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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혐오주의자 - 왜 우리는 서로에게 혐오 꼬리표를 붙이는가
함규진 지음 / 온더페이지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혐오라는 말은 늘 남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뉴스 댓글창에서, 지하철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거친 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일이라고 여겨 왔거든요. 함규진 교수의 <무해한 혐오주의자>는 그 안일한 거리감을 조용히 무너뜨리는 책이었어요. 제목에 담긴 '무해한'이라는 말이 실은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는 걸, 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아 든 이 책은 보통 판형에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손에 쥐고 읽기에 수월했습니다. 표지부터 눈길이 오래 갔어요. 흰 바탕에 펜으로 툭툭 그은 듯한 얼굴들이 흩어져 있고, 그 곁에 틀딱, 맘충, 급식충, 캣맘, 비건충 같은 말들이 작게 붙어 있더군요. 아래 갈색 띠에는 "우리는 어떻게 '벌레'가 되었는가"라는 문장이 얹혀 있고요. 담백한 선인데도 서늘했습니다. 저 흩어진 얼굴들 어딘가에 제 얼굴도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거든요.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혐오 표현 열두 가지를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그런데 저자의 방식이 조금 뜻밖이었어요.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을 나무라고 단죄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더군요. 혐오를 혐오한다고 해서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 담담한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저자는 멸칭 뒤에 웅크린 불안과 공포, 절망을 꺼내 보여 줄 뿐 손가락질하지 않아요. 그 태도가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제 세대가 자꾸 겹쳐 보인 장은 '틀딱'을 다룬 대목이었습니다. 틀니 부딪치는 소리를 조롱하는 이 거친 말이 왜 하필 지금 이토록 강해졌는가를 저자는 차분히 짚어 갑니다. 인상 깊었던 건 노인의 무능이 실은 착시일 수 있다는 관점이었어요. 바쁜 사람은 나이와 무관하게 새 기술을 빨리 익히는데, 은퇴해 할 일이 적다 보니 습득이 느려 보이고, 그래서 '은퇴자 교육'이 '어르신 교육'으로 비치며 능력을 낮춰 보게 된다는 것이죠. 나이 듦을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또래에게, 이 대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저자가 "노인, 그는 바로 너"라고 적어 둔 소제목을 한참 곱씹었어요.
"애 좀 잘 돌보려는 것뿐인데." 이 말과 "그게 맘충이야"라는 말을 나란히 세워 놓고 저자는 '맘충'을 다룬 장을 엽니다. 저는 막연히 이 말을 여성 혐오의 문제로만 여겼는데, 저자는 그 해석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더 안쪽을 파고들더군요. 모성을 찬양하는 게 혐오 전략이라면 왜 정작 그런 행동에는 찬사가 아니라 멸시가 돌아오는가, 이 모순 앞에서 저자는 다른 답을 찾아냅니다. 결국 이 말의 뿌리에는 배려 그 자체에 대한 혐오가 있다는 것. 돌봄과 공감, 헌신이라는 가치가 통째로 값싸게 취급되는 쪽으로 마음이 세팅되어 간다는 진단이었어요. "'충'에 이어 '맘'이 멸칭의 접미사로 쓰이는 대한민국에서는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문장은 오래 마음을 눌렀습니다. 배려가 조롱거리가 되는 사회란 결국 우리 모두가 기댈 언덕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니까요.

자폐성 장애아를 키우는 아빠가 아이와 외출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집에 가기 싫었던 아이가 "집에 안 가! 엄마는 죽었어!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는군요. 부정어를 맥락에 맞게 쓰지 못하는 아이의 특성 때문에 나온 말이었지만,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학대로 오해해 신고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이 어머니가 "그래도 몰라라 하지 않고 신고해 주는 게 참 고맙네"라고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혼자 두지 말걸" 하고 나직이 덧붙이는 대목에서, 저는 한동안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애자'를 다룬 이 장은 그렇게 사람의 사정 하나를 지운 자리에 얼마나 쉽게 낙인이 들어서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슬픈 이야기에조차 "자폐는 민폐"라는 댓글이 달렸다는 사실 앞에서는 한참 말을 잃었고요.
같은 장에서 저자가 건넨 문장 하나가 책 전체를 요약한다고 느꼈습니다. 장애인은 '우리와는 다른 그들'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또 다른 우리'라는 말이에요. 등록된 장애인이 스무 명 중 한 명꼴을 넘고, 그 대부분이 태어날 때가 아니라 살아가는 도중에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얻은 사람들이라고 하죠. 누구나 삶의 어느 길목에서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시혜가 아니라 우리를 이루는 다양성에 대한 마땅한 배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습니다.

세 개의 장을 지나며 제가 발견한 건, 혐오가 늘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이었어요. 노인의 무능함도, 엄마의 배려도, 장애아의 서툰 말도, 혐오는 그 사람이 놓인 진짜 맥락을 지워 버린 다음 정체성 하나만으로 딱지를 붙입니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아이 엄마라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이 통째로 '벌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딱지를 붙이는 사람 대부분이 스스로를 무해하다고 여긴다는 점, 그게 이 책이 겨누는 급소였습니다.
책을 덮으며 다행이라 여긴 건, 저자가 절망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애자'라는 말이 순화 교육을 거쳐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된 사례처럼, 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일지언정 문화와 배움을 통해 얼마든지 누그러질 수 있다는 희미한 빛도 함께 건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날카로운 혐오가 아니라 그 혐오가 어디서 왔는지 묻는 다정한 질문이라는 것. 이 책이 내내 붙잡고 있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이렇게 읽는 내내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책은 드물었습니다. 나는 무심코 어떤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나, 누군가의 사정을 지워 버린 채 딱지부터 붙인 적은 없었나. 마흔 몇 해를 살며 스스로 꽤 너그러운 사람이라 여겨 왔는데, 그 믿음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어요. 그 질문을 남겨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게 충분한 값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창밖으로 매미 소리가 한창인 한여름입니다. 뜨거운 계절일수록 사람들 마음도 쉬이 달아오르고 말이 거칠어지기 쉽죠. 그런 날에 이 책은 조금 천천히 말하자고, 상대의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려 보자고 조용히 권합니다. 시원한 그늘 아래 한 권 곁에 두고 읽기에 잘 어울리는 책이었어요.
무심코 던진 한마디 뒤에 숨은 우리 사회의 균열을, 그리고 그 말을 쓰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다정한 질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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