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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창업가의 J 커브 전략 - 아이디어 검증에서 시장 확장성 확보까지
서원겸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기술자에서 기업가로 가는 여섯 계단, 서원겸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

"5시 58분, 5시 59분… '6시 땡!'"
창업 책을 펼쳤는데 이런 문장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만원 지하철에서 체력을 다 쓰고 9시쯤 컴퓨터를 켜고, 오후엔 나른해서 쇼핑몰이랑 웹툰을 몰래 보다가 시계만 쳐다보는 하루.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운동 다녀와 유튜브 보다 잠드는 데까지 그려지는데, 퇴근하면 유튜브만 틀어놓던 예전 제 평일이랑 어쩜 이렇게 닮았나 싶더라고요. 저자는 그 하루를 두고 "위의 삶은 정확히 내가 회사를 다닐 때 평일에 했던 일상이다"라고 덧붙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서원겸 님의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이에요. 제목에 J커브가 들어가 있길래 처음엔 제 뱃살 그래프 얘긴 줄 알았는데, 그쪽은 꺾이는 구간 없이 꾸준히 올라가기만 해서 J자 축에도 못 끼는 거 같더군요. 책에서 말하는 J커브는 창업 초기에 아무리 애써도 꿈쩍 않던 그래프가, 기술과 사람, 고객, 자본,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어느 순간 가파르게 솟구치는 구간을 가리킵니다. 저자는 국내에서 인공지능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AI를 연구해 온 1세대 개발자이고, 지금은 제조 AI 기업 다겸을 이끄는 대표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의외였던 건 서문이었어요.
저자는 처음부터 창업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고 고백하더군요. 수능 점수에 맞춰 진학하고, 직장생활이 녹록지 않아 대학원에 갔다가, 다시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고, 몇 번 이직하고, 박사과정에도 들어갔대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인생이 자연스럽게 나아질 거라 믿었다는 대목에서는,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그림을 한 번쯤 그려봤겠다 싶었고요. 그렇게 자본도 배경도 없이 할 수 있는 건 컴퓨터 앞에 앉아 코딩하는 일뿐이었다는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책을 내기까지의 사연에서도 사람 냄새가 났어요. 과거를 너무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왜 대표가 일은 안 하고 책을 쓰고 있나?" 하는 비아냥을 들을까 봐 가명으로 낼까 고민했다는 거예요. 결국 자기 이름을 걸었다는데, 그 망설임까지 서문에 그대로 남겨둔 게 좋았습니다.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만의 특이한 점은 성장의 순서를 또박또박 나눠놓았다는 데 있는 거 같아요. 기술자, 1인 사업가, 창업가, 사업가, 경영자, 기업가. 프롤로그에서 이 여섯 계단을 먼저 쭉 보여주고, 단계마다 무엇부터 하고 그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풀어가는 식이에요.
1인 사업가 단계에서 나온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큰돈을 버는 것보다 내가 만든 기술에 누군가 돈을 지불한다는 걸 직접 겪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 개발자는 "어떻게 더 좋은 기술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고, 사업가는 "고객은 무엇에 돈을 지불하는가"를 고민한다는 구분도 나오고요. 개발과는 거리가 먼 회사원이 읽어도 뜨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공들인 결과물과 상대가 정말 원하는 것 사이의 간격은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해도 여전히 어렵거든요.

"기술은 경쟁력을 만들고, 영업은 매출을 만들며, 브랜딩은 기회를 만든다."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에서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영업 장이었어요. 저자는 대표가 직접 영업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로, 초기 B2B 고객이 결국 사람을 보고 계약한다는 점을 들어요. 제품에는 하자가 있을 수 있고 회사가 중간에 없어질 수도 있으니, 고객이 기댈 수 있는 건 "이 일을 끌고 갈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거죠. 기술이 부족하고 레퍼런스가 없어도 대표의 눈빛, 태도, 진정성, 비전이 신뢰를 만들고, 그 신뢰는 어떤 영업 인력도 대신 전달할 수 없다는 문장 앞에서 읽는 속도가 확 느려지더라고요.
같은 장에는 대기업 임원이나 부장급을 억대 연봉에 모셔 와서 영업을 통째로 맡기는 경우도 나와요. 삼성이나 LG 출신 임원이 와서 데모 버전 제품과 5개도 안 되는 거래처를 보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 거라고 하는데, 큰 조직에서 오래 일한 중년 입장에서는 웃으면서도 어딘가 씁쓸했어요. 명함 속 회사 이름이 해주던 일이 생각보다 컸다는 걸 그 자리를 떠나봐야 안다는 얘기로 읽혀서요.

투자 유치나 영업 자리에서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진짜 잘 되는 거 맞냐"는 말을 수없이 듣던 저자가 꺼낸 한 문장이 있어요.
"저희 회사 제품은 SK하이닉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제품 납품 전 1년 넘게 SK하이닉스로부터 기술 검증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상대가 바로 신뢰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이 왜 초기 기술기업에 지름길이 되는지, 이 장면 하나로 설명이 끝나는 느낌이 듭니다. 지인에게 부탁할 때는 "한 곳만", "엔지니어 한 분만"처럼 콕 집어 말하라는 팁도 있는데, 창업과 상관없이 회사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자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품을 소개해 줄 지인이 있을지 고민하며 전화와 카톡을 돌리고, 단 하루도 지인 영업을 쉰 적이 없다고 해요.
정 많은 사람에겐 조금 서늘한 대목도 있어요.
코파운더 이야기입니다. 초기 멤버끼리는 가족처럼 지내며 도원결의를 하지만, 저자 주변 스타트업 가운데 창업 3~5년 차까지 코파운더가 그대로 남은 곳은 거의 보지 못했대요. 창업자와의 불화, 더 좋은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 본인 창업, 결혼 후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이직, 건강 문제까지 떠나는 이유도 가지가지고요. 그래서 중간에 떠나면 대표가 액면가로 지분을 회수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꼭 넣으라고 하더군요. 평생 갈 거라는 믿음을 반드시 버리라는 말이 냉정하게 들리면서도, 사람이 오고 가는 걸 숱하게 보는 게 회사 생활이라 그런지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웃음이 난 대목도 있었어요. 저자의 회사는 오전 중 아무 때나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만 채우면 되고, 재택근무도 되고, 보고 절차는 최소한이래요.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그건 회사가 아니라 동아리다", "그러다 회사가 개판이 된다"는 말까지 들었다는데, 정작 시행한 뒤로 스스로 그만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니 부러움 반 신기함 반이었습니다.

3F 장의 치과 일화도 빼놓기 아쉬워요. 3F는 family, fitness, freedom, 그러니까 관계와 건강과 자유를 말하는데요. 회사 다니던 시절 어금니가 아팠는데 토요일엔 예약이 안 잡히고 연차는 이미 다 써버려서, 점심을 굶고 치과에 갔다가 30분 늦었다는 이유로 크게 질책을 받았대요. 해명했더니 돌아온 말이 "젊은 사람이 좀 참으라"였다니, 남은 연차부터 세어보는 직장인이라면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장면 같아요.
솔직하게 걸렸던 건 창업 후의 하루를 그린 대목이었어요. 오전 10시에 개운하게 일어나는 데까지는 마냥 부러웠는데, 6시 이후 전화를 꺼두고 밤 12시까지 실무, 다시 새벽 3시까지 공부로 이어지는 일정표를 보니 40대 후반 체력으로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자유를 이야기하는 장인데 일하는 시간은 회사 다닐 때보다 더 길어 보이기도 하고요. 원치 않는 곳에서 원치 않는 일을 하는 삶을 수감에 빗댄 표현도 월급쟁이 귀에는 조금 세게 들렸습니다.
그래도 저자는 9시~18시로 출퇴근하는 분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고 그 성실한 삶을 존중한다고 먼저 밝혀두더군요. 기술창업가를 "가장 자유롭게 그러나 가장 치열하게 자기 성장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그 자유가 공짜로 오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같았어요. 위의 생활이 매일 똑같이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단서도 달려 있고요.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은 보통 소설책 정도의 두께라 손에 부담이 없고, 문장도 어렵지 않아서 술술 넘어가는 편이에요. 창업 계획이 하나도 없는 저도 읽는 내내 재미있었으니, 노트북 앞에서 밤늦게까지 코딩하며 내 기술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분이라면 훨씬 자주 손이 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섯 단계가 지도처럼 정리돼 있어서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궁금할 때마다 다시 펼쳐보기 좋고, 책장 손 닿는 곳에 꽂아두고 꺼내 볼 책에 가까운 거 같아요.
<기술창업가의 J커브 전략> 서문 마지막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하루하루 쌓인 기술과 경험, 고객과 사람, 그리고 실패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창업가에게 하는 말이지만,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사람한테도 그대로 통하는 얘기더군요.
10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주 한가운데 수요일이라 몸은 무거운데, 이런 책을 한 권 만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듭니다. 창업은 아직 먼 얘기지만 제 독서량 그래프만큼은 요즘 J커브를 제대로 타는 중이에요. 떨어지는 건 낙엽이랑 머리카락 정도로만 해두고 싶네요. 좋은 책 만나서 든든한 가을 수요일이었습니다.
"6시 땡"을 기다리던 직장인이 기술 하나로 기업가가 되기까지, 그 순서를 솔직하게 펼쳐 보인 현실 창업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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