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 - 40년간 시장을 이긴 월스트리트 전설의 투자법
마틴 츠바이크 지음, 송미리 옮김 / 이레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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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검은 바탕에 금빛 선 하나, 그리고 황소의 뿔. 표지 자체는 단정한데 겉을 두른 문구들은 목소리가 큽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예측이라는 이력이 맨 앞에 놓여 있으니 그럴 만합니다. 정작 책을 펼치면 그 화려한 수식과 어울리지 않는 건조한 문장들이 이어집니다.


<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의 저자는 자신을 어느 학파에도 넣지 않습니다. 통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쓰는 실무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판단을 통화정책과 금리, 테이프가 보여주는 모멘텀, 투자 심리라는 세 축으로 나눕니다. 비중 배분이 독특합니다. 종목을 고를 때는 기준의 90퍼센트가량을 펀더멘털에 기대지만, 시장 전체의 방향을 가늠할 때 펀더멘털의 몫은 10퍼센트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기업을 보는 눈과 시장을 보는 눈에 아예 다른 도구를 배정해 두는 방식입니다.


타이밍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서 판다"는 오래된 통념을 해체합니다. 다우가 4,000까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4,300에 매수하고, 6,000을 노리는 대신 5,700에 매도하면 수익 확률이 90퍼센트에 이른다는 계산이 제시됩니다. 완벽한 지점을 맞히려는 시도가 오히려 확률을 깎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계산 과정 자체는 단순한데, 그 단순함이 통념을 밀어내는 데는 충분히 쓰입니다.


책 전체를 지탱하는 문장은 두 개뿐입니다. 연준에 맞서지 말 것, 그리고 추세에 맞서지 말 것.


통화 지표를 0점에서 8점까지 매기고 모멘텀을 재는 4% 모형의 점수를 더해 하나의 종합 점수로 만드는 방식은 지금 기준으로도 명료합니다. 매수와 해제를 가르는 임계값이 왜 하필 그 숫자에 놓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얇게 느껴졌습니다. 1979년부터 1981년 사이의 데이터로 다듬어진 기준선이 지금의 시장 구조에서도 같은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책은 여기에 답하지 않고, 검증은 읽는 사람에게 넘어옵니다.


심리 지표를 다루는 장의 서두에는 P. T. 바넘 이야기가 나옵니다. 관객이 나가지 않아 회전이 막히자 출구에 '퇴로'라는 표지판을 세워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는 일화입니다. 겨냥하는 것은 군중의 발걸음입니다. 약세장 바닥에서는 악재가 줄지어 나오지만 연준이 신용을 풀고 금리를 낮추면 상승은 이미 시작되고, 강세장 초반 여섯 달은 기업 이익이 줄어드는 구간인데도 수익률이 가장 높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좋은 실적이 곧 주가 상승이라는 월스트리트식 사고가 전체적으로 틀렸다는 주장은 처음에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시장이 미래를 미리 할인한다는 원리로 되짚으면 앞뒤가 맞습니다. 저자는 그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대중은 정확히 잘못된 시점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공매도를 다룬 장은 가장 논쟁적인 부분입니다. 수익은 제한되고 손실은 무한하다는 통념을 담보 구조와 강제 청산으로 반박하고, 결국 파산할 종목이라면 어느 가격에 진입하든 "80%와 98%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앞서 매수 쪽에 걸어둔 규칙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추세는 당신의 친구다. 테이프와 싸우지 마라." 방향이 반대여도 규칙은 하나라는 태도가 이 책의 일관성입니다. 그리고 장 끝에서 저자 스스로 문을 닫아겁니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에게 공매도를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적은 뒤, 숙련된 투자자의 보조 전략으로 본다고 선을 긋습니다. 자기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대목에서 저자에 대한 신뢰가 붙었습니다. 물론 배경은 미국 시장입니다. 호가 제한이나 세제 설명은 국내 제도와 결이 다르고,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은 책 바깥의 과제로 남습니다.


번역과 편집도 성실합니다. 하락하는 종목에 포지션을 계속 쌓는 방식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옮긴이가 각주로 신용 사용 시의 위험을 따로 짚어둡니다. 저자가 지나가듯 넘긴 자리에 안전장치를 하나 더 놓은 셈입니다.


정작 오래 남은 것은 지표 쪽이 아니었습니다. 매수가보다 10에서 20퍼센트 아래에 스톱을 걸어두라는 조언, 그리고 성공을 정의한 짧은 한 줄입니다. "성공이란 수익을 내고 손실을 피하는 것이다." 뒤에는 이런 말이 붙습니다. "무엇보다 편안한 밤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숫자를 오래 다뤄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의 무게를 짐작할 겁니다. 반토막 난 자산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두 배가 필요하고, 그 두 배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손실이 발생한 며칠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미리 정해 판단이 흔들릴 자리를 좁혀두는 방식은 결국 시간을 아끼려는 장치입니다.


아쉬운 점도 적어둡니다. 지표를 매일 계산해 점수를 갱신하는 작업량은 전업으로 시장을 보는 사람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본업이 따로 있는 독자가 이 체계를 그대로 옮겨오기는 어렵고, 책도 그 부담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통합 모형의 표를 눈으로 따라가다 중간에 멈추게 되는 순간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오래 읽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개별 종목을 고르는 요령 이전에 시장 전체의 방향을 재는 순서를 알려주고, 그 순서를 독자가 직접 검증하도록 밀어붙입니다. 차트와 지표 용어가 낯선 단계라면 앞부분에서 속도가 붙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수가 흔들릴 때마다 근거 없이 결정을 바꿔온 경험이 있다면, 자기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재료로 쓸 만합니다.


시장의 소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계절에 데이터라는 건조한 언어를 붙들어보는 일에도 나름의 쓸모가 있습니다.


흔들리던 판단에 점수를 매기는 법을 알려주는 책, <마틴 츠바이크의 위대한 투자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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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사전
허진열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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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에는 마른 들꽃 한 줄기가 세로로 서 있고, 그 둘레에 열네 개의 단어가 작은 자음 기호를 달고 붙어 있습니다. 기다림에서 시작해 내려놓음과 동행을 지나 통곡과 평안을 거쳐 희망으로 끝나는 배열이에요. 꽃대에 맺힌 씨앗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전을 펼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제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색을 거의 쓰지 않은 미색 바탕이라 '고난'이라는 무거운 낱말이 도리어 조용하게 놓여 있어요. 표지에 적힌 한 줄은 고난의 자리에서 피워 낸 말 모음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았습니다. 손에 들자마자 든 생각은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이었어요. 핸드북 판형이라 가방 한쪽에 넣어 두고 틈틈이 펼치기 좋습니다. 다루는 주제의 무게와 책의 몸피가 반대편에 놓여 있는 셈인데, 읽다 보니 그 가벼움이 배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두툼한 양장으로 만나면 시작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저자 허진열 목사는 딸이 생후 70일 되던 날 담도 폐쇄증이라는 병명을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세 번의 수술과 간경화 말기 판정, 간이식으로 이어진 10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통과했고요. 저자 소개에 실린 문장 하나가 이 책의 성격을 미리 알려 줍니다. 강단에서는 고난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고난 때문에 소리 없이 울었다는 대목이에요. 위로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정작 자기 몫의 어둠 앞에서는 아무 말도 찾지 못했다는 고백에서 <고난 사전>은 출발합니다.


열네 개 장 가운데 먼저 손이 간 곳은 '맡김'이었습니다. 부제가 아빠, 나 크로와상이 먹고 싶어. 간이식 수술을 마친 아이가 중환자실을 나와 처음으로 음식을 먹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날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있던 아버지가 영상통화로 뭐든 사주겠다고 하자 아이가 고른 것은 크로와상 하나였어요. 소고기도 전복도 마다하고 그것만 먹고 싶다고 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기차표를 검색하고, 열차 안에서 신촌의 빵집을 뒤지고,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긴 줄 끝에 봉지를 받아 들고 병원까지 뛰어가는 장면이 숨 가쁘게 이어집니다. 다리도 뛰고 심장도 뛰고 마음도 같이 뛰었다는 문장에서, 이 챕터가 왜 이 책의 중심에 놓였는지 알 것 같았어요.


정작 마음에 남은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빵을 먹던 아이가 소리 없이 울고,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복도로 나가 웁니다. 그 자리에서 저자가 붙든 생각은 단순합니다. 크로와상을 사주는 일은 어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격리된 병동의 아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아이가 한 일은 말을 꺼낸 것뿐이었고, 그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문제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챕터 앞머리의 사전 정의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맡기는 순간 그 문제의 주인이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 간다는 풀이. 신학적인 설명 없이 빵 하나로 이만큼 설명해 낸 솜씨가 좋았습니다. "딸아이가 한 일은 딱 하나였다. 말한 것이고 맡긴 것이다."


'붙듬' 장에서는 같은 기차가 전혀 다른 표정으로 등장합니다. 딸이 간경화 말기 진단을 받던 날, 부부는 기차 안에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해요. 그 침묵이 평생 가장 참담한 침묵이었다고 저자는 적습니다. 서울로 달려가던 기차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기차가 한 권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셈인데, 이 배치를 발견하고 나서 책이 다르게 읽혔습니다. 그날 나온 기도는 하나님, 살려주세요 한 문장이 전부였다고 하고요. 이 장의 제목은 붙든 게 아니라 붙잡혀 있었다는 것인데, 저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붙든다'는 신앙의 상투어가 불편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제 힘으로 붙드는 것이라면 힘이 빠지는 날 놓아버리게 될 테니까요. 목회자가 자기 언어를 의심하는 대목이 나와서, 이 책이 답을 미리 쥐고 쓰인 글은 아니라는 신뢰가 생겼습니다.


뒤쪽으로 가면 '카이로스' 장이 기다립니다. 간이식을 결정한 뒤 남은 일은 기증자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는데 하필 코로나 시기였다고 해요. 장기 기증자가 평소보다 30퍼센트 가까이 줄어든 때였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고 아이의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금식하며 드린 기도를 두고 저자는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처절한 매달림이었다"고 씁니다. 새벽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점점 짧아졌다는 서술이 특히 정직하게 느껴졌어요. 간절해질수록 기도가 길어지는 게 아니라 이름만 부르게 된다는 것, 겪어 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윤이를 위한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한마디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는 장면으로 이 장은 절정에 닿습니다.


다만 여기서 잠시 생각이 갈렸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는 이 장의 결론은, 기증자를 만난 자리에서 쓰인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끝내 그 전화를 받지 못한 가정도 있었을 텐데, 그분들이 이 대목을 어떤 표정으로 읽을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자도 그 간극을 모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 바로 옆에 전해 들은 이야기 하나를 붙여 두었거든요. 4남매를 30년간 홀로 키운 권사님이 암으로 투병하던 남편과 수목원에서 보낸 마지막 한 시간의 산책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고 상황은 뒤집히지 않았지만, 그 한 시간이 이후 30년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하죠.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만 은혜의 때로 부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혔고, 그 덕에 앞의 단언이 성공담으로 미끄러지지 않았습니다.


구성에서 눈에 띄는 건 각 장 끝에 놓인 두 개의 상자입니다. 하나는 고난 극복을 위한 과제인데, 맡김 장에서는 가장 무거운 짐 하나를 털어놓아 보라고 하고, 붙듬 장에서는 오늘 하루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 보라고 하고, 카이로스 장에서는 지금 기다리는 때가 무엇인지 적어 보라고 권합니다. 다른 하나는 독자가 직접 그 단어의 뜻을 적는 세 줄 여백이고요. 읽는 사람이 자기 사전을 완성해 가도록 만든 장치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여백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워크북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몇 장을 넘기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이 책의 열네 개 표제어는 저자의 정의일 뿐이고, 같은 낱말이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걸 인정하는 설계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빈칸을 억지로 채울 필요는 없고, 언젠가 자기 문장이 생기면 그때 적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책 끝의 부록은 간이식이 가르쳐 준 복음을 다룹니다. 한 사람의 몸에서 떼어 낸 것이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십자가와 겹쳐 읽는 대목인데, 앞의 열네 장을 다 통과한 뒤에 읽으면 무게가 다릅니다. 이론이 아니라 수술실에서 확인된 이야기니까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는 분이라면 이 한 권이 답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저자 자신이 아직 통과 중인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으니까요. 대신 같은 자리에 먼저 앉아 본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립니다. 곁에 아픈 사람을 두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에요. 위로의 문장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섣부른 말을 아끼는 법을 보게 되어서요. 신앙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성경 인물이 등장하는 대목이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크로와상과 병원 복도와 전화벨 소리 같은 장면들은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이 닿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의 부제가 가장 혹독한 추위 끝에 피어난 봄꽃입니다. 매미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8월에 겨울과 봄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일이 조금 어긋나 보일 수도 있지만, 더위 한복판에서도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겨울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표지의 마른 들꽃이 다시 떠오릅니다. 피어 있는 꽃이 아니라 말린 꽃을 표지에 올린 이유를, 다 읽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간증이 아니라 아직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건네는 열네 개의 낱말, 끝을 모르는 시간을 지나는 이에게 조용히 곁을 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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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는 어디까지 늦출 수 있는가 - 오토파지부터 NMN까지, 과학이 밝혀낸 늙지 않는 시대의 비밀
요시모리 다모쓰 지음, 이선이 옮김 / 이너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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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흰 바탕 한가운데를 모래시계가 가릅니다. 위에서 흘러내린 모래알이 아래로 쌓이는데, 그 쌓인 자리에서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져요. 모래시계란 대개 줄어드는 쪽을 보여주는 물건인데, 이 표지는 그 아래에서 무언가 다시 생겨나는 장면을 그려 놓았습니다.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그림 한 장이 내용 전체를 미리 요약해 두었더군요.


지은이 요시모리 다모쓰는 오사카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오토파지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연구실을 열 때 조교수로 합류했던 사람이고요. <노화는 어디까지 늦출 수 있는가>의 미덕은 저자가 혼자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토파지, 세포 노화, 면역, 피부, 장수 유전자, 구조생물학, 수면까지 열 개 장을 지나는 동안 저자는 각 분야 연구자를 직접 찾아가 들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해요. 그래서 확신에 찬 주장보다 조심스러운 문장이 더 자주 나옵니다.


1장에서 만나는 '루비콘'이라는 단백질 이야기가 도입부터 흥미로웠습니다. 오토파지를 억제하는 이 단백질을 2009년 저자의 연구 그룹이 발견했고, 이름은 카이사르가 무장한 채 건넜다는 루비콘강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오토파지에 대한 반역자라는 뜻으로 저자가 직접 붙였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포 안을 교체하고 청소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 저하가 신경퇴행성 질환이나 당뇨병과도 얽혀 있다는 설명 다음에 이런 문장이 놓입니다.


"노화는 반드시 거스를 수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앞 문단에서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마음을 먼저 꺼내 보인 뒤에 나오는 말이라 더 조용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단백질이라는 낯선 말을 레고 블록에 빗대 풀어냅니다. 스무 종류의 아미노산이 기본 블록이고, 피부 탄력을 맡는 콜라겐이나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이 모두 같은 블록의 다른 조합이라는 식이죠. 음식으로 먹은 단백질은 소화 과정에서 다시 블록 상태로 돌아가고, 우리 몸의 단백질은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에 전부 교체된답니다. 그 대목 끝에 붙은 비유가 기억에 남아요. 강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늘 같아 보여도 그 속의 물은 늘 새로운 것과 같은 이치라는 문장입니다.


다만 읽으면서 갸웃한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루비콘을 반역자라 부르면서도, 오토파지가 지나치게 활발해지면 세포에 꼭 필요한 것까지 분해할 위험이 있으니 루비콘이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고 적어요. 실제로 일부 장기에서는 루비콘이 없을 때 중요한 것들까지 파괴되었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곧이어 루비콘을 억제하면 수명이 연장되거나 병적 상태가 개선되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면서 브레이크를 풀면 좋아진다는 두 이야기 사이의 간격이 쉽게 메워지지 않았어요. 물론 저자는 그 결과가 선충과 초파리, 쥐 조직에서 확인된 것이라고 범위를 분명히 밝혀 둡니다. 답을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쪽을 택한 셈이니, 불친절하다기보다 정직한 서술이라 봐야겠지요.


3장의 흉선 이야기는 이 나이대에 읽기에 각별합니다. 심장 위쪽에 있는 이 작은 기관을 저자는 학교라고 부릅니다. 새로 만들어진 T세포는 온몸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여기를 거쳐 시험을 봐요. 교사 역할을 하는 세포가 몸속 여기저기서 만들어지는 물질을 학교 안에 미리 재현해 놓고, 이건 공격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교재로 내놓는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축소판을 한 기관 안에 차려 놓고 예습을 시키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졸업률이 10퍼센트 남짓이랍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학교에서 죽습니다.


문제는 학교도 늙는다는 데 있습니다. 흉선 기능은 사춘기 무렵이 정점이고, 40대가 되면 새로 교육되는 T세포가 신생아기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해요. 세포 수 자체는 인생 후반부까지 유지되지만 그 시간 동안 조금씩 버그가 쌓이듯 문제가 축적된다는 표현을 저자는 씁니다. 흉선이 더는 충분히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서 면역세포 일부가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다고 그는 적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장 나는 게 아니라 오래 돌아간 시스템에 오류가 누적되는 그림이라, 마흔 넘어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수면을 다룬 10장은 이 도서에서 가장 실용적인 자리이면서 가장 아픈 자리이기도 합니다. 쇼트 슬리퍼는 유전자로 결정되며 훈련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많게 잡아도 수백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다고 합니다. 하루 세 시간만 잤다는 나폴레옹조차 자주 졸았던 인물로 유명하니 자칭 쇼트 슬리퍼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났고요. 안 자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씁니다.


"실제로는 그냥 무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수면 부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여섯 시간 수면이 열흘 이어지면 집중력이 밤을 꼬박 새운 상태가 되고, 이것이 만취 상태와 비슷한 생산성이라는 연구도 소개됩니다. 잠을 줄여 버티는 일을 오래 성실함의 증거로 여겨온 우리 사회에서는 꽤 서늘하게 읽힐 부분이에요. 학원 일정에 밀려 아이들 잠이 부족하다는 대목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수면이 모자라면 기억을 맡는 해마의 발달이 방해받아 어린 시절의 부족이 평생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붙어 있거든요.


성인의 적정 수면은 일곱 시간 전후로 이야기되는데, 저자가 정작 강조하는 건 시간의 길이가 아닙니다. 정말로 자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지요. 평범하게 잔다고 여기지만 질이 아주 나쁜 경우가 있고, 세 시간밖에 못 잤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여덟 시간을 푹 잔 경우도 있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살짝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서투인이며 NAD며 알파폴드며 실험실 최전선을 아홉 장 내내 따라왔는데 결론이 잘 자라는 이야기로 모이니까요. 그런데 이 소박함이 도리어 이 책의 성실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는 NMN 점적주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 노화세포를 몽땅 없애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점을 굳이 적어 둡니다. 3장을 닫는 소제목처럼 노화는 온몸이 연결된 문제라서 없애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회춘 시장이 요란한 시대에 이 정도로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교양서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읽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을 만났지만 이렇게 읽는 속도가 자꾸 늦춰지는 책은 오랜만이었어요.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한 문단 읽고 제 몸을 한 번씩 떠올리게 되어서였습니다. 건강 정보를 찾아 서점을 서성이던 분이라면 유행하는 성분 이름을 외우는 대신 몸에서 벌어지는 일의 순서를 알게 될 테고, 부모님 연세를 헤아리며 고령화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는 분에게는 개인의 건강 너머까지 생각이 뻗어 나갈 겁니다. 생물 시간이 지루했던 기억이 있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레고와 학교와 강물로 설명하는 책이니까요.


열대야가 길게 이어지는 8월입니다. 밤마다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드는 날이 늘어나는 계절인데, 이 도서를 읽고 나니 그 뒤척임이 그저 여름 탓만은 아니겠구나 싶어집니다. 세포 안에서는 지금도 청소가 진행되고 있고, 흉선이라는 작은 학교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을 테니까요. 잘 자는 일이 그 모든 작업을 돕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면, 올여름 남은 밤은 조금 다르게 보내 볼 만합니다.


노화를 세포의 언어로 설명하면서도 섣부른 희망에 브레이크를 걸 줄 아는, 드물게 정직한 생명과학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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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입니다만, 주식으로 더 법니다 - 월급쟁이 투자자 3인의 계좌 성장 보고서
서정 외 지음, 권오태 외 엮음 / 경이로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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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퇴사는 왜 안 해요. 이 물음을 그대로 제목으로 단 장이 <직장인입니다만, 주식으로 더 법니다>의 1부 안쪽에 놓여 있습니다. 붙어 있는 부제가 이래요. 분명 취업이 꿈이었는데, 입사하면 퇴사가 꿈. 두 줄짜리 문장인데 회사 밥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여기서부터 페이지가 술술 넘어갑니다.


경이로움에서 펴낸 이 책은 세 명의 직장인 투자자가 남긴 일 년치 기록입니다. 30대 초반 영업직 서정, 40대 후반 글로벌 기업에 다니는 제시모어, 40대 초반 대기업의 쓰리쿼터.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 달마다의 매매와 판단을 적어두고, 2026년 5월에 다시 만나 나눈 인터뷰까지 붙였습니다. 계좌 내역은 실제 데이터라고 밝혀두었고요.


앞서 말한 그 장에서 세 사람은 같은 질문에 각자 답합니다. 서정은 조건을 셉니다. 최근 몇 년 잘했다고 평생 잘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잘나가던 고수들이 환경이 바뀌자 무너지는 걸 여럿 봤다고 해요. 자산과 시간과 준비, 이 셋이 갖춰지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계산입니다. 회사에서 얻는 게 아직 많다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적어두었는데, 경험과 명함과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나란히 꼽더군요. 그러니 지금은 단순하다, 월급으로 한 푼이라도 더 벌자.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갑니다.


제시모어의 답은 결이 좀 다릅니다. 일 년 단위로 보면 몇 달쯤 그르쳐도 전체 성적은 나쁘지 않은데, 아직 실력과 자본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어요. 휴가를 내고 전념하면 매매가 잘 되는 경험도 있지만 시장에 붙어 있는 시간과 수익이 비례한다는 보장은 없다며 선을 긋습니다. "투자는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야 잘 되는 법이다"라는 한 줄이 그의 논리를 압축합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고정 수입이 조급함을 걷어내 주고, 그 여유가 결국 계좌를 지킨다는 것. 퇴사를 정든 울타리를 나서는 일로 표현한 대목에서는 같은 연배로서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쓰리쿼터에 이르면 이야기가 사뭇 무거워집니다. 명절에 큰아버지가 요즘 뭐 하냐고 물으면 회사 잘 다닌다는 대답으로 충분하다는 장면에서 시작해요. 전업 투자자라고 답했을 때 따라올 침묵, 아이 학부모 모임에서 아내가 받을 질문까지 그려봅니다. 한 달에 몇천만 원을 벌어도 명함이 필요하다는 고백이 이어지는데, 돈 이야기라기보다 자리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그러고는 시선을 더 멀리 던져요. 합계출산율 0.72명, 지방 소도시의 인구 소멸, 폐교와 미분양을 늘어놓은 뒤 주식 차트를 보다가 인구 차트를 본다고 적습니다. 지금 매매하는 기업들이 20년 후에도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 이 책의 제목을 떠받칩니다. "나는 불안 속에 상수가 필요하다. 변수만으로 그 모든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세 답이 한자리에 놓이니 나이대별로 불안의 모양이 다르다는 게 보입니다. 서정은 서른아홉이 되는 해 12월까지 퇴사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었고, 쓰리쿼터는 마흔 이후 남은 사십 년을 걱정합니다. 같은 회사원인데 시계추가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는 셈이지요.


'자존감을 매수했습니다'라는 장은 이 책에서 숫자가 가장 적게 나오는 곳입니다. 서정이 어느 날 복기를 마치고 누웠다가 문득 계좌 개설 이후 전체 실현손익을 처음으로 눌러봤다는 대목이 있어요. 숫자 앞에 처음으로 플러스가 붙어 있었고, 그제야 6년 동안 단 한 해도 빠짐없이 손실을 봤다는 사실을 제대로 마주했다고 씁니다. 어쩌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문장이 뒤따르고요. 성장이라는 게 그때그때는 보이지 않다가 성공과 실패가 쌓인 뒤에야 계단처럼 드러났다는 비유가 오래 남습니다. "매매는 느려졌지만, 수익은 오히려 더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가 혼잣말처럼 적어둔 문장은 이렇습니다. 이대로 계속 나아가면 된다, 나 지금 제대로 하고 있구나.


같은 장에서 눈물이 났을 때 명품이나 외제 차가 떠오를 줄 알았는데 부모님께 밥 한 끼 대접하고 편안한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다는 문단도 좋았습니다. 돈을 버는 이유를 이렇게 소박하게 적어둔 투자서는 흔치 않지요.


제시모어의 장면은 평범한 수요일 엘리베이터 안입니다. 아침에 매매를 걸어두고 회의에 들어갔다가, 커피 사러 내려가는 길에 잔액을 확인하니 주식만으로 월급의 배가 넘는 수익이 나 있었다는 이야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보고서를 쓰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어쩌지 못했다고 적어둔 문장에서 웃음이 났습니다. 그가 벅찼던 건 액수보다도, 통제할 수 없는 커다란 파도 속에서 손으로 직접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냈다는 감각이었다고 해요. 회사에서 쏟는 노력에는 월급이라는 천장이 있는데 공부해서 만든 수익에는 그 천장이 없더라는 것.


쓰리쿼터의 장면은 코엑스 전시 부스 뒤편입니다. 닷새짜리 행사 나흘째 저녁, 철거 분담을 두고 협력사와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에 손목시계가 울립니다. 며칠 전 분할 매수해 둔 종목에 변동성 완화 장치가 걸린 것. 사람들이 계약서를 들먹이며 싸우는 동안 그는 반걸음 물러나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다가 전량 매도합니다. 그러고는 앞으로 나서서 오늘 정리는 자기가 다 하겠다고 말해요. 팀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야 네가 왜, 하고 되묻는 장면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여유는 지갑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았다고 그는 적습니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사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말로 그 장은 닫히고요.


다만 그 뒤가 조금 걸렸습니다. 이날 이후 그는 야근이든 출장이든 주말 근무든 먼저 손을 든다고 해요. 눈치 보지 않고 매매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고, 그렇게 회사에서는 성실한 직원으로 자리 잡았다고 씁니다. 솔직한 기록이라 오히려 믿음이 가면서도, 성실함의 동력이 회사 밖에 있다는 그림은 마음이 개운하지만은 않더군요. 근무 시간 중 매매를 다루는 대목도 마찬가지고요. 저자를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이 방식이 누구에게나 옮겨 심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쓰리쿼터가 직장인일수록 단기 매매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대목 역시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편이 좋겠습니다. 장 시간과 근무 시간이 통째로 겹치는 자리라면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이야기니까요.


책이 미더운 건 잘된 달만 골라내지 않아서입니다. 2025년 11월 노트의 제목부터 꼬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예요. 지수가 하루 2~3퍼센트 급등했다가 다음 날 그만큼 내리꽂는 장세를 조울증이라 부르고, 증권사에 스님이 앉아 계셨다더라, 여든 넘은 어르신들이 계좌를 만들러 오신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인간지표라며 옮겨둡니다. 그러면서 정작 그 지표가 맞는지는 판단을 미뤄요. 손실의 원인 두 가지를 이번 달 손실의 1등 공신, 아니 1등 사신이라고 적은 대목에서는 실없이 웃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손실의 달 안에 상한가를 잡은 날이 함께 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잘한 날과 못한 달을 같은 장에 나란히 두는 편집이 이 책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손절하지 않고 버텼다면 더 벌 수 있었던 사례가 많아 흔들릴 뻔했지만 원칙을 지킨 자신을 대견스러워하며 넘겼다는 마무리도 그렇고요. 이기는 법을 자랑하는 대신 지지 않는 법을 보여주겠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표지를 다시 보게 됩니다. 침대에 누운 사람 머리 위로 붉은 캔들이 피어오르고, 옆에는 노트북과 서류가 놓인 책상, 바닥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서류가방. 잠자리까지 따라오는 계좌 생각을 이렇게 담백한 선으로 그려두다니, 다 읽고 나니 이 그림이 책의 요약이었구나 싶습니다. 판형도 두께도 부담 없고 월별 노트와 문답이 짧게 끊겨 있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몇 꼭지씩 읽어도 흐름이 끊기지 않습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만난 도서인데, 그동안 받아본 책들 가운데 자기 실패를 이만큼 남겨둔 기록은 드물었습니다. 이래학 님도 추천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쪽은 화려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단단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고 적었더군요. 종목을 얻으러 펼치면 실망할 수도 있는 책입니다. 대신 지금 손실 구간을 지나며 혼자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에 시달리는 분이라면, 옆자리 동료가 건네는 것 같은 목소리를 여기서 만날 겁니다. 오래 성실하게 살았는데 통장이 그 성실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는 허탈함을 아는 분이라면 더 그렇겠고요.


8월도 어느새 초순을 넘겼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려면 아직 멀었고, 시장도 늘 어느 쪽으로든 흔들리지요. 그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조용히 계좌를 키워온 사람들의 기록은 무언가를 크게 바꾸라고 재촉하지 않아서 편안했습니다. 월급이 상수라는 말이 이렇게 든든하게 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대박 신화 대신 손실까지 남겨둔 일 년치 기록, 월급을 상수로 삼고 버티는 사람들의 정직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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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20개의 키워드로 전하는 인생의 지혜
한상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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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숲을 숲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가 책의 뒷자락에 나옵니다. "세상을 숲으로 비유한다면, 모든 나무를 장에 내다 팔 목재로만 보는 사람은 평생 나무꾼의 마음으로 살게 된다." 나무꾼에게 나무는 돈의 원천일 뿐이라 다정한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하고, 만약 그가 나무를 사랑하게 된다면 매일 도끼질해야 하는 제 직업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문장이 뒤따릅니다. 도끼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실은 사랑하지 않기로 한 선택에 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김영사에서 나온 176쪽짜리 교양철학서입니다. 지은이 한상연 교수는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함께 전공한 철학자로, 화학공학을 공부하다 독일로 건너가 철학과 독문학, 역사학을 다시 배운 이력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지, 세상을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지, 그리고 어떻게 나답게 살지. 다섯 갈래 물음 아래 스무 개의 키워드를 배치한 구성입니다.


표지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살구빛 바탕 한가운데 모래시계가 서 있고, 위칸에는 작은 탁자와 화분을 곁에 둔 사람이 두 손을 머리 뒤로 받친 채 앉아 있습니다. 아래로 쏟아져 내린 모래는 누워 있는 커다란 얼굴을 이루고 있고요. 그리고 모래시계 왼편 아래쪽, 서류가방을 든 사람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습니다. 앞서 읽은 나무꾼과 이 뒷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손바닥에 얹으면 딱 한 뼘인 판형이라 어디든 들고 다니기 좋은데, 안에 담긴 문장들은 그 가벼움에 기대어 술술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읽는 속도가 저절로 줄어든 자리는 2부의 '기분' 챕터였습니다. 저자는 철학사를 짧게 훑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을, 루소를 비롯한 낭만주의자들은 감정을,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의지를 인간의 본질로 보았다고 정리한 뒤, 하이데거는 그 모든 것에 앞서 기분이 있다고 말했다는 점을 짚습니다. 기분과 감정도 구분해 둡니다. 오늘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지 결정하는 바탕이 기분이니, 기분 쪽이 더 근원적인 토대라는 설명이에요. 그러면서 <존재와 시간>의 한 대목을 가져옵니다. "구체적 상황마다 자신이 세계 안에 어떻게 있는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열어내어 알려주는 것은 바로 기분이다."


이 챕터에서 마흔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조건들을 열거하는 대목이 꽤 구체적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언제든 교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효율만 요구하고, 곁의 사람들도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 들기 쉽고, 여기에 노화와 함께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가 얹힙니다. 기분이 상해 있으면 세상은 전쟁터가 되고 타인은 경계 대상이 될 뿐이라는 진술이 이어지고요. 그러니 기분을 되잡는 일이 억지로 웃으며 버티라는 주문일 리 없습니다. 저자는 그것을 도구적 논리와 불안에서 존재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일이라 부릅니다.


3부의 '시간'은 나이 듦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허락된 인생의 총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물리적 시간과 분명한 시작과 끝을 지닌 제 인생의 시간을 갈라놓습니다. 자아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불교의 무상 개념과 나란히 놓아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하이데거 자체의 논지라기보다 이해를 돕기 위한 다리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한국 독자에게는 이만한 입구가 없지 싶어요. 보들레르가 그린 권태라는 괴물, 한 번의 하품으로 지구라도 삼킬 수 있다는 그 이미지를 끌어와 현대인이 왜 그 괴물에게 잡아먹혔는지 설명하는 대목도 인상 깊습니다. 세계를 질량과 에너지와 돈이라는 숫자로 환산하는 습관 때문이라는 것. 무엇이든 숫자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으면 결국 제 인생마저 상품이 되고, 대체 가능한 존재는 근원적으로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입니다.


3부 '결단성'의 도입부는 마흔을 조금 아프게 건드립니다. 완고하다는 말의 사전적 뜻인 융통성이 없이 올곧고 고집이 세다에서 출발해, 융통성 없음과 올곧음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산다는 사실을 짚거든요. 저자는 마흔이 어느 정도 완고해져야 할 나이일지도 모른다고 먼저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 올곧음이 남을 향한 심판의 칼날로 바뀌는 순간이고, 그런 사람 곁에서는 언제 죄인이 될지 몰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선함이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훌륭함이 아니라 꼰대 기질이라 부른다는 문장에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훈계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개 상대의 복종이라는 지적도 함께 놓여 있고요.


같은 이야기가 5부 '초연함'에서 완성됩니다. 독일어 Gelassenheit를 저자는 그냥 내버려둠으로 풀어냅니다. 만나는 모든 존재를 제 삶을 위한 도구로 가공하지 말고, 그들이 지닌 본모습 그대로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라는 뜻이지요. 화려한 꽃은 쓸모가 있으니 가치 있고 이름 없는 들꽃은 무가치하다고 나누는 태도를 가치의 폭력이라 부르는 대목, 그 습관이 모든 것에 돈값을 매기는 버릇으로 이어진다는 흐름이 나무꾼 비유로 흘러갑니다. 돈 버는 데 방해되면 언제든 꽃밭을 엎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장이 특히 서늘했어요. 명절에 화투를 치며 돈 따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는 돈은 딸지 몰라도 친구와의 다정함과 제 품격을 함께 잃습니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숲길>에 실린 한 줄이 인용됩니다. "온전한 것은 스스로 물러난다." 물러남을 좌절로 읽는 대신, 상대와 사물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존재의 공간을 확보해주는 배려로 놓는 해석입니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책임져야 할 사람일수록 제 틀에 맞추려 들지 말고 그만의 색깔로 빛나게 두라는 권고가 다른 챕터에도 반복해 나오는데, 자리를 비워주는 일이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말이 결국 이 책 전체의 한 문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무 개의 키워드로 흩어져 있지만, 사람과 사물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각도만 바꿔 되풀이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거든요.


다만 마음에 걸린 대목이 있습니다. 초연함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저자는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초연하고 기분 좋게 웃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도 더 높다고 쓰고, 뒷부분에서는 초연함을 가장 성숙하고 강력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성공의 정점이라 표현합니다. 바로 앞까지 모든 것에 값을 매기는 습관을 비판해놓고 마무리에서 성공이라는 잣대를 다시 불러들이는 셈이라, 논지가 살짝 어긋나 보였어요. 초연함이 좋은 이유가 성공에 유리해서라면 그 순간 초연함도 도구가 되니까요. 두 곳에서 같은 어법이 반복되는 걸 보면 우연한 표현은 아닌 듯한데, 독자를 설득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문장이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책을 닫는 자리에는 시인 김수영이 놓여 있습니다. 4·19의 시인으로 기억되는 그가 평소 탐독한 철학자가 하이데거였고, 세상을 떠난 뒤 아내 김현경 씨가 <존재와 시간>을 무덤에 함께 넣어주었다는 일화가 실려 있어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한탄했던 시인의 목소리 안에 이미 이 철학의 온도가 스며 있었다는 이야기라, 독일어 개념 앞에서 주춤하던 마음이 마지막에 와서 조금 풀어집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책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를 정리해 두어야 할 것 같은 책과, 정리보다 태도를 조금 옮겨 앉게 만드는 책이 나뉘는데 이 도서는 후자 쪽이었습니다.


입추를 코앞에 둔 팔월입니다. 한낮 볕은 여전한데 해 지는 시각이 며칠 사이 눈에 띄게 당겨졌더군요. 여름이 스스로 물러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온전한 것은 물러난다는 저 짧은 문장이 계절에도 해당되는 말처럼 들립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계산하기 전에 지금 어떤 기분으로 서 있는지부터 살펴보라는 것. 얇은 한 권이 건네는 몫은 거기까지이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사물도 쓸모로만 재던 눈에서 도끼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손안에 들어오는 하이데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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