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 - 스타트업 발굴부터 회수까지, 비상장 실전 투자 매뉴얼
장동진.한정수.김대환 지음 / 성안당 / 2026년 10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0.18%만 들어가던 문이 열린다, J커브 앞에서 읽은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
주식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1,400만 명쯤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중에서 비상장 주식이나 사모펀드에 제한 없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개인전문투자자'는 약 25,000명뿐이래요.
비율로 치면 0.18%.
천 명 중에 두 명꼴이니, 생각보다 훨씬 좁은 문 같아요.
10월도 어느새 하순이고, 오늘은 목요일입니다. 아침저녁 바람이 제법 차가워져서 겉옷을 하나 더 챙기게 되는 계절이에요. 한 주의 허리쯤인 목요일은 늘 몸이 반쯤 방전된 상태인데, 이번에 만난 책은 제목부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 회사엔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는데 투자 소식은 늘 제일 늦게 듣는 쪽이라, 제목에 살짝 찔렸습니다.
성안당에서 나온 이 책은 비상장 기업, 그러니까 아직 주식시장에 올라오지 않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흐름으로 풀어낸 실전서예요. 스타트업 빌드업 전문가와 서른다섯 곳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그리고 현직 VC 투자 총괄,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썼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저랑은 먼 세계 얘기인 줄 알았어요.
그 생각을 프롤로그가 슬쩍 흔들어 놓습니다. 2021년 3월 1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쿠팡 상장 종소리가 울리던 날 얘기로 시작하거든요. 국내 서학개미들이 그날 하루에만 383억 원어치를 사들였는데, 정작 가장 크게 웃은 건 10여 년 전 비상장 시절에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려 둔 사람들이었다고 해요. 그러고는 이 문장이 나옵니다.

"오늘의 공모주는 어제의 비상장 주식이기 때문이다."
비상장에 투자할 생각이 없어도 공모주 청약 한 번 해 본 사람이라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얘기 같아요. 누가 어떤 가격에 먼저 들어와 있는지, 상장하고 나서 풀려나올 물량은 얼마인지도 모른 채 들어가는 게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지 꽤 차분하게 설명하더라고요.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에서 가장 특이하다 싶었던 건 구성이에요. 투자 이론이 이어지다가 장과 장 사이마다 평범한 직장인 김민호가 첫 시드 투자부터 엑시트까지 겪는 이야기가 다섯 편 끼어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론이 현실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주인공이 펀드매니저도 재벌 2세도 아닌 그냥 직장인이라는 게 반가웠어요. 저 같은 사람도 그 자리에 앉아 볼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거든요.
1장은 비유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상장 주식이 잘 관리된 실내 낚시터라면, 비상장은 물때와 지형을 모르면 빈손으로 돌아오기 십상인 바다낚시라는 거예요. 거기다 만화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까지 나와요. 정보는 적고 변동성은 큰 비상장 시장을 한번 겪고 나면 상장 시장 흐름이 한결 또렷하게 보인다는 얘긴데, 손오공 보고 자란 세대로서는 이 비유 하나로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직장인으로서 눈이 커진 대목도 있었어요. 개인이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면 3천만 원 이하는 100%,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사이는 70%, 그 이상은 30%까지 소득공제가 된다는 내용이요. 과세표준이 1억 원인 근로자가 3천만 원을 투자하면 세금이 1천만 원 정도 줄어든다는 계산 예시까지 붙어 있어서, 연말정산 때마다 한숨 쉬던 입장에선 그냥 넘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위험한 시장이라는 얘기도 책이 거듭 강조합니다. 전문 VC조차 10곳에 투자하면 7~8곳은 날린다고 하니까요.
1장 마지막 문장이 재밌어요. 독자가 "'한번 속는다 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이번 장의 목표다."
네, 저는 제대로 넘어갔습니다.
유난히 속도를 늦춰 가며 읽은 곳은 3장의 J커브 대목이에요. 창업자들은 밤낮없이 일하면서 '노력 → 성장 → 성공'이라는 곧은 직선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초기 하강과 데스밸리를 지나서야 폭발적 성장으로 올라가는 J자 곡선을 그린다는 거죠.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노력한 만큼 딱딱 올라가는 직선은 잘 없다는 걸 다들 알잖아요. 그래서인지 그래프 하나가 남 얘기 같지 않았어요.

데스밸리 설명은 특히 현실적이었어요. 스타트업 90% 이상이 창업 5년 안에 문을 닫고, 그 대부분이 이 구간에서 무너진대요. 이 시기에 투자자가 가장 눈여겨보는 건 고객 잔존율이라는데, 사용자가 들어왔다가 그대로 빠져나가는 '새는 바구니' 구조면 마케팅비를 아무리 부어도 성장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표현이 쏙 들어오더군요. 인스타그램이 원래 버븐이라는 위치 기반 체크인 앱이었고 유튜브는 데이팅 앱으로 시작했다는 피벗 사례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카페나 세탁소, 치킨집 같은 장사와 스타트업을 나란히 놓은 문단도 기억에 남아요. 쿠팡은 10여 년 동안 수조 원의 누적 적자를 감수했는데, 같은 기간 치킨집 사장님은 한 달만 적자가 나도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예요. 퇴직하면 치킨집이라는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가는 나이라 그런지, 웃으면서 읽다가도 어딘가 서늘했습니다.
"J커브는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지금 이 어둠이 구조적인 것임을, 그리고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통의 이정표다."
투자 얘기인데도 어쩐지 응원처럼 들렸어요.
3장 중반부터는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재무제표는 문제 있는 기업을 걸러내는 필터에 가깝고, 결국엔 사람을 봐야 한다는 쪽으로 흘러가거든요. 피터 틸이 창업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던진다는 질문,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도 여기서 나와요.
이 부분은 직장인 처세서로 읽어도 될 것 같아요. 연락에 답하는 속도, 약속 시간, 자료를 준비하는 꼼꼼함 같은 습관은 일부러 꾸며 내기 어렵다면서 이런 문장을 붙입니다. "첫 미팅 약속 시간에 10분 늦게 나타나는 창업자가 대규모 기관 투자자와의 IR에서 제시간에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기서 뜨끔하는 분들 꽤 있을 거 같아요.
레드 플래그 중에는 '"믿어달라"라는 말을 자주 쓰는 창업자'도 있었어요. 회의실에서 근거는 안 보여 주고 "이 분야는 제가 잘 압니다"만 되풀이하는 사람, 어느 회사에나 한 명쯤은 있잖아요. 책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신뢰는 중요하지만, 신뢰는 근거를 대신할 수 없다." 그린 플래그 쪽에는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데려와 빛나게 해 주는 창업자가 있었어요. 미팅에서 팀원을 소개하는 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에, 같이 일했던 좋은 팀장님들 얼굴이 몇 떠오르더라고요.

직감 얘기도 좋았어요. "숫자는 좋았는데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는 느낌을 무시하지도 말고 맹신하지도 말라고 해요. 찜찜하면 그게 어디서 오는지 찾는 질문을 더 던져 보라고요. 직감은 수많은 경험과 관찰이 무의식적으로 쌓인 결과라는데, 오래 일한 선배들이 왜 "느낌이 좀 안 좋아"라고 말하는지 이제야 설명이 되는 거 같았습니다.
"다들 투자하던데", "저 유명한 투자자도 들어갔다던데", "이 섹터 요즘 엄청 뜨던데".
FOMO를 다룬 대목에 나오는 말들인데, 투자를 안 하는 사람도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법하죠.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면 그건 투자 판단이 아니라 군중 심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라고 봐요. 그러면서 "투자에서 가장 비싼 감정은 탐욕이 아니라 FOMO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이어서 확신은 조용하고 조급함은 시끄럽다는 구분이 나오고, 투자하기 전에 투자 이유와 리스크, 엑시트 시나리오를 한 장짜리 글로 정리해 보라는 방법도 실려 있어요. 써 보면 논리의 구멍이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네요.

솔직히 걸렸던 건 용어예요. GP, LP, LTV, CAC, 리텐션 같은 말이 연달아 나오면 처음 접하는 입장에선 속도가 확 줄어들더라고요. 다행히 용어마다 영어 원어와 풀이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천천히 따라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었습니다. 경제 공부를 막 시작한 분이라면 한 번에 다 외우려 하지 말고 표시해 가며 읽는 게 편할 거 같아요.
에필로그는 이 책에서 가장 진지한 목소리였어요. "왜 젊은 세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부동산에 갇힌 자본, 끊어진 세대 간 사다리 이야기를 꺼냅니다. 부동산 갭투자에 묶여 있던 수억 원이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시드가 되고, 농촌 소멸 문제를 풀려는 애그테크 창업자의 첫 투자금이 되는 장면을 그려 보이는데, 중년의 자리에서 읽으니 마음이 조금 복잡하더군요. 우리 세대가 만들어 놓은 판이 아래 세대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집값보다 아이디어의 가치가 더 공정하게 인정받는 구조"라는 문장 앞에서는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 "여기에 기회가 있다. 여기에 미래가 있다."
두께는 보통 경제서보다 살짝 도톰한 편인데, 한 번 읽고 덮어 둘 책은 아닌 거 같아요. 3장에 나오는 체크리스트 네 축(경영진과 팀, 시장과 타이밍, 제품과 기술, 사업 모델과 수익구조)은 비상장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상장 주식을 고를 때 옆에 펴 두기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투자하는 사람들>은 책장에서도 손이 바로 닿는 칸에 꽂아 둘 생각입니다.
창밖 나무들도 하나둘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하순이네요. 제 통장 J커브는 아직 초기 하강 구간 어디쯤인 거 같지만, 데스밸리만 지나면 폭발적 성장이 온다니 일단 버텨 보렵니다. 가을 하늘처럼 머릿속이 한결 맑아진 기분이라, 이번 주 남은 날들도 든든할 거 같아요.
공모주 창구 앞에서 막연하던 비상장 세계를 J커브와 사람 보는 눈, FOMO를 이기는 확신으로 풀어낸, 직장인도 따라갈 수 있는 실전 투자서.
#가장먼저투자하는사람들 #성안당 #장동진 #한정수 #김대환 #비상장투자 #스타트업투자 #벤처투자 #J커브 #데스밸리 #FOMO #공모주 #소득공제 #투자책추천 #경제경영신간 #재테크책 #서평단 #책리뷰 #BOOKU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