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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 - 주어진 길을 넘어, 삶의 이유를 만든 사람들
김회주 지음 / 데이지북스 / 2026년 6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흰 바탕에 여러 색의 선이 산줄기처럼 낮게 흐르고, 그 아래 작은 사람 하나가 길 위에 서 있는 표지였습니다. 요란한 데가 없는데도 눈이 오래 가더라고요. 그 사람이 선 자리가 어쩐지 낯설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아래쪽에 나란히 적힌 'Fate Is Given, Life Is Chosen, The Rest Is Courage'라는 문장이 책 전체를 미리 압축해주는 듯했어요. 운명은 주어지지만 삶은 선택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결국 용기라는 뜻이겠지요.
<인간은 무엇으로 다시 일어서는가>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난 책입니다. 실물을 받아 들었을 때 먼저 든 생각은 의외로 실용적인 쪽이었어요. 핸드북 사이즈에 얇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 잠깐 비는 시간에 한 꼭지씩 꺼내 읽기 좋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읽었고요.

책은 톨스토이, 헤밍웨이, 카뮈부터 메시, 마윈, 스티븐 킹, 정약용까지 마흔 명이 넘는 인물을 한 사람씩 짧게 다룹니다. 그런데 흔한 위인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저자 김회주는 이들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무너졌던 자리에 초점을 맞춰요. 성공의 결과보다 그 앞에 반드시 있었던 긴 어둠을 들여다보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인데도 읽다 보면 자꾸 제 자리로 시선이 돌아오게 됩니다.
특히 헤르만 헤세 편에서 오래 걸렸습니다. 선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 신학교에 들어간, 겉보기엔 완벽한 출발을 한 소년이 정작 그 안에서 자신을 잃어가다 열다섯에 "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학교를 뛰쳐나옵니다. 이후 공장과 서점을 전전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죠. 벼랑 끝에서 그가 깨달은 대목이 마음에 남았어요. 자신을 무너뜨린 것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삶이었다는 것. 나이가 좀 든 뒤에 읽으니 이 문장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헤세는 무조건 버티라거나 참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당신은 부서질 준비가 되었는가?" 하고 물어요. 봄에 꽃이 피려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시린 겨울이 먼저 있어야 하듯, 지금의 불안과 혼란은 잘못 살아온 증거가 아니라 제대로 살기 위해 껍질을 깨는 과정일 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데미안>의 그 유명한 구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문장이 어떤 삶의 바닥에서 나온 것인지 알고 나니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다산 정약용 편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한결 가깝게 움직였습니다. 서양 인물들 사이에서 만난 우리 이름이라 반가운 것도 있었지만, 내용이 유독 절실하게 읽혔어요. "사람이 무너지는 순간은 요란하지 않다. 어느 날 문득 소리 없이 찾아온다." 챕터를 여는 이 문장부터가 그랬습니다. 정조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지자 순식간에 사냥감이 되어버린 다산이 겪은 것 중 가장 아팠던 건 지위나 명예의 상실이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어제까지 반갑게 인사하던 이들이 눈을 피하고,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의심받고 침묵할수록 고립되던 시간. 조직 안에서 나이를 먹어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마음이 서늘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에도 다산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건 그다음입니다. 유배지 강진에서 방 한 칸 내주는 이조차 없던 그가, 시간이 흐르며 글을 배우겠다고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다시 일어서요. '아직 쓸모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는 문장이 좋았습니다. 18년의 유배 동안 500여 권을 써낸 그 시기가, 가장 자유롭지 못했던 때에 가장 위대한 사상이 싹튼 시간이었다는 아이러니도요. 저자는 불행을 미화하지도, 그 앞에 무릎 꿇지도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삶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고 표현합니다. 이 균형 잡힌 시선이 책의 미덕이라고 느꼈어요. 무너졌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 그저 다시 쌓을 수 있다는 뜻일 뿐이라는 말이, 담담해서 오히려 오래 남습니다.

축구를 즐겨 보지 않는 분이라도 리오넬 메시 편은 다르게 읽힐 겁니다. 열한 살에 성장 호르몬 결핍증 진단을 받은 소년에게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키가 140cm쯤에서 멈출 것"이라는 말은 축구 선수를 꿈꾸던 아이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죠. 한 달 900달러의 치료비를 가난한 부모가 감당하기 어려워, 비용을 줄이려고 어린 메시가 스스로 다리에 주사를 놓았다는 대목에서 잠깐 읽기를 멈췄습니다. 우리가 아는 '축구의 신' 이전에, 매일 밤 차가운 바늘을 제 다리에 꽂던 한 아이가 있었던 겁니다.
책은 이 이야기를 재능이 아니라 의지에 관한 기록이라고 정리합니다. 국가대표로는 번번이 결승에서 좌절해 "국가대표팀에서 내 시간은 끝났다"고 눈물 흘리던 사람이, 결국 서른다섯에 첫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까지의 길이 담겨 있어요. 2022년 결승 승부차기에서 첫 키커로 나서 성공시키며 팀을 이끈 그 장면이, 그가 짊어져 온 삶의 무게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자가 붙인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고, 실패가 이어지고 세상이 등을 돌려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만이 원하는 미래를 만난다는 것. 메시가 남긴 "나는 매일 더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하는 것의 전부다"라는 문장이 이 편을 조용히 닫습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한 꼭지가 짧다는 데 있습니다. 마흔 편이 넘어도 부담이 없어요. 하루에 하나씩 마음 가는 이름부터 골라 읽어도 되고, 힘든 날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됩니다. 아쉬움을 굳이 꼽자면, 다루는 인물의 폭이 넓은 만큼 한 사람씩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요점을 정리해 건네는 쪽에 가깝다는 점이에요. 각 인물에게 더 머물고 싶은 독자에게는 조금 짧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건 책의 성격을 생각하면 단점이라기보다 설계에 가깝고, 오히려 그 덕분에 문턱이 낮아졌다고 봐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읽어오면서, 읽고 나면 금세 잊히는 책이 있고 오래 곁에 두게 되는 책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 책은 후자였어요. 대단한 감동을 몰아치듯 안기는 종류는 아니지만,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무엇을 쌓아야 할지 스스로 묻게 만드는 힘이 있었거든요. 삶의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 있다고 느끼는 사람, 지금의 흔들림이 실패의 증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이 얇은 책이 조용한 동행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첫 발이 떨어지지 않는 이에게도요.
여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매미 소리가 창을 넘어오는 이런 계절엔 두꺼운 책보다 이렇게 가벼운 한 권이 손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더위에 지쳐 마음까지 헐거워지는 날, 짧은 한 꼭지씩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좋은 책입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지금의 흔들림이 끝이 아니라 다시 쌓을 자리임을 조용히 일러주는 얇고 단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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