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의 핵심 ㅣ 메이트북스 슬림북 9
성우식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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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떡볶이 한 컵으로 배우는 경제 55가지, <1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의 핵심> 서평


같은 시간 일하는데 왜 누구는 월급이 더 많을까.


직장 다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푸념인데요, 이걸 청소년 경제책이 한 꼭지로 깔끔하게 풀어놓더라고요. 메이트북스에서 나온 <1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의 핵심> 이야기입니다. 제목은 분명 10대를 부르고 있는데, 막상 펼쳐 보니 40대 후반 아재한테도 건넬 말이 꽤 많은 책 같아요.


10월 하순 목요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한 주가 거의 끝나 가니 몸은 무거운데, 새 책 얘기할 생각을 하면 또 기분이 들뜨네요.


책도 가볍습니다. 보라색 표지에서 교복 입은 두 학생이 만세를 부르고 있고, 메이트북스 슬림북 시리즈라는 이름답게 보통 교양서보다 한결 얇은 편이에요. 슬림북이라길래 은근히 기대했는데 제 뱃살까지 슬림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더군요. 표지 위쪽에는 '교과서 경제개념 55가지, 60분이면 충분하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1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의 핵심>은 목차부터 생김새가 독특해요. (왜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을까?)에서 시작해 (AI 회사는 무료 서비스로 어떻게 돈을 벌까?)까지, 55개 꼭지 제목이 전부 물음표로 끝납니다. 질문 아래에는 '핵심 개념'이라는 표시와 함께 희소성, 기회비용, 노동권 같은 용어가 작게 달려 있고, 꼭지 끝마다 '시험에는 이렇게 나와요!!'라는 정리 상자가 기다리고 있어요. 펼친 면 하나에 개념 하나가 끝나는 구성이라 호흡이 짧고 경쾌하더라고요.


지은이의 말을 보면 저자는 55개 개념을 "이보다 더 쉬울 수 있을까?"라는 기준으로 설명했다고 해요. 쉽게 쓴다고 핵심을 줄이지는 않았다는 말도 덧붙이고요. 수요와 수요량, 공급과 공급량처럼 헷갈리는 개념은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싶었다는 대목에서는, 이분이 학생들이 어디서 넘어지는지 잘 알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자 성우식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주간지에서 오래 취재기자와 칼럼니스트로 일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문장이 짧고 군더더기가 별로 없어요. 한 문장에 한 가지 얘기만 담는 느낌.


다른 꼭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건 역시 (왜 같은 시간 일해도 월급이 다를까?)였어요. 어려운 수술을 하는 의사를 예로 들면서, 꼭 필요한데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으면 월급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배울 수 있고 하려는 사람이 많은 일은 월급이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도 이어지고요. 위험한 일을 하거나 밤에 일하거나 큰 책임을 맡으면 더 받을 수 있고, 같은 일이라도 지역이나 회사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결국 월급은 일한 시간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연봉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막연하게 느끼던 걸 경제학에서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라고 부른다네요. 그 이름을 알고 나니 서운한 마음보다는 이해하는 쪽으로 조금 기우는 거 같기도 합니다. 회사가 그 일을 할 사람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바로 다음 꼭지 (아르바이트할 때 어떤 권리가 있을까?)는 결이 또 달라요. 청소년도 아르바이트를 하면 노동자이고, 나이가 어리다고 임금을 덜 주거나 위험한 일을 마음대로 시켜서는 안 된다고 또박또박 짚어 줍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근로계약서를 확인하라는 얘기가 나오고, 가게 문을 열기 전 준비나 영업이 끝난 뒤 정리도 사용자의 지시로 한 일이면 일한 시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와요. 솔직히 어른들도 흐릿하게만 알고 있는 부분 같더라고요. 폭언이나 성희롱처럼 부당한 대우를 참고 일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근무 날짜와 시간, 문자, 급여 내역을 남겨 두면 나중에 사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조언은 정말 현실적이었어요. 주변에 첫 알바를 앞둔 학생이 있다면 이 꼭지만큼은 펼쳐서 보여 주고 싶습니다.


수요량을 학교 앞 떡볶이로 풀어낸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학교 앞 떡볶이가 한 컵에 4,000원일 때 민지는 일주일에 한 번 사 먹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2,000원으로 내려가자 세 번 사 먹으려 합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정도는 그대로지만 가격이 싸져 사려는 양이 늘었습니다. 이것이 수요량의 증가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사려는 양만 달라졌다는 거죠. 이 설명 하나로 수요와 수요량이 깔끔하게 갈라지더군요. 교과서 그래프로만 봤다면 한참 헤맸을 내용이 떡볶이 한 컵으로 정리됩니다.


환율 설명도 비슷한 방식이에요.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서 1,400원으로 오르면 같은 1달러를 사는 데 원화가 더 필요하니까, 환율 숫자와 원화 가치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뉴스에서 환율이 올랐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잠깐 멈칫했는데, 이제는 조금 덜 버벅일 것 같아요.


<1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의 핵심>의 후반부는 지금 이 시대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AI는 일자리를 어떻게 바꿀까?)에서는 AI가 직업을 통째로 지우는 쪽보다 직업 안의 일부 일을 대신하는 방식으로 노동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영수증을 입력하거나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는 것처럼 규칙이 분명한 일은 자동화되기 쉽고, 돌봄이나 현장작업,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일은 사람이 맡는다고 하고요. AI를 개발하고 점검하는 일, 틀린 답이나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을 살피는 일처럼 새로 생기는 역할도 소개합니다.


"하지만 변화의 이익이 모두에게 똑같이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바로 뒤에 교육과 재훈련이 중요하다는 말이 붙습니다. 10대한테 하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반복 업무를 오래 해 온 우리 세대한테 더 급한 숙제 같기도 하더라고요.


마지막 꼭지 (AI 회사는 무료 서비스로 어떻게 돈을 벌까?)도 흥미로웠습니다. 기본 기능은 무료로 주고, 더 많은 기능이 필요한 사람이나 기업한테 이용료를 받는 구조예요. 처음부터 돈을 내라고 하면 써 보지도 않을 사람이 많으니 일단 경험하게 하고, 그중 일부가 유료 이용자가 된다는 설명입니다. 핵심은 "누가 무료로 쓰고, 누가 어떤 기능에 돈을 내는지"라는데요, 기본 기능만 알뜰하게 쓰는 저는 그 회사 장부에서 '무료로 쓰는 누군가'를 맡고 있었던 셈이네요.


솔직하게 걸렸던 건 하나 있어요. 꼭지마다 호흡이 짧다 보니 이야기가 막 궁금해질 때쯤 '시험에는 이렇게 나와요!!' 상자가 나오고 다음 꼭지로 넘어갑니다. 월급 꼭지 같은 데서는 조금 더 머물러 있고 싶었거든요. 그래도 55개를 한 권에 담으면서 지킨 리듬이라고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 상자를 볼 때마다 중간고사를 앞둔 기분이 되살아나는 건 덤이고요.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어 두기보다 책장에 꽂아 두고 필요할 때 꺼내 보는 게 더 어울리는 거 같아요. 뉴스에 기준금리나 경상수지 같은 말이 나오면 목차에서 질문 하나 찾아 펼치면 금방 감이 잡히니까요. 중학생 자녀가 있다면 한 꼭지씩 같이 읽고 '시험에는 이렇게 나와요!!'로 서로 퀴즈를 내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는 늘 멀게 느껴졌다는 어른이 기초를 다시 다지기에도 부담이 없고요.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단풍이 하나둘 물드는 10월 끝자락,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경제 용어들이 제자리를 찾아 정리된 기분이에요. <1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의 핵심>, 이름은 10대용인데 40대 후반 아재 마음에도 쏙 들어왔습니다. 부쩍 쌀쌀해진 목요일, 다들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고 좋은 책 한 권씩 만나시길 바라요.


떡볶이 한 컵으로 수요량을, 알바 근로계약서로 노동권을 풀어내는 교과서 경제 55가지. 10대용이지만 월급쟁이 아재에게도 쏙 들어오는 얇은 경제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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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라는 우연
브라이언 워싱턴 지음, 최현영 옮김 / 더픽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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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립은 좋은 거죠" 열아홉 시간을 날아간 엄마 이야기 <아름다움이라는 우연> 서평


이 소설의 두 주인공에게는 이름이 없어요.

끝까지 '어머니'와 '아들'로만 불립니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번역하신 분도 혹시 어딘가에 이름이 나오는데 놓친 건 아닐까 싶어 여러 번 되짚어 읽었다고 하더군요. 끝내 나오지 않았대요. 처음엔 조금 어색했는데, 장을 넘길수록 이름이 없어서 오히려 어느 집 이야기로든 읽히는 구석이 생기는 거 같아요.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은 브라이언 워싱턴의 장편소설이고, 최현영 님이 옮겨서 더픽션에서 나왔습니다. 원제는 Palaver예요. 2025 LA타임스 도서상 소설 부문 수상작이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대요. 이 작가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니, 저처럼 이름이 낯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휴스턴에 사는 어머니가 도쿄로 날아가면서 시작돼요. 아들은 도쿄에서 산 지 십 년이 넘었고, 삼 년 전부터는 어머니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침묵이라는 리듬을 그냥 묵인하며 지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도쿄 시간으로 새벽 네 시에 아들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아들은 "모르겠어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어요."라고만 해요. 어머니는 결국 가장 겁나던 질문으로 아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그 길로 비행기표를 알아봅니다.


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와 타이베이를 거쳐 하네다까지 열아홉 시간이 걸린대요.

어머니가 낼 수 있는 휴가는 12일인데, 좀 더 우겼다면 14일도 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문장이 붙어 있어요. 여기서 피식 웃었습니다. 휴가 이틀을 두고 속으로 셈해 보는 그 마음, 회사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알잖아요.


도쿄에 도착한 어머니는 신오쿠보에서 길을 잃어요. 네모반듯한 회색 건물들이 다 똑같아 보이고, 아까 지나친 세븐일레븐을 또 지나칩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요. 그러다 길 건너 작고 푸른 건물에서 노란 'Bistro' 글씨를 발견하는데, 프랑스어도 일본어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그 글씨가 도쿄에서 본 것 중 가장 눈에 익었다고 하더군요. 아름다움과 혼돈이 한 끗 차이라는 문장도 이 근처에 있어요.


한 시간쯤 지나 휘청거리며 나타난 아들은 첫마디부터 퉁명스러워요. "하느님 맙소사"를 달고 사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그렇게 하느님을 찾아대니 누가 보면 네가 크리스천인 줄 알겠다." 하고 받아치는데, 말싸움으로는 어머니도 한 수 위 같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이래요.


"엄마는 길을 잘못 들었어요." "나는 여러 번 방향을 틀었는데 어떤 게 잘못된 길이었을까?"

길을 물은 건데 대답은 인생 얘기처럼 들리는 거 같아요.

아들은 깔끔한 걸 넘어서 결벽에 가까워요. 어머니가 머그잔을 조리대에 올려 두면 바로 치우고, 의자에 걸어 둔 재킷은 세탁기에 넣어 버려요. 신발 신은 채 들어오면 어머니가 슬리퍼를 신을 때까지 고개를 저으며 지켜보고요. 밤마다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그 작은 확인이 다음 날 아침을 무사히 맞게 해 주기라도 할 것처럼요. 어머니는 땅 밑 지각판은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움직이니 그건 환상일 뿐이라고 말해 주고 싶어 하는데, 저는 아들 쪽 마음도 조금 알 것 같았어요. 퇴근 전에 책상을 정리해 둬야 내일이 덜 무서운 기분, 그거 비슷한 거 아닐까요.


그 침대를 두고 어머니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세 줄로 정리해 둔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 혐오. / 그다음, 수용. / 그리고 질문."

그다음 질문은 이거예요. "내가 언제쯤 그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니?" 아들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답하고, 어머니는 그 순간 아들이 가식을 떨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설명은 짧은데 어머니 마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보여서 좋았어요. 이런 문장이 툭툭 나오는 게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의 재미인 거 같습니다.


어머니는 시차 적응도 금방 해요. 아침저녁으로 동네를 한 바퀴씩 돌고는 신오쿠보 끝에서 신주쿠 끝까지 다 파악했다고 큰소리를 치죠. 아들이 그냥 기웃거리는 거라고 하자 "그럼 같이 여행을 가서 누가 지치는지 한번 보자."라고 받아칩니다. 산책길 풍경 중에는 오쿠보역 옆 육교 밑 터널이 기억에 남아요. 삿포로 캔맥주를 마시며 담배 피우는 남자들 사이로 태국어, 타갈로그어, 이그보어가 들려오는데, 어머니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그 사람들은 손을 흔들어 줘요. 번쩍거리는 관광객들 세계로 다시 나가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머니에게는 거기가 가장 편안한 장소였대요.


낯선 말들 한가운데서 오히려 숨이 놓이는 기분이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비스트로 셰프인 벤과 저녁을 먹는 장면이에요. 간판도 없는 식당 앞에서 어머니가 비밀 술집이냐고 놀리니까, 벤이 문을 세 번 두드리고 암호를 말하라고 받아줘요. 그러다 아들 이야기가 나오고, 어머니가 내 잘못 같다고 털어놓자 벤이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은 나쁜 일을 의미해요. 독립은 좋은 거죠."

"당신의 역할은 그 친구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곳이 되는 거예요."라는 말도 이어져요. 마흔 후반이 되니 자식 노릇과 부모 노릇이 한꺼번에 걸리는 나이라 그런지, 착륙할 곳이라는 말이 편하게 들어오더라고요. 무언가를 해 주는 쪽보다는 그 자리에 계속 있어 주는 쪽에 더 가까운 말 같아서요.


일본, 프랑스, 페루 요리를 섞은 아홉 가지 코스도 줄줄이 나와요. 고추냉이를 살짝 바른 구운 가지, 매실주 잼을 올린 사워도 빵, 일본주에 넣고 끓인 송이버섯까지 메뉴만 읽어도 배가 고파집니다. 그리고 이 저녁 자리에서 책 제목이 등장해요.


"그 시는 아니에요. 이 하늘은 아무도 이끌고 가지 않아요. 종소리를 들을 사람도 아무도 없어요. 이 세상과 함께 있는 동시에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오래전에 그 시를 읽었어요. 자메이카에 있을 때 교과서에서요." "어떻게 자메이카 교과서에 바쇼의 시가 실릴 수 있죠?" "나도 몰라요. 아마도 우연이었겠죠. 아름다움이라는 우연. 하지만 난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인지, 바쇼가 묘사한 이곳의 석양이 정말 그런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아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벤의 말에 어머니는 마음속에 질문이 하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해요. 이 장면에서 어머니가 누구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웨이터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윙크를 날려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대목에서는 그냥 웃었습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는 오빠 스테판이 자주 나와요. 자메이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 친구 셰릴과 셰릴 곁에 나타난 얼, 그리고 얼이 어깨에 팔을 걸치자 말을 멈추던 스테판이 있어요. 스테판이 놀리듯 혀를 쏙 내밀면 어머니도 똑같이 혀를 내밀어 주던 그 순간을, 어머니는 오빠가 죽은 뒤 마음속으로 되돌아보곤 했대요.


"그들의 세상은 작았다. 하지만, 스테판은 그걸로 만족했다."

그 세상이 오빠에게 충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자신에게는 충분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이어지는데, 쉬운 답을 내놓지는 않는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다른 회상 속 스테판이 "땡처리 세일입니다요. 반품 불가. 패키지 상품입니다." 하고 너스레를 떨 때, 웃기면서도 마음이 쓰였어요. 아들의 휘청이는 걸음걸이에서 어머니가 스테판을 언뜻 보는 초반 장면도 그래서 다시 떠오르고요.


솔직히 처음에 좀 걸렸던 건 시간이 오가는 방식이었어요. 도쿄의 저녁 식탁과 어머니의 지난 시절이 별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붙어 있어서, 몇 번은 지금이 언제인지 잠깐 헤맸습니다. 신오쿠보의 어머니처럼요. 그래도 금방 익숙해졌고, 과거의 얼에게 "셰릴 곁에 그냥 있어. 변함없이."라고 말해 주던 어머니가 현재의 벤에게서 착륙할 곳 이야기를 듣는 걸 보니 두 시간이 서로 비춰 주는 느낌도 들었어요.


책은 보통 소설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어머니는 도쿄까지 열아홉 시간을 날아갔다는데, 이 책도 손목한테는 나름 장거리 비행입니다.

한국어판만의 즐거움도 있어요. 맨 앞 '한국 독자들에게'에서 작가는 돌기민 <보행 연습>, 한강 <희랍어 시간>,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손원평 <아몬드>를 꼽으며 한국 작가들에게서 받은 영향을 털어놓아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자기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 듯한 몇 안 되는 책이라고 하더군요. 글 끝에는 언젠가 신주쿠 니초메에 있는 앨런의 작은 바에 와서 빈자리에 편히 앉아 달라는 인사가 붙어 있고요. 맨 뒤 옮긴이의 말에는 '손끝에서 시작되는 사소한 친절'이나 일기일회 같은 말로 이 소설을 풀어 주는 대목이 있어서, 앞뒤로 안내를 받으며 읽는 기분이었어요. 원색 붓질로 두 얼굴을 그린 표지까지 생각하면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은 책장에 꽂아 둘 맛이 나는 책입니다.


전화 한 통을 자꾸 미루게 되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면, 읽는 내내 그 얼굴이 겹쳐 보일 거예요.


10월도 끝자락이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소설 속 도쿄의 건조한 겨울바람이 남의 일 같지 않은 목요일입니다. 요즘 가을 타냐고 물어보시면, 저는 책 탄다고 대답하고 있어요. <아름다움이라는 우연>을 덮고 나니 소식 뜸했던 사람한테 안부 문자 하나 보내고 싶어지네요. 따뜻한 책 한 권 만나서 좋았습니다.


십여 년의 침묵을 건너온 이름 없는 어머니와 아들이 도쿄의 작은 방에서 서로에게 착륙할 자리를 더듬어 찾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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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 - 스토리텔러 박정호 교수의 경제 흐름 읽기 특강 ㅣ 지식 벽돌
박정호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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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아메리카노가 미국에서 안 통하는 이유, 콩 한 알에 담긴 세계사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


미국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하네요. 거기선 블랙커피라고 해야 통한답니다. 우리가 카페 카운터 앞에서 제일 자주 부르는 커피 이름이 정작 미국에서 태어난 말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이 한 대목만 봐도 이 책이 경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 가는지 감이 오는 거 같아요.


박정호 교수의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은 반도체, 휴대폰, 리튬, 철, 금, 구리, 석유, 자동차, 쌀, 콩, 밀, 커피까지 열두 가지 사물을 하나씩 붙잡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따라가는 책입니다. 저자는 명지대학교 테크노아트대학원 교수이고, MBC (박정호의 손에 잡히는 경제 플러스)와 유튜브 (박정호 교수의 여의도멘션)으로 경제 이야기를 꾸준히 전해 온 분이에요. 그래서인지 문장이 강의실보다는 라디오에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여러분, 이거 아시나요?" 하고 말을 거는 투라 딱딱해질 틈이 없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경제 책은 제목만 보고 슬쩍 내려놨을 거예요. 요즘은 서평단 덕에 새 책 오는 날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돼서 그런지 샛노란 표지부터 반갑더군요. 돋보기 하나를 가운데 두고 반도체 칩, 콩깍지, 금괴, 커피콩, 자동차 아이콘이 빙 둘러서 있는데, 10월 하순 은행잎이랑 색이 꼭 닮았습니다.


두께는 보통 소설책 정도라 손에 쥐어도 부담이 없어요.

머리말 첫 문장이 "경제는 너무 중요한데, 이상하게 공부는 자꾸 미루게 된다."예요. 읽자마자 뜨끔했습니다. 금리 뉴스, 환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데, 마흔 줄 후반이 되도록 그 뒷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잘 몰라서 무서운 마음이 "그냥 나중에 하자"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말이 딱 제 얘기 같았어요.

휴대폰 장은 제 또래라면 웃으면서 읽을 대목이 많을 거 같아요. 피처폰 시절 매장에 가면 삼성 것도, LG 것도, 외국 회사 것도 디자인이 제각각이라 고르는 데 한참 걸렸잖아요. 저자는 그걸 두고 "누구에게나 결정 장애를 유발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표현에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지금은 갤럭시 아니면 애플이니 세상 참 단순해졌죠.


그런데 그 다양한 디자인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웃해지다가 이내 끄덕여지더라고요. 저자가 피처폰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던 학교 선배에게 회사를 키워 보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답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피처폰으로는 절대 돈을 벌 수가 없어." 제조사가 몇 달마다 버튼 개수와 화면 크기가 다른 새 기종을 내놓으니, 개발자는 그때마다 프로그램을 다시 고쳐서 납품해야 했다는 거예요.


회사 다니는 분이라면 양식 하나 바뀔 때마다 서류를 전부 다시 손봐야 하는 그 피곤함, 다들 아실 겁니다.

애플은 앱을 어떻게 올리고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정책을 표준화해서 공개했다고 해요. 그 덕에 중학생도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시장이 열렸고요. 그 대가로 우리가 내준 게 디자인의 다양성이라는 설명이 재밌었습니다. 버튼 하나만 늘어도 전 세계 개발자들이 만들어 둔 걸 다 고쳐야 하니, 이제 개성은 색깔이랑 케이스로 낼 수밖에 없다는 거죠. 폰 케이스 고르는 데 그렇게들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같은 장 뒤쪽에는 스마트 글라스 얘기가 이어지는데요. 해외 출장에서 낯선 간판 위에 번역 자막이 겹쳐 보이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대목은 직장인한테 꽤 솔깃하게 들립니다. 애플 관계자가 했다는 말도 실려 있어요. "우리 애플은 전 세계 사람들이 손에 아이폰을 들고 다니지 않을 세상도 준비 중이다." 2013년에 나온 구글 글라스는 오래 쓰고 있으면 귀 옆이 뜨끈뜨끈해졌다는데, 10여 년 사이 그런 단점들은 거의 보완됐다고 하네요.


손에서 폰이 사라지는 세상이라.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에서 이 책만의 맛이 제일 진하게 나는 곳은 콩 이야기인 거 같아요.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라는 건 어렴풋이 들어 봤는데,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이 두만강이라니요. 豆滿江, 콩이 가득 찬 강이라는 뜻이랍니다. 외국 가서 콩나물 먹는 거 본 적 있냐고 저자가 묻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없더라고요. 콩을 나물로 키워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더니, 이 책은 콩 한 알로 세계사를 통째로 나눠 주는 기분이었어요.


러일전쟁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채소를 못 먹은 러시아 병사들이 비타민 C가 부족해 더는 싸우지 못하고 투항했는데, 정작 그 군 기지 식량 창고에는 콩이 가득했다고 해요. 콩나물로 키워 먹는 법만 알았어도 투항하는 일을 줄일 수 있었을 거라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대목에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크구나 싶었습니다.

콩 잉크 얘기도 반가웠어요. 예전엔 신문을 넘기다 보면 손가락이 까매지곤 했잖아요. 오일쇼크로 석유값이 뛰자 미국 신문인협회가 1987년에 콩 잉크를 내놓았고, 지금은 미국 일간지의 90~95%가 이걸 쓴다고 합니다. 손에 묻지도 않고 냄새도 좋다니 반갑더군요. 루돌프 디젤이 1900년 파리 자동차 박람회에 선보인 첫 디젤 엔진 자동차가 땅콩기름을 썼다는 것도 이 장에서 처음 알았어요.


그러다 숫자 하나에서 마음이 걸렸습니다.

1975년만 해도 98%였던 우리 식용 콩 자급률이, 지금은 세계 10대 콩 수입국이 될 만큼 떨어졌다고 해요. 1929년 미국 농무성이 보낸 식물 탐험 원정대가 모은 콩 종자의 거의 85%가 조선 땅 근처에서 나왔고, 보고서에는 "조선에서 모은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적혀 있었다는데요. 미국은 '콩의 제국'이 됐고, 원산지였던 우리는 사다 먹는 쪽이 됐습니다. 미국 곡물 회사들이 콩을 두고 "땅에서 자라는 금"이라고 부른다는 걸 보니 마음이 좀 복잡해지더라고요.

커피 장 앞부분은 꼭 역사 드라마 같았어요. 1767년 영국이 타운센드법으로 종이, 유리, 차에 관세를 붙이고, 미국인들은 불매 운동으로 맞서고, 영국은 차 관세만 남기고, 미국인들은 네덜란드 쪽에서 차를 밀수하고. 물고 물리던 싸움은 결국 1773년 보스턴 차 사건까지 가는데, 그 뒤로 미국 아침 식탁에서 차가 밀려난 자리에 커피가 들어왔다는 흐름이 술술 읽힙니다. 관세 하나가 한 나라의 아침 음료를 바꿔 놨다는 게 요즘 국제면 기사랑 괜히 겹쳐 보였어요.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유래도 여기서 나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들이 본토에서 마시던 대로 커피를 연하게 마시고 싶어서 "에스프레소에 물을 좀 타 주세요!"라고 주문했대요. 그러자 이탈리아 커피점에서는 "밖에 미국인이 왔어"라는 뜻으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는 거죠. 그 커피 문화가 거꾸로 유럽에 퍼져서 지금은 유럽 사람들도 커피를 즐긴다니, 사물의 이력이라는 게 참 돌고 도는 모양이에요.

다른 대목보다 한 줄씩 천천히 짚어 가며 읽은 건 이 장 끝의 불공정 무역 이야기였습니다. 농지에서 파운드당 2센트에서 10센트에 팔리는 커피가 우리 손에 올 때는 7달러까지 오른다고 해요. 생두 1파운드면 커피 45잔쯤 나오고, 한 잔에 4달러라 치면 180달러어치가 되는데, 그중 농부가 가져가는 몫은 0.056%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으로서는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숫자였어요. 저자는 커피 한 잔이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은 결실이 되지 않게 하자고 말하면서도, 공정 무역에도 생각지 못한 그늘이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쉬운 답을 내놓지는 않는 거 같더라고요.


다른 장들도 이런 식으로 흘러가요. 금의 52%가 장식품으로 쓰이고 18%가 골드바 같은 투자용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외교 협상에서 불리할 때 우리 반도체가 협상 지렛대 노릇을 한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나같이 술자리에서 꺼내면 "오, 그래?" 소리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라,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을 덮고 나면 누구한테든 한마디 하고 싶어지더군요.


머리말에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게 썼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문장이 쉬워서 중고등학생 있는 집이라면 식탁 위에 두고 같이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진도 장마다 넉넉하게 들어 있어서 눈이 덜 피곤합니다. 반도체 수출 규제나 곡물값 뉴스가 나올 때마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이라 책장 손 닿는 칸에 꽂아 둘 생각이에요.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은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경제 공부를 미뤄 온 사람한테 이만한 첫걸음도 드물겠다 싶었습니다.


10월도 막바지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목요일쯤 되면 한 주 피로가 슬슬 쌓이는데, 오늘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원두가 어떤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떠올려 보게 되네요. 아메리카노 말고 '코리아노'로 주세요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장님이 콩나물국을 내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책 만나서 머릿속이 한결 든든해진 가을이에요.


콩나물 한 접시와 아메리카노 한 잔 속에도 세계 경제가 들어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경제 공부를 미뤄 온 어른에게 딱 맞는 첫 경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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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 ㅣ 메이트북스 청소년 2
김진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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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출근길 커피값이 왜 중학생 필독서에?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 서평


출근길 역 앞 커피는 왜 유난히 비쌀까요.

직장인이라면 계산대 앞에서 한 번쯤 속으로 투덜거려 봤을 질문이죠. 그런데 이걸 중학생 독서 가이드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4부의 (경제학 콘서트) 꼭지가 바로 이 문장으로 시작하거든요. 아이들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첫 질문부터 제 얘기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더라고요.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은 제목 그대로인 책입니다. 전국 중학교 추천도서 목록을 조사해서 학교에서 많이 권해 온 100권을 골라 한 권에 정리했어요. 한국 문학이 두 부로 나뉘어 있고, 거기에 세계 문학, 인문·사회, 과학·환경·AI가 더해져 모두 다섯 갈래입니다. 메이트북스 청소년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에요. 진한 분홍 바탕에 색색의 책이 탑처럼 쌓인 표지라 책상에 올려두면 멀리서도 눈에 확 들어올 것 같아요.


100권을 품었다는데 막상 들어 보면 부담스러운 두께는 아니더군요. 목록에 (다이어트 학교)가 있던데, 이 책도 거기 다녀온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책만의 재미는 꼭지 하나가 짜인 방식에 있는 거 같아요. 책 제목 옆에 질문이 한 줄씩 붙어 있습니다. (변신) 옆에는 "쓸모가 사라지면 사람의 가치도 사라질까", (수레바퀴 아래서) 옆에는 "남이 정한 성공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하는 식이에요. 그 아래 국어, 도덕, 진로 같은 관련 교과가 표시되고, 줄거리와 읽을 만한 이유가 이어진 다음, 마지막 문단에서 독후감을 어느 방향으로 써 보면 좋을지 슬쩍 길을 터 줍니다. 서평단 하면서 매번 뭘 써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마지막 문단이 은근히 부럽더라고요.


지은이의 말에는 저자가 책을 고른 기준이 나와 있어요. 한때 반짝 인기를 끈 책은 뒤로 미루고 여러 학교에서 꾸준히 읽혀 온 책을 먼저 챙겼다고 합니다.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넣지 않았다고도 하고요. 그 가운데 이 문장이 눈에 오래 남았습니다.

"좋은 책은 하나의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이 어른한테도 고스란히 통한다는 게 이 책의 함정 같아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한 줄씩 따라가며 읽게 된 건 3부 세계 문학에 실린 (변신) 꼭지였어요. 외판원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벌레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습니다. 그런 몸으로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게 뭐냐면요.


회사에 지각했다는 사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버지의 빚을 갚고 가족을 부양해 온 그에게 일은 이미 자기 삶보다 앞에 놓여 있었다는 설명이 붙는데,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더는 돈을 벌지 못하게 되자 가족이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그의 방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 쌓여 창고처럼 변해 간다고 해요. 한 사람이 차지하던 자리가 줄어드는 모습이 너무 담담하게 그려져 있었어요. 그래도 그레테가 바이올린을 켜자 그 소리에 끌려 방 밖으로 나오는 그레고르의 모습도 나옵니다. 겉모습이 어떻든 마음은 여전히 사람이더군요. 꼭지 끝에는 사람의 가치가 능력이나 쓸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 자기 생각을 밝혀 보라는 독후감 방향이 붙어 있어요. 중학생에게 던진 질문인데 제가 먼저 답해 보고 싶어지는 질문이었습니다.


같은 3부의 (수레바퀴 아래서) 꼭지도 비슷한 결이에요. 한스 기벤라트는 아버지와 교사, 목사의 기대에 맞추느라 낚시도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줄여 가며 공부에 매달립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경쟁과 엄격한 규율은 이어지고, 거기서 자유로운 성격의 하일너를 만나 자기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보게 된다고 해요. 독후감 방향은 어른들이 기대한 삶과 한스가 실제로 행복을 느꼈던 순간을 따로 적어 보라는 거였어요. 그 아래 "남의 기대 때문에 원했던 일을 포기한 적이 있었는지"를 떠올려 보라는 문장이 있는데, 저는 '학교생활' 자리에 '회사생활'을 넣어 읽게 되더라고요. 아이를 둔 분이라면 반대편, 그러니까 기대를 거는 쪽에 서서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인물이 소설 속 인물만 있는 건 아니에요. 4부 (평균의 종말) 꼭지에 나오는 토드 로즈라는 학자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가 된 사람이라고 해요. 꼭지에는 미 공군이 조종사들의 평균 신체 치수에 맞춰 조종석을 설계한 사례가 나옵니다. 4,000명이 넘는 조종사를 조사했는데 10가지 치수 모두 평균 범위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단 한 명도요.

결국 좌석과 조종 장치를 사람마다 조절할 수 있게 바꿨다고 하는데, 그 대목을 읽으니 해마다 받는 인사평가가 절로 떠오르더군요. 숫자 하나로 한 해가 정리되는 기분은 직장 다니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거예요. 저자가 평균을 아예 쓰지 말자는 입장은 아니라는 설명도 있었어요. 집단의 흐름을 볼 때는 유용하지만, 교육이나 채용처럼 한 사람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여러 능력과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는 이야기여서 더 믿음이 가더라고요.


처음 꺼낸 커피 이야기로 돌아가면, 꼭지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출근길 역 앞의 커피는 왜 유난히 비싸고, 슈퍼마켓은 왜 비슷한 물건을 여러 가격으로 팔까?"

팀 하포드는 스타벅스 커피값을 설명할 때 원두 가격만 보지 않는다고 해요. 사람이 몰리는 좋은 자리는 귀하고 손님은 편한 위치의 커피에 돈을 더 낼 마음이 있으니, 장소 자체의 값어치가 올라간다는 거죠. 할인쿠폰과 멤버십 카드가 가격에 민감한 손님과 그렇지 않은 손님을 가려내는 장치라는 대목에서는 지갑 속 카드들을 한 번 꺼내 보고 싶어졌어요. 독후감 방향은 최근에 산 물건의 영수증을 경제학자의 자료라고 생각하고, 그 가격이 왜 그렇게 정해졌는지 설명해 보라는 거였습니다. 제 카드 영수증을 그렇게 들여다봤다가는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반성문부터 쓰게 생겼어요.


솔직히 마음에 걸렸던 건 책이 아니고 저 자신이었어요. 100권 목록을 쭉 훑어보니 제목은 거의 다 귀에 익은데, 끝까지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책은 생각보다 적었거든요. 중학생에게 권하는 목록 앞에서 어른이 숙제 검사를 받는 기분이랄까요. 그러다 지은이의 말에서 "처음부터 어렵고 두꺼운 책에 도전할 필요는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조금 마음이 놓였습니다.


소장 가치는 부록에서 확실히 느껴졌어요. [중학교 3년, 이렇게 읽어보세요!]라는 제목 아래, 1학년은 책 읽는 재미를 먼저 발견하는 시기, 2학년은 나에서 세상으로 관심을 넓히는 시기, 3학년은 생각의 깊이를 키우는 시기로 나눠 학년별로 읽을 책을 묶어 두었습니다. 저자는 이 순서가 책의 수준을 매긴 줄 세우기는 아니라고 미리 밝혀 두는데, 그런 배려가 좋았어요. 3학년 부분에 책이 보여 주는 관점에 다 동의할 필요는 없고, 공감하는 부분과 의문이 드는 부분을 나눠 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도 좋았고요.


그 뒤로 한 달에 한 권씩 읽는 1년 로드맵 표가 나옵니다. 3월 (완득이)로 시작해서 이듬해 2월 (침묵의 봄)으로 끝나고, 이렇게 읽으면 중학교 3년 동안 36권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고 해요. 지금이 마침 10월이라 10월 칸에 눈이 가는데, 거기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들어 있어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에 세계의 불평등을 읽게 짜 놓은 순서가 괜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독후감을 길게 쓰지 않아도 되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문장, 새로 알게 된 사실, 읽으며 생긴 질문 중에 하나만 기록해도 충분하다는 마지막 안내도 마음 편하게 읽혔어요.


중학생 자녀를 둔 집이라면 학교에서 받아 온 추천도서 목록 옆에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을 같이 두면 아이와 나눌 이야깃거리가 훨씬 많아질 것 같아요. 저처럼 서평단 하면서 뒤늦게 책 읽는 재미에 빠진 어른에게는 다음에 뭘 읽을지 골라 주는 든든한 메뉴판이 되어 주더라고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습니다.


10월도 어느새 막바지고, 주말이 코앞인 목요일입니다. 은행잎도 하나둘 노랗게 물들어 가네요. <중학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100>을 덮고 나니 읽고 싶은 책이 한꺼번에 생겨서, 올가을은 좀 길게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책 만나서 든든한 마음으로 가을을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중학생 독서 가이드인 줄 알고 펼쳤는데, 질문 하나하나가 마흔 넘은 직장인한테도 그대로 통하는 100권짜리 메뉴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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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 -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을 위하여
왕루이 지음, 유연지 옮김 / 이든서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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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근 10분 전 부탁, 이제는 거절해 봅니다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 서평


퇴근 10분 전에 꼭 서류 들고 찾아오는 분, 어느 회사에나 한 명쯤은 계시지 않나요?

이 책에 나오는 C에게도 그런 과장님이 있더라고요. 하필 퇴근 직전에만 사소한 부탁을 하는 바람에 C는 금요일에도 10분씩 늦게 나가곤 했다는데, 그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10분이면 별거 아니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퇴근 직전 10분은 체감상 1시간 10분이거든요.

그렇게 웃고 나면 끝에 살짝 쓴맛이 남는 책이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이에요. 10년째 심리 상담을 하며 4만 회 넘게 사람들을 만나 온 왕루이가 쓴 책입니다. 제목만 보고는 가벼운 자기계발서인가 했는데, 펼쳐 보니 생각보다 제 얘기가 많아서 몇 번이나 뜨끔했어요.


10월도 끝자락으로 가는 목요일이라 그런지 이 책 얘기를 꺼내기에 날이 딱 맞는 것 같아요. 하루만 더 버티면 주말이라는 생각에 몸은 벌써 반쯤 퇴근해 있는 그런 날이요.


책이 붙잡고 있는 단어는 '자기 소모'입니다. 하루 종일 크게 한 일도 없는데 녹초가 되는 그 상태요. 저자는 이걸 멈춰 버린 톱니바퀴에 빗대더군요. 톱니 하나만 어긋나도 기계 전체가 서 버리고 엄청난 에너지가 새 나간다는 거죠. 그러니 제일 먼저 할 일은 어디가 멈췄는지 찾아내는 거라고 합니다.

뜨끔했던 건 그다음이었어요. 사람들은 답답할 때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면서 기분을 풀려고 하잖아요. 저자는 그게 말라 버린 강줄기에 물을 붓는 일과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잠깐은 괜찮아도 기분 전환이 끝나면 답답함이 다시 밀려온다고요. 금요일 밤 치킨으로 한 주를 퉁쳐 온 사람으로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원래 흐르는 강물 같은데, 작은 돌멩이가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흐름이 막힌다는 비유도 나와요.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만의 특이한 점을 꼽자면 A, B, C 세 사람이에요. 프롤로그에 셋 다 가명이고 실제 사례를 각색했다고 밝혀 두었더군요. 이 세 사람이 1장에서 처음 얼굴을 비추고는 책 끝까지 계속 나옵니다. 장이 바뀔 때마다 "아, 그 사람이 이번엔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하면서 따라가게 돼서, 심리서인데도 연재물 보는 맛이 있었어요.

A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현실의 A는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나요. 바라는 나와 실제의 내가 거의 정반대라서 늘 괴로운 거죠. 뒤에 한계를 다루는 대목에서 A가 '어떤 상황에서도 울지 않을 수 있어'라고 믿으며 자신에게는 한계가 없는 듯 여겼다는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데, 그 마음이 짐작이 가서 쉽게 넘어가지지가 않더군요.


B 이야기는 솔직히 좀 걸렸습니다.

설거지를 누가 맡을지로 다퉜던 옛일이 문득 떠올라서 이미 잠든 배우자를 깨워 다시 따지다가 결국 냉전으로 번지는 장면이에요. 다음 날 B는 '내가 잘못한 걸까?' 싶다가도 '상대도 잘못했으니 사과하기 싫다'는 마음이 같이 올라오고, 혹시 배우자가 떠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스쳐 간다고 해요. 저자는 B의 핵심 갈등을 '사과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고 정리합니다. 결혼 생활 좀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 앞에서 괜히 헛기침 한 번쯤은 하게 될 것 같아요. 남 얘기로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C는 제가 제일 오래 붙들고 있던 인물이에요. 혼자 하면 잘할 자신이 있는데, 맡은 일은 협업이 필수인 사람. 저자는 C의 처지를 물고기를 억지로 뭍에 내놓고 살아가라는 것에 빗대는데, 참 정확한 비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문제의 원인을 '환경'보다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보자고 권하더라고요. 환경 탓만 하다 보면 다른 선택지를 스스로 고민해 볼 기회를 놓친다고요.


나이가 이쯤 되니, C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하다가 생계 걱정에 다시 주저앉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안 나왔어요. 누가 "넌 잘될 거야"든 "아니, 힘들 거야"든 확실하게 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게 어떤 건지 너무 알 것 같아서요.

저자의 답은 의외로 담백합니다.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 보라는 거예요. 미래를 그려 보는 일도 결국 지금 이 순간에 하는 행동이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은근히 위로가 되더라고요.

다른 페이지보다 천천히 정독하듯 읽었던 부분은 (거절 가면: 건강하게 거절하기)였어요.

처음에 말씀드린 C와 과장님 이야기가 바로 여기 나와요. 저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상대가 권위 있는 사람이어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선이 있다고 말해요. 그 선을 지켜 주는 도구가 '거절 가면'이고요. 연습은 대형, 중형, 소형, 투명형 네 단계로 나뉘는데 표로 정리되어 있어서 따라 해 보기 편하더군요.


C는 마침내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죠, 과장님. 정말 죄송한데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변명을 덧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이 '꾹 참았다'가 제일 좋았어요. 거절해 놓고 미안한 마음에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다가 결국 "그냥 제가 할게요"로 끝나는 거, 다들 한 번쯤 해 보셨잖아요. 책에도 말이 길어지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뜨면 실패가 줄어든다는 팁이 나와요.

그 뒤로 C가 "물 좀 떠 올게요" 하고 슬쩍 피하는 장면이 있어요. 다른 동료가 그저 난처한 표정만 지었는데 과장님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걸 보고 C가 충격을 받는 장면도 이어지고요. 거절이라는 게 거창한 대사까지 필요한 일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이 장에서 제일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거였어요.

'한 번의 거절은 그 순간의 행동에 그치지만, 반복해서 자신 있게 거절하다 보면 점차 자신의 태도로 자리 잡는다.'

날을 세워 거절하라는 얘기도 아니에요. C는 싸늘한 표정이나 빈정대는 말투로 거절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그건 자기 방식이 아니라고 느꼈고, 차분하고 예의 있게 말하는 쪽을 골랐다고 해요. 저자는 그것도 C의 방식일 뿐이고 유머를 섞는 게 더 잘 맞는 사람도 있다고 열어 두더라고요. 정답 하나를 밀어붙이지 않는 것, 이 책의 결이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에는 이런 배려가 곳곳에 있어요. 1장에서도 자기 소모를 일으키는 요인을 두 가지 이내로 추리라고 하면서, 자기 소모를 느끼는 사람일수록 선택 자체를 어려워하니 처음부터 한꺼번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군요. 이런 문장 하나에 마음이 좀 놓입니다.


후반부의 (나를 지키는 일곱 가지 태도)는 시간, 한계, 미지, 감정, 흥분, 상실감, 거리, 이렇게 일곱 가지에 나를 맡겨 보는 연습이에요. 그중 한계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한계는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있는 경계라는 거예요. 어제 못 한 일을 오늘 해냈다면 그건 어제의 한계였던 셈이라고요.


'한계는 언제나 현재를 기준으로 경계를 긋는다.'

마흔 후반쯤 되면 한계라는 말이 자꾸 체력이나 나이 쪽으로만 들리는데, 이렇게 보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일부러 안 보고 아껴 두는 마음을 상실감과 연결 짓는 대목도 있어요. 그 부분은 직접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한테도 그런 드라마가 하나쯤 있거든요.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은 보통 소설책보다 제법 두툼한 편이에요.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순서대로 읽고, 소개한 방법을 직접 연습해 보고, 다 읽은 뒤에는 약하다고 느끼는 부분으로 돌아가 반복하라고 권해요. 그걸 보면 한 번 훑고 꽂아 둘 책은 아닌 것 같아요. 표와 실전 연습이 곳곳에 있어서 책상 가까이 두고 필요할 때 꺼내 보기 좋겠더라고요. 소장할 만하다고 봅니다.


저자 자신도 이 책을 쓰는 동안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나 자기 소모의 늪에 빠졌다고 털어놓아요. 상담사도 그렇구나 싶어서 이상하게 반가웠어요.

책 앞부분에 결국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다 읽고 나니 그 말이 처음보다 덜 막연하게 들려요.


읽는 내내 재미있었어요. 심리서가 재미있다니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A, B, C를 따라가다 보면 정말 그래요. 사소한 일에 하루치 기운을 다 쓰고 퇴근하는 날이 잦다면,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법>이 꽤 든든한 말벗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어요. 은행잎 떨어지는 속도만큼 마음속 돌멩이도 하나씩 걸러 내 보려고요. 거절 가면은 일단 밤마다 찾아오는 야식 앞에서부터 써 보는 걸로 하고요. 좋은 책 만나서 마음 한쪽이 한결 가벼워진 목요일입니다.


멈춘 톱니바퀴를 찾고 거절 가면을 써 보는 연습, A·B·C 세 사람과 함께 덜 소모하며 사는 법을 배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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