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괴이 사전 : 전설편 ㅣ 세계 괴이 사전
에이토에후 지음, 현정수 옮김, 아사자토 이츠키 감수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받고 한동안은 펼치지 않고 표지만 봤어요. 괴담과 공포를 다룬다고 들었는데, 라벤더빛 바탕에 형광 오렌지와 민트그린이 겹쳐진 그림은 무섭기는커녕 흥겨웠거든요. 눈을 동그랗게 뜬 고대 석상, 석조 성채, 배를 감아쥔 촉수가 한 화면에 빼곡한데도 어둡게 가라앉은 구석이 없습니다. 표지에 적힌 한 줄,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는 700항목 이상의 신비한 전설!"이 그 색감과 잘 어울렸어요. 480쪽의 두께를 손으로 가늠하면서, 며칠에 끝낼 도서는 아니고 계절 하나를 같이 보낼 한 권이겠다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목차를 보면 챕터 제목 대신 국가 이름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아시아에서 시작해 오세아니아와 남북아메리카,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를 지나 태평양과 남극, 북극까지. 그러니까 이 사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궁금한 나라를 펼쳐 한 항목씩 주워 담는 방식으로 읽게 됩니다. 항목 하나가 반 단 남짓이어서 짧게 읽고 덮기에도 좋아요. 대신 항목 끝마다 다른 항목을 참조하라는 안내가 붙어 있어서, 태국 이야기를 읽다가 순다랜드로 넘어가고 거기서 무 대륙까지 끌려가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한국 독자라면 대한민국·북한 섹션을 먼저 펼칠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거인 할망이 치마에 담아 옮긴 흙이 한라산이 되고 배탈로 인해 백두산과 압록강이 생겼다는 이야기, 주몽과 단군의 건국 서사, 쇠를 먹으며 몸집을 키운 불가사리, 밀양 아랑각에 얽힌 아랑의 원한, 호랑감투를 쓴 도깨비 설화, 삼성혈의 세 신, 그리고 해와 달의 빛을 되돌린 연오랑과 세오녀까지 실려 있습니다. 익숙한 이야기를 남의 눈으로 다시 읽는 감각이 묘하게 새로웠어요. 무엇보다 주몽과 박혁거세 항목을 나란히 두고 천제의 후손을 건국 시조로 삼는 구조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해둔 대목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표기에서 손을 멈춘 곳이 있었습니다. 제주 삼성혈의 구멍 이름을 한자로는 모흥혈로 적어놓고 한글은 다르게 옮겨두었고, 할망 항목에는 설문대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어요. 방대한 분량을 한 권에 담는 과정에서 생긴 빈틈이겠지만, 우리 이야기라서 더 눈에 걸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연오랑과 세오녀 항목의 끝에는 이즈모 지방에 전설이 남아 있지 않다는 짧은 문장이 붙어 있습니다. 한쪽에는 남고 다른 쪽에서는 지워진 이야기라는 뜻이죠. 이 한 줄을 읽고 나니 뒤에서 만나는 비슷한 대목들이 다르게 보였어요. 가이아나 편에는 아라와크족 계열 선주민의 문화와 전설이 유럽 각국의 지배를 거치며 상실되어 버렸다고 적혀 있고, 앤티가바부다 편은 전해지는 전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고백으로 시작해 분홍빛 모래 해변 소개로 채워집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국기인 부즈카시는 내전이 길어지며 존속이 위태롭다는 문장으로 닫히고, 이스라엘의 열 부족은 기록에서 모습을 감춘 채 여행자들의 증언만 남아 있습니다. 700항목이 넘는 이 목록은 남아 있는 이야기의 카탈로그이면서, 사라진 자리를 드러내는 명부이기도 하더군요.


물론 판정하지 않고 다 담아두는 태도가 늘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에콰도르 발디비아 토기가 조몬 토기와 닮았으니 조몬인이 태평양을 건너갔을지 모른다는 설, 히브리어와 일본 신사의 구조가 비슷하다며 열 부족이 일본인의 선조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일유공조론 같은 항목이 다른 전승들과 같은 무게로 나란히 놓여 있어요. 어디까지나 소문과 설로 옮겨 적는 형식이긴 하지만, 학계에서 근거가 약하다고 정리된 주장과 오래된 구전을 구분 없이 배열하면 읽는 쪽에서 헷갈릴 여지가 생깁니다. 항목마다 한두 줄이라도 신뢰도의 결을 달리 표시해줬다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그럼에도 이 책을 계속 펼치게 만든 힘은 겁주기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주 돌하르방 항목은 경계를 지키던 주술적 석상을 설명하다가, 표정이 온화하고 사랑스러우며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준다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어요.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의 마녀는 겨울이면 모두 북쪽으로 떠나 홀로 남겨지곤 했기에, 스스로 열매로 변신해 사람과 동물과 새를 마을에 붙잡아 둡니다. 그 열매에는 "열매를 먹으면 파타고니아로 돌아오게 된다"라는 전승이 따라붙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전쟁터로 예고된 메기도의 언덕조차, 스물다섯 겹의 파괴와 재생을 품은 채 오늘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따스하게 맞이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어요. 전설이 사람을 위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사전은 낯선 지명들을 통해 계속 알려줍니다.


뒷부분에 끼어 있는 짧은 칼럼들도 국가별 나열의 리듬을 잘 끊어줍니다. 전설의 검을 다룬 글은 쿠사나기와 엑스칼리버에서 출발해 아론다이트와 갈라틴, 아스칼론, 칼라드볼그, 발뭉, 클라브 솔라스를 훑고 이렇게 닫혀요. 오랜 시간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 이어져가기에, 이것들은 전설의 검인지도 모른다. 전설을 옛날에 있었던 무엇이 아니라 지금도 옮겨지는 무엇으로 슬쩍 밀어두는 문장입니다. 지도에만 있는 장소를 모아둔 칼럼은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저작권 대책으로 창작된 뉴욕주의 가공 마을, 이십일 세기에 실재하지 않음이 판명된 샌디 섬, 구글맵에 나타났다가 같은 해에 지워진 영국의 아글턴, 일본의 지도 앱에 잠시 출현했던 정체불명의 역.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일이 먼 옛날의 미신에만 속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평소에 들여다보는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문장이 이 한 권 전체의 성격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북유럽 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인데, 서평용으로 건네받은 책들 가운데 이렇게 오래 곁에 두고 조금씩 읽은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완독을 목표로 쥐면 버거운 대신, 국가 하나를 펼쳐 항목 두세 개만 읽고 덮어도 그날 몫의 독서가 채워지는 종류였거든요. 이야기를 만드는 분들에게는 자료집으로서 값을 하겠고, 세계사나 지리에 흥미가 있는 학생에게도 입구가 되어줄 만합니다. 여행을 자주 떠나기 어려운 형편에 지도만 자꾸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특히 오래 붙들 책이겠어요. 다만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하고 집어든다면 결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괴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문화사와 민속지 쪽에 훨씬 가깝습니다. 매 한 마리마다 여권이 발급되는 아랍에미리트의 사정이나 파타고니아 로고에 담긴 산의 실루엣 같은 항목까지 들어와 있으니까요.


9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저녁 공기가 제법 서늘해졌습니다. 이런 계절에 두툼한 사전 한 권을 책상 한쪽에 세워두고, 마음 가는 나라를 골라 몇 항목씩 읽어 나가는 일은 꽤 어울리는 소일거리예요.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아직 펼치지 않은 대륙이 여러 곳 남아 있다는 점도 든든합니다.


세계 곳곳의 전설을 모은 두툼한 목록이면서, 이야기가 남은 자리와 사라진 자리를 함께 보여주는 사전입니다.


#세계괴이사전전설편 #세계괴이사전 #아사자토이츠키 #에이토에후 #현정수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AK트리비아북 #괴담 #전설 #세계신화 #민속학 #세계사책 #도서추천 #책추천 #서평 #북유럽카페 #독서기록 #창작자료집 #돌하르방 #불가사리 #가을독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세븐 리버 - 인류 문명을 만든 일곱 개의 강 이야기
버네사 테일러 지음, 박은영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받아 들자마자 알았습니다. 이건 한 번에 읽을 책이 아니라는 걸요. 손에 얹으면 무게가 그대로 전해지고, 목차를 펼치면 일곱 개의 강이 각각 세 개의 장을 끌고 옵니다. 그래서 계획을 처음부터 바꿨습니다. 강 하나를 끝내면 며칠 쉬고 다음 강으로 건너가는 방식으로요. 지나고 보니 그게 맞았습니다. 속도를 내면 정보만 쌓이고, 천천히 가면 생각이 남는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표지를 다시 봅니다. 짙은 남청색 바탕 위로 청록과 하늘빛 물길이 굽이치고, 그 사이에 금빛으로 앉은 것들이 있어요. 돔을 얹은 건물, 노를 젓는 고대의 배, 증기선처럼 보이는 강배, 백로, 물고기, 그리고 맨 아래 왼쪽의 악어. 일곱 개의 강을 지도로 그리지 않고 곡선만 남긴 감각이 좋았습니다. 표지 아래쪽에 적힌 한 줄, "인류는 어떻게 강을 지배하고, 강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가 사실상 이 책의 설계도였다는 걸 읽으면서 확인하게 됩니다.


버네사 테일러는 첫 장을 왕조나 피라미드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마에서 출발해요. 고대 이집트인들이 하마를 사랑했다는 문장 다음에, 하마 얼굴을 한 여신 타와레트가 임산부와 아기를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이 손바닥보다 작은 푸른 유약 공예품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지고, 사나운 기색 없이 입을 얌전히 다문 하마가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들이 하마를 사냥해 고기와 상아를 얻었습니다. 이용과 숭배가 한 몸이라는 이 책의 큰 주제가 부적 하나에 이미 들어 있는 셈이죠.


나일강 편의 문을 여는 제사는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나는 물을 거슬러 흐르게 하지 않았다. 나는 흐르는 물길을 끊지 않았다.


죽은 이가 자신의 결백을 고하는 형식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물길을 끊지 않았다는 항목이 도덕의 목록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댐과 운하, 매립과 준설이 줄줄이 나오는 이 책의 뒷부분을 생각하면 첫 페이지에 이미 판결문이 놓여 있던 것과 같으니까요.


저자가 나일강 편에서 꺼내는 해석 하나도 오래 남습니다. 나일강을 무한함의 상징으로 만든 주체가 엘리트 계층이었다는 것. 통제력과 권위를 굳히려면 끝없는 연속성을 강조해야 했고, 그래서 앞선 세대의 문자와 강 관리법과 전통을 부지런히 재활용했다는 겁니다. 챕터 제목 '오래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가 향수가 아니라 통치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실제 발원지가 훨씬 남쪽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징적인 발원지 하나로 충분했다는 대목도 그렇습니다. 사실보다 표식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사정이 지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템스강 편에서는 '그림자 강'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런던이 키운 번영이 다른 유역의 강과 수로를 영향권 아래 두면서 가능했다는 개념인데, 저자는 이게 런던만의 사정이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모든 주요 강에 그런 그림자가 있다고요. 뉴캐슬의 타인강은 '석탄의 강'이라 불리며 매년 수천 톤의 석탄을 런던으로 보냈습니다. 1666년 대화재 때 도시를 태운 연료가 그 석탄이었고, 재건의 재원이 된 것도 석탄에 붙은 세금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쉰한 개의 교회가 서고 1711년 세인트폴 대성당이 완공됩니다. 포틀랜드섬에서 실려온 석회암 벽면에는 화석이 된 굴 껍데기와 새우의 흔적이 박혀 있어서, 태고의 바다가 도심 한복판에 그대로 남은 형국이었다고 해요. 오래된 것은 정말로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미시시피강 편은 읽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1856년 겨울 마거릿 가너가 얼어붙은 오하이오강을 건너 잠깐 자유의 공기를 마셨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압송된 과정이 나옵니다. 법정은 그녀에게 도망 노예법 위반이라는 죄명을 붙였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는 이유로요. 같은 물줄기가 누구에게는 교역로였고 누구에게는 탈출로였으며 또 누구에게는 끌려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이 한 챕터에 겹쳐 있습니다.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이 대목은 각자 읽어야 할 자리 같습니다.


마지막 부의 '가라앉는 도시'에서 책은 현재로 착지합니다. 상하이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관측된 해가 1921년이고, 1950년대에는 연간 10센티미터씩 내려앉았으며, 1800년대 후반 이래 3미터 넘게 침하했다고 합니다. 건물의 무게와 지하수 추출이 원인이었습니다. 상하이라는 이름이 바다 위 또는 바다에서 솟아오른다는 뜻을 품고 있는데 해발고도는 기껏해야 3~4미터라는 설명도 붙습니다. 이름과 실제 사이의 간격이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이 장에서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건 진흙과 모래를 두고 갈린 세 입장이었습니다. 항만 당국에게 퇴적물은 치워야 할 장애물이었고, 중국 당국은 군함의 입항을 막아주는 천연 장벽으로 여겼고, 농부들은 하늘이 내린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작은 개울과 운하를 타고 다니며 대나무 장대로 강바닥의 흙을 퍼 올려 바구니에 담아 비옥한 표층토로 썼다고 해요. 그 바구니 옆에 1930년대 준설선이 퍼낸 4,000만 톤이라는 숫자가 놓입니다. 같은 흙인데 보는 자리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습니다.


저자는 그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끼워 넣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토사가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흐름 속에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은 적응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퇴적이든 침식이든 고정된 구조물이나 사람의 정착지가 들어선 곳에서만 비로소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고요. 재난이라는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한자리에 붙들어 두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위기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니까요. 서울의 복개천이 떠올랐습니다. 양징방 하천이 1900년대 초에 매립되어 거리가 되었고 지금은 옌안루의 일부로 남아 있다는 대목에서요. 근대화되는 도시들이 물길을 덮은 방식은 대륙을 가리지 않고 닮아 있었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아쉬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나일강의 상징을 만든 주체가 엘리트였다고 분석하고, 제국의 준설 광고와 훗날의 '자연과의 전쟁' 구호를 나란히 놓아 비판의 균형을 잡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강가에서 매일 물을 지고 밭을 갈던 사람들이 그 상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상대적으로 얇게 다뤄집니다. 기록이 남지 않은 쪽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알겠지만,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는 데 들인 공력만큼 아래쪽 자리에도 지면이 갔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상하이 농부들의 바구니가 등장하는 짧은 대목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며칠 안에 읽고 정리하는 리듬에 익숙해지는데, 이 한 권은 그 리듬을 아예 놓게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늦춘 게 아니라 늦춰질 수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책을 붙들고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두께가 부담이 아니라 여유로 바뀌는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기후위기나 물 부족 같은 말이 뉴스에서 너무 자주 들려서 무감해진 분이라면, 이 책이 그 말들에 다시 부피를 입혀 줄 겁니다. 세계사를 연대기로 외우다 지친 경우에도 강이라는 렌즈 하나가 꽤 시원한 통로가 되어 줍니다. 물론 한 강을 세 장씩 끌고 가는 구성이라 처음 백 페이지는 호흡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 구간만 넘기면 나머지는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9월 중순, 아침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이맘때가 이런 책과 잘 맞습니다. 여름의 조급함이 한 발 물러나고 아직 겨울의 무게는 오지 않은 시기니까요. 일곱 개의 강을 다 건넌 다음에도 책장에 그대로 꽂아 둘 생각입니다. 계절이 한 번 더 바뀌면 다뉴브강이나 니제르강 편을 다시 펼쳐 볼 것 같아서요.


강을 따라 인류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며 동시에 숭배해 온 오래된 모순을 마주하게 되는 문명사.


#세븐리버 #버네사테일러 #미래의창 #문명사 #세계사책 #강의역사 #나일강 #템스강 #양쯔강 #갠지스강 #미시시피강 #다뉴브강 #니제르강 #환경사 #기후위기 #인문교양 #서평단 #북유럽카페 #독서기록 #BOOKU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00세의 행복 - 오래 건강하게 산 어른들에게 배우는 삶의 기술
정세희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에서 먼저 눈에 걸린 건 색이었어요. 짙은 남색 위에 산호색 동심원이 손으로 그은 듯 몇 겹 겹쳐 있고, 아래쪽으로는 초록 세로선이 물결처럼 깔려 있습니다. 백 세라는 말 옆에 으레 놓이는 누런 빛깔이 없더군요. 다 지나온 삶을 정리해 보여주는 표정이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쪽에 무게를 둔 배색이었습니다. 아래쪽에 인물 사진 없이 열다섯 사람의 이름만 나란히 적혀 있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100세의 행복>은 중앙일보 기자 세 명이 백 명 가까운 장수 어른을 직접 만나 기록한 책입니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양복 주머니와 가방 속까지 들여다봤다고 하니, 인터뷰라는 말보다 관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취재였겠습니다. 마음, 몸, 관계, 삶의 주도권이라는 네 개의 부에 열다섯 편이 담겼고,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그 사람이 지켜온 원칙 다섯 가지가 붙습니다. 보통 크기에 보통 두께라 부담 없이 넘어가는 분량이고, 실제로도 편안하게 읽혔어요.


첫 편의 시작이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뭘 먹어야 100세까지 건강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앞세우고 105세 철학자의 냉장고를 털러 갑니다. 특별한 음식이 나올 줄 알았다는 기대까지 그대로 적어두었더군요. 그런데 냉장고에서 나온 건 미리 썬 양파와 당근, 시금치와 깻잎무침 정도였습니다. 아침 식단은 수십 년째 똑같습니다. 우유 반 잔, 호박죽 반 접시, 계란 반숙, 찐 감자, 드레싱 없는 채소샐러드에 제철 과일. 바꿀 이유가 없고 아침에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20대 땐 맨날 똑같은 거 먹으면 무슨 맛일까 했어요. 그런데 습관이 참 무서워요. 내 것이 돼버리면 지루하지도 질리지도 않고, 그 이상의 것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니 불만이 없죠."


절제를 미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대목의 미덕입니다. 그냥 습관의 속성을 말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고정된 규율로 버티는 것도 아닙니다. 위가 약해진 뒤로는 커피를 한 잔에서 반 잔으로 줄였고, 공복을 길게 두는 요즘 흐름과 달리 저녁은 일부러 늦게 먹습니다. 공백이 길면 칼로리가 모자라 지친다는 게 본인의 설명이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맞춰 평생 지킨 습관도 고쳐 쓰는 사람의 태도가 여기서 읽힙니다. 몸이야 늙었다면 늙었겠죠, 그런데 인간적으로 늙었는가 물으면 달라진다는 말도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 노인이 된다는 건 스스로 늙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먼저 만들어버리는 일이었다는 관찰은, 그 뒤로도 오래 남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4부에 실린 93세 조선 기술자 편에서 거의 같은 구조를 다시 만난다는 점이에요. 비서가 그의 건강 비결로 규칙적인 생활을 꼽으면서 철학자 칸트에 버금간다고 했다는데, 아침상이 실제로 평생 고정입니다. 사과 3분의 1쪽, 버터와 잼 바른 모닝빵에 하몽 한 조각, 콘플레이크와 우유 조금, 계란 하나. 스무 살에 유럽에서 빵 맛을 알고 난 뒤로 바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호박죽과 모닝빵이라는 전혀 다른 상차림이 같은 원리로 굴러가고 있었어요.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데 판단력을 쓰지 않는다는 것. 에필로그 제목이 '장수는 유전이 아니라 시스템'인 이유가 서로 다른 두 집의 밥상에서 겹쳐 보입니다.


이 어른의 이야기에서 제 예상을 빗나간 대목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세운 경제개발계획을 직접 만든 당사자인데,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곰탕도 60년 우려 먹으면 맛이 안 난다고요. 자기 최대 업적을 스스로 낡았다고 진단하는 사람의 말투에는 미련이 없었습니다. 실버타운 이야기도 뜻밖이었어요. 해외 고객 미팅과 강연으로 여전히 바쁜 사람이 그곳에서는 자기 이력을 철저히 숨겼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만큼은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다"는 문장 하나가 앞의 화려한 이력을 전부 상대화합니다. 병원에 다녀오는 줄 안 동료들 사이에서 몸 약한 어르신으로 불렸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났고요. 낯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슬쩍 식사 자리에 부르는 게 요즘 낙이라는데, 이유는 짧습니다. 다 같이 잘 살면 좋으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편은 3부에 있습니다. 1924년생 어머니와 1946년생 아들의 이야기인데, 서술 방식이 앞과 완전히 다릅니다. 아들의 1인칭으로 시작하고, 첫 문장이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입니다. 요양원 입소 신청서를 세 번 썼고 세 번 다 찢었다고 해요. 그를 무조건 효자로 세우지 않는 것이 이 챕터의 미덕입니다. 그도 79세 노인이었고,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질 정도로 힘에 부쳤으며, 노인네가 노인네를 부양하는 것이라고 자기 처지를 그대로 말합니다. 아내와 함께 365일 긴장 상태였다는 서술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 집을 지탱한 것도 결국 반복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6시, 거실의 옷걸이에는 옷 대신 가사판이 걸립니다. 아들이 대형 달력 뒷면에 유행가 서른다섯 곡을 하나하나 베껴 적은 것이고, 어머니가 다음 것을 찾으면 아들이 태극기 봉 끝으로 가사를 짚습니다. 기억이 희미해질 때도 노래만큼은 남아 있었다고 해요. 잠들기 전에는 화투판을 펼쳐 같은 그림을 맞추며 옛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사이 섬망 증세가 누그러졌고 아들의 기력도 돌아왔습니다.


"하도 시달려서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을 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노래가 아니었다면 벌써 스트레스받아서 죽었을 테니 노래가 나를 살린 거죠."


요양원 입소를 앞둔 저녁, 데이케어센터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첫 물음이 "복희야, 너 점심은 먹었냐?"였다고 합니다. 세 그릇이나 배부르게 먹었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면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좋아하셨다고요. 백 살 엄니는 기어코 여든 아들을 또 키워내고 있었다. 책의 이 한 문장 앞에서 돌봄의 방향을 한쪽으로만 생각해온 제 짐작이 헐거워졌습니다.


아쉬움도 없지는 않았어요. 죽을 때까지 일하겠다는 말이나 역할을 놓지 않으면 나이를 잊는다는 제목은 든든하게 읽히지만, 그 태도가 가능하려면 일정을 챙겨주는 사람과 선택할 수 있는 거처 같은 조건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합니다. 부양 부담이 곧 생계 문제로 이어지는 집이라면 노래 교실에 주 세 번 나가는 일조차 쉽지 않을 테고요. 책이 노노부양의 현황을 별도 기사로 얹어 개인의 사연을 사회 현상으로 넓혀둔 점은 신뢰가 갔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조건의 차이를 짚어줬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이 책이 개인의 습관 쪽에 집중하기로 한 선택이 분명하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60세 넘어 고독하게 사는 사람은 대체로 이기주의자가 많다는 진단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한 세기를 건너온 사람의 관찰이니 가볍게 넘길 말은 아니지만, 관계가 끊기는 이유가 사람 됨됨이만은 아닐 겁니다. 이 대목은 동의보다 질문으로 남겨두었어요.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읽고 나서 정리가 빠른 책과 한동안 곁에 두게 되는 책이 갈리는데, 이 한 권은 후자였습니다. 저속노화니 장수 식단이니 하는 말이 넘치는 요즘에, 백 세를 넘긴 당사자들의 선택이 정작 그 유행과 어긋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이 도서의 정직한 지점이라고 봅니다. 결국 남는 건 거창한 비결이 아니라 아침마다 되풀이되는 사소한 일들이었어요. 밥상 하나, 노래 한 곡, 화투 한 판.


계절이 바뀌는 자리에 이 책을 읽은 게 맞춤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 바람이 서늘해지고 해 지는 시각이 눈에 띄게 당겨지는 요즘, 오래 산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남은 시간을 늘리는 일보다 그 시간에 무엇을 되풀이할지가 먼저라는 걸, 백 세 어른들의 평범한 아침상이 조용히 알려줍니다.


오래 살기 위해 산 사람은 없었고, 되풀이할 것이 있었던 사람들이 오래 살았다.


#100세의행복 #중앙북스 #더중앙플러스 #서평 #책추천 #북유럽카페 #서평단 #초고령사회 #저속노화 #장수비결 #슈퍼에이저 #김형석교수 #신동식회장 #노노부양 #돌봄에세이 #습관의힘 #인생책 #신간추천 #부모님선물 #BOOKULOVE서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오디세이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32
호메로스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노란 바탕 위에 흑백 흉상 하나. 표지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쪽의 책입니다. 위쪽 절반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고 아래쪽은 형광에 가까운 노란색이 화면을 가득 채워요. 고전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무게와 서점 평대에서 바로 눈에 걸리는 선명함이 한 장에 같이 들어 있습니다. 하단에 굵게 박힌 두 줄 가운데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끝까지 살아남는다"라는 문구가 이 판본의 성격을 미리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았습니다. 크기도 두께도 평범해서 손에 들었을 때 부담이 없었어요. 완역본을 앞에 두면 먼저 드는 망설임이 분량인데, 이 도서는 그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편역본이라고 해서 유명한 모험만 골라 이어 붙인 판본은 아닙니다. 원작의 24권 체제를 그대로 두고 권마다 '마침내 시작된 오디세우스의 귀향' '트로이의 노래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처럼 내용을 짚어주는 제목을 달았고, 각 권 안에서도 번호가 붙은 절로 나뉘어 있어서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길을 잃을 일이 적습니다. 본문 앞에는 트로이 전쟁부터 작품이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배경 설명과 등장인물 사전이 붙어 있고, 암브로시아나 스틱스강처럼 설명이 필요한 개념에는 영문을 병기하고 옮긴이 주를 답니다. 파이아케스 궁전에서 음유시인이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의 다툼을 노래하는 장면에는, 이것이 <일리아스> 첫머리의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과는 다른 사건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어요. 독자가 헷갈릴 자리를 미리 알고 손을 쓴 흔적입니다.


읽는 동안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을 떠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섬은 불멸의 신이 보아도 기뻐할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됩니다. 향기로운 나무가 타는 동굴, 포도송이가 달린 입구, 네 방향으로 흐르는 샘. 그런데 정작 그는 동굴에 없고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습니다. 낮이면 바다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밤에만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잡니다.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은 사람이 왜 거절하는지, 그의 대답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아내가 여신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먼저 인정하고 나서 이렇게 말해요. "제가 원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보는 것입니다." 비교해서 이긴 쪽을 고른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그다음이 저에게는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결심 뒤에 이어지는 것이 감격이 아니라 작업입니다. 청동 도끼와 자귀와 송곳을 받아 나무 스무 그루를 베고, 구멍을 뚫어 못과 이음새로 잇고, 가장자리에 기둥을 세워 판자를 올리고 파도막이를 두릅니다. 나흘 동안 일한 끝에 닷새째에 떠납니다. 바다에서는 큰곰자리를 왼쪽에 두라는 조언을 따라 별을 보며 방향을 잡고 열이레를 잠들지 않고 건너갑니다.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도구와 일정과 별자리로 번역되는 이 과정이, 저는 신화적인 장면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읽혔습니다.


물론 그 뗏목은 부서집니다. 폭풍 속에서 그가 내뱉는 혼잣말이 오래 남았어요. 차라리 트로이에서 죽었더라면 장례도 받고 명예도 얻었을 텐데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바다에서 비참하게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귀향을 택한 사람이 명예로운 죽음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감추지 않고 적어둔 서술이라, 인물이 갑자기 사람 크기로 내려옵니다. 이틀 밤낮을 떠돌다 육지를 발견하는 순간의 비유도 마찬가지예요. 병으로 오래 누워 있던 아버지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을 때 자식들이 기뻐하듯, 그가 숲과 육지를 보고 기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괴물과 신들 사이를 지나온 이야기에 가장 평범한 가족의 안도를 끌어다 붙인 문장입니다.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섬에서는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왕은 이 낯선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한 뒤에, 그러고도 먼저 배와 노잡이를 준비시킵니다. 정체를 확인하고 나서 돕는 순서가 아닙니다. 잔치 자리에서 음유시인이 트로이 전쟁을 노래하자 오디세우스는 겉옷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자기 이름이 이미 남들의 노래가 되어 있는 사람이, 그 노래 앞에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장면이에요. 노래가 멈추면 눈물을 닦고 옷을 내리고, 다시 시작되면 또 가립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오직 곁에 앉아 있던 왕만 그 깊은 한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왕은 이유를 캐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제 밖으로 나가 경기를 하자고 화제를 돌려 그 자리에서 손님을 빼내줍니다. 위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이 오래된 이야기가 알려주는 방식이 이렇게 조용합니다. 배웅하는 대목에서 왕비가 선물 상자의 매듭을 단단히 묶으라고, 잠든 사이 누가 열어 훔쳐가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같은 결로 읽혔어요. 좋은 것을 내주면서 세상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는 어른의 말투입니다.


저승으로 내려가는 권은 읽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졌습니다. 태양이 뜰 때도 질 때도 비추지 않는 땅에서 그는 제물의 피를 앞에 두고 칼을 들고 서 있습니다. 어머니의 혼이 나타나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말을 걸지 못하는데, 예언자를 먼저 만나야 하니 어머니조차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마음이 무너졌다고 적어놓고도 칼을 내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뒤에 어머니는 자신이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걱정이 목숨을 가져갔다고 말합니다. 세 번이나 팔을 벌려 안으려 했지만 세 번 모두 혼이 그림자처럼 빠져나가고,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서둘러 빛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거라." 만남을 붙잡지 말고 돌아가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전하라는 뜻입니다.


같은 권에서 밝혀지는 아버지 쪽 소식도 걸렸습니다. 라에르테스가 도시로 내려오지 않고 시골에 머물며, 겨울이면 불 가까이 재 위에서 거친 옷을 입고 자고 여름에는 포도밭에 떨어진 잎을 모아 잠자리를 만든다는 대목이에요. 앞서 오디세우스가 낙엽을 끌어모아 몸을 덮고 잠들던 장면이 그대로 겹칩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모르는 채로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던 셈입니다. 부모 세대를 배웅하는 나이가 되면 이 배치가 다르게 읽힐 것 같아요.


예언자가 알려주는 그의 마지막도 뜻밖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전사가 아니라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아주 평온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그 전에 구혼자들을 정리한 뒤 노 하나를 메고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의 땅까지 다시 떠나야 한다는 명령이 붙어요. 누군가 그 노를 보고 곡식을 까부르는 키라고 부르면 그곳에서 멈추라는 것입니다. 도착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오래된 이야기는 숨기지 않습니다.


읽으면서 한 군데는 갸웃했습니다. 어머니의 혼이 팔 사이로 빠져나간 이야기를 막 끝낸 직후에, 오디세우스가 선물을 더 마련해준다면 한 해를 더 머물러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고, 빈손보다 재물을 가지고 돌아가는 편이 고향에서 더 존경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앞에서는 하루도 견딜 수 없다는 듯 바닷가에서 울던 사람이라 낙차가 컸어요. 고대의 환대와 선물 관습에서는 자연스러운 계산이었을 텐데, 편역본 본문만으로는 그 사정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아서 저 같은 독자에게는 숙제로 남았습니다. 이런 자리에 옮긴이 주가 한 줄 더 붙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소식을 통해 이 이름을 처음 들은 분이라면 원작의 뼈대를 확인하는 입구로 쓸 만합니다. 출판사 소개에는 2026년 여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이 기획의 배경으로 적혀 있는데, 화면으로 본 장면들이 책에서 어떤 순서로 놓여 있는지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완역본을 두 번쯤 시작했다가 접어둔 경험이 있는 쪽에도 권하고 싶습니다. 고전을 읽었다는 느낌까지 줄어들지는 않게 만들겠다는 것이 엮은이의 원칙이었다고 하는데, 그 약속은 지켜진 편입니다.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지는 9월입니다. 저녁 공기가 서늘해지는 이 시기에 귀향 이야기를 읽으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오래 버티게 하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2800년 전 사람도 결국 같은 것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어요. 서평단으로 만난 책 가운데 고전은 늘 완독을 걱정하게 되는데, 이 한 권은 마지막 장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불멸을 마다하고 뗏목을 깎아 집으로 향한 사람의 이야기. 2800년 된 귀향의 원형을 완독 가능한 두께로 만난 편역본입니다.


#오디세이 #호메로스 #메이트북스 #메이트북스클래식 #오디세우스 #서양고전 #고전읽기 #고전입문 #편역본 #그리스신화 #귀향이야기 #서평단 #북유럽카페 #독서기록 #책추천 #40대독서 #서평 #독서노트 #칼립소 #텔레마코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 - 한국 추리소설 작가 5인이 말하는
김이환 외 지음 / 알파미디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표지를 먼저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밤빛 남색 바탕에 이층집 한 채가 서 있고, 창이 다섯 개인데 그 안에 사람이 하나씩 앉아 있어요. 누군가는 책을 펼쳤고, 누군가는 턱을 짚은 채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현관 위에 작은 등이 켜져 있고요. 추리소설을 다루는 책이면 서늘한 그림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 집은 오히려 누군가를 기다리는 쪽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밤에도 불을 끄지 않은 집이라는 인상이었어요. 다 읽고 나서야 그 다섯 개의 창이 다섯 명의 필자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 추리소설 작가 5인이 말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은 김이환, 박상민, 전건우, 정명섭, 조동신 다섯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세계를 캐릭터와 주제별로 나눠 읽어낸 책입니다. 판형도 두께도 평범해서 들고 읽기에 부담이 없었고, 비평서라기보다 동료 작가 다섯 명의 이야기를 차례로 듣는 자리처럼 편안했습니다.


표지 띠에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장 한이 작가의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만큼 미스터리를 정의하는 형식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 작가는 없다, 우리가 여전히 히가시노 게이고에 열광하는 이유다. 프롤로그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주는데,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가 풀려도 범인이 특정되는 것은 아니고, 범인이 밝혀져도 동기가 저절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이 세 겹의 질문이 책 전체의 뼈대가 됩니다.




가가 쿄이치로 시리즈를 다룬 장에서 걸음이 느려졌습니다. 필자는 추리소설의 오래된 문법을 먼저 짚습니다. 형사와 탐정은 범인을 향해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고, 독자의 시선은 그들의 시선과 완벽히 겹쳐진다는 것. 홈즈의 관찰력이든 푸아로의 회색 뇌세포든 결국 '어떻게 범인을 잡는가'라는 질문을 향해 달린다는 정리인데, 가가는 처음부터 다른 질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고 씁니다. 이 사건 주변의 사람들은 지금 어떤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가. 그 질문은 훨씬 오래 걸리고 소모적이고, 때로는 검거라는 목표와도 어긋납니다. 필자는 그것을 개인적으로 '어긋남'이라 부른다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 장을 읽으며 오래 남은 문장은 두 개였습니다. "그는 형사이기 이전에 인간이었고, 수사관이기 이전에 이웃이었다." 그리고 "'왜 떠났는가'라는 질문은 그의 가장 오래된 수사였고, 그 질문이 형사로서의 그를 완성시켰다." 가가의 어머니는 그가 열 살일 때 집을 떠나 연고 없는 센다이로 갔고, 혼자 살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가 텅 비어 버렸다는 대목에서, 이 시리즈가 왜 사건보다 사람의 사정을 오래 들여다보는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필자는 범인을 잡는 일이 수사의 결과일 뿐 목적은 아니라고 적습니다. 목적은 사건을 둘러싼 모든 사람이 왜 이 상황에 처했는지를 밝히는 쪽에 있다고요.


솔직히 갸웃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가의 내면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하는 대목은 다소 도식적으로 읽혔어요. 한 인물의 평생을 어머니의 부재 하나로 정리해도 되는지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필자 스스로도 우연히 완성된 설정일 수도 있고 정교하게 짜여진 것일 수도 있다며 한 발 물러서 두었고,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신뢰를 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아버지를 잃은 경험을 짧게 꺼내놓은 대목도 그렇습니다. 비평서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위험한데, 그 한 문단이 있어서 캐릭터의 개연성을 따지는 뒤의 논지가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다룬 장은 결이 가장 단단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을 붙잡고 한 절을 통째로 씁니다. 소년범죄와 소년법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낡지 않는 주제라는 전제로 시작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책임까지 가벼워져도 되는지, 가해자의 미래를 보호하는 동안 피해자와 유족의 삶은 누가 책임지는지를 나란히 놓습니다. 여기서 필자는 자기 자리를 감추지 않습니다. 교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원칙이 유족에게는 또 다른 형벌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머리로는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감정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간극이 늘 남았다고 적습니다. 저도 뉴스를 보며 비슷한 자리에서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독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대목이 이어집니다. <소년심판>이나 <더 글로리> 같은 작품이 왜 반복해서 만들어지고 소비되는지를 짚으면서, 우리가 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법이 악인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누군가 대신 심판해주기를 바란다고 진단합니다. 사적 제재물이 그 위험한 욕망을 건드린다는 것. 그런데 <방황하는 칼날>에는 그런 안전한 쾌감이 없다고 못 박습니다. 소설은 딸을 잃은 아버지에게 가해 소년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결론 내리지 않고, 사적 제재를 정의의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않으며, 법이 피해자를 구하지 못했을 때 한 인간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그려낼 뿐이라고요.


제목 해석이 이 장의 정점이었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아버지가 든 총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처벌하면서도 보호해야 하는 법, 그 법을 집행하면서도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경찰, 복수를 잘못이라 여기면서도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독자까지 모두 방향을 잃은 칼날이라는 것. 법은 존재하지만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정의를 바라는 마음은 있으나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정하지 못한다는 문장에서 잠시 손을 멈췄습니다. 소설이 봉합해주지 않는 불편함을 그대로 두는 편이 주제에 더 어울린다는 필자의 판단에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영화판들이 총에 실탄을 비워둔 선택은 관객의 마음을 배려한 것이겠지만, 원작의 결말이 남기는 참담함 쪽이 이 이야기의 몫이라는 이야기였어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해부하는 장은 온도가 또 다릅니다. 여기서는 감상보다 설계도를 읽습니다. 옴니버스처럼 보이지만 실은 장편의 구조적 완성도에 무게를 둔 작품이라며, 세 번째 에피소드가 기와 승에서 전과 결로 넘어가는 포석을 어떻게 놓았는지 따라갑니다. 편지가 많이 등장하는 소설이 왜 쓰기 어려운지, 편지에 대사를 넣으면 읽는 감흥이 어떻게 떨어지는지 같은 이야기는 창작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관찰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좀비 영화의 설명량이 줄어든 과정이나 웹소설의 회빙환 관행을 끌어와 장르가 발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대목도 체감이 잘 됐습니다. 힐링 소설을 두고 그냥 쉽게 읽히는 글 아니냐는 평을 반박하면서, 쉽게 읽힌다고 쓰기도 쉬운 건 아니라고 적은 문장은 위로처럼 읽혔어요. 예술 작품이면서 상품이기도 한 것의 숙명이라는 말로 스스로 균형을 잡는 태도도 좋았습니다.



그 장에서 가장 마음이 놓인 대목은 태어났기 때문에 삶은 가치 있다는 잡화점 주인의 대답이었습니다.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도 행복할 수 있을지를 묻는 편지 앞에서, 그는 심사숙고한 끝에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지켜보던 아들도 마침내 동의하는데, 필자는 그가 그냥 아버지 말을 따랐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변했기 때문에 기적이 가능했다고 짚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먹고 오래 고민하면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문장이, 이 책에서 제가 접어둔 자리 중 하나입니다.


아쉬움도 적어둡니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난 뒤 빠르게 묶인 헌사의 성격이 강해서, 작품별 완성도의 높낮이를 따지는 냉정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100권이 넘는 다작 가운데 실패한 시도나 반복된 패턴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진 느낌이었어요. 다섯 사람의 온도 차가 큰 것도 처음에는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읽어갈수록 그게 장점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사람은 상처에서 사람을 읽고, 한 사람은 제도와 감정의 간극에서 윤리를 읽고, 한 사람은 설계도에서 기술을 읽습니다. 같은 작가를 두고 다섯 개의 창이 각각 다른 방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권을 읽어왔지만, 읽은 적 있다고 생각했던 작가를 다시 꺼내 보게 만든 책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났고, 이 책은 그 직후에 나왔습니다. 추리소설 입문자에게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이 되겠고, 이미 그의 책을 여러 권 읽어온 사람에게는 자기 감상을 언어로 정리해주는 거울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을 써보려는 사람이라면 다섯 작가가 흘리듯 적어놓은 실무의 고민들을 놓치지 않으실 듯합니다.


계절이 바뀌는 자리입니다. 낮은 아직 여름 끝을 붙잡고 있는데 해가 지고 나면 공기가 먼저 달라지는 시기죠. 표지의 집처럼 창마다 불이 켜지는 저녁이 길어지는 계절에, 사람의 사정을 오래 들여다보는 책 한 권이 옆에 있으면 그 저녁이 조금 덜 서늘해집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다시 읽을 구실이 필요하다면 이 책이 그 구실을 충분히 해줄 거예요.


트릭을 파헤치는 책이 아니라,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끝까지 사람의 사정을 놓지 않았는지를 동료 작가 다섯 명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책.


#히가시노게이고 #히가시노게이고추리의기술 #추리의기술 #알파미디어 #서평단 #북유럽카페 #추리소설 #미스터리소설 #장르소설 #가가쿄이치로 #방황하는칼날 #나미야잡화점의기적 #용의자X의헌신 #백야행 #사회파미스터리 #한국추리작가협회 #소년법 #책추천 #신간도서 #독서기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