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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1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450여 년 전 프랑스 시골의 한 서재에서 미셸 드 몽테뉴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에세이'라고 부르는 글쓰기의 첫 문을 연 사람이지요. 클래시카에서 나온 <완벽을 포기할 때 삶은 가벼워진다>는 그 오래된 사유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맞춰 다시 풀어낸 책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손에 들어온 순간 먼저 반가웠던 건 판형이었어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핸드북 크기라 얇고 가벼웠거든요. 두꺼운 철학책일 거라 지레 긴장했는데, 이 정도면 며칠 나눠 천천히 읽어볼 만하겠다 싶었습니다.

표지도 그 마음을 거들었습니다. 짙은 남색 바탕에 옆모습으로 앉은 몽테뉴의 판화, 창밖으로 보이는 언덕 위 마을과 깃펜 하나. 요란하게 말 걸지 않고 사색으로 데려가는 표지였어요. 아래쪽에 적힌 "천 년을 살아남은 생각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는 문장이, 이 책이 무엇을 쥐고 있는지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았고요.
책은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지만, 결국 하나를 향해 걸어갑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아니, 완벽하려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갉아먹는다는 것. 성과를 증명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당연하게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어느 페이지에서든 자기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가장 오래 붙잡혀 있던 대목은 '목적지에 닿지 못해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챕터였어요. 저자는 '에세(Essais)'라는 말의 뿌리에 '시도하다, 시험하다, 맛보다'라는 동사가 깔려 있다는 데서 이야기를 엽니다. 몽테뉴는 자기 글에 '완성된 사상'이나 '체계적 철학'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요. 그저 '한번 해본 것들'이라고 불렀을 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한 페이지짜리 보고서에도 완벽이라는 도장을 찍어야 마음이 놓입니다. 운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석 달 안에 몇 킬로그램을 정해두고, 책을 펼치기도 전에 연말까지 몇 권을 셈합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하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서 도착하지 못한 모든 순간에 '실패'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을 몰아세우지요. 이 책이 흔드는 건 바로 그 지점입니다. 인생을 도달해야 할 종착역으로 보느냐, 걸어가는 길 자체로 보느냐. 종착역으로 보는 사람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도구일 뿐이지만, 길 자체로 보는 사람에게는 오늘의 한 걸음이 곧 인생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오늘의 한 걸음이 곧 인생이다. 도착하지 못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애초에 무너질 무엇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몽테뉴가 책을 인쇄하고도 평생 여백에 문장을 덧붙였다는 이야기, 그래서 우리 삶도 완성되는 작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새 문장이 더해지는 '영원한 초안'이라는 대목에서는, 미완성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말이 한동안 곁에 머물렀습니다.

"나를 베인 것은 상대의 칼이 아니라, 내가 미리 그어둔 선이었던 셈이다." '기대치를 바닥으로 낮출 때 찾아오는 평온'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그동안 저를 힘들게 한 것의 정체를 얼추 알 것 같았습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기대가 미덕인 줄 알았다고 고백해요. 자신에게 높은 기대를 거는 일이 성실한 의지라 칭찬받았으니까요. 그런데 나를 가장 많이 다치게 한 건 타인의 무례가 아니라, 그 무례를 만나기 전에 내가 이미 품고 있던 기대였다는 것입니다. 비를 안 맞겠다고 우산을 두 개씩 들고 나가던 사람이 그냥 비를 맞기로 결심하는 순간 비가 재난이 아니라 그냥 비가 된다는 비유도 기억에 남습니다. 기대를 낮추는 일이 냉소가 아니라 오히려 정직에 가깝다는 것, 세상에게 사람답게 살 여유를 돌려주는 일이라는 것. 마음속 기대치를 한 칸만 내려놓아도 세상이 조금은 덜 무례하게 느껴지겠다 싶었습니다.
책의 끝자락에 놓인 '남의 박수 없이도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라'는 앞의 이야기들을 껴안으며 닫힙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인정이라는 작은 사탕을 물어야 발이 떨어지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저자는 사람마다 다리 길이도, 그날의 컨디션도, 가야 할 길의 경사도 다르니 보폭이 다른 건 결함이 아니라 그저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옆 사람 보폭에 발을 맞추려다 발목을 삐고, 결국 걷는 일 자체가 싫어져 주저앉는다는 것이지요. 몽테뉴가 시장직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남은 생애를 썼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도피가 아니라 가장 어려운 선택으로 다시 읽힙니다. 박수 소리가 멈춘 적막 속에서야 비로소 자기 숨소리가 들리고, 그 숨소리가 박수보다 훨씬 정직하다는 것. 그가 남긴 "우리의 시선은 너무 바깥을 향해 있어서 정작 우리 자신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는 문장은, 세월의 거리를 무색하게 만들며 지금 우리 자리로 곧장 걸어 들어옵니다.
읽는 내내 위로받았지만,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각 챕터가 몽테뉴의 일화를 소개하고 현대의 삶에 대입한 뒤 작은 실천을 권하는 비슷한 틀을 반복해서, 뒤로 갈수록 다음 전개가 어렴풋이 짐작되는 순간이 있었어요. 다만 그 반복이 곧 이 책의 성실함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흠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은 성과와 인정이라는 저울 위에서 매일 자신을 재고 있는 사람에게 특히 가닿을 것 같아요. 무언가 이뤄야 할 것 같은데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흐릿해진 사람, 남의 속도에 맞추느라 자기 보폭을 잊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고요. 대단한 결심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좋습니다. 기대치를 한 칸 내려보라거나 하루에 한 시간만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정도의 작고 부담 없는 제안이라, 지쳐 있는 사람도 편하게 받아 들 수 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오면서 읽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이 한 권이 그랬습니다.
한여름 더위가 한창인 요즘,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이 작은 책을 펼쳐두고 오래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완벽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삶이 오히려 가벼워진다는 말이, 무더위에 지친 마음에도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 테니까요.
완벽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 철학자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가벼운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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