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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하이데거 - 20개의 키워드로 전하는 인생의 지혜
한상연 지음 / 김영사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숲을 숲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 이야기가 책의 뒷자락에 나옵니다. "세상을 숲으로 비유한다면, 모든 나무를 장에 내다 팔 목재로만 보는 사람은 평생 나무꾼의 마음으로 살게 된다." 나무꾼에게 나무는 돈의 원천일 뿐이라 다정한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하고, 만약 그가 나무를 사랑하게 된다면 매일 도끼질해야 하는 제 직업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문장이 뒤따릅니다. 도끼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실은 사랑하지 않기로 한 선택에 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마흔에 읽는 하이데거>는 김영사에서 나온 176쪽짜리 교양철학서입니다. 지은이 한상연 교수는 하이데거와 슐라이어마허를 함께 전공한 철학자로, 화학공학을 공부하다 독일로 건너가 철학과 독문학, 역사학을 다시 배운 이력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지, 세상을 어떻게 대할지, 어떻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질지, 그리고 어떻게 나답게 살지. 다섯 갈래 물음 아래 스무 개의 키워드를 배치한 구성입니다.

표지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살구빛 바탕 한가운데 모래시계가 서 있고, 위칸에는 작은 탁자와 화분을 곁에 둔 사람이 두 손을 머리 뒤로 받친 채 앉아 있습니다. 아래로 쏟아져 내린 모래는 누워 있는 커다란 얼굴을 이루고 있고요. 그리고 모래시계 왼편 아래쪽, 서류가방을 든 사람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습니다. 앞서 읽은 나무꾼과 이 뒷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손바닥에 얹으면 딱 한 뼘인 판형이라 어디든 들고 다니기 좋은데, 안에 담긴 문장들은 그 가벼움에 기대어 술술 흘러가지만은 않습니다.
읽는 속도가 저절로 줄어든 자리는 2부의 '기분' 챕터였습니다. 저자는 철학사를 짧게 훑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성을, 루소를 비롯한 낭만주의자들은 감정을,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의지를 인간의 본질로 보았다고 정리한 뒤, 하이데거는 그 모든 것에 앞서 기분이 있다고 말했다는 점을 짚습니다. 기분과 감정도 구분해 둡니다. 오늘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지 결정하는 바탕이 기분이니, 기분 쪽이 더 근원적인 토대라는 설명이에요. 그러면서 <존재와 시간>의 한 대목을 가져옵니다. "구체적 상황마다 자신이 세계 안에 어떻게 있는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열어내어 알려주는 것은 바로 기분이다."

이 챕터에서 마흔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조건들을 열거하는 대목이 꽤 구체적입니다. 세상은 사람을 언제든 교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효율만 요구하고, 곁의 사람들도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 들기 쉽고, 여기에 노화와 함께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가 얹힙니다. 기분이 상해 있으면 세상은 전쟁터가 되고 타인은 경계 대상이 될 뿐이라는 진술이 이어지고요. 그러니 기분을 되잡는 일이 억지로 웃으며 버티라는 주문일 리 없습니다. 저자는 그것을 도구적 논리와 불안에서 존재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일이라 부릅니다.
3부의 '시간'은 나이 듦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허락된 인생의 총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물리적 시간과 분명한 시작과 끝을 지닌 제 인생의 시간을 갈라놓습니다. 자아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이야기를 불교의 무상 개념과 나란히 놓아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하이데거 자체의 논지라기보다 이해를 돕기 위한 다리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한국 독자에게는 이만한 입구가 없지 싶어요. 보들레르가 그린 권태라는 괴물, 한 번의 하품으로 지구라도 삼킬 수 있다는 그 이미지를 끌어와 현대인이 왜 그 괴물에게 잡아먹혔는지 설명하는 대목도 인상 깊습니다. 세계를 질량과 에너지와 돈이라는 숫자로 환산하는 습관 때문이라는 것. 무엇이든 숫자로 대체할 수 있다고 믿으면 결국 제 인생마저 상품이 되고, 대체 가능한 존재는 근원적으로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입니다.

3부 '결단성'의 도입부는 마흔을 조금 아프게 건드립니다. 완고하다는 말의 사전적 뜻인 융통성이 없이 올곧고 고집이 세다에서 출발해, 융통성 없음과 올곧음이 한 문장 안에 함께 산다는 사실을 짚거든요. 저자는 마흔이 어느 정도 완고해져야 할 나이일지도 모른다고 먼저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 올곧음이 남을 향한 심판의 칼날로 바뀌는 순간이고, 그런 사람 곁에서는 언제 죄인이 될지 몰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선함이 타인에게 부담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훌륭함이 아니라 꼰대 기질이라 부른다는 문장에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훈계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대개 상대의 복종이라는 지적도 함께 놓여 있고요.
같은 이야기가 5부 '초연함'에서 완성됩니다. 독일어 Gelassenheit를 저자는 그냥 내버려둠으로 풀어냅니다. 만나는 모든 존재를 제 삶을 위한 도구로 가공하지 말고, 그들이 지닌 본모습 그대로 있도록 자리를 비워주라는 뜻이지요. 화려한 꽃은 쓸모가 있으니 가치 있고 이름 없는 들꽃은 무가치하다고 나누는 태도를 가치의 폭력이라 부르는 대목, 그 습관이 모든 것에 돈값을 매기는 버릇으로 이어진다는 흐름이 나무꾼 비유로 흘러갑니다. 돈 버는 데 방해되면 언제든 꽃밭을 엎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문장이 특히 서늘했어요. 명절에 화투를 치며 돈 따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는 돈은 딸지 몰라도 친구와의 다정함과 제 품격을 함께 잃습니다.

여기서 하이데거의 <숲길>에 실린 한 줄이 인용됩니다. "온전한 것은 스스로 물러난다." 물러남을 좌절로 읽는 대신, 상대와 사물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존재의 공간을 확보해주는 배려로 놓는 해석입니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책임져야 할 사람일수록 제 틀에 맞추려 들지 말고 그만의 색깔로 빛나게 두라는 권고가 다른 챕터에도 반복해 나오는데, 자리를 비워주는 일이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라는 말이 결국 이 책 전체의 한 문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무 개의 키워드로 흩어져 있지만, 사람과 사물을 도구로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각도만 바꿔 되풀이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거든요.
다만 마음에 걸린 대목이 있습니다. 초연함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저자는 초조함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초연하고 기분 좋게 웃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도 더 높다고 쓰고, 뒷부분에서는 초연함을 가장 성숙하고 강력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성공의 정점이라 표현합니다. 바로 앞까지 모든 것에 값을 매기는 습관을 비판해놓고 마무리에서 성공이라는 잣대를 다시 불러들이는 셈이라, 논지가 살짝 어긋나 보였어요. 초연함이 좋은 이유가 성공에 유리해서라면 그 순간 초연함도 도구가 되니까요. 두 곳에서 같은 어법이 반복되는 걸 보면 우연한 표현은 아닌 듯한데, 독자를 설득하려는 배려에서 나온 문장이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책을 닫는 자리에는 시인 김수영이 놓여 있습니다. 4·19의 시인으로 기억되는 그가 평소 탐독한 철학자가 하이데거였고, 세상을 떠난 뒤 아내 김현경 씨가 <존재와 시간>을 무덤에 함께 넣어주었다는 일화가 실려 있어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을 한탄했던 시인의 목소리 안에 이미 이 철학의 온도가 스며 있었다는 이야기라, 독일어 개념 앞에서 주춤하던 마음이 마지막에 와서 조금 풀어집니다.
북유럽 카페를 통해 서평단으로 받은 책입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무언가를 정리해 두어야 할 것 같은 책과, 정리보다 태도를 조금 옮겨 앉게 만드는 책이 나뉘는데 이 도서는 후자 쪽이었습니다.
입추를 코앞에 둔 팔월입니다. 한낮 볕은 여전한데 해 지는 시각이 며칠 사이 눈에 띄게 당겨졌더군요. 여름이 스스로 물러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온전한 것은 물러난다는 저 짧은 문장이 계절에도 해당되는 말처럼 들립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계산하기 전에 지금 어떤 기분으로 서 있는지부터 살펴보라는 것. 얇은 한 권이 건네는 몫은 거기까지이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도 사물도 쓸모로만 재던 눈에서 도끼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손안에 들어오는 하이데거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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