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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 - 스토리텔러 박정호 교수의 경제 흐름 읽기 특강 ㅣ 지식 벽돌
박정호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9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아메리카노가 미국에서 안 통하는 이유, 콩 한 알에 담긴 세계사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
미국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면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하네요. 거기선 블랙커피라고 해야 통한답니다. 우리가 카페 카운터 앞에서 제일 자주 부르는 커피 이름이 정작 미국에서 태어난 말이 아니라는 얘기예요. 이 한 대목만 봐도 이 책이 경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 가는지 감이 오는 거 같아요.
박정호 교수의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은 반도체, 휴대폰, 리튬, 철, 금, 구리, 석유, 자동차, 쌀, 콩, 밀, 커피까지 열두 가지 사물을 하나씩 붙잡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따라가는 책입니다. 저자는 명지대학교 테크노아트대학원 교수이고, MBC (박정호의 손에 잡히는 경제 플러스)와 유튜브 (박정호 교수의 여의도멘션)으로 경제 이야기를 꾸준히 전해 온 분이에요. 그래서인지 문장이 강의실보다는 라디오에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여러분, 이거 아시나요?" 하고 말을 거는 투라 딱딱해질 틈이 없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경제 책은 제목만 보고 슬쩍 내려놨을 거예요. 요즘은 서평단 덕에 새 책 오는 날이 기다려지는 사람이 돼서 그런지 샛노란 표지부터 반갑더군요. 돋보기 하나를 가운데 두고 반도체 칩, 콩깍지, 금괴, 커피콩, 자동차 아이콘이 빙 둘러서 있는데, 10월 하순 은행잎이랑 색이 꼭 닮았습니다.

두께는 보통 소설책 정도라 손에 쥐어도 부담이 없어요.
머리말 첫 문장이 "경제는 너무 중요한데, 이상하게 공부는 자꾸 미루게 된다."예요. 읽자마자 뜨끔했습니다. 금리 뉴스, 환율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데, 마흔 줄 후반이 되도록 그 뒷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싶더라고요. 잘 몰라서 무서운 마음이 "그냥 나중에 하자"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말이 딱 제 얘기 같았어요.
휴대폰 장은 제 또래라면 웃으면서 읽을 대목이 많을 거 같아요. 피처폰 시절 매장에 가면 삼성 것도, LG 것도, 외국 회사 것도 디자인이 제각각이라 고르는 데 한참 걸렸잖아요. 저자는 그걸 두고 "누구에게나 결정 장애를 유발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표현에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지금은 갤럭시 아니면 애플이니 세상 참 단순해졌죠.
그런데 그 다양한 디자인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갸웃해지다가 이내 끄덕여지더라고요. 저자가 피처폰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던 학교 선배에게 회사를 키워 보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랬답니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피처폰으로는 절대 돈을 벌 수가 없어." 제조사가 몇 달마다 버튼 개수와 화면 크기가 다른 새 기종을 내놓으니, 개발자는 그때마다 프로그램을 다시 고쳐서 납품해야 했다는 거예요.
회사 다니는 분이라면 양식 하나 바뀔 때마다 서류를 전부 다시 손봐야 하는 그 피곤함, 다들 아실 겁니다.
애플은 앱을 어떻게 올리고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정책을 표준화해서 공개했다고 해요. 그 덕에 중학생도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시장이 열렸고요. 그 대가로 우리가 내준 게 디자인의 다양성이라는 설명이 재밌었습니다. 버튼 하나만 늘어도 전 세계 개발자들이 만들어 둔 걸 다 고쳐야 하니, 이제 개성은 색깔이랑 케이스로 낼 수밖에 없다는 거죠. 폰 케이스 고르는 데 그렇게들 공을 들이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같은 장 뒤쪽에는 스마트 글라스 얘기가 이어지는데요. 해외 출장에서 낯선 간판 위에 번역 자막이 겹쳐 보이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대목은 직장인한테 꽤 솔깃하게 들립니다. 애플 관계자가 했다는 말도 실려 있어요. "우리 애플은 전 세계 사람들이 손에 아이폰을 들고 다니지 않을 세상도 준비 중이다." 2013년에 나온 구글 글라스는 오래 쓰고 있으면 귀 옆이 뜨끈뜨끈해졌다는데, 10여 년 사이 그런 단점들은 거의 보완됐다고 하네요.

손에서 폰이 사라지는 세상이라.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에서 이 책만의 맛이 제일 진하게 나는 곳은 콩 이야기인 거 같아요.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와 만주 일대라는 건 어렴풋이 들어 봤는데,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이름이 두만강이라니요. 豆滿江, 콩이 가득 찬 강이라는 뜻이랍니다. 외국 가서 콩나물 먹는 거 본 적 있냐고 저자가 묻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없더라고요. 콩을 나물로 키워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더니, 이 책은 콩 한 알로 세계사를 통째로 나눠 주는 기분이었어요.
러일전쟁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채소를 못 먹은 러시아 병사들이 비타민 C가 부족해 더는 싸우지 못하고 투항했는데, 정작 그 군 기지 식량 창고에는 콩이 가득했다고 해요. 콩나물로 키워 먹는 법만 알았어도 투항하는 일을 줄일 수 있었을 거라는 보고서가 나왔다는 대목에서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크구나 싶었습니다.
콩 잉크 얘기도 반가웠어요. 예전엔 신문을 넘기다 보면 손가락이 까매지곤 했잖아요. 오일쇼크로 석유값이 뛰자 미국 신문인협회가 1987년에 콩 잉크를 내놓았고, 지금은 미국 일간지의 90~95%가 이걸 쓴다고 합니다. 손에 묻지도 않고 냄새도 좋다니 반갑더군요. 루돌프 디젤이 1900년 파리 자동차 박람회에 선보인 첫 디젤 엔진 자동차가 땅콩기름을 썼다는 것도 이 장에서 처음 알았어요.

그러다 숫자 하나에서 마음이 걸렸습니다.
1975년만 해도 98%였던 우리 식용 콩 자급률이, 지금은 세계 10대 콩 수입국이 될 만큼 떨어졌다고 해요. 1929년 미국 농무성이 보낸 식물 탐험 원정대가 모은 콩 종자의 거의 85%가 조선 땅 근처에서 나왔고, 보고서에는 "조선에서 모은 자료와 사진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적혀 있었다는데요. 미국은 '콩의 제국'이 됐고, 원산지였던 우리는 사다 먹는 쪽이 됐습니다. 미국 곡물 회사들이 콩을 두고 "땅에서 자라는 금"이라고 부른다는 걸 보니 마음이 좀 복잡해지더라고요.
커피 장 앞부분은 꼭 역사 드라마 같았어요. 1767년 영국이 타운센드법으로 종이, 유리, 차에 관세를 붙이고, 미국인들은 불매 운동으로 맞서고, 영국은 차 관세만 남기고, 미국인들은 네덜란드 쪽에서 차를 밀수하고. 물고 물리던 싸움은 결국 1773년 보스턴 차 사건까지 가는데, 그 뒤로 미국 아침 식탁에서 차가 밀려난 자리에 커피가 들어왔다는 흐름이 술술 읽힙니다. 관세 하나가 한 나라의 아침 음료를 바꿔 놨다는 게 요즘 국제면 기사랑 괜히 겹쳐 보였어요.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의 유래도 여기서 나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이탈리아에 주둔한 미군들이 본토에서 마시던 대로 커피를 연하게 마시고 싶어서 "에스프레소에 물을 좀 타 주세요!"라고 주문했대요. 그러자 이탈리아 커피점에서는 "밖에 미국인이 왔어"라는 뜻으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는 거죠. 그 커피 문화가 거꾸로 유럽에 퍼져서 지금은 유럽 사람들도 커피를 즐긴다니, 사물의 이력이라는 게 참 돌고 도는 모양이에요.
다른 대목보다 한 줄씩 천천히 짚어 가며 읽은 건 이 장 끝의 불공정 무역 이야기였습니다. 농지에서 파운드당 2센트에서 10센트에 팔리는 커피가 우리 손에 올 때는 7달러까지 오른다고 해요. 생두 1파운드면 커피 45잔쯤 나오고, 한 잔에 4달러라 치면 180달러어치가 되는데, 그중 농부가 가져가는 몫은 0.056%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으로서는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숫자였어요. 저자는 커피 한 잔이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은 결실이 되지 않게 하자고 말하면서도, 공정 무역에도 생각지 못한 그늘이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 갑니다. 쉬운 답을 내놓지는 않는 거 같더라고요.

다른 장들도 이런 식으로 흘러가요. 금의 52%가 장식품으로 쓰이고 18%가 골드바 같은 투자용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외교 협상에서 불리할 때 우리 반도체가 협상 지렛대 노릇을 한다는 대목도 있습니다. 하나같이 술자리에서 꺼내면 "오, 그래?" 소리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라,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을 덮고 나면 누구한테든 한마디 하고 싶어지더군요.
머리말에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게 썼다고 하던데, 정말 그래요. 문장이 쉬워서 중고등학생 있는 집이라면 식탁 위에 두고 같이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진도 장마다 넉넉하게 들어 있어서 눈이 덜 피곤합니다. 반도체 수출 규제나 곡물값 뉴스가 나올 때마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이라 책장 손 닿는 칸에 꽂아 둘 생각이에요. <세계를 뒤흔드는 12가지 사물의 경제학>은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경제 공부를 미뤄 온 사람한테 이만한 첫걸음도 드물겠다 싶었습니다.
10월도 막바지라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졌어요. 목요일쯤 되면 한 주 피로가 슬슬 쌓이는데, 오늘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원두가 어떤 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을까 떠올려 보게 되네요. 아메리카노 말고 '코리아노'로 주세요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장님이 콩나물국을 내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책 만나서 머릿속이 한결 든든해진 가을이에요.
콩나물 한 접시와 아메리카노 한 잔 속에도 세계 경제가 들어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경제 공부를 미뤄 온 어른에게 딱 맞는 첫 경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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