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왜 궁금할 과학 - 일상의 호기심이 우주까지 확장되는 엉뚱한 질문들
허경석(허석사) 지음 / 빅피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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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장에 과학책을 들일 일이 언제였나 싶었는데, 이번엔 표지가 먼저 눈을 붙잡았습니다. 형광에 가까운 노란 바탕 위로 검은 고양이, 눈을 감고 명상하는 뇌, 망원경과 작은 로켓, 반쯤 기운 달이 팝아트처럼 통통 튀고 있더군요. 과학책이라기보다 어릴 적 들여다보던 그림책에 가까운 얼굴이라, 첫인상부터 딱딱함이 절반쯤 덜어져 있었습니다. <이게 왜 궁금할 과학>은 그렇게 경계심을 미리 풀어놓은 채 제게 왔어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은 도서인데, 크기도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아서 며칠에 걸쳐 편하게 넘겼습니다. 저자 허경석(허석사) 님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도 활동하는 분이더라고요. "똥은 왜 갈색일까" "곰은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고?" 같은, 알고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갸웃했을 질문 마흔 몇 개를 인체와 생명, 지구와 우주, 뇌, 생활, 공학으로 묶어 풀어냈습니다.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표지에서 "재밌는 질문과 의미 있는 답변이 가득한 과학책"이라 적어둔 걸 보고, 반신반의하며 첫 장을 열었던 것 같아요.


읽으면서 오래 붙들렸던 건 우주나 최신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다룬 대목들이었습니다.


<인간은 왜 100살까지밖에 못 살까?> 챕터에서는 몸집이 클수록 대체로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쥐가 2년쯤, 코끼리가 60~70년, 대왕고래가 80~90년을 산다고 합니다. 이유가 흥미로웠습니다. 몸집이 클수록 대사 속도와 심장박동이 느려서 오래 산다는 거예요. 저자는 이걸 자동차 엔진에 빗댑니다. 무리하게 빨리 돌리면 수명이 짧아지지만, 안정적인 속도로 운행하면 더 오래간다고요.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나니 이 문장이 그냥 과학 상식으로만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뭐가 그리 급했던가, 조금 천천히 굴러도 괜찮았을 텐데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들었거든요. 노화 세포를 스스로 제거하는 벌거숭이두더지쥐, 텔로미어를 지켜 이론상 영생이 가능하다는 랍스터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지만, 정작 마음에 남은 건 저자가 슬쩍 흘린 농담이었어요. 절제된 식단에 규칙적인 운동, 금주와 금연이 노화를 늦춘다고 알려주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지키면서 산다면 인생이 조금 재미없어질 것 같기는 합니다."


과학책에서 이런 솔직한 문장을 만나니 어쩐지 마음이 놓였습니다.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 사이에서 우리 다 조금씩 흔들리며 지내는구나 싶어서요.


시간을 안쪽에서 들여다본 챕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갈까?>인데요. 어릴 땐 하루가 그렇게 길더니 요즘은 한 해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이 감각, 저만 느끼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저자는 듀크대 배얀 교수의 연구를 빌려 물리적 시간과 마음의 시간을 나눕니다. 나이가 들면 신경망이 커지고 신호 경로가 길어져 정보 처리가 느려지고, 그래서 마음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설명이었어요. 인생을 한 권의 책에 빗댄 비유가 특히 와닿았습니다. 어릴 땐 매일이 상세한 문장으로 빼곡히 기록되지만, 어른이 되면 "어제와 비슷함" 같은 짧은 요약문만 남아서 나중에 다시 펼쳤을 때 최근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간다는 거죠. 그렇다면 방법도 있습니다. 행복한 순간에 의식적으로 집중해 더 많은 장면을 기억에 담아두는 것. 읽고 나서 며칠은 저녁 식탁이든 창밖 하늘이든 조금 더 눈여겨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안쪽에서 시간을 들여다보다가, <블랙홀에서의 1초가 지구의 100년이라고?> 챕터에 이르면 시선이 단숨에 우주 바깥으로 끌려 나갑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은 거의 늙지 않았는데 딸은 할머니가 되어 있던 그 장면, 공상처럼 보이지만 실제 물리학이라고 하더군요. 블랙홀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이 느려지고,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에 다다르면 시간이 사실상 멈춘다는 겁니다. 지구가 블랙홀이 되려면 직경 1.9cm로 압축돼야 한다는 대목에선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어요. 규모가 이렇게까지 아득한데, 2019년엔 전 세계 망원경 여덟 개를 이어 지구만 한 망원경을 만들어 기어이 블랙홀의 흔적을 찍어냈다니. 챕터 끝의 한 문장이 이 책 전체의 마음을 잘 요약해준다고 느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류가 더 좋은 안경을 쓰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뒤로 갈수록 책은 우리 손 안의 기술로 눈을 돌립니다. <안구를 적출해도 홍채 인식이 가능할까?> 챕터는 제목부터 능청스러운데, 답은 담백해요. 홍채는 사람마다 다르고 좌우 눈마저 달라서 지문보다 훨씬 정교한데, 눈을 적출하면 동공이 확대되고 모양이 바뀌어 영화 속 그 장면은 현실에선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매일 무심코 스마트폰에 눈을 대면서도 그 안에 이런 원리가 숨어 있는 줄은 몰랐던 터라, 익숙한 동작 하나가 새삼 다르게 보이더군요.


가장 여운이 길었던 기술 이야기는 <생각만으로 서로 대화하는 날이 온다고?>였습니다. 뇌와 컴퓨터를 잇는 BCI 기술을 다루는데, 사지 마비 환자가 뇌 신호만으로 로봇 팔을 움직이고 외골격 로봇을 입고 걸었다는 성과 앞에서는 뭉클함이 밀려왔어요. 다만 저자는 여기서 낙관으로만 내달리지 않습니다. 뇌 정보가 해킹되면 정신적 자유까지 침해될 수 있다며, 어떤 기술이든 삶을 개선할 가능성과 새로운 위험을 함께 품는다고 담담히 짚거든요. 들뜨지도 겁주지도 않는 이 균형이, 저는 이 책에서 가장 믿음직한 대목이라 느꼈습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질문 하나하나가 짧고 경쾌하게 끝나다 보니 어떤 주제는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버린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단점이라기보다 이 책의 성격이겠지요. 애초에 한자리에 진득하게 앉혀두려는 책이 아니라, 궁금할 때마다 꺼내 한두 꼭지씩 집어 먹으라고 만든 안내서에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이 도서는 과학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져 늘 첫 장에서 덮어버렸던 분에게 특히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냥 재밌는 이야기로 읽히거든요. 저처럼 중년에 접어들어 삶의 속도나 남은 시간을 문득 헤아리게 되는 사람에게도, 뜻밖에 위로가 되는 문장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이건 왜 그럴까" 물어가며 한 꼭지씩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평단으로 만난 여러 책 가운데,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한 뼘쯤 넓어진 기분이 든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여름이 한창입니다. 매미 소리가 창을 두드리는 이런 계절엔 두꺼운 책보다 이렇게 가볍게 손이 가는 한 권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시원한 차 한 잔 곁에 두고, 궁금한 제목부터 골라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과학이 더 좋은 안경이라면, 이 책은 그 안경을 처음 걸쳐보기에 꼭 알맞은 한 권이었습니다.


엉뚱한 질문에서 출발해 삶과 시간을 다시 보게 하는, 부담 없이 곁에 두고 꺼내 읽기 좋은 과학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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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
사랑좋아해적단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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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얇은 판형이라 가볍게 펼쳤다가, 표지에서 잠깐 멈칫했어요. 피가 흘러내리는 하트를 단검이 그대로 뚫고 있고, 옆에는 불꽃이 흔들립니다. 연애서라기엔 위태로운 그림인데, 그 위태로움이 도리어 시선을 붙들더군요. "평온한 사랑을 거부하고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든 당신에게"라는 카피까지 읽고 나서는, 이건 다정한 위로를 파는 책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연애 이야기를 나눠온 '사랑좋아해적단'이 쓴 관계 심리 에세이예요. 착각과 도파민으로 시작해 집착과 통제를 지나 파국과 실연에 이르고, 그러고도 다시 사랑을 고르는 마음까지 네 단계로 훑습니다. 목차에 도파민, 리머런스, 가스라이팅, 애증, 미련 같은 단어가 줄줄이 나오는데, 이름이 낯설 뿐 겪어보지 않은 감정은 하나도 없더군요.


'가스라이팅 & 통제'를 다룬 대목에서 오래 걸렸습니다. 저자는 관계 안에서 사람의 말이 어떻게 제 뜻을 잃고 다른 용도로 바뀌어 가는지를 담담하게 늘어놓아요. 미안하다는 말이 사과가 아니라 생존 인사가 되고, 웃음이 기분이 아니라 분위기 조절 수단이 되고, 설명이 소통이 아니라 무죄 입증이 되는 과정. 위로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정직함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내놓는 통찰 하나도 마음에 남았어요. 연애는 수평적이라지만 실제로는 갑과 을이 생기고, 을이 되는 이유가 결국 사랑의 크기 차이라는 것. 관계가 어긋났을 때 우리는 흔히 누가 더 나쁜지를 따지는데, 저자는 그 자리에 누가 더 사랑했는지를 놓습니다. 나이가 들어 지난 관계들을 돌아보니, 이 말이 꽤 오래 맞는 말처럼 들리더군요.


뒤로 갈수록 저자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초반이 누군가를 향한 분노였다면, '미련 & 후회'에 오면 그 화살이 저자 자신에게로 돌아와요. 미련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이 특히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그립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사람과 함께였던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거라는 이야기. 기억이 나쁜 순간은 지우고 좋았던 장면만 골라 데려와 사람을 흔든다는 것, 그래서 향만 남고 정작 그 사람은 없다는 표현 앞에서는, 판단보다 이해가 먼저 앞섰어요. 이 챕터를 저자는 칸예 웨스트의 "Runaway"를 반복해 들으며 썼다고 밝히는데, 도망가라 외치던 사람이 정작 자신은 도망가지 못했다는 아이러니를 미련에 붙들린 마음과 겹쳐놓는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손을 뻗는 마음이야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것이고요.


그리고 마지막 '순애'에 이르러 이 책은 비로소 답 비슷한 것을 꺼냅니다. 요즘 유행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라는 말에 저자는 대뜸 반발해요. 여태 자기가 한 더럽고 비참한 사랑은 다 무엇이었냐고요. 그러다 스스로를 정직하게 들여다봅니다. 자기가 한 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고, 도파민을 사랑으로 착각한 순간부터 이미 사랑을 거칠게 써왔다는 인정. 불안이 확인을 낳고 확인이 집착으로, 집착이 결국 가둠으로 번져간 과정을 고백하는 대목은 읽기 아플 만큼 솔직했습니다. 그렇게 저자는 사전과 다른, 자기만의 순애를 새로 씁니다. "순애는 더러운 마음을 가진 채로 끝까지 선을 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미워하고 무너뜨리고 싶은 순간이 와도 상대를 사람으로 남겨두는 것, 그 선이 결국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그 서늘한 표지를 왜 골랐는지 알 것 같아집니다.


문장은 거칠어요. 욕설도 감탄사도 걸러내지 않고 튀어나오고, 상담 콘텐츠에서 출발한 저자라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어투가 강합니다. 정제된 글을 기대한 분이라면 초반에 당황할 수 있어요. 다만 매끈하게 다듬었더라면 이 진심이 이만큼 전해졌을까 싶기도 합니다. 거친 질감이 곧 이 책의 정직함인 셈이지요.


지금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어느 페이지에서든 자기 이야기를 만날 겁니다. 헤어지고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사람에게도 그렇고요. 사랑을 이미 다 지나와 이제는 담담히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읽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날의 서툰 장면들이 조용히 떠오르면서, 그때의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게 되니까요. 저는 그런 쪽에 가까운 마음으로 읽었고, 다 덮고 나서는 젊은 날의 미련했던 순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지만,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처음엔 위태로워 보였던 단검과 흘러내리는 하트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상처를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였어요.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이렇게 뜨겁고 솔직한 책이 오히려 계절과 잘 어울립니다. 더위를 식혀주진 않아도, 자기 안의 열기를 외면하지 않게 해주니까요.


망하는 줄 알면서도 또 사랑하고 마는 우리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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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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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450여 년 전 프랑스 시골의 한 서재에서 미셸 드 몽테뉴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에세이'라고 부르는 글쓰기의 첫 문을 연 사람이지요. 클래시카에서 나온 <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는 그 오래된 사유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맞춰 다시 풀어낸 책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손에 들어온 순간 먼저 반가웠던 건 판형이었어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핸드북 크기라 얇고 가벼웠거든요. 두꺼운 철학책일 거라 지레 긴장했는데, 이 정도면 며칠 나눠 천천히 읽어볼 만하겠다 싶었습니다.


표지도 그 마음을 거들었습니다. 짙은 남색 바탕에 옆모습으로 앉은 몽테뉴의 판화, 창밖으로 보이는 언덕 위 마을과 깃펜 하나. 요란하게 말 걸지 않고 사색으로 데려가는 표지였어요. 아래쪽에 적힌 "천 년을 살아남은 생각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이 책이 무엇을 쥐고 있는지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았고요.


책은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지만, 결국 하나를 향해 걸어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아니, 완벽하려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갉아먹는다는 것. 성과를 증명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당연하게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어느 페이지에서든 자기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가장 오래 붙잡혀 있던 대목은 '목적지에 닿지 못해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챕터였어요. 저자는 '에세(Essais)'라는 말의 뿌리에 '시도하다, 시험하다, 맛보다'라는 동사가 깔려 있다는 데서 이야기를 엽니다. 몽테뉴는 자기 글에 '완성된 사상'이나 '체계적 철학'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요. 그저 '한번 해본 것들'이라고 불렀을 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한 페이지짜리 보고서에도 완벽이라는 도장을 찍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석 달 안에 몇 킬로그램을 정해두고, 책을 펼치기도 전에 연말까지 몇 권을 셈합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하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도착하지 못한 모든 순간에 '실패'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을 몰아세우지요. 이 책이 흔드는 건 바로 그 지점입니다. 인생을 도달해야 할 종착역으로 보느냐, 걸어가는 길 자체로 보느냐. 종착역으로 보는 사람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도구일 뿐이지만, 길 자체로 보는 사람에게는 오늘의 한 걸음이 곧 인생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늘의 한 걸음이 곧 인생이다. 도착하지 못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애초에 무너질 무엇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테뉴가 책을 인쇄하고도 평생 여백에 문장을 덧붙였다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 삶도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새 문장이 더해지는 '영원한 초안'이라는 대목에서는, 미완성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말이 한동안 곁에 머물렀습니다.


"나를 베인 것은 상대의 칼이 아니라, 내가 미리 그어둔 선이었던 셈이다." '기대치를 바닥으로 낮출 때 찾아오는 평온'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그동안 저를 힘들게 한 것의 정체를 얼추 알 것 같았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기대가 미덕인 줄 알았다고 고백해요.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거는 일이 성실한 의지라 칭찬받았으니까요. 그런데 나를 가장 많이 다치게 한 건 타인의 무례가 아니라, 그 무례를 만나기 전에 내가 이미 품고 있던 기대였다는 것입니다. 비를 안 맞겠다고 우산을 두 개씩 들고 나가던 사람이 그냥 비를 맞기로 결심하는 순간 비가 재난이 아니라 그냥 비가 된다는 비유도 기억에 남습니다. 기대를 낮추는 일이 냉소가 아니라 오히려 정직에 가깝다는 것, 세상에게 사람답게 살 여유를 돌려주는 일이라는 것. 마음속 기대치를 한 칸만 내려놓아도 세상이 조금은 덜 무례하게 느껴지겠다 싶었습니다.


책의 끝자락에 놓인 '남의 박수 없이도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라'는 앞의 이야기들을 껴안으며 닫힙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인정이라는 작은 사탕을 물어야 발이 떨어지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자는 사람마다 다리 길이도, 그날의 컨디션도, 가야 할 길의 경사도 다르니 보폭이 다른 건 결함이 아니라 그저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옆 사람 보폭에 발을 맞추려다 발목을 삐고, 결국 걷는 일 자체가 싫어져 주저앉는다는 것이지요. 몽테뉴가 시장직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남은 생애를 썼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도피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선택으로 다시 읽힙니다. 박수 소리가 멈춘 적막 속에서야 비로소 자기 숨소리가 들리고, 그 숨소리가 박수보다 훨씬 정직하다는 것. 그가 남긴 "우리의 시선은 너무 바깥을 향해 있어서 정작 우리 자신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는 문장은, 세월의 거리를 무색하게 만들며 지금 우리 자리로 곧장 걸어 들어옵니다.


읽는 내내 위로받았지만,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각 챕터가 몽테뉴의 일화를 소개하고 현대의 삶에 대입한 뒤 작은 실천을 권하는 비슷한 틀을 반복해서, 뒤로 갈수록 다음 전개가 어렴풋이 짐작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다만 그 반복이 곧 이 책의 성실함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흠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은 성과와 인정이라는 저울 위에서 매일 자신을 재고 있는 사람에게 특히 가닿을 것 같아요. 무언가 이뤄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흐릿해진 사람,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자기 보폭을 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습니다. 기대치를 한 칸 내려보라거나 하루에 한 시간만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정도의 작고 부담 없는 제안이라, 지쳐 있는 사람도 편하게 받아 들 수 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오면서 읽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 한 권이 그랬습니다.


한여름 더위가 한창인 요즘,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이 작은 책을 펼쳐두고 오래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완벽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삶이 오히려 가벼워진다는 말이, 무더위에 지친 마음에도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 테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 철학자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가벼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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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컬러링 필사북 고흐와 니체 - 손끝에서 뇌가 다시 젊어지는 시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송동윤 엮음, 빈센트 반 고흐 그림 / starlogo(스타로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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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택배를 받자마자 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짙은 초록을 배경으로 왼쪽에는 고흐의 해바라기가 노랗게 다 피어 있고, 오른쪽에는 같은 꽃이 색 없이 선으로만 남아 있더군요. 완성된 절반과 비어 있는 절반을 나란히 둔 표지였습니다. 컬러링북이니 당연한 구성인데도, 그 비어 있는 쪽이 유독 오래 눈에 밟혔어요. 나머지 반은 이 책을 든 사람이 채우라는 뜻이었습니다.


<시니어 컬러링 필사북 고흐와 니체>는 스타로고에서 나온 책입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마흔여섯 편을 색칠할 수 있는 도안으로 싣고, 그 맞은편에 철학자 니체의 문장 마흔여섯 편을 손으로 옮겨 적을 수 있게 배치했어요.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끝내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참 닮았습니다. 살아서는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저마다의 고통을 안은 채 붓과 펜을 놓지 않았으며, 세상을 떠난 뒤에야 위대함을 인정받았죠. 그 두 사람을, 색을 고르는 손과 문장을 옮겨 적는 손으로 함께 만나게 하는 구성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이 책을 받았습니다. 봉투를 열고 처음 든 생각은 의외로 가볍고 얇다는 것이었어요. 두툼한 아트북을 예상했는데 손에 얹으니 부담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펼쳐 보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실로 꿰맨 제본이라 활짝 열면 가운데가 뜨지 않고 180도로 평평하게 눕습니다. 색을 칠하다 보면 접히는 안쪽이 늘 아쉬웠는데, 이 책은 펼친 면을 끝까지 쓸 수 있어요. 얇고 가벼워 아무 데나 두고 하루에 한 장씩 채워 가기에도 좋습니다. 만듦새 하나에서 이 책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가 보였어요.


앞쪽에는 손으로 색칠하고 글씨를 쓰는 일이 왜 뇌에 좋은지를 다섯 갈래로 풀어 놓았습니다. 색을 인식하는 영역과 손을 움직이는 영역, 글을 다루는 영역이 동시에 깨어난다는 이야기, 손글씨가 기억을 붙드는 힘을 지녔다는 연구, 색을 채우는 반복이 명상과 비슷한 안정을 준다는 대목이 이어져요. 저는 이론보다 그 뒤에 나오는 문장에 마음이 갔습니다. 한 페이지를 다 채웠을 때 밀려오는 뿌듯함이 은퇴나 자녀 독립 뒤에 찾아오는 '나는 이제 쓸모없어졌나' 하는 공허함에 조용한 답이 될 수 있다는 대목이었어요. 손을 놀리는 그 단순한 행위가 실은 자기를 돌보는 시간이라는 말로 읽혔습니다.


책을 넘기다 오래 눈이 머문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첫 장부터가 '별빛도 시간을 원한다'예요.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이 실려 있고, 그 아래 니체의 문장이 놓여 있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너무 일찍 왔다. 나의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글인데, 번개와 뇌성에도 시간이 필요하듯 별빛도 사람의 눈에 닿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살아서 빛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의 삶이 첫 문장에서부터 그대로 겹쳐 옵니다. 지금 당장 알아주지 않는다고 그것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 무언가를 오래 붙들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한참을 넘기다 스물여섯 번째 장에서 다시 멈췄습니다. '인간은 고뇌하는 동물이다'라는 제목 옆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의자에 앉은 노인을 그린 '슬픔에 잠긴 노인'이 함께 있어요. 그림만 봐도 마음이 서늘해지는데, 니체는 여기서 인간이 어떤 동물보다 약하고 불안정한 존재, 곧 고뇌하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운명에 반항하고 미래에 도전하는 존재라고 덧붙여요. 고뇌를 결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힘으로 읽어 준 셈입니다.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사는 게 나만 유별난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다들 그렇게 흔들리며 나아간다는 말로 다가왔어요.


가장 곱씹게 된 건 서른아홉 번째 장 '개인은 늘 새로운 것의 창조자다'입니다. 니체는 개인이 무언가 전혀 새로운 존재이며, 설령 감정과 지식을 스스로 만들지 않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순간 늘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 문장이 곧 이 책의 성격입니다. 고흐의 그림과 니체의 문장은 이미 백 년도 더 전에 완성된 것이지만, 그 위에 어떤 색을 얹고 어떤 마음으로 문장을 옮기느냐는 온전히 지금 이 책을 든 사람의 몫이니까요. 표지의 비어 있던 절반이 여기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일곱 번째 장 '축복은 삶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얻게 한다'도 담아 두고 싶은 대목입니다. 권태에서 벗어나려는 긴 싸움과 덧없는 선물에도 감사하는 여린 마음에, 인생이 마침내 축복을 내리고 그로써 자신의 사명을 되찾게 된다는 문장이에요. 고단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 건네는 담담한 인사 같았습니다.


물론 니체의 문장이 늘 다정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비참함도 시련이다' 같은 장은 인간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법 서늘해서, 처음 읽으면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다만 그런 날 선 문장까지 한 글자씩 손으로 옮겨 적다 보면, 빠르게 읽고 지나칠 때는 놓쳤던 결이 조금씩 만져집니다.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쓰는 것의 차이가 거기 있습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필사 지면의 줄 간격이 조금 더 넉넉했다면 글씨가 큰 분들도 편했겠다 싶었어요. 그 정도가 전부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덮으면 끝인 책이 있는가 하면, 곁에 두고 천천히 쓰게 되는 책이 있습니다. 이 한 권은 분명 뒤쪽입니다. 한 번에 다 읽어 치우는 책이 아니라, 마음이 헛헛한 날 한 장씩 펼쳐 색을 얹고 문장을 옮기며 스스로를 돌보게 되는 안내서에 가까워요. 그림을 오래 손에서 놓았던 사람, 좋은 문장을 눈으로만 스쳐 보냈던 사람, 하루가 너무 빠르게 흘러 정작 제 마음은 들여다볼 틈이 없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하루 십 분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부모님께 무언가 해 드리고 싶은데 마땅한 걸 못 찾았던 이에게도 조용히 건네볼 만하고요.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열기가 오래 머무는 계절이라 마음도 쉬 지치는데, 시원한 자리 하나 잡고 앉아 색연필을 쥐고 고흐의 별빛을 천천히 칠하는 저녁이라면 이 무더위도 제법 견딜 만해집니다. 물 한 잔 곁에 두고 한 장씩 채워 가기에 이만한 계절도 없겠다 싶어요.


완성된 절반을 감상하고 비어 있는 절반을 채우며 백 년 전 두 사람과 나란히 앉아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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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졌다 - 모든 것을 잃을 각오가 모든 것을 얻게 한다 ㅣ 리더의 서재 1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지음 / 프라임북스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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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강한 제목을 단 책일수록 오히려 조심스럽게 펼치게 됩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도 그랬어요. 카이사르, 결단, 승부 같은 단어가 표지에서부터 밀고 들어오는데, 이런 책은 대개 읽는 사람을 몰아붙이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예상이 조금 빗나갔습니다. 이 책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등을 떠밀기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쪽에 더 가까웠어요.


표지부터 그런 예감을 줍니다. 깊은 와인빛 바탕에 금색 아치와 기둥이 서 있고, 그 아래 토가를 걸친 사람들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논하고 있어요. 오래된 서재로 들어서는 문 같았습니다.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어딘가 진중하게 묻는 표정을 하고 있달까요.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이 책을 받았는데, 손에 들었을 때 먼저 반가웠던 건 크기였어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판형에 얇고 가벼워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틈틈이 넘기기에 좋았습니다. 두께에 비해 담고 있는 무게는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요.


책은 다섯 개의 장에 걸쳐 카이사르의 결단과 실행, 리더십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에서 오래 생각하게 된 건 성공이나 승리 같은 단어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멈춰 있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1장에 '안전지대라는 이름의 가장 안락한 감옥'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저자는 안전지대를 감옥에 빗댑니다. 창살이 보이지 않고 간수가 친절하며 식사가 따뜻하게 나오는 감옥이라서, 사람들은 그곳을 감옥이라 부르지 않고 '내 자리, 내 직장, 내 일상'이라 부른다고요. 처음엔 조금 세게 느껴지는 표현이었는데, 읽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 빨리 죽는 것보다 안전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더 비참한 죽음일 뿐이다"라는 문장에서요.


여기서 저자는 스무 살 청년 카이사르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절대 권력자 술라가 아내와 이혼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서류 한 장만 찢으면 목숨도 재산도 미래도 보장될 상황이었는데, 청년은 망설임도 변명도 없이 거절하고 도망자의 삶을 택했다고요. 저자는 이 선택을 용기가 아니라 '계산'으로 읽어냅니다. 굴복하는 순간 평생 누군가의 그림자 안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살게 되리라는 걸 직관으로 알아챘다는 거예요.


제 마음을 붙든 건 그다음 문장이었습니다. "감옥의 문은 안에서 잠겨 있다. 열쇠는 간수가 아니라 당신이 쥐고 있다." 우리를 가둔 게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이 말이 며칠을 두고 되살아났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위로 같은 한 문장. "인정하는 자는 이미 절반쯤 걸어 나온 자다." 대단한 결심을 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장으로 넘어가면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나약한 환상'이 나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살짝 뜨끔했어요. 저자는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말이 실은 두려움을 신중함으로 포장한 가면이라고 말합니다. 기원전 49년의 로마 원로원이 끝없이 회의만 반복하는 동안, 카이사르는 회의 대신 군단을 움직였다고요. "종이는 발을 이기지 못한다. 회의는 행군을 이기지 못한다"는 대비가 오래 남았습니다.


다만 이 장이 무섭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저자는 카이사르도 루비콘 앞에서 망설였다는 기록을 짚으면서, 그의 주저함이 짧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결단은 시간을 짧게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 안에 무게를 다 싣는 것"이라는 정의가 그래서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 마음에 닿은 건 이 대목이었습니다. "부족한 채로 출발했다. 모자란 채로 부딪쳤다. 그는 출발하면서 채웠고, 부딪치면서 다듬었다. 완성된 다음에 움직이는 사람은 평생 움직이지 못한다."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미뤄온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싶었어요.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발을 떼도 된다는 이 이야기가, 오래 재고 따지느라 지친 사람에게는 채찍보다 오히려 등을 토닥이는 손처럼 느껴졌습니다.


같은 장의 '분석의 늪에서 빠져나와 즉각 검을 뽑아라'에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아프리카 해안에 상륙하다 발이 미끄러져 얼굴부터 모래밭에 처박힙니다. 로마인에게 지휘관이 첫걸음에 엎어지는 건 패배의 전조로 읽히는 불길한 순간이었죠. 병사들의 사기가 얼어붙던 그때, 카이사르는 일어나며 모래 묻은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외칩니다. "아프리카여, 내가 너를 쥐었노라." 그 한마디로 패배의 흉조가 정복의 길조로 뒤집혔다고 해요.


저자는 이걸 두고 순간의 재치가 아니라 오래 쌓인 시간의 결과라고 짚습니다. 그 1초 안에는 "수십 년의 전쟁터와 수백 번의 연설과 수천 번의 군중 장악이 압축"되어 있었다고요. 여기서 저는 조금 위로를 받았습니다. 결단력이란 타고난 담대함이 아니라 평소에 벼려둔 무언가라는 이야기, 성실하게 자기 몫을 쌓아온 사람에게는 이게 오히려 든든한 말이거든요. "준비는 분석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준비는 평소의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문장이 그래서 좋았습니다.


책의 뒤편, 5장의 '동정표를 구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군림하다'는 또 다른 결로 다가왔어요. 카이사르가 원로원 계단에서 갈리아 정복을 보고할 때, 자신이 얼마나 많은 밤을 천막에서 보냈는지, 어떤 부상을 견뎠는지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오직 결과만 적었다는 대목입니다. "견딘 것은 자신이 알면 그만이고, 이룬 것은 세상이 알아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어요.


처음엔 다소 차갑게 읽혔는데, 곱씹을수록 인상이 달라지더라고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굳이 생색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 대목이 자기 삶의 방식을 조용히 긍정해주는 것처럼 들릴 수 있거든요.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걸, 저자도 아는 듯했습니다.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의 칼에 찔리는 순간조차 짧은 한마디 뒤 토가로 얼굴을 가리고 자신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내주지 않았다는 마지막 장면은, 승부의 언어를 넘어 한 사람의 품격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물론 이 책이 모두에게 편안하게 읽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곳곳에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한다거나 목적을 위해서라면 피 묻은 손도 허락하라는 식의 단호한 주장이 나오는데, 이런 대목은 사람에 따라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모든 문장에 고개를 끄덕인 건 아니었어요. 다만 이 책을 처세의 교본으로 읽기보다, 망설임에 관한 하나의 자극으로 받아들이면 그 날 선 부분들도 나름의 쓸모가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읽다 보니 마지막 장이 더 편하게 다가왔어요.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성격을 직접 밝힙니다. 카이사르를 미화하거나 그가 흘린 피를 정당화하려는 책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찢었는지, 그 찢김의 흔적을 따라가는 기록"이라고요.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앞서 만난 강한 표현들이 조금 다르게 정리되었습니다. 카이사르처럼 되라고 몰아붙이는 책이 아니라, 지금 내가 선 자리를 한 번쯤 솔직하게 마주해보라고 권하는 책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는 내내 한국의 40대, 50대가 겪는 감각과 겹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오래 다닌 직장, 익숙해진 관계, 어느새 당연해진 하루하루.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처음에는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해진다"는, 적응이라는 이름의 마비 말이에요.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가 나를 키우고 있는지 아니면 나를 깎고 있는지 가끔은 물어보라는 정도의 권유였습니다. 그 물음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 건 책이 얇고 문장이 간결해서이기도 했어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아 읽어왔지만, 이 한 권은 조금 특별한 자리에 남을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기보다, 오래 미뤄둔 작은 결정 하나를 다시 손에 쥐게 만드는 힘이 있었거든요. 거창한 강을 건너라는 게 아니라, 오늘 아침 무심코 미룬 사소한 선택 하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책. 그 정도의 조용한 변화라면 누구든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읽고 나면 아마 각자 떠올리는 얼굴이 다를 겁니다. 익숙함에 안주하고 있다는 자각이 문득 드는 사람이라면 서늘한 문장들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돌아보게 될 테고, 무언가를 오래 재느라 시작조차 못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티 내지 않고 자기 몫을 감당하며 살아온 이에게는, 견딘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저자의 문장이 뜻밖의 위안이 되어줄 것 같아요.


한여름 열기가 한창인 요즘, 오후의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에서 짧게 넘겨보기 좋은 두께입니다. 무겁게 각오하고 펼치는 책이 아니라, 잠깐의 틈에 나를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정도라 이 계절과 잘 어울렸어요. 창밖 매미 소리를 배경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은 한 권이었습니다.


결단을 다그치는 책 같지만, 실은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조용히 마주하게 하는 담백한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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