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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리버 - 인류 문명을 만든 일곱 개의 강 이야기
버네사 테일러 지음, 박은영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8월
평점 :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받아 들자마자 알았습니다. 이건 한 번에 읽을 책이 아니라는 걸요. 손에 얹으면 무게가 그대로 전해지고, 목차를 펼치면 일곱 개의 강이 각각 세 개의 장을 끌고 옵니다. 그래서 계획을 처음부터 바꿨습니다. 강 하나를 끝내면 며칠 쉬고 다음 강으로 건너가는 방식으로요. 지나고 보니 그게 맞았습니다. 속도를 내면 정보만 쌓이고, 천천히 가면 생각이 남는 종류의 책이었습니다.
표지를 다시 봅니다. 짙은 남청색 바탕 위로 청록과 하늘빛 물길이 굽이치고, 그 사이에 금빛으로 앉은 것들이 있어요. 돔을 얹은 건물, 노를 젓는 고대의 배, 증기선처럼 보이는 강배, 백로, 물고기, 그리고 맨 아래 왼쪽의 악어. 일곱 개의 강을 지도로 그리지 않고 곡선만 남긴 감각이 좋았습니다. 표지 아래쪽에 적힌 한 줄, "인류는 어떻게 강을 지배하고, 강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가 사실상 이 책의 설계도였다는 걸 읽으면서 확인하게 됩니다.

버네사 테일러는 첫 장을 왕조나 피라미드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하마에서 출발해요. 고대 이집트인들이 하마를 사랑했다는 문장 다음에, 하마 얼굴을 한 여신 타와레트가 임산부와 아기를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이 손바닥보다 작은 푸른 유약 공예품에는 연꽃 문양이 새겨지고, 사나운 기색 없이 입을 얌전히 다문 하마가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들이 하마를 사냥해 고기와 상아를 얻었습니다. 이용과 숭배가 한 몸이라는 이 책의 큰 주제가 부적 하나에 이미 들어 있는 셈이죠.
나일강 편의 문을 여는 제사는 《이집트 사자의 서》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나는 물을 거슬러 흐르게 하지 않았다. 나는 흐르는 물길을 끊지 않았다.
죽은 이가 자신의 결백을 고하는 형식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물길을 끊지 않았다는 항목이 도덕의 목록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댐과 운하, 매립과 준설이 줄줄이 나오는 이 책의 뒷부분을 생각하면 첫 페이지에 이미 판결문이 놓여 있던 것과 같으니까요.

저자가 나일강 편에서 꺼내는 해석 하나도 오래 남습니다. 나일강을 무한함의 상징으로 만든 주체가 엘리트 계층이었다는 것. 통제력과 권위를 굳히려면 끝없는 연속성을 강조해야 했고, 그래서 앞선 세대의 문자와 강 관리법과 전통을 부지런히 재활용했다는 겁니다. 챕터 제목 '오래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가 향수가 아니라 통치 기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게 여기서 드러납니다. 실제 발원지가 훨씬 남쪽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징적인 발원지 하나로 충분했다는 대목도 그렇습니다. 사실보다 표식이 필요했던 사람들의 사정이 지금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템스강 편에서는 '그림자 강'이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런던이 키운 번영이 다른 유역의 강과 수로를 영향권 아래 두면서 가능했다는 개념인데, 저자는 이게 런던만의 사정이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모든 주요 강에 그런 그림자가 있다고요. 뉴캐슬의 타인강은 '석탄의 강'이라 불리며 매년 수천 톤의 석탄을 런던으로 보냈습니다. 1666년 대화재 때 도시를 태운 연료가 그 석탄이었고, 재건의 재원이 된 것도 석탄에 붙은 세금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쉰한 개의 교회가 서고 1711년 세인트폴 대성당이 완공됩니다. 포틀랜드섬에서 실려온 석회암 벽면에는 화석이 된 굴 껍데기와 새우의 흔적이 박혀 있어서, 태고의 바다가 도심 한복판에 그대로 남은 형국이었다고 해요. 오래된 것은 정말로 사라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미시시피강 편은 읽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1856년 겨울 마거릿 가너가 얼어붙은 오하이오강을 건너 잠깐 자유의 공기를 마셨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압송된 과정이 나옵니다. 법정은 그녀에게 도망 노예법 위반이라는 죄명을 붙였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는 이유로요. 같은 물줄기가 누구에게는 교역로였고 누구에게는 탈출로였으며 또 누구에게는 끌려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이 한 챕터에 겹쳐 있습니다.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이 대목은 각자 읽어야 할 자리 같습니다.
마지막 부의 '가라앉는 도시'에서 책은 현재로 착지합니다. 상하이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관측된 해가 1921년이고, 1950년대에는 연간 10센티미터씩 내려앉았으며, 1800년대 후반 이래 3미터 넘게 침하했다고 합니다. 건물의 무게와 지하수 추출이 원인이었습니다. 상하이라는 이름이 바다 위 또는 바다에서 솟아오른다는 뜻을 품고 있는데 해발고도는 기껏해야 3~4미터라는 설명도 붙습니다. 이름과 실제 사이의 간격이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이 장에서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건 진흙과 모래를 두고 갈린 세 입장이었습니다. 항만 당국에게 퇴적물은 치워야 할 장애물이었고, 중국 당국은 군함의 입항을 막아주는 천연 장벽으로 여겼고, 농부들은 하늘이 내린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작은 개울과 운하를 타고 다니며 대나무 장대로 강바닥의 흙을 퍼 올려 바구니에 담아 비옥한 표층토로 썼다고 해요. 그 바구니 옆에 1930년대 준설선이 퍼낸 4,000만 톤이라는 숫자가 놓입니다. 같은 흙인데 보는 자리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습니다.
저자는 그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끼워 넣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토사가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흐름 속에서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은 적응에 아무 문제가 없었고, 퇴적이든 침식이든 고정된 구조물이나 사람의 정착지가 들어선 곳에서만 비로소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고요. 재난이라는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었습니다. 무언가를 한자리에 붙들어 두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위기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니까요. 서울의 복개천이 떠올랐습니다. 양징방 하천이 1900년대 초에 매립되어 거리가 되었고 지금은 옌안루의 일부로 남아 있다는 대목에서요. 근대화되는 도시들이 물길을 덮은 방식은 대륙을 가리지 않고 닮아 있었습니다.

다만 읽으면서 아쉬운 지점도 있었습니다. 저자는 나일강의 상징을 만든 주체가 엘리트였다고 분석하고, 제국의 준설 광고와 훗날의 '자연과의 전쟁' 구호를 나란히 놓아 비판의 균형을 잡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강가에서 매일 물을 지고 밭을 갈던 사람들이 그 상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상대적으로 얇게 다뤄집니다. 기록이 남지 않은 쪽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알겠지만,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는 데 들인 공력만큼 아래쪽 자리에도 지면이 갔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상하이 농부들의 바구니가 등장하는 짧은 대목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 겁니다.
서평단으로 여러 책을 만나다 보면 며칠 안에 읽고 정리하는 리듬에 익숙해지는데, 이 한 권은 그 리듬을 아예 놓게 만들었습니다. 일부러 늦춘 게 아니라 늦춰질 수밖에 없었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책을 붙들고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두께가 부담이 아니라 여유로 바뀌는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기후위기나 물 부족 같은 말이 뉴스에서 너무 자주 들려서 무감해진 분이라면, 이 책이 그 말들에 다시 부피를 입혀 줄 겁니다. 세계사를 연대기로 외우다 지친 경우에도 강이라는 렌즈 하나가 꽤 시원한 통로가 되어 줍니다. 물론 한 강을 세 장씩 끌고 가는 구성이라 처음 백 페이지는 호흡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 구간만 넘기면 나머지는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9월 중순, 아침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이맘때가 이런 책과 잘 맞습니다. 여름의 조급함이 한 발 물러나고 아직 겨울의 무게는 오지 않은 시기니까요. 일곱 개의 강을 다 건넌 다음에도 책장에 그대로 꽂아 둘 생각입니다. 계절이 한 번 더 바뀌면 다뉴브강이나 니제르강 편을 다시 펼쳐 볼 것 같아서요.
강을 따라 인류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며 동시에 숭배해 온 오래된 모순을 마주하게 되는 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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