 이어령 선생의 대담자라 처음엔 조금 긴장했다는 고백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지음"이 되었다고 해요. 서문에서 지수가 건넨 인사에 시인이 맨 끝에서 답장을 보내는 모양새라, 책 한 권이 편지 한 통을 주고받은 것처럼 느껴졌어요.


친구란 내 슬픔을 대신 지고 가주는 사람이다.

<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는 보통 에세이보다 살짝 도톰한 편인데, 손에 쥐면 생각보다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기 좋아요. 꼭지가 짧게 나뉘어 있어서 아무 데나 펼쳐 한 편씩 읽기도 편하고요. "흔들려야 안 무너져요", "미워하지 마, 또 볼 사람이니까" 같은 꼭지 제목만 훑어봐도 위로가 되니, 기운 빠지는 날 목차만 넘겨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새로 입은 표지도 고와서 책장 앞쪽에 세워두고 싶어집니다.


어느새 10월도 하순이네요. 책 속 태주는 구절초와 마가렛이 다 비슷해 보인다는 지수에게 "그런데 자세히 보면 아니야. 구절초는 가을에 피고 마가렛은 여름에 피어요"라고 알려줘요. 지금이 딱 구절초 필 무렵이라, 길가에 핀 들국화도 한번 쪼그려 앉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제일 지치는 수요일인데도 마음 한구석이 한결 말랑해졌습니다. 비참한 일이야 내일도 있겠지만, 이 아재도 떨면서 명랑하게 나아가 보렵니다. 좋은 어른 한 분 뵙고 온 것 같아서 참 좋았어요. 다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가을 보내세요.


떨어도 괜찮다고,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게 인생이라고 말해주는 풀꽃 시인과 지친 서울 어른의 봄 한철 우정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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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 - 맛에 진심인 야마마사 고야마엔의 30가지 레시피
고야마 마사요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시원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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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셰이커 소년이 400년 차 가문의 이사가 되어 쓴 레시피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


어릴 때 집에 있던 칵테일 셰이커를 매일같이 흔들던 소년이 있었대요. 목욕하고 나오면 그린티 가루를 한 스푼 듬뿍 떠 넣고 우유를 부은 다음, 바텐더 흉내를 내며 흔들어 마시는 게 삶의 큰 즐거움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소년이 자라서 400년째 교토 우지에서 차를 만들어 온 집안의 이사가 됐습니다.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는 그 사람이 쓴 레시피북이에요.


10월도 하순으로 접어든 수요일이라 그런지, 한 주의 허리쯤 오면 커피 말고 다른 따뜻한 게 당기는 날이 있잖아요. 이 책 덕분에 커피만 마시던 아재가 차로 갈아탈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말고 마시는 차요.


저자 고야마 마사요시는 제다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도 어릴 때 다도 영재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다고 해요. 말차를 정식으로 격불해서 마시는 대신 셰이커를 흔들던 쪽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말차는 비싸고 문턱이 높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다는 고백이 남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대학원을 마치고 영업과 마케팅 기획 일을 하다가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옮겼고, 그 뒤에 가업에 합류했다는 이력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의 회사 밥을 먹어본 사람이라 그런지 말투가 엄한 장인보다는 친절한 선배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맛이 우선.

이 책 전체를 꿰뚫는 말은 결국 이 하나인 거 같아요.

시작하며에 나오는 설명이 재미있었습니다. 말차는 오븐에 구우면 특유의 풍미와 색이 날아가 버리는 섬세한 재료라서, 향을 지키면서 수분을 충분히 더하는 게 맛을 살리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이 대목에서 '아, 그래서 드링크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저자는 '베이킹보다 간단하게 10분 내에 완성할 것'을 염두에 뒀다고 하는데, 레시피마다 그 약속이 지켜집니다. (말차 안닌도후 밀크)는 컵에 안닌도후를 담고 말차 라테를 붓는 두 단계가 전부더라고요. 시판 와라비모찌, 시판 안닌도후, 시판 바나나 칩이 당당하게 재료 목록에 올라 있는 것도 반가웠어요. 정통 차 가문의 이사님이 "마트에서 사 오셔도 괜찮아요" 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기분이랄까요.


아이스크림, 탄산수, 콘플레이크, 크림치즈.

맛보기로 하나 소개하면 (말차 소금 바닐라 아포가토)가 있어요. 컵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100g을 담고 소금을 뿌린 다음, 다진 견과류를 올리고 농차 소스를 끼얹으면 끝입니다. 원 포인트 어드바이스에 "소금이 맛을 내는 결정적인 한 수이니 뿌리는 것을 잊지 말자!"라고 느낌표까지 붙여 놓은 걸 보고 피식 웃었어요. 사진에서는 진한 초록 소스가 아이스크림 위로 주르륵 흘러내리고, 그 옆에 "말차의 감칠맛을 이끌어 내는 소금이 결정적인 한 수"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단짠은 알아도 쌉쌀한 말차에 짠맛과 단맛이 한꺼번에 얹히면 어떤 맛일지 자꾸 상상하게 되더군요.


(말차 허니 진저 스쿼시)에 붙은 조언도 마음에 들었어요. 말차와 섞이면 탄산이 다소 약해져서 탄산수를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는 거예요. 나이 들면서 톡 쏘는 음료를 슬슬 멀리하게 된 사람한테는 꽤 다정한 한 줄 같았습니다. 라임이나 유자를 곁들여도 좋다고 하고요. (말차 줄렙 소다)는 말차 얼음을 컵에 넣고 탄산수를 흘리듯 부어서 천천히 녹여 마시는 메뉴인데, 사진만 봐도 저녁에 맥주 대신 한 잔 해도 괜찮겠다 싶은 모양새예요.

(말차 와라비모찌 시루코)는 사진이 거의 카페 메뉴판 수준이더라고요. 컵 가장자리를 따라 농차 소스를 부으면 마블 무늬가 생긴다고 하는데, 하얀 우유 사이로 초록 줄기가 흘러내리고 맨 위에 팥앙금이 소복하게 올라가 있어요. 와라비모찌나 시루코처럼 낯선 이름에는 옮긴이 주석이 짧게 붙어 있어서, 일본 디저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겠더군요.


솔직히 와라비모찌나 안닌도후는 동네 마트에서 바로 집을 수 있을지 잠깐 고민이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말차 바나나 셰이크)처럼 바나나, 우유, 바닐라 아이스크림, 콘플레이크면 되는 메뉴도 많으니 그런 것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싶어요. 바나나에 레몬즙을 조금 바르면 컵 안쪽에 잘 붙고 갈변도 막을 수 있다는 팁처럼, 해 본 사람만 아는 디테일이 군데군데 숨어 있습니다.

유독 천천히 읽게 된 건 칼럼 02 '집에서 차를 볶다'였어요. 호지차는 번차나 경차 같은 녹차를 볶은 차이고, 볶는 과정에서 떫은맛이 누그러지면서 향긋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하네요. "살짝 볶는 것이 전부이므로 집에 있는 프라이팬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문장 하나로 문턱이 확 낮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도코나베야키, 이가야키, 프라이팬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 사진도 있고, 볶기 전부터 약배전, 중배전, 강배전까지 네 접시를 늘어놓은 사진에서는 초록 찻잎이 짙은 갈색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한눈에 들어와요. 다 볶은 차는 끓는 물에 30초에서 40초 정도만 짧게 우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그 칼럼에서 한 문장이 남았습니다. "오래되었거나 습기를 먹은 찻잎도 다시 볶아주면 마지막까지 맛있게 마실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지혜라는데, 한물간 것 같아도 한 번 볶아 주면 다시 향이 난다는 말이 이 나이에는 남 얘기 같지 않더라고요.

책 끝부분에는 야마마사 고야마엔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에도시대 초기부터 우지에서 차밭을 운영하면서 재배부터 말차 제조까지 직접 하는 몇 안 되는 제다 도매상이라고 합니다. 새싹을 3~4주 동안 가려서 키우고, 찻잎을 쪄서 산화를 막는다는 설명이 이어지는데, 산화시키면 홍차나 우롱차가 된다는 대목에서는 '같은 잎이었구나' 싶어 신기했어요. 극소수만을 위한 비싼 말차만 다루지도 않고, 수요에 휩쓸려 싼 말차를 대량으로 만들지도 않는다는 사명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앞에서 본 레시피들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좋은 재료를 집에서 편하게 즐기라는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었던 거죠.


호지차 파트로 넘어가면 계절이 바뀝니다. (호지차 시나몬 라테)는 표지처럼 짙은 체크 천 위에 놓인 사진이 정말 이맘때 분위기예요. "볶은 향미와 시나몬이 자아내는 최고의 콤비네이션"이라는 문구가 딱 들어맞는 모습입니다. (호지차 치즈티)에는 "겨울 메뉴의 새 얼굴"이라는 말이 붙어 있고, 크림치즈는 산미가 적은 걸 쓰라는 조언과 바나나 칩을 치즈폼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는 귀여운 팁까지 들어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10월 하순에 보기에 이만큼 반가운 페이지도 없는 거 같습니다.


판형이 시원하고 사진이 큼직해서 넘기는 재미가 있어요. 두께는 얇은 편이라 부엌 한쪽에 세워 두고 꺼내 보기 좋겠더군요.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는 레시피마다 원 포인트 어드바이스가 붙어 있어서, 한 번 만들고 끝나는 책보다는 옆에 두고 계속 펼치게 될 책 같아요. 말차 음료라고 하면 라테밖에 몰랐던 저 같은 사람한테는 메뉴판이 갑자기 서른 줄로 늘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시작하며 첫 줄이 "말차를 더 자유롭고, 즐겁고, 맛있게 즐기자!"였는데, 다 보고 나니 그 말이 책 전체를 요약한 문장이었구나 싶어요.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 읽는 내내 즐거웠고, 우지의 차 가문 셰이커 소년 덕분에 저도 셰이커 하나 장만할 핑계가 생겼습니다.


찬 바람이 슬슬 옷깃을 파고드는 수요일이네요. 바나나 셰이크부터 시작해서 호지차 시나몬 라테까지 하나씩 따라 해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납니다. 오늘 저녁은 차 한 잔으로 차분하게 마무리해 볼게요. 이름부터 차분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400년 차 가문의 셰이커 소년이 부엌으로 건네는, 붓고 올리면 끝나는 10분짜리 말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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