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행복은 나의 기쁨이야
정한경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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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직접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을 손에 든 순간 먼저 든 생각은, 참 다루기 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판형에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아무 데나 펼쳐 몇 편 읽고 다시 덮어 두기에 좋았어요. 잘 익은 살구를 화면 가득 담은 표지도 한몫했습니다. 주황과 초록이 부딪치는데도 이상하게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눈이 편안해지는 색이더라고요. 표지에 적힌 "당신이 아주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늘 그것 하나였습니다"라는 문장부터가 이미 책 전체의 온도를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제목이 조금 낯간지러웠습니다. 너의 행복이 나의 기쁨이라니, 어딘가 광고 문구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정한경 작가가 말하는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옆 사람이 웃을 때 나도 모르게 따라 데워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더군요. 누군가를 아낀다는 게 결국 그 사람이 무엇으로 행복한지를 배워 가는 일이라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책이 저를 붙든 지점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잔잔한 사랑'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예전엔 사랑을 성난 바다의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이라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끝없이 확인하고,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애태우던 시절이 있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고 씁니다. 어떤 사랑은 안달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상대가 언제든 다가와 쉴 수 있도록 굳건히 머무는 것이라고요. 젊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을 문장인데, 어느덧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은'도 오래 곱씹게 되는 글이었어요.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작가는 시각을 살짝 비틀어 냅니다. 흔들리는 게 나약함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안간힘이라고요. "모든 흔들림에는 돌아오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며 지낸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자신을 탓하느라 정작 돌아오려 애쓰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지적이, 조용히 등을 받쳐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글은 '보통의 사람'이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에 아픈 일 앞에서도 무너지면 안 됐고, 우울이 찾아와도 결국 웃어 보여야 했고, 속이 어지러운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걸어야 했다는 대목을 읽는데, 이건 제 이야기이기도 하겠구나 싶었어요.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각자의 삶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과정을 통과해 온 이들이며,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사람이기에 그 무게를 홀로 짊어져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맺습니다. 그렇게 견뎌 온 우리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보통의 사람"이라고요. 대단한 위로의 말이 아닌데도, 이 한 문장이 이상하게 든든했습니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처음이셨다'는 조금 다른 결로 마음을 건드립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어른을 찾는다고, 작가에게 그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해요. 뭐든 답을 알고 있던 척척박사 같던 분이 어느 날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지 앞에서 말없이 서 계시던 장면을 목격하고, 작가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어머니도 다 아셨던 게 아니라 애쓰고 계셨던 거라고, 자식에게 힘이 되고 싶어 독수리 타법으로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셨던 거라고요. 부모라는 자리를 지나 보니, 그분들 역시 처음이라 서툴렀을 뿐인 한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짐작하게 됩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찾자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주하듯 읽으면 오히려 매력이 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짧고 단정한 글들이 이어지다 보니 몰아 읽으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인상을 받기 쉽거든요. 지친 저녁에 한두 편씩 아껴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가 비로소 제 무게를 갖고 다가옵니다.


이 책은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어깨에 얹힌 것이 부쩍 많아진 분들에게 특히 가닿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잃고 그 빈자리를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남들처럼 대단하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자주 주눅 드는 사람에게도 좋겠고요. 이런저런 책을 곁에 두고 살아왔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마음을 데워 주는 책은 드물었습니다. 화려한 문장으로 설득하는 대신, 곁에 앉아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는 쪽에 가까운 책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한여름의 열기와 장마가 한창인 요즘, 이 책은 계절과 조금 어긋난 온도를 품고 있습니다. 겨울과 담요, 월동 준비 같은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묘하게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멀게 느껴지는 그 계절을 미리 데워 두는 손길 같아서요. 무더위에 마음까지 눅눅해지는 날, 이 작은 한 권이 잠깐의 그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무게를 견뎌 온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다정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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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알고 싶은 아이디어 발상법 - 세계 최고 권위 칸 광고제 우승자의 크리에이티브 비법
나카가와 료 지음, 한세희 옮김 / 알토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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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뛰어난 결과물 앞에서 "왜 나는 저런 생각이 안 떠오를까" 하고 스스로를 탓해 봤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라면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조금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치도록 알고 싶은 아이디어 발상법>은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아요. 오히려 저자 본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먼저 손을 들어 버립니다.


표지부터 성격이 분명합니다. 형광 노랑과 핑크, 검정이 부딪히듯 놓인 팝아트풍 디자인에, 스프링과 전구 회로를 닮은 도형들이 배경에 흩어져 있어요. 광고 포스터를 그대로 책 표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인데, 이 요란함이 실은 '발상의 회로'라는 이 책의 핵심을 미리 보여주는 장치라는 걸 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판형도 부담스럽지 않고 두께도 얇아서, 며칠에 걸쳐 조금씩 넘겨 보기에 알맞은 한 권이었어요.


저자 나카가와 료는 덴쓰 카피라이터를 거쳐 구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이력만 보면 '역시 타고난 재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신입 시절 크리에이티브 부서에 배치되지도 못했고, 카피라이터 명함을 받기까지 입사 8년이 걸렸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15년 가까이 매달렸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성공담을 자랑하려는 책이 아니라 한참을 헤맨 사람이 건네는 기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이 붙들고 있는 첫 번째 오해는 '번쩍임'입니다. 만화 속 전구처럼 아이디어가 어느 순간 켜질 거라 믿고 기다리는 태도 말이죠. 저자는 이렇게 못을 박습니다. "아이디어는 찰나의 번뜩임이 아니라 숱한 고민 끝에 탄생한다." 예산과 시간, 사람이라는 제약을 하나씩 넘어서려 애쓸 때에야 비로소 불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재능이 아니라 성실함이 출발점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김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오히려 숨통이 트였습니다. 아이디어가 노력의 문제라면, 지금 안 되는 것도 아직 덜 붙들어서일 뿐이니까요.


여기서 저자가 드는 사례가 재미있어요. 혼다의 슈퍼 커브는 자전거 뒤에 무거운 짐을 싣고 힘겹게 달리던 아내를 본 창업자의 안쓰러움에서 나왔고, 닌텐도 Wii는 게임기가 거실 텔레비전을 독차지해 가족을 흩어 놓는다는 불편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꾼 물건들이 거창한 영감이 아니라 눈앞의 곤란에서 출발했다는 거죠. "나의 고민은 누군가의 고민이다"라는 문장이 이 대목의 열쇠인데, 직장 생활을 길게 해 온 사람일수록 이 말이 실감 날 겁니다. 내가 매일 부딪히는 불편이 사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앓는 문제일 때가 많으니까요.


책의 한가운데를 지나면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아이디어를 못 내는 진짜 이유가 센스도, 발표 실력도, 돈도 아니라 '부끄러움'이라고 짚는 대목인데요. 이상은 높은데 현실의 내가 거기 못 미친다고 느낄 때, 그 격차가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마흔을 훌쩍 넘겨 일하다 보면 이 감정을 자주 마주하게 돼요. 어설픈 걸 내놓느니 아예 입을 다무는 쪽이 편해지죠. 그런데 저자는 이걸 뒤집습니다. 지금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건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는 증거이고, 그로 인해 기회가 생겼다는 증거라는 거예요.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로 다시 읽자는 제안이었어요. 스티브 잡스의 "Stay foolish"를 '남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짓을 해라'로 풀어내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했습니다.


두고두고 곱씹게 된 건 책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저자는 원하던 부서에 못 가고 버틴 7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나는 기획을 잘한다"는 자신감이 하루하루 깎여 나가는 일이었다고 말해요. 주변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결국 나 자신도 나를 못 믿게 된다는 문장은, 성과로 매일 평가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한동안 붙들게 될 겁니다. 그가 그 시간을 견딘 방법은 특별하지 않았어요. 매년 하나씩 스스로 프로젝트를 벌이고 공모전에 도전한 것. 그러면서 저자는 발상력이란 애초에 남이 점수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니, 스스로를 먼저 칭찬하라고 권합니다. 아이디어 전구의 가치는 크기가 아니라 세상에 빛을 낼 때 정해진다는 말과 함께요.


물론 아쉬운 구석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례가 광고와 기획 현장에 몰려 있어서, 그 세계와 거리가 먼 독자라면 몇몇 대목은 다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전구 비유가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되풀이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핵심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같은 그림이 여러 번 돌아오다 보니 뒤로 갈수록 익숙함이 조금 앞서기도 했어요. 다만 각 장이 짧고 요점이 또렷하게 정리돼 있어,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손해 보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결국 재능에 관한 책이 아니라 '계속하는 힘'에 관한 책이더군요. 그래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사람보다, 애를 썼는데 성과가 따라오지 않아 자신을 의심하게 된 사람에게 더 깊이 가닿을 것 같습니다.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꾸 뒷걸음질 치게 되는 분이라면, 부끄러움을 다루는 장만 읽어도 등이 한 번쯤 가볍게 떠밀리는 경험을 하실 거예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아 읽는 동안, 창의성이라는 말이 저처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에게도 열려 있다는 사실이 은근한 격려처럼 남았습니다.


한여름의 열기가 한창인 요즘, 무언가를 새로 벌이기엔 지친다 싶은 계절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크게 시작하라고 재촉하지 않아요. 눈앞의 작은 불편 하나를 붙들고 "어떻게 바꿔 볼까" 물어보는 것, 딱 그만큼이면 된다고 조용히 일러 줍니다. 더위에 축 처진 마음에는 오히려 그 욕심 없는 태도가 반가웠어요.


재능이 아니라 계속하는 힘이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오래 헤매 본 사람이 건네는 담백한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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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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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를 펼치기 전, 표지에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소금 자루 앞에서 이마를 훔치는 사람, 검은 정장 차림의 석유 캐릭터, 다이아몬드를 든 세공사, 고조선 모피 시장의 흥정 장면까지. 경제사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과 달리, 표지는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그림책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아 든 순간, 어렵게 배워 흘려보냈던 세계사를 다른 문으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자 홍익희 님은 코트라에서 32년간 무역 현장을 누빈 분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그 이력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물건이 어디서 나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길목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밀려나는지를 몸으로 아는 사람의 시선이라고 할까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지금은 마트나 주유소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이 다섯 가지가 실은 문명의 방향을 튼 손잡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붙들려 읽은 건 모피 편이었습니다. 러시아와 북미의 사냥꾼 이야기로 시작하나 싶더니, 고조선이 동북아 모피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대목에서 자세를 고쳐 앉게 됐어요. 비결이 흥미롭습니다. 백두산 자락의 험준한 산악지대 덕분에 좋은 짐승이 많았고, 우수한 말과 활로 큰 짐승까지 잡아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진짜 무기는 흑요석이었다고 해요. 잡은 짐승의 체온이 식기 전에 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긁어내야 좋은 모피가 나오는데, 그 섬세한 작업에 흑요석 날만 한 도구가 없었다는 겁니다.


저자는 흑요석을 두고 "신이 축복한 나라에 주는 선물"이라고 적었습니다. 화산이 분화하고, 용암 성분이 규소 위주여야 하고, 빠르게 식어 결정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넘겨야 생기는 돌이라서요. 그 산지가 백두산 남쪽에 몰려 있었다니,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만 떠올리던 자리에 '담비길'이라는 또 하나의 길과 그 길의 중심에 선 고조선을 나란히 세워 주는 셈입니다. 담비가 이제는 한국에서 귀한 동물이 되어 버렸다는 한 줄에서는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어요. 저자가 "모피는 고조선을 대표하는 최초의 브랜드였는지도 모른다"고 쓴 대목은, 익숙한 역사책이 잘 말해 주지 않던 자부심 하나를 슬며시 얹어 주는 듯했습니다.


보석 편으로 넘어가면 결이 확 달라집니다.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고받는 일을 우리는 오래된 전통처럼 여기잖아요. 그런데 그게 실은 한 기업이 촘촘하게 설계한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우연히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드비어 형제, 그 농장을 사들여 채굴권을 금융으로 묶어 버린 세실 로즈, 그리고 대공황을 기회로 삼아 전 세계 원석을 헐값에 쓸어 담은 오펜하이머 가문까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그 유명한 광고 문구가 사랑과 성공의 상징을 만들어 낸 마케팅의 결과였다는 대목에서, 광채 뒤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세실 로즈가 남긴 유언집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당신이 내란을 피하려 한다면 당신은 제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반짝이는 돌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남의 땅을 정복해 자기 이름을 붙이던 시대의 논리가,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렇게 120년 넘게 시장의 8할, 9할을 쥐고 있던 드비어스 제국이 2012년 가문의 지분 매각과 함께 저물었다는 결말도 뒷맛이 깊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독점도 결국 무너지더라는 이야기가, 요즘 실험실에서 만든 다이아몬드가 시장을 흔드는 흐름과 겹쳐 읽히더군요.


가장 뜨겁고, 동시에 가장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대목은 석유 편이었어요. 텍사스 유전이 터지며 거대 기업들이 태어나고, 세계 3대 석유회사가 스코틀랜드의 한 저택에 은밀히 모여 시장을 나눠 갖는 카르텔을 만드는 장면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기에 맞선 이탈리아의 엔리코 마테이가 소련과 손을 잡았다가 원인 불명의 비행기 폭발로 세상을 떠나는 대목, 부시 가문과 석유 자본의 밀착,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이면에 놓인 송유관과 달러 패권 이야기까지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라크가 석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꾼 일을 전쟁의 숨은 도화선으로 지목해요.


다만 이 부분은 통념을 뒤엎는 저자 나름의 발칙한 해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학계에서는 다른 견해도 많은 영역이니, 저자가 이렇게 바라본다는 틀로 받아들이는 편이 균형 잡히겠지요. 그럼에도 요즘 유가 뉴스나 중동 소식을 볼 때마다 왜 저런 일이 벌어지나 답답했던 분이라면, 세상의 뒷면을 한 겹 들춰 보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독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책을 다 덮고 나니, 이 다섯 가지 물질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더군요. 처음엔 발견과 설렘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곧 독점과 담합으로 굳어지고, 끝내 전쟁과 패권이라는 어둠으로 번지는 흐름이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문명을 밀어 올리고 또 어떻게 그늘지게 만드는지, 물건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 양면을 담담히 보여 주는 책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익숙한 물건을 통해 세상 읽는 눈을 이렇게 넓혀 준 경우는 흔치 않았어요.


분량도 부담이 없어서, 한 권으로 세계사 정주행을 시작하기에 알맞습니다. 역사와 오래 멀어져 있던 어른이 다시 첫걸음을 떼기에도, 국제 뉴스의 배경이 늘 궁금했던 직장인에게도 잘 맞아요. 교과서 밖에서 살아 있는 세계사를 만나고 싶은 학생에게는 인문교양의 시작으로 삼기 좋은 안내서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곱씹게 되는 책이에요.


한여름의 열기가 한창인 요즘,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 한 권을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소금에서 석유까지 흘러온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매일 스쳐 지나던 물건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오후를 만나게 될 거예요.


소금부터 석유까지, 손에 익은 물건 다섯 가지로 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읽어 내는 친절한 세계경제사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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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페르소나 마케팅 레볼루션
조수호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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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받아 들고 처음 든 생각은, 표지가 참 정직하다는 것이었어요. 검은 바탕에서 오렌지빛 광선이 퍼져 나가고, 그 한가운데에 여러 조각으로 나뉜 사람의 얼굴이 놓여 있습니다. AI를 다루는 책이라기에 차가운 회로나 데이터 그래프 같은 걸 예상했는데, 정작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는 얼굴이 있더군요. 기술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사람을 보게 만드는 구성이라, 책장을 열기 전부터 저자가 하려는 말이 조금 짐작됐습니다. 표지 아래 적힌 한 줄도 이런 짐작을 거들었어요. "페르소나를 만들고, 고객을 연결하고, 매출을 증명하라."


<AI 페르소나 마케팅 레볼루션>은 조수호 저자가 하움출판사를 통해 펴낸 실무서입니다. 딜로이트 컨설팅과 IBM, 삼성 계열사를 거치며 25년을 마케팅과 컨설팅 현장에서 보낸 분이고, 국내에 HubSpot을 처음 들여온 이력도 있다고 하네요. 책 소개를 읽다 보면 저자가 백여 개 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했다는 한 문장이 눈에 박힙니다. "실패한 기업은 '개인화 기술'을 샀고, 성공한 기업은 '고객 이해'에 투자했다." 이 한 줄에 책 전체의 문제의식이 다 담겨 있었어요.


저는 이 도서를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읽었습니다. 마케팅 실무서라고 하면 보통 트렌드를 요약하고 도구 사용법을 나열하는 책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결이 조금 달랐어요. 도구 이전에 사람을, 성과 이전에 이해를 먼저 이야기합니다.


가장 먼저 마음이 움직인 대목은 초반의 진단이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가 '고객'이라 불러온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죠. ChatGPT가 즉시 결제 기능을 붙이고, 검색 엔진들이 사람을 대신해 상품을 비교하고 결제까지 마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저자는 이걸 두고 진짜 고객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표현합니다. 웹사이트를 방문하고 장바구니에 담던 그 행위자가 이제는 알고리즘일 수 있다는 것. 알고리즘에게는 브랜드 충성도가 없고 오직 가격과 스펙, 배송 속도만 남는다고 저자는 담담히 짚어냅니다.


그런데 저자가 여기서 절망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AI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진짜 인간 고객'과의 관계가 귀해진다고 말합니다. AI는 가격으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감정과 경험, 신뢰와 소속감으로 움직인다고요. 그리고 AI가 끝내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이 브랜드가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문장에서, 표지 한가운데의 그 얼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 책이 설득력을 갖는 건 주장을 이야기로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메디테크의 김소영 차장 이야기가 특히 그랬어요. 마케팅 예산 1억 원을 썼는데 실제 매출로 이어진 리드는 3%에 불과하고, 영업팀에서는 리드 품질이 낮다는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책상 위에는 네이버 광고 데이터와 페이스북 캠페인 결과, 이메일 통계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쌓여만 있고요. 도구는 다 갖췄는데 정작 고객이 어떤 길을 걸어 구매에 이르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조직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게 될 겁니다.


김 차장이 값비싼 CRM을 도입하고도 6개월을 헤맨 뒤에야 깨닫는 사실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그동안 '의료진'이라고 뭉뚱그렸던 고객이 실은 완전히 다른 세 사람이었다는 것. 임상 효과와 환자 안전을 먼저 보는 신중한 의사, ROI와 예산을 따지는 병원 구매 담당자, 시스템 호환성과 보안을 챙기는 IT 관리자. 똑같은 MRI 시스템 하나를 두고 이 세 사람에게 각각 임상 근거로, 비용 절감으로, 기존 장비와의 호환성으로 다르게 말을 건네자 이메일 오픈율과 데모 요청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이런 강력한 도구도 올바른 전략 없이는 무용지물이 됩니다"라는 저자의 담담한 문장이 오래 남았어요.


책 뒷부분으로 갈수록 저자가 자기 방법론의 허점까지 드러낸다는 점이 도드라집니다. 성공담만 늘어놓았다면 흔한 홍보서에 그쳤을 텐데, 페르소나 전략이 현장에서 부딪히는 벽들을 따로 한 장에 걸쳐 풀어놓거든요. 그중 한 사례가 특히 기억납니다. 어느 금융 SaaS 회사의 마케팅팀이 6주를 들여 완벽한 CFO 페르소나를 만들었는데, 정작 영업팀이 현장에서 만나는 실제 고객은 CFO가 아니라 훨씬 젊은 회계 관리자였다는 것. 지난 6개월치 실제 계약 데이터를 열어보니, 상상 속 고객이 중시하리라 믿었던 '안정성'은 뒷전이고 정작 사람들이 원한 건 '월 정산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달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요구였습니다. 우리가 팔고 싶은 고객과 실제로 돈을 내는 고객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 간극을 빨리 발견하고 고쳐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책 소개에 적힌 그 한 문장과 정확히 포개집니다.


읽는 내내 마음에 걸린 건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잠시 지워도 이 책의 이야기가 성립한다는 점이었어요. 누군가를 안다고 믿었지만 실은 내가 만든 이미지를 알고 있었을 뿐인 경우가, 일에서든 사람 사이에서든 얼마나 많던가요. 저자가 데이터를 앞세우면서도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은, 상대를 짐작으로 규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라는 오래된 권고가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분량은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라 며칠이면 무리 없이 넘길 수 있습니다. 문장도 어렵지 않고, HubSpot 화면이나 리드 스코어링 예시처럼 실무에 바로 옮길 수 있는 그림과 표가 곳곳에 놓여 있어요. 다만 CRM이나 개인화 토큰 같은 용어가 이어지는 대목은 마케팅과 거리가 있는 분에게는 조금 낯설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런 부분은 사례 중심으로 훑어도 큰 흐름을 놓치지 않게 쓰여 있습니다.


이 책은 데이터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정작 고객의 얼굴은 떠올리지 못하는 실무자에게 실질적인 안내가 되어 줍니다. 동시에 마케팅과 무관하더라도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자주 착각으로 미끄러지는지 돌아보고 싶은 이라면, 업종을 떠나 얻어갈 문장이 적지 않을 거예요.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을 더 깊이 알아야 하는 시대라는 저자의 관점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남습니다.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오래 못 보던 이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멀리 있던 사람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죠. 그렇게 마주 앉아 보면, 내가 알던 그 사람과 지금 눈앞의 그 사람이 조금 달라져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 도서를 이 계절에 읽은 것이 묘하게 어울린다고 느낀 이유예요. 무언가를 더 많이 아는 것보다, 눈앞의 한 사람을 제대로 아는 일이 결국 전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화의 답은 더 좋은 기술이 아니라 더 깊은 고객 이해에 있다는 것을, 생생한 실패담과 회복담으로 증명해내는 실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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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 물어보세요
이창훈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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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받아 든 책은 크지 않았습니다. 얇고 가벼워서, 무슨 각오를 하고 펼쳐야 하는 부류는 아니라는 걸 표지를 보기 전부터 짐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앞표지를 마주하니 인상이 조금 달라졌어요. 짙은 남색 바탕 위에 오렌지색 선 하나가 사람의 옆얼굴을 그려내는데, 그 선이 눈가 언저리에서 살짝 안으로 말려 들어갑니다. 밖이 아니라 자기 안쪽을 들여다보는 얼굴 같았어요. <오늘, 나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제목이 그 위에 얹혀 있으니, 결국 저 옆얼굴이 바라보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저자는 임상심리사 자격을 가진 상담전문가로, 지금은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상담실에서 미처 다 건네지 못한 말들을 짧은 글로 엮은 것인데, 하루에 한 편씩 읽어도 좋을 만큼 호흡이 짧습니다. 짧은 메시지들 사이사이에 실제 상담 사례가 놓여 있어서, 개념으로만 흐르지 않고 사람 냄새가 배어 있는 구성이었습니다.


처음 읽으면서 걸린 건 '나를 잃지 마세요'라는 대목이었습니다. 남에게 맞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사라진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사회 속에서 친해지기 위해,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온갖 '척'을 하며 살아간다는 지적이 뜨끔했어요. 그러면서 책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정말 신경 쓰고 가꾸어야 할 사람은 거울 속에 보이는 나, 내가 바라보는 나입니다." 관계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있어도 나의 모든 것을 양보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이 들수록 자꾸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게 되는 사람에게는 꽤 서늘하게 들립니다.


오래 남은 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감정은 자산입니다'라는 글에서는 감정을 아무 데나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소모품이 아니라 쓰면 줄고 채우면 회복되는, 관리해야 할 자산이라는 비유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내 기분이 쉽게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대목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값어치도 없는 상황에 흘려보냈나 되짚게 됐습니다. 비슷한 결로 '불안은 커진다'는 글도 있었어요. 지금의 불안이 상황 자체가 아니라 반복된 생각이 키운 결과라는 진단인데, 없애라고 다그치는 대신 인정하고 근거를 따져보라고 권합니다. "불안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더군요.


책의 무게중심은 아무래도 중간중간 놓인 상담 사례에 있습니다. 그중 '노력해도 안 풀리는 삶이라고 느껴질 때'는 읽다가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참고 사는 게 익숙했던 사람의 이야기예요.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집안 분위기를 견디며, 하고 싶지 않은 길도 해야 하는 것이라 믿고 걸어온 사람. 전공도 자격증도 지원서 백 장도 다 버텨냈는데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이 정도 했으면 좀 풀려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물음에 다다릅니다. 저자가 그에게 던진 질문이 정곡을 찌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버티는 방식 아니었느냐고, 그 삶에서 내가 원해서 선택한 건 얼마나 있었느냐고요.


사례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삶이 안 풀리는 게 아니라 나를 지우는 방식으로 살아왔기 때문일 수 있다고. 노력은 충분했고,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방식이었다고. 그리고 지금 지쳐 있다면 그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제대로 버텨 왔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사례 끝에 붙은 한 줄은 "버티는 삶에서, 선택하는 삶으로."였어요. 오래 참는 것을 미덕처럼 여겨온 세대에게, 이 짧은 문장이 던지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겁기만 한 건 아닙니다. 실천의 문턱을 낮춰주는 대목들이 곳곳에 있어요. '5분이라도'에서는 멈춰 있는 이유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거창한 노력 대신 하루 십 분, 책 한 페이지, 전화 한 통이면 된다고요. 게으름을 하기 싫은 상태가 아니라 못하는 상태로 바꿔 부르는 관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에서는 고집과 끈기를 갈라놓으면서, 막힌 순간에 필요한 건 포기가 아니라 경로를 다시 찾는 일이라고 다독입니다. 실수조차 앞길을 위한 데이터라고 부르니, 어깨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나에게 돌아오는' 이야기가 짙어집니다. '자기위로'에서는 세상 누구보다 내가 먼저 나의 편이 되라고 하면서, "그래, 내가 다 알고 있어,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라고 권합니다. '모든 내가 나다'에서는 상처받은 나도, 회복 중인 나도, 아직 헤매는 나도 모두 나이며 계속 업데이트되는 존재라고 말하고요. 완성된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말고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라는 이 문장은, 자꾸 스스로에게 인색해지는 사람에게 조용히 어깨를 내어줍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습니다. 짧은 글을 여러 편 모은 형식이다 보니 표현이나 논리가 겹치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띕니다. 감정을 관리하라거나 자신을 먼저 지키라는 이야기가 결을 달리해 반복되는데, 한 번에 몰아 읽으면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다만 애초에 하루에 한 편씩 천천히 읽으라고 만든 책이니, 그런 방식으로 곁에 두면 오히려 반복이 스며드는 힘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누구에게 어울릴까 생각하다 보면, 결국 남의 기준에 맞춰 살다가 정작 자기 속내가 어디 있는지 흐릿해진 사람이 먼저 떠오릅니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지쳤는지 스스로도 설명이 안 되는 시기라면, 문장 하나하나가 말을 걸어올 거예요. 거창한 해법보다 하루의 끝에 짧게 자기를 점검하는 도구가 필요한 이에게도 잘 맞습니다. 정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건네는 책이라, 읽는 사람이 스스로 답을 채워가는 여백이 넓거든요.


이 책은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났습니다. 서평이라는 이름으로 읽다 보면 마음보다 손이 먼저 움직여 요약부터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안내서는 그런 태도를 잠깐 내려놓게 만들었어요. 페이지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하니, 밑줄을 긋다가도 결국 저 자신을 향해 질문을 되던지게 되더군요.


한여름 열기가 한창인 요즘, 밖에 나서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계절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짧은 글 한 편 읽고 잠깐 눈을 감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듯해요. 무언가를 더 해내라고 몰아붙이지 않고 지금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해주는 책이라, 여름밤에 한 편씩 넘기기 좋았습니다.


정답을 쥐여주는 대신 스스로에게 묻는 법을 알려주는, 하루 끝의 나지막한 안부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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