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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사전
허진열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7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에는 마른 들꽃 한 줄기가 세로로 서 있고, 그 둘레에 열네 개의 단어가 작은 자음 기호를 달고 붙어 있습니다. 기다림에서 시작해 내려놓음과 동행을 지나 통곡과 평안을 거쳐 희망으로 끝나는 배열이에요. 꽃대에 맺힌 씨앗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전을 펼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제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색을 거의 쓰지 않은 미색 바탕이라 '고난'이라는 무거운 낱말이 도리어 조용하게 놓여 있어요. 표지에 적힌 한 줄은 고난의 자리에서 피워 낸 말 모음입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을 통해 받았습니다. 손에 들자마자 든 생각은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이었어요. 핸드북 판형이라 가방 한쪽에 넣어 두고 틈틈이 펼치기 좋습니다. 다루는 주제의 무게와 책의 몸피가 반대편에 놓여 있는 셈인데, 읽다 보니 그 가벼움이 배려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두툼한 양장으로 만나면 시작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저자 허진열 목사는 딸이 생후 70일 되던 날 담도 폐쇄증이라는 병명을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이후 세 번의 수술과 간경화 말기 판정, 간이식으로 이어진 10년의 시간을 아이와 함께 통과했고요. 저자 소개에 실린 문장 하나가 이 책의 성격을 미리 알려 줍니다. 강단에서는 고난을 위로하는 말씀을 전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고난 때문에 소리 없이 울었다는 대목이에요. 위로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 정작 자기 몫의 어둠 앞에서는 아무 말도 찾지 못했다는 고백에서 <고난 사전>은 출발합니다.
열네 개 장 가운데 먼저 손이 간 곳은 '맡김'이었습니다. 부제가 아빠, 나 크로와상이 먹고 싶어. 간이식 수술을 마친 아이가 중환자실을 나와 처음으로 음식을 먹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날의 이야기입니다. 부산에 있던 아버지가 영상통화로 뭐든 사주겠다고 하자 아이가 고른 것은 크로와상 하나였어요. 소고기도 전복도 마다하고 그것만 먹고 싶다고 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기차표를 검색하고, 열차 안에서 신촌의 빵집을 뒤지고,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긴 줄 끝에 봉지를 받아 들고 병원까지 뛰어가는 장면이 숨 가쁘게 이어집니다. 다리도 뛰고 심장도 뛰고 마음도 같이 뛰었다는 문장에서, 이 챕터가 왜 이 책의 중심에 놓였는지 알 것 같았어요.

정작 마음에 남은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빵을 먹던 아이가 소리 없이 울고, 아버지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복도로 나가 웁니다. 그 자리에서 저자가 붙든 생각은 단순합니다. 크로와상을 사주는 일은 어른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격리된 병동의 아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아이가 한 일은 말을 꺼낸 것뿐이었고, 그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문제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챕터 앞머리의 사전 정의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맡기는 순간 그 문제의 주인이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 간다는 풀이. 신학적인 설명 없이 빵 하나로 이만큼 설명해 낸 솜씨가 좋았습니다. "딸아이가 한 일은 딱 하나였다. 말한 것이고 맡긴 것이다."
'붙듬' 장에서는 같은 기차가 전혀 다른 표정으로 등장합니다. 딸이 간경화 말기 진단을 받던 날, 부부는 기차 안에서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고 해요. 그 침묵이 평생 가장 참담한 침묵이었다고 저자는 적습니다. 서울로 달려가던 기차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기차가 한 권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셈인데, 이 배치를 발견하고 나서 책이 다르게 읽혔습니다. 그날 나온 기도는 하나님, 살려주세요 한 문장이 전부였다고 하고요. 이 장의 제목은 붙든 게 아니라 붙잡혀 있었다는 것인데, 저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붙든다'는 신앙의 상투어가 불편했다고 털어놓습니다. 제 힘으로 붙드는 것이라면 힘이 빠지는 날 놓아버리게 될 테니까요. 목회자가 자기 언어를 의심하는 대목이 나와서, 이 책이 답을 미리 쥐고 쓰인 글은 아니라는 신뢰가 생겼습니다.
뒤쪽으로 가면 '카이로스' 장이 기다립니다. 간이식을 결정한 뒤 남은 일은 기증자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는데 하필 코로나 시기였다고 해요. 장기 기증자가 평소보다 30퍼센트 가까이 줄어든 때였고, 기다리는 사람은 많고 아이의 상태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금식하며 드린 기도를 두고 저자는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처절한 매달림이었다"고 씁니다. 새벽마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점점 짧아졌다는 서술이 특히 정직하게 느껴졌어요. 간절해질수록 기도가 길어지는 게 아니라 이름만 부르게 된다는 것, 겪어 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문장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전화가 걸려 옵니다. 윤이를 위한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한마디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는 장면으로 이 장은 절정에 닿습니다.

다만 여기서 잠시 생각이 갈렸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온다는 이 장의 결론은, 기증자를 만난 자리에서 쓰인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끝내 그 전화를 받지 못한 가정도 있었을 텐데, 그분들이 이 대목을 어떤 표정으로 읽을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자도 그 간극을 모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자기 이야기 바로 옆에 전해 들은 이야기 하나를 붙여 두었거든요. 4남매를 30년간 홀로 키운 권사님이 암으로 투병하던 남편과 수목원에서 보낸 마지막 한 시간의 산책 이야기입니다. 남편은 결국 세상을 떠났고 상황은 뒤집히지 않았지만, 그 한 시간이 이후 30년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하죠.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만 은혜의 때로 부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읽혔고, 그 덕에 앞의 단언이 성공담으로 미끄러지지 않았습니다.
구성에서 눈에 띄는 건 각 장 끝에 놓인 두 개의 상자입니다. 하나는 고난 극복을 위한 과제인데, 맡김 장에서는 가장 무거운 짐 하나를 털어놓아 보라고 하고, 붙듬 장에서는 오늘 하루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 보라고 하고, 카이로스 장에서는 지금 기다리는 때가 무엇인지 적어 보라고 권합니다. 다른 하나는 독자가 직접 그 단어의 뜻을 적는 세 줄 여백이고요. 읽는 사람이 자기 사전을 완성해 가도록 만든 장치인데, 솔직히 처음에는 이런 여백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워크북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 몇 장을 넘기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이 책의 열네 개 표제어는 저자의 정의일 뿐이고, 같은 낱말이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쓰인다는 걸 인정하는 설계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빈칸을 억지로 채울 필요는 없고, 언젠가 자기 문장이 생기면 그때 적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책 끝의 부록은 간이식이 가르쳐 준 복음을 다룹니다. 한 사람의 몸에서 떼어 낸 것이 다른 생명을 살린다는 사실을 십자가와 겹쳐 읽는 대목인데, 앞의 열네 장을 다 통과한 뒤에 읽으면 무게가 다릅니다. 이론이 아니라 수술실에서 확인된 이야기니까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는 분이라면 이 한 권이 답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저자 자신이 아직 통과 중인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으니까요. 대신 같은 자리에 먼저 앉아 본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히 들립니다. 곁에 아픈 사람을 두고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에요. 위로의 문장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섣부른 말을 아끼는 법을 보게 되어서요. 신앙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성경 인물이 등장하는 대목이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크로와상과 병원 복도와 전화벨 소리 같은 장면들은 믿음의 유무와 상관없이 닿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의 부제가 가장 혹독한 추위 끝에 피어난 봄꽃입니다. 매미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8월에 겨울과 봄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일이 조금 어긋나 보일 수도 있지만, 더위 한복판에서도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겨울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표지의 마른 들꽃이 다시 떠오릅니다. 피어 있는 꽃이 아니라 말린 꽃을 표지에 올린 이유를, 다 읽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의 간증이 아니라 아직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건네는 열네 개의 낱말, 끝을 모르는 시간을 지나는 이에게 조용히 곁을 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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