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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행복은 나의 기쁨이야
정한경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7월
평점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직접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을 손에 든 순간 먼저 든 생각은, 참 다루기 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판형에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아무 데나 펼쳐 몇 편 읽고 다시 덮어 두기에 좋았어요. 잘 익은 살구를 화면 가득 담은 표지도 한몫했습니다. 주황과 초록이 부딪치는데도 이상하게 날카롭지 않고, 오히려 눈이 편안해지는 색이더라고요. 표지에 적힌 "당신이 아주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늘 그것 하나였습니다"라는 문장부터가 이미 책 전체의 온도를 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제목이 조금 낯간지러웠습니다. 너의 행복이 나의 기쁨이라니, 어딘가 광고 문구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정한경 작가가 말하는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옆 사람이 웃을 때 나도 모르게 따라 데워지는 그런 종류의 것이더군요. 누군가를 아낀다는 게 결국 그 사람이 무엇으로 행복한지를 배워 가는 일이라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책이 저를 붙든 지점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잔잔한 사랑'이라는 글에서 작가는, 예전엔 사랑을 성난 바다의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이라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끝없이 확인하고,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애태우던 시절이 있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고 씁니다. 어떤 사랑은 안달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상대가 언제든 다가와 쉴 수 있도록 굳건히 머무는 것이라고요. 젊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을 문장인데, 어느덧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은'도 오래 곱씹게 되는 글이었어요.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작가는 시각을 살짝 비틀어 냅니다. 흔들리는 게 나약함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안간힘이라고요. "모든 흔들림에는 돌아오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라는 문장 앞에서,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며 지낸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자신을 탓하느라 정작 돌아오려 애쓰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지적이, 조용히 등을 받쳐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글은 '보통의 사람'이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에 아픈 일 앞에서도 무너지면 안 됐고, 우울이 찾아와도 결국 웃어 보여야 했고, 속이 어지러운 날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걸어야 했다는 대목을 읽는데, 이건 제 이야기이기도 하겠구나 싶었어요.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각자의 삶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과정을 통과해 온 이들이며,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사람이기에 그 무게를 홀로 짊어져 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맺습니다. 그렇게 견뎌 온 우리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보통의 사람"이라고요. 대단한 위로의 말이 아닌데도, 이 한 문장이 이상하게 든든했습니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처음이셨다'는 조금 다른 결로 마음을 건드립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어른을 찾는다고, 작가에게 그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해요. 뭐든 답을 알고 있던 척척박사 같던 분이 어느 날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지 앞에서 말없이 서 계시던 장면을 목격하고, 작가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어머니도 다 아셨던 게 아니라 애쓰고 계셨던 거라고, 자식에게 힘이 되고 싶어 독수리 타법으로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셨던 거라고요. 부모라는 자리를 지나 보니, 그분들 역시 처음이라 서툴렀을 뿐인 한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짐작하게 됩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찾자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완주하듯 읽으면 오히려 매력이 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짧고 단정한 글들이 이어지다 보니 몰아 읽으면 비슷하게 흘러가는 인상을 받기 쉽거든요. 지친 저녁에 한두 편씩 아껴 읽을 때, 문장 하나하나가 비로소 제 무게를 갖고 다가옵니다.

이 책은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어깨에 얹힌 것이 부쩍 많아진 분들에게 특히 가닿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잃고 그 빈자리를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남들처럼 대단하게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자주 주눅 드는 사람에게도 좋겠고요. 이런저런 책을 곁에 두고 살아왔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마음을 데워 주는 책은 드물었습니다. 화려한 문장으로 설득하는 대신, 곁에 앉아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는 쪽에 가까운 책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한여름의 열기와 장마가 한창인 요즘, 이 책은 계절과 조금 어긋난 온도를 품고 있습니다. 겨울과 담요, 월동 준비 같은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묘하게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멀게 느껴지는 그 계절을 미리 데워 두는 손길 같아서요. 무더위에 마음까지 눅눅해지는 날, 이 작은 한 권이 잠깐의 그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무게를 견뎌 온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다정한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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