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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알고 싶은 아이디어 발상법 - 세계 최고 권위 칸 광고제 우승자의 크리에이티브 비법
나카가와 료 지음, 한세희 옮김 / 알토북스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뛰어난 결과물 앞에서 "왜 나는 저런 생각이 안 떠오를까" 하고 스스로를 탓해 봤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라면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조금 놀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치도록 알고 싶은 아이디어 발상법>은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나무라지 않아요. 오히려 저자 본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먼저 손을 들어 버립니다.
표지부터 성격이 분명합니다. 형광 노랑과 핑크, 검정이 부딪히듯 놓인 팝아트풍 디자인에, 스프링과 전구 회로를 닮은 도형들이 배경에 흩어져 있어요. 광고 포스터를 그대로 책 표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인데, 이 요란함이 실은 '발상의 회로'라는 이 책의 핵심을 미리 보여주는 장치라는 걸 다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판형도 부담스럽지 않고 두께도 얇아서, 며칠에 걸쳐 조금씩 넘겨 보기에 알맞은 한 권이었어요.

저자 나카가와 료는 덴쓰 카피라이터를 거쳐 구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지낸 사람입니다. 이력만 보면 '역시 타고난 재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신입 시절 크리에이티브 부서에 배치되지도 못했고, 카피라이터 명함을 받기까지 입사 8년이 걸렸다고 담담하게 털어놓습니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15년 가까이 매달렸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성공담을 자랑하려는 책이 아니라 한참을 헤맨 사람이 건네는 기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이 붙들고 있는 첫 번째 오해는 '번쩍임'입니다. 만화 속 전구처럼 아이디어가 어느 순간 켜질 거라 믿고 기다리는 태도 말이죠. 저자는 이렇게 못을 박습니다. "아이디어는 찰나의 번뜩임이 아니라 숱한 고민 끝에 탄생한다." 예산과 시간, 사람이라는 제약을 하나씩 넘어서려 애쓸 때에야 비로소 불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재능이 아니라 성실함이 출발점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김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에게는 오히려 숨통이 트였습니다. 아이디어가 노력의 문제라면, 지금 안 되는 것도 아직 덜 붙들어서일 뿐이니까요.

여기서 저자가 드는 사례가 재미있어요. 혼다의 슈퍼 커브는 자전거 뒤에 무거운 짐을 싣고 힘겹게 달리던 아내를 본 창업자의 안쓰러움에서 나왔고, 닌텐도 Wii는 게임기가 거실 텔레비전을 독차지해 가족을 흩어 놓는다는 불편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꾼 물건들이 거창한 영감이 아니라 눈앞의 곤란에서 출발했다는 거죠. "나의 고민은 누군가의 고민이다"라는 문장이 이 대목의 열쇠인데, 직장 생활을 길게 해 온 사람일수록 이 말이 실감 날 겁니다. 내가 매일 부딪히는 불편이 사실은 여러 사람이 함께 앓는 문제일 때가 많으니까요.
책의 한가운데를 지나면 결이 조금 달라집니다. 아이디어를 못 내는 진짜 이유가 센스도, 발표 실력도, 돈도 아니라 '부끄러움'이라고 짚는 대목인데요. 이상은 높은데 현실의 내가 거기 못 미친다고 느낄 때, 그 격차가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겁니다. 마흔을 훌쩍 넘겨 일하다 보면 이 감정을 자주 마주하게 돼요. 어설픈 걸 내놓느니 아예 입을 다무는 쪽이 편해지죠. 그런데 저자는 이걸 뒤집습니다. 지금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건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는 증거이고, 그로 인해 기회가 생겼다는 증거라는 거예요. 없애야 할 결함이 아니라 방향을 알려주는 신호로 다시 읽자는 제안이었어요. 스티브 잡스의 "Stay foolish"를 '남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짓을 해라'로 풀어내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했습니다.

두고두고 곱씹게 된 건 책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저자는 원하던 부서에 못 가고 버틴 7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게 "나는 기획을 잘한다"는 자신감이 하루하루 깎여 나가는 일이었다고 말해요. 주변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결국 나 자신도 나를 못 믿게 된다는 문장은, 성과로 매일 평가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한동안 붙들게 될 겁니다. 그가 그 시간을 견딘 방법은 특별하지 않았어요. 매년 하나씩 스스로 프로젝트를 벌이고 공모전에 도전한 것. 그러면서 저자는 발상력이란 애초에 남이 점수 매길 수 있는 게 아니니, 스스로를 먼저 칭찬하라고 권합니다. 아이디어 전구의 가치는 크기가 아니라 세상에 빛을 낼 때 정해진다는 말과 함께요.
물론 아쉬운 구석이 없지는 않습니다. 사례가 광고와 기획 현장에 몰려 있어서, 그 세계와 거리가 먼 독자라면 몇몇 대목은 다소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전구 비유가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되풀이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핵심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같은 그림이 여러 번 돌아오다 보니 뒤로 갈수록 익숙함이 조금 앞서기도 했어요. 다만 각 장이 짧고 요점이 또렷하게 정리돼 있어,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어도 손해 보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이 책은 결국 재능에 관한 책이 아니라 '계속하는 힘'에 관한 책이더군요. 그래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고 싶은 사람보다, 애를 썼는데 성과가 따라오지 않아 자신을 의심하게 된 사람에게 더 깊이 가닿을 것 같습니다. 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꾸 뒷걸음질 치게 되는 분이라면, 부끄러움을 다루는 장만 읽어도 등이 한 번쯤 가볍게 떠밀리는 경험을 하실 거예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아 읽는 동안, 창의성이라는 말이 저처럼 특별할 것 없는 사람에게도 열려 있다는 사실이 은근한 격려처럼 남았습니다.
한여름의 열기가 한창인 요즘, 무언가를 새로 벌이기엔 지친다 싶은 계절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크게 시작하라고 재촉하지 않아요. 눈앞의 작은 불편 하나를 붙들고 "어떻게 바꿔 볼까" 물어보는 것, 딱 그만큼이면 된다고 조용히 일러 줍니다. 더위에 축 처진 마음에는 오히려 그 욕심 없는 태도가 반가웠어요.
재능이 아니라 계속하는 힘이 아이디어를 만든다고, 오래 헤매 본 사람이 건네는 담백한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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