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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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를 펼치기 전, 표지에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소금 자루 앞에서 이마를 훔치는 사람, 검은 정장 차림의 석유 캐릭터, 다이아몬드를 든 세공사, 고조선 모피 시장의 흥정 장면까지. 경제사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함과 달리, 표지는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그림책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아 든 순간, 어렵게 배워 흘려보냈던 세계사를 다른 문으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자 홍익희 님은 코트라에서 32년간 무역 현장을 누빈 분이에요. 책을 읽다 보면 그 이력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물건이 어디서 나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길목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밀려나는지를 몸으로 아는 사람의 시선이라고 할까요.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 지금은 마트나 주유소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이 다섯 가지가 실은 문명의 방향을 튼 손잡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붙들려 읽은 건 모피 편이었습니다. 러시아와 북미의 사냥꾼 이야기로 시작하나 싶더니, 고조선이 동북아 모피 산업의 중심지였다는 대목에서 자세를 고쳐 앉게 됐어요. 비결이 흥미롭습니다. 백두산 자락의 험준한 산악지대 덕분에 좋은 짐승이 많았고, 우수한 말과 활로 큰 짐승까지 잡아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진짜 무기는 흑요석이었다고 해요. 잡은 짐승의 체온이 식기 전에 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긁어내야 좋은 모피가 나오는데, 그 섬세한 작업에 흑요석 날만 한 도구가 없었다는 겁니다.


저자는 흑요석을 두고 "신이 축복한 나라에 주는 선물"이라고 적었습니다. 화산이 분화하고, 용암 성분이 규소 위주여야 하고, 빠르게 식어 결정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넘겨야 생기는 돌이라서요. 그 산지가 백두산 남쪽에 몰려 있었다니,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만 떠올리던 자리에 '담비길'이라는 또 하나의 길과 그 길의 중심에 선 고조선을 나란히 세워 주는 셈입니다. 담비가 이제는 한국에서 귀한 동물이 되어 버렸다는 한 줄에서는 마음 한켠이 서늘해졌어요. 저자가 "모피는 고조선을 대표하는 최초의 브랜드였는지도 모른다"고 쓴 대목은, 익숙한 역사책이 잘 말해 주지 않던 자부심 하나를 슬며시 얹어 주는 듯했습니다.


보석 편으로 넘어가면 결이 확 달라집니다.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고받는 일을 우리는 오래된 전통처럼 여기잖아요. 그런데 그게 실은 한 기업이 촘촘하게 설계한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되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우연히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드비어 형제, 그 농장을 사들여 채굴권을 금융으로 묶어 버린 세실 로즈, 그리고 대공황을 기회로 삼아 전 세계 원석을 헐값에 쓸어 담은 오펜하이머 가문까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그 유명한 광고 문구가 사랑과 성공의 상징을 만들어 낸 마케팅의 결과였다는 대목에서, 광채 뒤에 드리운 긴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세실 로즈가 남긴 유언집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당신이 내란을 피하려 한다면 당신은 제국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반짝이는 돌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남의 땅을 정복해 자기 이름을 붙이던 시대의 논리가, 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그렇게 120년 넘게 시장의 8할, 9할을 쥐고 있던 드비어스 제국이 2012년 가문의 지분 매각과 함께 저물었다는 결말도 뒷맛이 깊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독점도 결국 무너지더라는 이야기가, 요즘 실험실에서 만든 다이아몬드가 시장을 흔드는 흐름과 겹쳐 읽히더군요.


가장 뜨겁고, 동시에 가장 조심스럽게 읽어야 할 대목은 석유 편이었어요. 텍사스 유전이 터지며 거대 기업들이 태어나고, 세계 3대 석유회사가 스코틀랜드의 한 저택에 은밀히 모여 시장을 나눠 갖는 카르텔을 만드는 장면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여기에 맞선 이탈리아의 엔리코 마테이가 소련과 손을 잡았다가 원인 불명의 비행기 폭발로 세상을 떠나는 대목, 부시 가문과 석유 자본의 밀착,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이면에 놓인 송유관과 달러 패권 이야기까지 이어집니다. 저자는 이라크가 석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꾼 일을 전쟁의 숨은 도화선으로 지목해요.


다만 이 부분은 통념을 뒤엎는 저자 나름의 발칙한 해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학계에서는 다른 견해도 많은 영역이니, 저자가 이렇게 바라본다는 틀로 받아들이는 편이 균형 잡히겠지요. 그럼에도 요즘 유가 뉴스나 중동 소식을 볼 때마다 왜 저런 일이 벌어지나 답답했던 분이라면, 세상의 뒷면을 한 겹 들춰 보는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독서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책을 다 덮고 나니, 이 다섯 가지 물질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더군요. 처음엔 발견과 설렘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곧 독점과 담합으로 굳어지고, 끝내 전쟁과 패권이라는 어둠으로 번지는 흐름이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문명을 밀어 올리고 또 어떻게 그늘지게 만드는지, 물건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 양면을 담담히 보여 주는 책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 왔지만, 익숙한 물건을 통해 세상 읽는 눈을 이렇게 넓혀 준 경우는 흔치 않았어요.


분량도 부담이 없어서, 한 권으로 세계사 정주행을 시작하기에 알맞습니다. 역사와 오래 멀어져 있던 어른이 다시 첫걸음을 떼기에도, 국제 뉴스의 배경이 늘 궁금했던 직장인에게도 잘 맞아요. 교과서 밖에서 살아 있는 세계사를 만나고 싶은 학생에게는 인문교양의 시작으로 삼기 좋은 안내서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곱씹게 되는 책이에요.


한여름의 열기가 한창인 요즘,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이 한 권을 펼쳐 보시길 권합니다. 소금에서 석유까지 흘러온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매일 스쳐 지나던 물건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는 오후를 만나게 될 거예요.


소금부터 석유까지, 손에 익은 물건 다섯 가지로 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읽어 내는 친절한 세계경제사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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