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
사랑좋아해적단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얇은 판형이라 가볍게 펼쳤다가, 표지에서 잠깐 멈칫했어요. 피가 흘러내리는 하트를 단검이 그대로 뚫고 있고, 옆에는 불꽃이 흔들립니다. 연애서라기엔 위태로운 그림인데, 그 위태로움이 도리어 시선을 붙들더군요. "평온한 사랑을 거부하고 제 발로 불구덩이에 뛰어든 당신에게"라는 카피까지 읽고 나서는, 이건 다정한 위로를 파는 책이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망한 사랑만 골라서 하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연애 이야기를 나눠온 '사랑좋아해적단'이 쓴 관계 심리 에세이예요. 착각과 도파민으로 시작해 집착과 통제를 지나 파국과 실연에 이르고, 그러고도 다시 사랑을 고르는 마음까지 네 단계로 훑습니다. 목차에 도파민, 리머런스, 가스라이팅, 애증, 미련 같은 단어가 줄줄이 나오는데, 이름이 낯설 뿐 겪어보지 않은 감정은 하나도 없더군요.

'가스라이팅 & 통제'를 다룬 대목에서 오래 걸렸습니다. 저자는 관계 안에서 사람의 말이 어떻게 제 뜻을 잃고 다른 용도로 바뀌어 가는지를 담담하게 늘어놓아요. 미안하다는 말이 사과가 아니라 생존 인사가 되고, 웃음이 기분이 아니라 분위기 조절 수단이 되고, 설명이 소통이 아니라 무죄 입증이 되는 과정. 위로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 정직함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저자가 내놓는 통찰 하나도 마음에 남았어요. 연애는 수평적이라지만 실제로는 갑과 을이 생기고, 을이 되는 이유가 결국 사랑의 크기 차이라는 것. 관계가 어긋났을 때 우리는 흔히 누가 더 나쁜지를 따지는데, 저자는 그 자리에 누가 더 사랑했는지를 놓습니다. 나이가 들어 지난 관계들을 돌아보니, 이 말이 꽤 오래 맞는 말처럼 들리더군요.

뒤로 갈수록 저자의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초반이 누군가를 향한 분노였다면, '미련 & 후회'에 오면 그 화살이 저자 자신에게로 돌아와요. 미련을 다시 정의하는 방식이 특히 좋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그립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사람과 함께였던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거라는 이야기. 기억이 나쁜 순간은 지우고 좋았던 장면만 골라 데려와 사람을 흔든다는 것, 그래서 향만 남고 정작 그 사람은 없다는 표현 앞에서는, 판단보다 이해가 먼저 앞섰어요. 이 챕터를 저자는 칸예 웨스트의 "Runaway"를 반복해 들으며 썼다고 밝히는데, 도망가라 외치던 사람이 정작 자신은 도망가지 못했다는 아이러니를 미련에 붙들린 마음과 겹쳐놓는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손을 뻗는 마음이야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것이고요.
그리고 마지막 '순애'에 이르러 이 책은 비로소 답 비슷한 것을 꺼냅니다. 요즘 유행하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라는 말에 저자는 대뜸 반발해요. 여태 자기가 한 더럽고 비참한 사랑은 다 무엇이었냐고요. 그러다 스스로를 정직하게 들여다봅니다. 자기가 한 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고, 도파민을 사랑으로 착각한 순간부터 이미 사랑을 거칠게 써왔다는 인정. 불안이 확인을 낳고 확인이 집착으로, 집착이 결국 가둠으로 번져간 과정을 고백하는 대목은 읽기 아플 만큼 솔직했습니다. 그렇게 저자는 사전과 다른, 자기만의 순애를 새로 씁니다. "순애는 더러운 마음을 가진 채로 끝까지 선을 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미워하고 무너뜨리고 싶은 순간이 와도 상대를 사람으로 남겨두는 것, 그 선이 결국 상대가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그 서늘한 표지를 왜 골랐는지 알 것 같아집니다.

문장은 거칠어요. 욕설도 감탄사도 걸러내지 않고 튀어나오고, 상담 콘텐츠에서 출발한 저자라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어투가 강합니다. 정제된 글을 기대한 분이라면 초반에 당황할 수 있어요. 다만 매끈하게 다듬었더라면 이 진심이 이만큼 전해졌을까 싶기도 합니다. 거친 질감이 곧 이 책의 정직함인 셈이지요.
지금 관계 속에서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어느 페이지에서든 자기 이야기를 만날 겁니다. 헤어지고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사람에게도 그렇고요. 사랑을 이미 다 지나와 이제는 담담히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읽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날의 서툰 장면들이 조용히 떠오르면서, 그때의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게 되니까요. 저는 그런 쪽에 가까운 마음으로 읽었고, 다 덮고 나서는 젊은 날의 미련했던 순간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받지만, 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처음엔 위태로워 보였던 단검과 흘러내리는 하트가,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상처를 숨기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였어요.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이렇게 뜨겁고 솔직한 책이 오히려 계절과 잘 어울립니다. 더위를 식혀주진 않아도, 자기 안의 열기를 외면하지 않게 해주니까요.
망하는 줄 알면서도 또 사랑하고 마는 우리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주는 책입니다.
#우리는망한사랑만골라서하지 #사랑좋아해적단 #모티브출판사 #연애에세이 #관계심리 #가스라이팅 #미련 #순애 #연애심리학 #사랑에세이 #책추천 #서평 #북유럽카페 #서평단 #에세이추천 #심리에세이 #이별후유증 #자기이해 #독서기록 #여름책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