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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 물어보세요
이창훈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5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받아 든 책은 크지 않았습니다. 얇고 가벼워서, 무슨 각오를 하고 펼쳐야 하는 부류는 아니라는 걸 표지를 보기 전부터 짐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앞표지를 마주하니 인상이 조금 달라졌어요. 짙은 남색 바탕 위에 오렌지색 선 하나가 사람의 옆얼굴을 그려내는데, 그 선이 눈가 언저리에서 살짝 안으로 말려 들어갑니다. 밖이 아니라 자기 안쪽을 들여다보는 얼굴 같았어요. <오늘, 나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제목이 그 위에 얹혀 있으니, 결국 저 옆얼굴이 바라보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저자는 임상심리사 자격을 가진 상담전문가로, 지금은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상담실에서 미처 다 건네지 못한 말들을 짧은 글로 엮은 것인데, 하루에 한 편씩 읽어도 좋을 만큼 호흡이 짧습니다. 짧은 메시지들 사이사이에 실제 상담 사례가 놓여 있어서, 개념으로만 흐르지 않고 사람 냄새가 배어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처음 읽으면서 걸린 건 '나를 잃지 마세요'라는 대목이었습니다. 남에게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사라진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사회 속에서 친해지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온갖 '척'을 하며 살아간다는 지적이 뜨끔했어요. 그러면서 책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정말 신경 쓰고 가꾸어야 할 사람은 거울 속에 보이는 나, 내가 바라보는 나입니다." 관계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있어도 나의 모든 것을 양보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이 들수록 자꾸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게 되는 사람에게는 꽤 서늘하게 들립니다.

오래 남은 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감정은 자산입니다'라는 글에서는 감정을 아무 데나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소모품이 아니라 쓰면 줄고 채우면 회복되는, 관리해야 할 자산이라는 비유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내 기분이 쉽게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대목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값어치도 없는 상황에 흘려보냈나 되짚게 됐습니다. 비슷한 결로 '불안은 커진다'는 글도 있었어요. 지금의 불안이 상황 자체가 아니라 반복된 생각이 키운 결과라는 진단인데, 없애라고 다그치는 대신 인정하고 근거를 따져보라고 권합니다. "불안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군요.
책의 무게중심은 아무래도 중간중간 놓인 상담 사례에 있습니다. 그중 '노력해도 안 풀리는 삶이라고 느껴질 때'는 읽다가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고 사는 게 익숙했던 사람의 이야기예요.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집안 분위기를 견디며, 하고 싶지 않은 길도 해야 하는 것이라 믿고 걸어온 사람. 전공도 자격증도 지원서 백 장도 다 버텨냈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이 정도 했으면 좀 풀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물음에 다다릅니다. 저자가 그에게 던진 질문이 정곡을 찌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버티는 방식 아니었느냐고, 그 삶에서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건 얼마나 있었느냐고요.

사례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삶이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수 있다고. 노력은 충분했고,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방식이었다고. 그리고 지금 지쳐 있다면 그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제대로 버텨 왔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사례 끝에 붙은 한 줄은 "버티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였어요. 오래 참는 것을 미덕처럼 여겨온 세대에게, 이 짧은 문장이 던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겁기만 한 건 아닙니다. 실천의 문턱을 낮춰주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어요. '5분이라도'에서는 멈춰 있는 이유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거창한 노력 대신 하루 십 분, 책 한 페이지, 전화 한 통이면 된다고요. 게으름을 하기 싫은 상태가 아니라 못하는 상태로 바꿔 부르는 관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에서는 고집과 끈기를 갈라놓으면서, 막힌 순간에 필요한 건 포기가 아니라 경로를 다시 찾는 일이라고 다독입니다. 실수조차 앞길을 위한 데이터라고 부르니, 어깨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이야기가 짙어집니다. '자기위로'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내가 먼저 나의 편이 되라고 하면서, "그래, 내가 다 알고 있어,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라고 권합니다. '모든 내가 나다'에서는 상처받은 나도, 회복 중인 나도, 아직 헤매는 나도 모두 나이며 계속 업데이트되는 존재라고 말하고요. 완성된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말고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라는 이 문장은, 자꾸 스스로에게 인색해지는 사람에게 조용히 어깨를 내어줍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짧은 글을 여러 편 모은 형식이다 보니 표현이나 논리가 겹치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띕니다. 감정을 관리하라거나 자신을 먼저 지키라는 이야기가 결을 달리해 반복되는데, 한 번에 몰아 읽으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다만 애초에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읽으라고 만든 책이니, 그런 방식으로 곁에 두면 오히려 반복이 스며드는 힘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누구에게 어울릴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남의 기준에 맞춰 살다가 정작 자기 속내가 어디 있는지 흐릿해진 사람이 먼저 떠오릅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지쳤는지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되는 시기라면, 문장 하나하나가 말을 걸어올 거예요. 거창한 해법보다 하루의 끝에 짧게 자기를 점검하는 도구가 필요한 이에게도 잘 맞습니다.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건네는 책이라, 읽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채워가는 여백이 넓거든요.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났습니다.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읽다 보면 마음보다 손이 먼저 움직여 요약부터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안내서는 그런 태도를 잠깐 내려놓게 만들었어요. 페이지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하니, 밑줄을 긋다가도 결국 저 자신을 향해 질문을 되던지게 되더군요.
한여름 열기가 한창인 요즘, 밖에 나서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계절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짧은 글 한 편 읽고 잠깐 눈을 감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듯해요. 무언가를 더 해내라고 몰아붙이지 않고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해주는 책이라, 여름밤에 한 편씩 넘기기 좋았습니다.
정답을 쥐여주는 대신 스스로에게 묻는 법을 알려주는, 하루 끝의 나지막한 안부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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