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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 - 맛에 진심인 야마마사 고야마엔의 30가지 레시피
고야마 마사요시 지음, 양수현 옮김 / 시원북스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셰이커 소년이 400년 차 가문의 이사가 되어 쓴 레시피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
어릴 때 집에 있던 칵테일 셰이커를 매일같이 흔들던 소년이 있었대요. 목욕하고 나오면 그린티 가루를 한 스푼 듬뿍 떠 넣고 우유를 부은 다음, 바텐더 흉내를 내며 흔들어 마시는 게 삶의 큰 즐거움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소년이 자라서 400년째 교토 우지에서 차를 만들어 온 집안의 이사가 됐습니다.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는 그 사람이 쓴 레시피북이에요.
10월도 하순으로 접어든 수요일이라 그런지, 한 주의 허리쯤 오면 커피 말고 다른 따뜻한 게 당기는 날이 있잖아요. 이 책 덕분에 커피만 마시던 아재가 차로 갈아탈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말고 마시는 차요.

저자 고야마 마사요시는 제다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는데도 어릴 때 다도 영재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다고 해요. 말차를 정식으로 격불해서 마시는 대신 셰이커를 흔들던 쪽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말차는 비싸고 문턱이 높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다는 고백이 남다르게 들리더라고요. 대학원을 마치고 영업과 마케팅 기획 일을 하다가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옮겼고, 그 뒤에 가업에 합류했다는 이력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의 회사 밥을 먹어본 사람이라 그런지 말투가 엄한 장인보다는 친절한 선배에 가까운 느낌이에요.
맛이 우선.
이 책 전체를 꿰뚫는 말은 결국 이 하나인 거 같아요.
시작하며에 나오는 설명이 재미있었습니다. 말차는 오븐에 구우면 특유의 풍미와 색이 날아가 버리는 섬세한 재료라서, 향을 지키면서 수분을 충분히 더하는 게 맛을 살리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이 대목에서 '아, 그래서 드링크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저자는 '베이킹보다 간단하게 10분 내에 완성할 것'을 염두에 뒀다고 하는데, 레시피마다 그 약속이 지켜집니다. (말차 안닌도후 밀크)는 컵에 안닌도후를 담고 말차 라테를 붓는 두 단계가 전부더라고요. 시판 와라비모찌, 시판 안닌도후, 시판 바나나 칩이 당당하게 재료 목록에 올라 있는 것도 반가웠어요. 정통 차 가문의 이사님이 "마트에서 사 오셔도 괜찮아요" 하고 어깨를 두드려 주는 기분이랄까요.
아이스크림, 탄산수, 콘플레이크, 크림치즈.
맛보기로 하나 소개하면 (말차 소금 바닐라 아포가토)가 있어요. 컵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100g을 담고 소금을 뿌린 다음, 다진 견과류를 올리고 농차 소스를 끼얹으면 끝입니다. 원 포인트 어드바이스에 "소금이 맛을 내는 결정적인 한 수이니 뿌리는 것을 잊지 말자!"라고 느낌표까지 붙여 놓은 걸 보고 피식 웃었어요. 사진에서는 진한 초록 소스가 아이스크림 위로 주르륵 흘러내리고, 그 옆에 "말차의 감칠맛을 이끌어 내는 소금이 결정적인 한 수"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단짠은 알아도 쌉쌀한 말차에 짠맛과 단맛이 한꺼번에 얹히면 어떤 맛일지 자꾸 상상하게 되더군요.

(말차 허니 진저 스쿼시)에 붙은 조언도 마음에 들었어요. 말차와 섞이면 탄산이 다소 약해져서 탄산수를 잘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는 거예요. 나이 들면서 톡 쏘는 음료를 슬슬 멀리하게 된 사람한테는 꽤 다정한 한 줄 같았습니다. 라임이나 유자를 곁들여도 좋다고 하고요. (말차 줄렙 소다)는 말차 얼음을 컵에 넣고 탄산수를 흘리듯 부어서 천천히 녹여 마시는 메뉴인데, 사진만 봐도 저녁에 맥주 대신 한 잔 해도 괜찮겠다 싶은 모양새예요.
(말차 와라비모찌 시루코)는 사진이 거의 카페 메뉴판 수준이더라고요. 컵 가장자리를 따라 농차 소스를 부으면 마블 무늬가 생긴다고 하는데, 하얀 우유 사이로 초록 줄기가 흘러내리고 맨 위에 팥앙금이 소복하게 올라가 있어요. 와라비모찌나 시루코처럼 낯선 이름에는 옮긴이 주석이 짧게 붙어 있어서, 일본 디저트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겠더군요.
솔직히 와라비모찌나 안닌도후는 동네 마트에서 바로 집을 수 있을지 잠깐 고민이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말차 바나나 셰이크)처럼 바나나, 우유, 바닐라 아이스크림, 콘플레이크면 되는 메뉴도 많으니 그런 것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싶어요. 바나나에 레몬즙을 조금 바르면 컵 안쪽에 잘 붙고 갈변도 막을 수 있다는 팁처럼, 해 본 사람만 아는 디테일이 군데군데 숨어 있습니다.
유독 천천히 읽게 된 건 칼럼 02 '집에서 차를 볶다'였어요. 호지차는 번차나 경차 같은 녹차를 볶은 차이고, 볶는 과정에서 떫은맛이 누그러지면서 향긋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고 하네요. "살짝 볶는 것이 전부이므로 집에 있는 프라이팬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문장 하나로 문턱이 확 낮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도코나베야키, 이가야키, 프라이팬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 사진도 있고, 볶기 전부터 약배전, 중배전, 강배전까지 네 접시를 늘어놓은 사진에서는 초록 찻잎이 짙은 갈색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한눈에 들어와요. 다 볶은 차는 끓는 물에 30초에서 40초 정도만 짧게 우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그 칼럼에서 한 문장이 남았습니다. "오래되었거나 습기를 먹은 찻잎도 다시 볶아주면 마지막까지 맛있게 마실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지혜라는데, 한물간 것 같아도 한 번 볶아 주면 다시 향이 난다는 말이 이 나이에는 남 얘기 같지 않더라고요.
책 끝부분에는 야마마사 고야마엔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에도시대 초기부터 우지에서 차밭을 운영하면서 재배부터 말차 제조까지 직접 하는 몇 안 되는 제다 도매상이라고 합니다. 새싹을 3~4주 동안 가려서 키우고, 찻잎을 쪄서 산화를 막는다는 설명이 이어지는데, 산화시키면 홍차나 우롱차가 된다는 대목에서는 '같은 잎이었구나' 싶어 신기했어요. 극소수만을 위한 비싼 말차만 다루지도 않고, 수요에 휩쓸려 싼 말차를 대량으로 만들지도 않는다는 사명 이야기를 읽고 나니 앞에서 본 레시피들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좋은 재료를 집에서 편하게 즐기라는 마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었던 거죠.
호지차 파트로 넘어가면 계절이 바뀝니다. (호지차 시나몬 라테)는 표지처럼 짙은 체크 천 위에 놓인 사진이 정말 이맘때 분위기예요. "볶은 향미와 시나몬이 자아내는 최고의 콤비네이션"이라는 문구가 딱 들어맞는 모습입니다. (호지차 치즈티)에는 "겨울 메뉴의 새 얼굴"이라는 말이 붙어 있고, 크림치즈는 산미가 적은 걸 쓰라는 조언과 바나나 칩을 치즈폼에 찍어 먹어도 맛있다는 귀여운 팁까지 들어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10월 하순에 보기에 이만큼 반가운 페이지도 없는 거 같습니다.

판형이 시원하고 사진이 큼직해서 넘기는 재미가 있어요. 두께는 얇은 편이라 부엌 한쪽에 세워 두고 꺼내 보기 좋겠더군요.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는 레시피마다 원 포인트 어드바이스가 붙어 있어서, 한 번 만들고 끝나는 책보다는 옆에 두고 계속 펼치게 될 책 같아요. 말차 음료라고 하면 라테밖에 몰랐던 저 같은 사람한테는 메뉴판이 갑자기 서른 줄로 늘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시작하며 첫 줄이 "말차를 더 자유롭고, 즐겁고, 맛있게 즐기자!"였는데, 다 보고 나니 그 말이 책 전체를 요약한 문장이었구나 싶어요. <누구나 10분, 홈메이드 말차 드링크> 읽는 내내 즐거웠고, 우지의 차 가문 셰이커 소년 덕분에 저도 셰이커 하나 장만할 핑계가 생겼습니다.
찬 바람이 슬슬 옷깃을 파고드는 수요일이네요. 바나나 셰이크부터 시작해서 호지차 시나몬 라테까지 하나씩 따라 해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납니다. 오늘 저녁은 차 한 잔으로 차분하게 마무리해 볼게요. 이름부터 차분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400년 차 가문의 셰이커 소년이 부엌으로 건네는, 붓고 올리면 끝나는 10분짜리 말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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