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혐오주의자 - 왜 우리는 서로에게 혐오 꼬리표를 붙이는가
함규진 지음 / 온더페이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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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혐오라는 말은 늘 남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뉴스 댓글창에서, 지하철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거친 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라고 여겨 왔거든요. 함규진 교수의 <무해한 혐오주의자>는 그 안일한 거리감을 조용히 무너뜨리는 책이었어요. 제목에 담긴 '무해한'이라는 말이 실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는 걸, 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아 든 이 책은 보통 판형에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손에 쥐고 읽기에 수월했습니다. 표지부터 눈길이 오래 갔어요. 흰 바탕에 펜으로 툭툭 그은 듯한 얼굴들이 흩어져 있고, 그 곁에 틀딱, 맘충, 급식충, 캣맘, 비건충 같은 말들이 작게 붙어 있더군요. 아래 갈색 띠에는 "우리는 어떻게 '벌레'가 되었는가"라는 문장이 얹혀 있고요. 담백한 선인데도 서늘했습니다. 저 흩어진 얼굴들 어딘가에 제 얼굴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혐오 표현 열두 가지를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저자의 방식이 조금 뜻밖이었어요.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을 나무라고 단죄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더군요. 혐오를 혐오한다고 해서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 담담한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저자는 멸칭 뒤에 웅크린 불안과 공포, 절망을 꺼내 보여 줄 뿐 손가락질하지 않아요. 그 태도가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 세대가 자꾸 겹쳐 보인 장은 '틀딱'을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틀니 부딪치는 소리를 조롱하는 이 거친 말이 왜 하필 지금 이토록 강해졌는가를 저자는 차분히 짚어 갑니다. 인상 깊었던 건 노인의 무능이 실은 착시일 수 있다는 관점이었어요. 바쁜 사람은 나이와 무관하게 새 기술을 빨리 익히는데, 은퇴해 할 일이 적다 보니 습득이 느려 보이고, 그래서 '은퇴자 교육'이 '어르신 교육'으로 비치며 능력을 낮춰 보게 된다는 것이죠. 나이 듦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또래에게, 이 대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노인, 그는 바로 너"라고 적어 둔 소제목을 한참 곱씹었어요.


"애 좀 잘 돌보려는 것뿐인데." 이 말과 "그게 맘충이야"라는 말을 나란히 세워 놓고 저자는 '맘충'을 다룬 장을 엽니다. 저는 막연히 이 말을 여성 혐오의 문제로만 여겼는데, 저자는 그 해석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더 안쪽을 파고들더군요. 모성을 찬양하는 게 혐오 전략이라면 왜 정작 그런 행동에는 찬사가 아니라 멸시가 돌아오는가, 이 모순 앞에서 저자는 다른 답을 찾아냅니다. 결국 이 말의 뿌리에는 배려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가 있다는 것. 돌봄과 공감, 헌신이라는 가치가 통째로 값싸게 취급되는 쪽으로 마음이 세팅되어 간다는 진단이었어요. "'충'에 이어 '맘'이 멸칭의 접미사로 쓰이는 대한민국에서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문장은 오래 마음을 눌렀습니다. 배려가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란 결국 우리 모두가 기댈 언덕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니까요.


자폐성 장애아를 키우는 아빠가 아이와 외출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에 가기 싫었던 아이가 "집에 안 가! 엄마는 죽었어!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는군요. 부정어를 맥락에 맞게 쓰지 못하는 아이의 특성 때문에 나온 말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대로 오해해 신고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 어머니가 "그래도 몰라라 하지 않고 신고해 주는 게 참 고맙네"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혼자 두지 말걸" 하고 나직이 덧붙이는 대목에서, 저는 한동안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애자'를 다룬 이 장은 그렇게 사람의 사정 하나를 지운 자리에 얼마나 쉽게 낙인이 들어서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슬픈 이야기에조차 "자폐는 민폐"라는 댓글이 달렸다는 사실 앞에서는 한참 말을 잃었고요.


같은 장에서 저자가 건넨 문장 하나가 책 전체를 요약한다고 느꼈습니다. 장애인은 '우리와는 다른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또 다른 우리'라는 말이에요. 등록된 장애인이 스무 명 중 한 명꼴을 넘고, 그 대부분이 태어날 때가 아니라 살아가는 도중에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은 사람들이라고 하죠. 누구나 삶의 어느 길목에서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시혜가 아니라 우리를 이루는 다양성에 대한 마땅한 배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세 개의 장을 지나며 제가 발견한 건, 혐오가 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었어요. 노인의 무능함도, 엄마의 배려도, 장애아의 서툰 말도, 혐오는 그 사람이 놓인 진짜 맥락을 지워 버린 다음 정체성 하나만으로 딱지를 붙입니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통째로 '벌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딱지를 붙이는 사람 대부분이 스스로를 무해하다고 여긴다는 점, 그게 이 책이 겨누는 급소였습니다.


책을 덮으며 다행이라 여긴 건, 저자가 절망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애자'라는 말이 순화 교육을 거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된 사례처럼, 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일지언정 문화와 배움을 통해 얼마든지 누그러질 수 있다는 희미한 빛도 함께 건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날카로운 혐오가 아니라 그 혐오가 어디서 왔는지 묻는 다정한 질문이라는 것. 이 책이 내내 붙잡고 있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이렇게 읽는 내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책은 드물었습니다. 나는 무심코 어떤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나, 누군가의 사정을 지워 버린 채 딱지부터 붙인 적은 없었나. 마흔 몇 해를 살며 스스로 꽤 너그러운 사람이라 여겨 왔는데, 그 믿음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어요. 그 질문을 남겨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게 충분한 값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창밖으로 매미 소리가 한창인 한여름입니다. 뜨거운 계절일수록 사람들 마음도 쉬이 달아오르고 말이 거칠어지기 쉽죠. 그런 날에 이 책은 조금 천천히 말하자고, 상대의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려 보자고 조용히 권합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 한 권 곁에 두고 읽기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어요.


무심코 던진 한마디 뒤에 숨은 우리 사회의 균열을, 그리고 그 말을 쓰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다정한 질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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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십 대를 위한 『논어』
판덩 지음, 하은지 옮김 / 이든서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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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제목을 소리 내어 읽고 나서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공부와 즐거움이라니, 살면서 좀처럼 나란히 놓아 본 적 없는 두 단어잖아요.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즐거움보다는 견딤에 가까웠던 그 시간에 대고, 판덩은 시치미 뚝 떼고 질문을 겁니다. 정말 믿어도 되냐고.


크림빛 바탕에 초록과 갈색 선으로 그린 기둥, 펼쳐진 책, 비둘기와 배와 나무. 동화책 삽화 같은 그림들 덕분에 논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한결 덜어졌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은 책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라, 각오하고 펼치는 고전이 아니라 편하게 손이 가는 책이었어요.


지은이 판덩은 중국에서 '판덩독서'를 만든 사람입니다. 회원이 4천만 명을 넘는다는 독서 플랫폼을 운영하는 그가, 이번에는 청소년을 앞에 두고 논어를 다시 풀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른이 곁눈질만 하고 지나칠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뜨끔할 대목이 더 많았습니다.


책이 붙잡고 놓지 않는 물음은 결국 하나입니다. 진짜 배움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을 공부와 친구 관계, 인격, 일상이라는 네 방향으로 흩어 놓았다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읍니다. 하나의 이치로 모든 걸 꿰뚫는다는 '일이관지'를 책의 구성 자체가 따라 하고 있는 셈이죠.


가장 오래 붙잡혔던 대목은 '지지위지지, 부지위지지, 시지야'였습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인데, 저자는 여기에 류츠신의 <삼체> 한 구절을 겹쳐 놓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연약함과 무지가 아닌 오만과 자만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못을 박아요.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심과 오만함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모른다는 말이 입 밖으로 잘 안 나옵니다. 회의 자리에서든 아이 앞에서든, 아는 척으로 슬쩍 넘기는 순간이 늘어 가죠. 능력이 부족할수록 자신을 더 높게 본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를 읽는데, 남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물리학에는 더 밝혀낼 게 없다고 큰소리쳤다는 옛 학자들, 뉴턴이 다 끝냈으니 앞으로 연구할 게 없다며 후학에게 다른 길을 권했다는 스승의 일화가 그저 흘러간 웃음거리로만 읽히지 않았고요. 정작 뉴턴 본인은 자신을 진리의 바다 앞에서 조개껍데기나 줍는 해변의 꼬마 같다고 했다는데,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낮았던 이 대비가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3장은 균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자 자로는 뭔가를 배우면 곧장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아직 못 해낸 게 남아 있으면 새 가르침 듣기를 오히려 두려워했다고 해요. 반대로 염유는 생각만 많고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질문을 받고도 공자는 두 사람에게 정반대로 답합니다. 성급한 자로에게는 먼저 어른께 여쭙고 하라 이르고, 굼뜬 염유에게는 들었으면 곧바로 행하라 합니다. 사람의 기질에 맞춰 약을 다르게 지어 준 거죠.


이 장에서 저자가 쓴 비유 하나가 유독 선명했습니다. 듣기만 하고 소화하지 못한 지식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돈다는 말이었어요. 왕양명이 말한 '지행합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갈라놓을 수 없다는 그 개념이 이 비유 하나로 단번에 손에 잡혔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못 하겠다는 흔한 말이 실은 제대로 아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그렇고요. 돌아보면 일이든 사람 사이든, 알면서 안 됐던 게 아니라 실은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던진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자리가 4장입니다. '지식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저자는 배우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눕니다. 지식을 밥벌이 수단으로만 아는 지지자, 목표를 향해 좋아하며 정진하는 호지자,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누리는 락지자.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안 감독이 새 조건이 생기면 무조건 시도해 봐야 한다며 영화 찍는 게 정말 재밌다고 답했다는 대목이 락지자의 얼굴로 등장하는데, 그 천진함이 오래 부러웠습니다.


즐김이 극에 달하면 몰입이 됩니다. 공자가 순임금의 음악 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는 이야기, 나도 잊고 바깥세상도 잊는 '물아양망'이 그것이죠. 공식에 빠진 나머지 움직이는 마차를 칠판인 줄 알고 따라 달렸다는 가우스, 밥 챙겨 주는 사람이 없으면 먹는 것도 잊었다는 뉴턴의 일화가 나란히 놓입니다. 등수나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빠져든 얼굴들이었어요.


가만 보면 어른이 되며 잃어버린 게 바로 여기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뭔가를 배울 때 그게 어디에 쓸모 있는지부터 셈합니다. 공부의 목적이 1등이나 좋은 대학이 되어 버리면 과정은 그저 견뎌야 할 고생으로 남는다는 저자의 말이, 시험을 떠난 지 한참인 사람에게도 그대로 통했어요. 자격증이든 승진이든 목적지만 노려보다 보면 배우는 재미는 어느새 증발해 버리니까요. 이 책은 그 감각을 십 대에게 처음 일러 주는 동시에,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걸 조용히 되돌려 줍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공자를 훈장님 자리에 앉혀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산책하던 공자가 해가 언제 더 가까운지를 두고 다투는 두 꼬마를 만나는데, 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아이들이 "누가 아저씨더러 똑똑하다고 그래요?" 하고 놀려요. 위대한 스승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했다는 이 장면을, 웃으며 읽다 보면 앞서 나온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자연스레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의 말들이 잔소리가 아니라 곁에 앉은 어른의 조언으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어요.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서양 위인들의 일화가 워낙 자주 나오다 보니, 정작 공자와 논어 원문을 깊이 파고드는 맛은 살짝 옅어지는 순간이 있더군요. 다만 청소년 독자의 눈높이를 생각하면 단점이라기보다 저자의 선택에 가깝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금세 잊히는 책이 있고, 문장 몇 개가 오래 남는 책이 있습니다. 이 도서는 후자였어요. 공부라는 말에 눌린 채 학창 시절을 흘려보낸 사람, 배움을 성과와 등수로만 재던 버릇이 몸에 밴 사람이라면, 판덩이 다시 꺼내 든 공자의 목소리가 오래된 오해 하나쯤은 풀어 줄 겁니다. 자녀와 한 챕터씩 나눠 읽고 생각을 견줘 보기에도 더없이 좋고요.


무더위가 길어지는 계절입니다. 공부가 즐겁다는 그 말을 반신반의하며 펼쳤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조금쯤 믿어 보게 되었습니다.


배움을 성과가 아닌 즐거움으로 되돌려 주는, 십 대와 어른이 함께 읽어도 좋을 담백한 논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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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우너스 - 불확실성에 뛰어들어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들
윤상윤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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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형광에 가까운 초록. 서점 매대나 온라인 목록에서도 이 색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것도 눈이었어요. 소문자로 눌러 담은 'unknowners' 아래 굵게 박힌 '언노우너스'. 익숙한 안정의 색이라기보다 뭔가 판을 흔들겠다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표지의 카피는 "언노우너와 노우너의 비밀을 밝히다!"였고요.


두께가 상당합니다. 손에 쥐면 무게가 느껴지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건 단숨에 읽어치울 책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곱씹어야 하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부지런히 붙들고 읽어야 겨우 제 것이 되는 책을 만나는 일이 흔치는 않으니까요.



저자 윤상윤은 인사조직 전문가입니다. 20년 넘게 비즈니스 현장에서 사람의 내면을 분석해 온 사람이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어요. 우리가 우리를 너무 모른다는 것. 그리고 모르는 이유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부를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두 개의 이름을 지어냅니다. 알려진 것에 몰입하는 '노우너',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것에 뛰어드는 '언노우너'. 이 두 단어를 손에 쥐는 순간, 그동안 '고집' 혹은 '이상함'으로만 보이던 누군가의 행동에 갑자기 초점이 맞기 시작합니다.


책의 초반, 저는 커털린 커리코라는 이름 앞에서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mRNA 백신 개발에 40년을 바친 과학자예요.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고 과학도 정치도 방향을 잃었을 때, 그 국면을 끝내 돌파한 사람이 중심부의 스타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의 주변부에서 묵묵히, 그러나 끈질기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붙잡은 이였다고 합니다. 화려한 이력이나 눈에 띄는 성과 없이 오래 견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를 움직인 문장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추천해 준 한스 셀리에의 책 <생명의 스트레스>에서, 커리코는 자신의 운명을 묶어 두게 될 한 문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받아 적어요. "축복을 받았든, 저주를 받았든 간에 나는 내가 바로 셀리에가 말하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저주와 견딜 수 없다는 표현이 겹쳐지는데, 이상하게도 비장하기보다 담담하게 읽혔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이의 목소리였거든요.


주변에서는 mRNA 연구를 두고 "이미 끝난 게임인데 왜 인생을 낭비하느냐"는 조롱을 보냈다고 합니다. 학계는 그녀를 견고한 질서에 난입한 이물처럼 다뤘고, 저자는 그 거부 반응을 평온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불순물을 밀어내는 정교하고도 차가운 배제라고 표현합니다. 대부분이 불가능하다며 발을 뺀 자리에서 그녀는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가능성을 봤다고 하고요. 성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버텨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이 단순히 '포기하지 마라'는 응원가에 그쳤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붙들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뒤로 갈수록 저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강점만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와 다르게, 강점과 약점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짝으로 본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뛰어들 줄 아는 사람일수록 그 힘이 안으로 향하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칼날이 된다는 거예요.


약점을 다루는 장에서 저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성공한 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자기 약점에 눈을 감는 오만이라는 이야기였어요. 결함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혹은 "이게 내 스타일이니 주변에서 맞춰야 한다"고 말하는 태도. 저자는 이걸 전략이 아니라 자기 결함을 정당화하는 변명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자기 약점으로 생기는 고통과 비용을 주변 사람에게 떠넘기는 무책임이라는 거예요. 조직 생활을 어느 정도 해 본 사람으로서 이 문장 앞에서 저도 뜨끔했습니다. 진짜 리더십은 강점을 과시하는 데서가 아니라 자기 약점을 정직하게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어요.


해법으로 저자가 내미는 건 화려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훈련으로 약점을 제어 가능한 변수로 만드는 것.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의 연구를 빌려, 탁월함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의도적 수련'에서 온다고 설명하는데요. 흥미로운 건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정작 에릭슨이 반박했다는 사실입니다. 핵심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훈련의 질이라는 것. 에릭슨은 단순한 반복을 두고 "실력이 서서히 나빠지게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경고합니다.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잘하는 곡을 즐겁게 반복하는 대신 가장 서툰 구간에 하루 몇 시간씩 부딪힌다는 이야기 앞에서, 편한 쪽으로만 흘러온 제 습관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책이 끝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결국 한 곳으로 모입니다. 나를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저자는 넷플릭스 인수를 거절했던 블록버스터 CEO 존 안티오코의 결정을 꺼내 오는데, 흔히 '변화에 무지했던 경영자'로 박하게 평가받는 그 판단을, 그 자리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선택으로 다시 세웁니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연체료를 스스로 도려내라는 제안 앞에서, 수만 명의 생계를 책임진 사람이 확실한 손실의 공포를 얼마나 크게 느꼈을지를 짚어요. 노우너의 선택을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 본성으로 이해하려는 이 균형 감각이, 제게는 이 책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부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준거점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나라는 존재와 재능은 그대로인데, 나를 채점하는 시험지가 상황에 따라 통째로 바뀐다는 이야기예요. 같은 사람이 어느 날은 '혁신의 열쇠'였다가 어느 날은 '위험'으로 돌변한다는 것. 조직이라는 곳에서 열심히 하고도 능력 이하의 평가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설명이 뜻밖의 위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문제가 나에게만 있던 게 아니라 나를 해석하는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던 거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어요.


솔직히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다뤄지는 인물들이 커리코, 피터 틸, 바스키아, 헤이스팅스, 이건희처럼 결국 세상이 성공으로 기억하는 이들이라,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언노우너의 자리는 상대적으로 조용합니다. 다만 그건 이 책이 지향하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좌절의 기록이 아니라 그럼에도 나아갈 근거를 쥐여 주려는 책이니까요.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건 결론의 태도였습니다. 저자는 두 갈래 길을 제시해요. 스스로 새로운 준거점이 되는 전복의 길, 그리고 세상과 균형을 찾는 공존의 길. 그러고는 이렇게 씁니다. "어떤 길을 택하든 본질은 같다. 스스로의 진짜 모습을 인식했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좋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선택을 다시 독자의 손에 돌려주는 이 매듭이, 두꺼운 책을 부지런히 따라온 사람에게 건네는 담백한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조직 안에서 유독 모난 돌 취급을 받아 온 사람에게, 그리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해 온 사람에게 각각 다른 얼굴로 말을 겁니다. 자신이 왜 자꾸 어긋나는지 궁금했던 이에게는 자기를 설명할 언어를,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에게는 서로 다른 결을 조율하는 감각을 건네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아 읽는 동안, 다 읽고 나서도 이렇게 제 안에 질문을 남긴 책은 드물었습니다.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매미 소리가 창밖을 가득 채우고 무엇 하나 서두를 수 없는 계절인데, 더위에 걸음이 느려지는 이런 때야말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천천히 통과하기에 어울리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서늘한 실내에 앉아 나라는 사람의 결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이 초록빛 한 권을 권해 봅니다.


나를 부를 이름을 손에 쥐는 순간, 어긋남은 결함이 아니라 방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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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ㅣ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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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이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서두르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손에 들면 묵직하고 페이지도 넉넉해서 며칠 안에 후딱 읽어낼 책은 아니구나 싶었거든요. 표지도 그런 마음을 부추겼습니다. 낡은 고서들이 탑처럼 쌓여 있고 그 뒤로 큼직한 '孟子' 두 글자가 은은하게 배경으로 깔려 있는데, 요란한 데가 하나도 없어요. 오래된 것과 지금을 나란히 세워둔 표지랄까요. 하단에 적힌 '인공지능의 시대, 다시 인간의 길을 묻는 당신에게 주는 맹자의 지혜'라는 한 줄이, 이 책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맹자>는 단산 박찬근 선생이 2,300년 전 맹자를 오늘의 언어로 옮겨 놓은 책입니다. 그냥 번역이나 해설에 그치지 않아요. 원문과 현대어 풀이에서 출발한 다음, 성리학의 틀을 세운 주자와 조선 실학의 다산이 같은 구절을 어떻게 달리 읽었는지 나란히 보여주고, 거기에 저자 자신의 평설과 이 시대를 겨냥한 통찰까지 얹는 다섯 단계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 사람의 시선이 겹치고 어긋나는 대목을 따라가는 재미가 제일 컸어요. 본성론부터 완성론까지 여섯 개의 큰 흐름으로 짜여 있는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넘기면서 유독 오래 눈이 머문 장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수오지심', 부끄러움을 다룬 장이었어요. 맹자의 말 가운데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처음엔 좀 과하다 싶었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다고 사람이 아니라니, 너무 단호하잖아요. 그런데 저자가 풀어가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긍하게 됩니다.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순간에도 마음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미세한 떨림, 저자는 그게 바로 사람이 사람이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고 말해요. 부끄러움을 나침반에 빗댄 대목이 특히 좋았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법으로 배우거나 책에서 외우기 전에, 이미 우리 안에서 부끄러움이라는 신호로 작동하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세상은 자꾸 그 반대를 가르칩니다. 부끄러움은 약자의 표시라고, 출세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고요. 그렇게 한 번 두 번 눌러가다 보면 어느 순간 부끄러움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성숙'이라 부른다고 저자는 짚습니다. 이 문장 앞에서는 잠깐 손이 멈췄어요. 나이 들며 능숙해진 것들 가운데 사실은 무뎌진 것이 섞여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이 장의 '3인 3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자는 수오지심을 '수'와 '오' 둘로 나눠서, 자기를 향한 부끄러움과 옳지 않은 것을 거부하는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봤어요. 자기에게만 너그러우면 위선이고 자기에게만 엄격하면 결벽이라는 대비가 명료합니다. 그런데 다산이 여기에 한마디를 보탭니다. "수오지심은 가만히 두면 자라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르면 사라집니다." 개념을 정교하게 쪼갠 주자 옆에, 그러니 지금 당장 마주하라고 등을 떠미는 다산이 나란히 놓이니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더군요. 저자가 소개한 일화 하나도 마음에 남았어요. 오래 강의를 들은 어느 분이 가게에서 거스름돈을 천 원 더 받은 일로 사흘을 잠 못 잤다며 찾아왔는데, 저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 사흘이 그대를 사람으로 지켜 주신 거예요." 잘못이 드러나도 "그런 적 없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끝나버리는 요즘 세태를 떠올리면, 이 작은 일화가 도리어 크게 다가왔습니다.


두 번째로 발이 묶인 장은 '항산항심'이었어요. 생업과 마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맹자가 양혜왕에게 어진 정치의 첫걸음으로 꺼낸 말이 뜻밖에도 백성의 살림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덕을 논하는 자리에서 대뜸 경제부터 말한 셈이죠. 저자는 여기에 맹자의 정직함이 있다고 봅니다. "도덕은 살림 위에 핀다"는 문장이 그 핵심이에요. 살림이 안정되어야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되어야 도덕이 자라난다는 순서인데, 가난한 사람에게 도덕을 강요하는 건 잔인한 일이라는 대목에서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습니다.


여기서도 세 사람의 시선이 갈라졌다 만나요. 주자는 이 가르침을 오해하지 말라고 못을 박습니다. 살림을 도덕보다 위에 두라는 뜻이 아니라, 근본은 도덕이되 백성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그들의 밥상부터 살펴야 한다는 순서의 문제라는 거죠. 다산은 이걸 아예 정치 원리를 넘어 모든 사람의 인생 원리로 넓힙니다. 살림 위에 마음을 세우고, 마음 위에 도를 세우는 일이 진짜 인생이라고요. 이 이야기가 마흔의 삶으로 곧장 이어지는 부분이 뭉클했어요. 자녀 교육비, 부모 부양, 주거비, 노후 준비까지 온갖 살림이 어깨를 누르는 자리가 마흔이잖아요. 저자는 이 무게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림이 어려운 것을 인정하되 너무 다그치지는 말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마음 한 자락만은 지키라고 다독여요. 평생 검소하게 살아온 어느 분이 흔들리지 않는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는 대목도 오래 곱씹었습니다. "분수에 맞게 사는 거지유. 살림도 분수에 맞게 짓고 마음도 분수에 맞게 두는 거예유. 욕심내면 둘 다 흔들리거든유." 사투리 그대로 옮겨 적힌 이 한마디가 웬만한 자기계발서 한 권보다 묵직했어요.


세 번째는 책의 맨 끝자락에 놓인 '진심'이라는 장입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다루는데, 저자는 흔히 오해하듯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요. 진심은 자기 안의 본디 마음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펼쳐내는 일이라는 겁니다. "다 쓰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펼쳐내는 것이다." 앞서 읽은 수오지심을 비롯한 여러 마음들이 이 장에서 하나로 모이는데, 부끄러움이 일어나면 누르지 않고 인정하고 측은한 마음이 일면 외면하지 않고 따라가는, 그 작은 실천들이 결국 진심이라는 거죠. 큰 각오를 요구하지도 않아요. "큰 진심을 한 번에 이루려 하지 말라. 매일의 작은 진심을 평생 쌓아가라." 시골에서 평범하게 농사짓던 어느 어른이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더라며 건넸다는 말이 이 장 전체를 조용히 감쌉니다.


무엇보다 이 장이 알고리즘과 SNS 이야기로 넘어갈 때, 표지의 'AI 시대'라는 말이 비로소 손에 잡혔어요. 화면이 쉼 없이 자극을 던지며 자기 마음과 만날 고요한 시간을 앗아가는 지금, 자기에게 정직한 사람이 오히려 더 귀하고 깊어진다는 저자의 말이 든든하게 들렸거든요. 2,300년 전 이야기가 이렇게 현재로 걸어 들어오는 장면이, 이 책이 노리는 바로 그 지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책을 접하다 보면 빠르게 넘겨야 하는 것도 많은데, 이 한 권만큼은 그러기가 어려웠어요. 부지런히 읽되 서두르지는 않는, 그런 독서를 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여섯 장을 다 지나고 나면 결국 세 개의 층이 남아요. 살림을 정직하게 챙기는 일, 그 위에 마음을 세우는 일, 그리고 그 마음을 끝까지 펼쳐내는 일. 요란한 성공을 약속하는 대신, 흔들리지 않고 나로 살아가는 법을 담담하게 일러주는 안내서라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고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지레 미뤄두었던 분이라면 좋은 첫걸음이 되어줄 거예요. 원문과 풀이, 옛 대가들의 해석, 오늘의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있어서 어느 지점에서든 자기 자리를 찾아 읽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살림의 무게에 눌려 정작 자기 마음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지내온 분이라면, 잠시 화면을 내려놓고 한 장씩 펼쳐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한여름 열기가 한창인 요즘, 바깥은 뜨겁고 조급한데 페이지 사이의 속도는 느긋해서 마음이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더군요. 무더위에 지친 하루의 끝, 잠들기 전 몇 쪽씩 읽어 나가기에 잘 어울리는 한 권이었습니다.


살림과 마음,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세우고 싶은 마흔의 자리에서, 서두르지 않고 곁에 두고 읽기 좋은 맹자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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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 - 주어진 길을 넘어, 삶의 이유를 만든 사람들
김회주 지음 / 데이지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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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흰 바탕에 여러 색의 선이 산줄기처럼 낮게 흐르고, 그 아래 작은 사람 하나가 길 위에 서 있는 표지였습니다. 요란한 데가 없는데도 눈이 오래 가더라고요. 그 사람이 선 자리가 어쩐지 낯설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아래쪽에 나란히 적힌 'Fate Is Given, Life Is Chosen, The Rest Is Courage'라는 문장이 책 전체를 미리 압축해주는 듯했어요. 운명은 주어지지만 삶은 선택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결국 용기라는 뜻이겠지요.


<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난 책입니다. 실물을 받아 들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의외로 실용적인 쪽이었어요. 핸드북 사이즈에 얇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 잠깐 비는 시간에 한 꼭지씩 꺼내 읽기 좋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읽었고요.


책은 톨스토이, 헤밍웨이, 카뮈부터 메시, 마윈, 스티븐 킹, 정약용까지 마흔 명이 넘는 인물을 한 사람씩 짧게 다룹니다. 그런데 흔한 위인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저자 김회주는 이들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무너졌던 자리에 초점을 맞춰요. 성공의 결과보다 그 앞에 반드시 있었던 긴 어둠을 들여다보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도 읽다 보면 자꾸 제 자리로 시선이 돌아오게 됩니다.


특히 헤르만 헤세 편에서 오래 걸렸습니다.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신학교에 들어간, 겉보기엔 완벽한 출발을 한 소년이 정작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가다 열다섯에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학교를 뛰쳐나옵니다. 이후 공장과 서점을 전전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죠. 벼랑 끝에서 그가 깨달은 대목이 마음에 남았어요. 자신을 무너뜨린 것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삶이었다는 것. 나이가 좀 든 뒤에 읽으니 이 문장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헤세는 무조건 버티라거나 참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은 부서질 준비가 되었는가?" 하고 물어요. 봄에 꽃이 피려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시린 겨울이 먼저 있어야 하듯, 지금의 불안과 혼란은 잘못 살아온 증거가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해 껍질을 깨는 과정일 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데미안>의 그 유명한 구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문장이 어떤 삶의 바닥에서 나온 것인지 알고 나니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다산 정약용 편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한결 가깝게 움직였습니다. 서양 인물들 사이에서 만난 우리 이름이라 반가운 것도 있었지만, 내용이 유독 절실하게 읽혔어요.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은 요란하지 않다. 어느 날 문득 소리 없이 찾아온다." 챕터를 여는 이 문장부터가 그랬습니다. 정조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사냥감이 되어버린 다산이 겪은 것 중 가장 아팠던 건 지위나 명예의 상실이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반갑게 인사하던 이들이 눈을 피하고,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의심받고 침묵할수록 고립되던 시간. 조직 안에서 나이를 먹어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마음이 서늘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다산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건 그다음입니다. 유배지 강진에서 방 한 칸 내주는 이조차 없던 그가, 시간이 흐르며 글을 배우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다시 일어서요.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는 문장이 좋았습니다. 18년의 유배 동안 500여 권을 써낸 그 시기가, 가장 자유롭지 못했던 때에 가장 위대한 사상이 싹튼 시간이었다는 아이러니도요. 저자는 불행을 미화하지도, 그 앞에 무릎 꿇지도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고 표현합니다. 이 균형 잡힌 시선이 책의 미덕이라고 느꼈어요. 무너졌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 그저 다시 쌓을 수 있다는 뜻일 뿐이라는 말이, 담담해서 오히려 오래 남습니다.


축구를 즐겨 보지 않는 분이라도 리오넬 메시 편은 다르게 읽힐 겁니다. 열한 살에 성장 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은 소년에게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키가 140cm쯤에서 멈출 것"이라는 말은 축구 선수를 꿈꾸던 아이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죠. 한 달 900달러의 치료비를 가난한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워, 비용을 줄이려고 어린 메시가 스스로 다리에 주사를 놓았다는 대목에서 잠깐 읽기를 멈췄습니다. 우리가 아는 '축구의 신' 이전에, 매일 밤 차가운 바늘을 제 다리에 꽂던 한 아이가 있었던 겁니다.


책은 이 이야기를 재능이 아니라 의지에 관한 기록이라고 정리합니다. 국가대표로는 번번이 결승에서 좌절해 "국가대표팀에서 내 시간은 끝났다"고 눈물 흘리던 사람이, 결국 서른다섯에 첫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의 길이 담겨 있어요. 2022년 결승 승부차기에서 첫 키커로 나서 성공시키며 팀을 이끈 그 장면이, 그가 짊어져 온 삶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자가 붙인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고, 실패가 이어지고 세상이 등을 돌려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만이 원하는 미래를 만난다는 것. 메시가 남긴 "나는 매일 더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하는 것의 전부다"라는 문장이 이 편을 조용히 닫습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한 꼭지가 짧다는 데 있습니다. 마흔 편이 넘어도 부담이 없어요. 하루에 하나씩 마음 가는 이름부터 골라 읽어도 되고, 힘든 날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됩니다. 아쉬움을 굳이 꼽자면, 다루는 인물의 폭이 넓은 만큼 한 사람씩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요점을 정리해 건네는 쪽에 가깝다는 점이에요. 각 인물에게 더 머물고 싶은 독자에게는 조금 짧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건 책의 성격을 생각하면 단점이라기보다 설계에 가깝고, 오히려 그 덕분에 문턱이 낮아졌다고 봐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읽어오면서, 읽고 나면 금세 잊히는 책이 있고 오래 곁에 두게 되는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책은 후자였어요. 대단한 감동을 몰아치듯 안기는 종류는 아니지만,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무엇을 쌓아야 할지 스스로 묻게 만드는 힘이 있었거든요.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 있다고 느끼는 사람, 지금의 흔들림이 실패의 증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얇은 책이 조용한 동행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첫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에게도요.


여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매미 소리가 창을 넘어오는 이런 계절엔 두꺼운 책보다 이렇게 가벼운 한 권이 손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더위에 지쳐 마음까지 헐거워지는 날, 짧은 한 꼭지씩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좋은 책입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지금의 흔들림이 끝이 아니라 다시 쌓을 자리임을 조용히 일러주는 얇고 단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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