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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십 대를 위한 『논어』
판덩 지음, 하은지 옮김 / 이든서재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제목을 소리 내어 읽고 나서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공부와 즐거움이라니, 살면서 좀처럼 나란히 놓아 본 적 없는 두 단어잖아요.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즐거움보다는 견딤에 가까웠던 그 시간에 대고, 판덩은 시치미 뚝 떼고 질문을 겁니다. 정말 믿어도 되냐고.
크림빛 바탕에 초록과 갈색 선으로 그린 기둥, 펼쳐진 책, 비둘기와 배와 나무. 동화책 삽화 같은 그림들 덕분에 논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한결 덜어졌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은 책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라, 각오하고 펼치는 고전이 아니라 편하게 손이 가는 책이었어요.

지은이 판덩은 중국에서 '판덩독서'를 만든 사람입니다. 회원이 4천만 명을 넘는다는 독서 플랫폼을 운영하는 그가, 이번에는 청소년을 앞에 두고 논어를 다시 풀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른이 곁눈질만 하고 지나칠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뜨끔할 대목이 더 많았습니다.
책이 붙잡고 놓지 않는 물음은 결국 하나입니다. 진짜 배움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질문을 공부와 친구 관계, 인격, 일상이라는 네 방향으로 흩어 놓았다가 다시 한 점으로 모읍니다. 하나의 이치로 모든 걸 꿰뚫는다는 '일이관지'를 책의 구성 자체가 따라 하고 있는 셈이죠.
가장 오래 붙잡혔던 대목은 '지지위지지, 부지위지지, 시지야'였습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인데, 저자는 여기에 류츠신의 <삼체> 한 구절을 겹쳐 놓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연약함과 무지가 아닌 오만과 자만이다." 그러고는 이렇게 못을 박아요. "무지함을 인정하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그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자만심과 오만함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모른다는 말이 입 밖으로 잘 안 나옵니다. 회의 자리에서든 아이 앞에서든, 아는 척으로 슬쩍 넘기는 순간이 늘어 가죠. 능력이 부족할수록 자신을 더 높게 본다는 '더닝 크루거 효과'를 읽는데, 남 얘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물리학에는 더 밝혀낼 게 없다고 큰소리쳤다는 옛 학자들, 뉴턴이 다 끝냈으니 앞으로 연구할 게 없다며 후학에게 다른 길을 권했다는 스승의 일화가 그저 흘러간 웃음거리로만 읽히지 않았고요. 정작 뉴턴 본인은 자신을 진리의 바다 앞에서 조개껍데기나 줍는 해변의 꼬마 같다고 했다는데,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낮았던 이 대비가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3장은 균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자 자로는 뭔가를 배우면 곧장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아직 못 해낸 게 남아 있으면 새 가르침 듣기를 오히려 두려워했다고 해요. 반대로 염유는 생각만 많고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질문을 받고도 공자는 두 사람에게 정반대로 답합니다. 성급한 자로에게는 먼저 어른께 여쭙고 하라 이르고, 굼뜬 염유에게는 들었으면 곧바로 행하라 합니다. 사람의 기질에 맞춰 약을 다르게 지어 준 거죠.
이 장에서 저자가 쓴 비유 하나가 유독 선명했습니다. 듣기만 하고 소화하지 못한 지식은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겉돈다는 말이었어요. 왕양명이 말한 '지행합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갈라놓을 수 없다는 그 개념이 이 비유 하나로 단번에 손에 잡혔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못 하겠다는 흔한 말이 실은 제대로 아는 게 아니라는 지적도 그렇고요. 돌아보면 일이든 사람 사이든, 알면서 안 됐던 게 아니라 실은 어설프게 알고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던진 질문에 정면으로 답하는 자리가 4장입니다. '지식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저자는 배우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눕니다. 지식을 밥벌이 수단으로만 아는 지지자, 목표를 향해 좋아하며 정진하는 호지자,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누리는 락지자.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안 감독이 새 조건이 생기면 무조건 시도해 봐야 한다며 영화 찍는 게 정말 재밌다고 답했다는 대목이 락지자의 얼굴로 등장하는데, 그 천진함이 오래 부러웠습니다.

즐김이 극에 달하면 몰입이 됩니다. 공자가 순임금의 음악 소악을 듣고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몰랐다는 이야기, 나도 잊고 바깥세상도 잊는 '물아양망'이 그것이죠. 공식에 빠진 나머지 움직이는 마차를 칠판인 줄 알고 따라 달렸다는 가우스, 밥 챙겨 주는 사람이 없으면 먹는 것도 잊었다는 뉴턴의 일화가 나란히 놓입니다. 등수나 성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빠져든 얼굴들이었어요.
가만 보면 어른이 되며 잃어버린 게 바로 여기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뭔가를 배울 때 그게 어디에 쓸모 있는지부터 셈합니다. 공부의 목적이 1등이나 좋은 대학이 되어 버리면 과정은 그저 견뎌야 할 고생으로 남는다는 저자의 말이, 시험을 떠난 지 한참인 사람에게도 그대로 통했어요. 자격증이든 승진이든 목적지만 노려보다 보면 배우는 재미는 어느새 증발해 버리니까요. 이 책은 그 감각을 십 대에게 처음 일러 주는 동시에,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걸 조용히 되돌려 줍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공자를 훈장님 자리에 앉혀 두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산책하던 공자가 해가 언제 더 가까운지를 두고 다투는 두 꼬마를 만나는데, 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아이들이 "누가 아저씨더러 똑똑하다고 그래요?" 하고 놀려요. 위대한 스승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했다는 이 장면을, 웃으며 읽다 보면 앞서 나온 '모름을 인정하는 용기'와 자연스레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의 말들이 잔소리가 아니라 곁에 앉은 어른의 조언으로 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어요.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서양 위인들의 일화가 워낙 자주 나오다 보니, 정작 공자와 논어 원문을 깊이 파고드는 맛은 살짝 옅어지는 순간이 있더군요. 다만 청소년 독자의 눈높이를 생각하면 단점이라기보다 저자의 선택에 가깝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금세 잊히는 책이 있고, 문장 몇 개가 오래 남는 책이 있습니다. 이 도서는 후자였어요. 공부라는 말에 눌린 채 학창 시절을 흘려보낸 사람, 배움을 성과와 등수로만 재던 버릇이 몸에 밴 사람이라면, 판덩이 다시 꺼내 든 공자의 목소리가 오래된 오해 하나쯤은 풀어 줄 겁니다. 자녀와 한 챕터씩 나눠 읽고 생각을 견줘 보기에도 더없이 좋고요.
무더위가 길어지는 계절입니다. 공부가 즐겁다는 그 말을 반신반의하며 펼쳤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조금쯤 믿어 보게 되었습니다.
배움을 성과가 아닌 즐거움으로 되돌려 주는, 십 대와 어른이 함께 읽어도 좋을 담백한 논어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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