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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우너스 - 불확실성에 뛰어들어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들
윤상윤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형광에 가까운 초록. 서점 매대나 온라인 목록에서도 이 색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것도 눈이었어요. 소문자로 눌러 담은 'unknowners' 아래 굵게 박힌 '언노우너스'. 익숙한 안정의 색이라기보다 뭔가 판을 흔들겠다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표지의 카피는 "언노우너와 노우너의 비밀을 밝히다!"였고요.
두께가 상당합니다. 손에 쥐면 무게가 느껴지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건 단숨에 읽어치울 책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곱씹어야 하는 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부지런히 붙들고 읽어야 겨우 제 것이 되는 책을 만나는 일이 흔치는 않으니까요.

저자 윤상윤은 인사조직 전문가입니다. 20년 넘게 비즈니스 현장에서 사람의 내면을 분석해 온 사람이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어요. 우리가 우리를 너무 모른다는 것. 그리고 모르는 이유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부를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두 개의 이름을 지어냅니다. 알려진 것에 몰입하는 '노우너',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것에 뛰어드는 '언노우너'. 이 두 단어를 손에 쥐는 순간, 그동안 '고집' 혹은 '이상함'으로만 보이던 누군가의 행동에 갑자기 초점이 맞기 시작합니다.
책의 초반, 저는 커털린 커리코라는 이름 앞에서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mRNA 백신 개발에 40년을 바친 과학자예요.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고 과학도 정치도 방향을 잃었을 때, 그 국면을 끝내 돌파한 사람이 중심부의 스타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의 주변부에서 묵묵히, 그러나 끈질기게 알려지지 않은 것을 붙잡은 이였다고 합니다. 화려한 이력이나 눈에 띄는 성과 없이 오래 견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를 움직인 문장이 좋았어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추천해 준 한스 셀리에의 책 <생명의 스트레스>에서, 커리코는 자신의 운명을 묶어 두게 될 한 문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받아 적어요. "축복을 받았든, 저주를 받았든 간에 나는 내가 바로 셀리에가 말하는 사람임을 확신했다. (……)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저주와 견딜 수 없다는 표현이 겹쳐지는데, 이상하게도 비장하기보다 담담하게 읽혔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이의 목소리였거든요.
주변에서는 mRNA 연구를 두고 "이미 끝난 게임인데 왜 인생을 낭비하느냐"는 조롱을 보냈다고 합니다. 학계는 그녀를 견고한 질서에 난입한 이물처럼 다뤘고, 저자는 그 거부 반응을 평온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불순물을 밀어내는 정교하고도 차가운 배제라고 표현합니다. 대부분이 불가능하다며 발을 뺀 자리에서 그녀는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는 가능성을 봤다고 하고요. 성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버텨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무게가 남다르게 다가올 겁니다.
그런데 이 책이 단순히 '포기하지 마라'는 응원가에 그쳤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붙들고 있지 않았을 거예요. 뒤로 갈수록 저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강점만 이야기하는 자기계발서와 다르게, 강점과 약점을 하나의 구조 안에서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짝으로 본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뛰어들 줄 아는 사람일수록 그 힘이 안으로 향하면 스스로를 갉아먹는 칼날이 된다는 거예요.
약점을 다루는 장에서 저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성공한 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이 자기 약점에 눈을 감는 오만이라는 이야기였어요. 결함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혹은 "이게 내 스타일이니 주변에서 맞춰야 한다"고 말하는 태도. 저자는 이걸 전략이 아니라 자기 결함을 정당화하는 변명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자기 약점으로 생기는 고통과 비용을 주변 사람에게 떠넘기는 무책임이라는 거예요. 조직 생활을 어느 정도 해 본 사람으로서 이 문장 앞에서 저도 뜨끔했습니다. 진짜 리더십은 강점을 과시하는 데서가 아니라 자기 약점을 정직하게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어요.

해법으로 저자가 내미는 건 화려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훈련으로 약점을 제어 가능한 변수로 만드는 것.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의 연구를 빌려, 탁월함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의도적 수련'에서 온다고 설명하는데요. 흥미로운 건 그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정작 에릭슨이 반박했다는 사실입니다. 핵심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훈련의 질이라는 것. 에릭슨은 단순한 반복을 두고 "실력이 서서히 나빠지게 방치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경고합니다.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잘하는 곡을 즐겁게 반복하는 대신 가장 서툰 구간에 하루 몇 시간씩 부딪힌다는 이야기 앞에서, 편한 쪽으로만 흘러온 제 습관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책이 끝으로 향하면서 이야기는 결국 한 곳으로 모입니다. 나를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저자는 넷플릭스 인수를 거절했던 블록버스터 CEO 존 안티오코의 결정을 꺼내 오는데, 흔히 '변화에 무지했던 경영자'로 박하게 평가받는 그 판단을, 그 자리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었던 선택으로 다시 세웁니다.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연체료를 스스로 도려내라는 제안 앞에서, 수만 명의 생계를 책임진 사람이 확실한 손실의 공포를 얼마나 크게 느꼈을지를 짚어요. 노우너의 선택을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 본성으로 이해하려는 이 균형 감각이, 제게는 이 책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부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준거점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나라는 존재와 재능은 그대로인데, 나를 채점하는 시험지가 상황에 따라 통째로 바뀐다는 이야기예요. 같은 사람이 어느 날은 '혁신의 열쇠'였다가 어느 날은 '위험'으로 돌변한다는 것. 조직이라는 곳에서 열심히 하고도 능력 이하의 평가를 받아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설명이 뜻밖의 위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문제가 나에게만 있던 게 아니라 나를 해석하는 기준이 흔들리고 있었던 거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어요.
솔직히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다뤄지는 인물들이 커리코, 피터 틸, 바스키아, 헤이스팅스, 이건희처럼 결국 세상이 성공으로 기억하는 이들이라,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진 수많은 언노우너의 자리는 상대적으로 조용합니다. 다만 그건 이 책이 지향하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좌절의 기록이 아니라 그럼에도 나아갈 근거를 쥐여 주려는 책이니까요.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건 결론의 태도였습니다. 저자는 두 갈래 길을 제시해요. 스스로 새로운 준거점이 되는 전복의 길, 그리고 세상과 균형을 찾는 공존의 길. 그러고는 이렇게 씁니다. "어떤 길을 택하든 본질은 같다. 스스로의 진짜 모습을 인식했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좋다." 정답을 강요하지 않고 선택을 다시 독자의 손에 돌려주는 이 매듭이, 두꺼운 책을 부지런히 따라온 사람에게 건네는 담백한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조직 안에서 유독 모난 돌 취급을 받아 온 사람에게, 그리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고민해 온 사람에게 각각 다른 얼굴로 말을 겁니다. 자신이 왜 자꾸 어긋나는지 궁금했던 이에게는 자기를 설명할 언어를,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는 이에게는 서로 다른 결을 조율하는 감각을 건네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아 읽는 동안, 다 읽고 나서도 이렇게 제 안에 질문을 남긴 책은 드물었습니다.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매미 소리가 창밖을 가득 채우고 무엇 하나 서두를 수 없는 계절인데, 더위에 걸음이 느려지는 이런 때야말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천천히 통과하기에 어울리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 서늘한 실내에 앉아 나라는 사람의 결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이 초록빛 한 권을 권해 봅니다.
나를 부를 이름을 손에 쥐는 순간, 어긋남은 결함이 아니라 방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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