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어디까지 늦출 수 있는가 - 오토파지부터 NMN까지, 과학이 밝혀낸 늙지 않는 시대의 비밀
요시모리 다모쓰 지음, 이선이 옮김 / 이너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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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흰 바탕 한가운데를 모래시계가 가릅니다. 위에서 흘러내린 모래알이 아래로 쌓이는데, 그 쌓인 자리에서 사람의 형상이 만들어져요. 모래시계란 대개 줄어드는 쪽을 보여주는 물건인데, 이 표지는 그 아래에서 무언가 다시 생겨나는 장면을 그려 놓았습니다.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그림 한 장이 내용 전체를 미리 요약해 두었더군요.


지은이 요시모리 다모쓰는 오사카대학교 명예교수입니다. 오토파지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가 연구실을 열 때 조교수로 합류했던 사람이고요. <노화는 어디까지 늦출 수 있는가>의 미덕은 저자가 혼자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오토파지, 세포 노화, 면역, 피부, 장수 유전자, 구조생물학, 수면까지 열 개 장을 지나는 동안 저자는 각 분야 연구자를 직접 찾아가 들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정리해요. 그래서 확신에 찬 주장보다 조심스러운 문장이 더 자주 나옵니다.


1장에서 만나는 '루비콘'이라는 단백질 이야기가 도입부터 흥미로웠습니다. 오토파지를 억제하는 이 단백질을 2009년 저자의 연구 그룹이 발견했고, 이름은 카이사르가 무장한 채 건넜다는 루비콘강에서 가져왔다고 해요. 오토파지에 대한 반역자라는 뜻으로 저자가 직접 붙였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포 안을 교체하고 청소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그 저하가 신경퇴행성 질환이나 당뇨병과도 얽혀 있다는 설명 다음에 이런 문장이 놓입니다.


"노화는 반드시 거스를 수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앞 문단에서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마음을 먼저 꺼내 보인 뒤에 나오는 말이라 더 조용하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단백질이라는 낯선 말을 레고 블록에 빗대 풀어냅니다. 스무 종류의 아미노산이 기본 블록이고, 피부 탄력을 맡는 콜라겐이나 산소를 나르는 헤모글로빈이 모두 같은 블록의 다른 조합이라는 식이죠. 음식으로 먹은 단백질은 소화 과정에서 다시 블록 상태로 돌아가고, 우리 몸의 단백질은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에 전부 교체된답니다. 그 대목 끝에 붙은 비유가 기억에 남아요. 강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늘 같아 보여도 그 속의 물은 늘 새로운 것과 같은 이치라는 문장입니다.


다만 읽으면서 갸웃한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루비콘을 반역자라 부르면서도, 오토파지가 지나치게 활발해지면 세포에 꼭 필요한 것까지 분해할 위험이 있으니 루비콘이 브레이크 노릇을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고 적어요. 실제로 일부 장기에서는 루비콘이 없을 때 중요한 것들까지 파괴되었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곧이어 루비콘을 억제하면 수명이 연장되거나 병적 상태가 개선되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면서 브레이크를 풀면 좋아진다는 두 이야기 사이의 간격이 쉽게 메워지지 않았어요. 물론 저자는 그 결과가 선충과 초파리, 쥐 조직에서 확인된 것이라고 범위를 분명히 밝혀 둡니다. 답을 아직 모른다고 말하는 쪽을 택한 셈이니, 불친절하다기보다 정직한 서술이라 봐야겠지요.


3장의 흉선 이야기는 이 나이대에 읽기에 각별합니다. 심장 위쪽에 있는 이 작은 기관을 저자는 학교라고 부릅니다. 새로 만들어진 T세포는 온몸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여기를 거쳐 시험을 봐요. 교사 역할을 하는 세포가 몸속 여기저기서 만들어지는 물질을 학교 안에 미리 재현해 놓고, 이건 공격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교재로 내놓는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축소판을 한 기관 안에 차려 놓고 예습을 시키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졸업률이 10퍼센트 남짓이랍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그 학교에서 죽습니다.


문제는 학교도 늙는다는 데 있습니다. 흉선 기능은 사춘기 무렵이 정점이고, 40대가 되면 새로 교육되는 T세포가 신생아기의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해요. 세포 수 자체는 인생 후반부까지 유지되지만 그 시간 동안 조금씩 버그가 쌓이듯 문제가 축적된다는 표현을 저자는 씁니다. 흉선이 더는 충분히 가르치지 못하게 되면서 면역세포 일부가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한다고 그는 적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장 나는 게 아니라 오래 돌아간 시스템에 오류가 누적되는 그림이라, 마흔 넘어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다는 통계가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수면을 다룬 10장은 이 도서에서 가장 실용적인 자리이면서 가장 아픈 자리이기도 합니다. 쇼트 슬리퍼는 유전자로 결정되며 훈련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많게 잡아도 수백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다고 합니다. 하루 세 시간만 잤다는 나폴레옹조차 자주 졸았던 인물로 유명하니 자칭 쇼트 슬리퍼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났고요. 안 자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씁니다.


"실제로는 그냥 무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수면 부채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여섯 시간 수면이 열흘 이어지면 집중력이 밤을 꼬박 새운 상태가 되고, 이것이 만취 상태와 비슷한 생산성이라는 연구도 소개됩니다. 잠을 줄여 버티는 일을 오래 성실함의 증거로 여겨온 우리 사회에서는 꽤 서늘하게 읽힐 부분이에요. 학원 일정에 밀려 아이들 잠이 부족하다는 대목도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수면이 모자라면 기억을 맡는 해마의 발달이 방해받아 어린 시절의 부족이 평생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붙어 있거든요.


성인의 적정 수면은 일곱 시간 전후로 이야기되는데, 저자가 정작 강조하는 건 시간의 길이가 아닙니다. 정말로 자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지요. 평범하게 잔다고 여기지만 질이 아주 나쁜 경우가 있고, 세 시간밖에 못 잤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여덟 시간을 푹 잔 경우도 있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살짝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서투인이며 NAD며 알파폴드며 실험실 최전선을 아홉 장 내내 따라왔는데 결론이 잘 자라는 이야기로 모이니까요. 그런데 이 소박함이 도리어 이 책의 성실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는 NMN 점적주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 노화세포를 몽땅 없애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점을 굳이 적어 둡니다. 3장을 닫는 소제목처럼 노화는 온몸이 연결된 문제라서 없애면 된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회춘 시장이 요란한 시대에 이 정도로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교양서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아 읽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을 만났지만 이렇게 읽는 속도가 자꾸 늦춰지는 책은 오랜만이었어요.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한 문단 읽고 제 몸을 한 번씩 떠올리게 되어서였습니다. 건강 정보를 찾아 서점을 서성이던 분이라면 유행하는 성분 이름을 외우는 대신 몸에서 벌어지는 일의 순서를 알게 될 테고, 부모님 연세를 헤아리며 고령화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는 분에게는 개인의 건강 너머까지 생각이 뻗어 나갈 겁니다. 생물 시간이 지루했던 기억이 있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레고와 학교와 강물로 설명하는 책이니까요.


열대야가 길게 이어지는 8월입니다. 밤마다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드는 날이 늘어나는 계절인데, 이 도서를 읽고 나니 그 뒤척임이 그저 여름 탓만은 아니겠구나 싶어집니다. 세포 안에서는 지금도 청소가 진행되고 있고, 흉선이라는 작은 학교는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을 테니까요. 잘 자는 일이 그 모든 작업을 돕는 가장 값싼 방법이라면, 올여름 남은 밤은 조금 다르게 보내 볼 만합니다.


노화를 세포의 언어로 설명하면서도 섣부른 희망에 브레이크를 걸 줄 아는, 드물게 정직한 생명과학 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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