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ㅣ 메이트북스 클래식 32
호메로스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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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노란 바탕 위에 흑백 흉상 하나. 표지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쪽의 책입니다. 위쪽 절반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고 아래쪽은 형광에 가까운 노란색이 화면을 가득 채워요. 고전이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무게와 서점 평대에서 바로 눈에 걸리는 선명함이 한 장에 같이 들어 있습니다. 하단에 굵게 박힌 두 줄 가운데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 끝까지 살아남는다"라는 문구가 이 판본의 성격을 미리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북유럽 카페 서평단으로 받았습니다. 크기도 두께도 평범해서 손에 들었을 때 부담이 없었어요. 완역본을 앞에 두면 먼저 드는 망설임이 분량인데, 이 도서는 그 문턱을 낮추는 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편역본이라고 해서 유명한 모험만 골라 이어 붙인 판본은 아닙니다. 원작의 24권 체제를 그대로 두고 권마다 '마침내 시작된 오디세우스의 귀향' '트로이의 노래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처럼 내용을 짚어주는 제목을 달았고, 각 권 안에서도 번호가 붙은 절로 나뉘어 있어서 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길을 잃을 일이 적습니다. 본문 앞에는 트로이 전쟁부터 작품이 시작되는 시점까지의 배경 설명과 등장인물 사전이 붙어 있고, 암브로시아나 스틱스강처럼 설명이 필요한 개념에는 영문을 병기하고 옮긴이 주를 답니다. 파이아케스 궁전에서 음유시인이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의 다툼을 노래하는 장면에는, 이것이 <일리아스> 첫머리의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과는 다른 사건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어요. 독자가 헷갈릴 자리를 미리 알고 손을 쓴 흔적입니다.


읽는 동안 가장 오래 생각한 것은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을 떠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섬은 불멸의 신이 보아도 기뻐할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됩니다. 향기로운 나무가 타는 동굴, 포도송이가 달린 입구, 네 방향으로 흐르는 샘. 그런데 정작 그는 동굴에 없고 바닷가 바위에 앉아 있습니다. 낮이면 바다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밤에만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 잠을 잡니다. 늙지도 죽지도 않게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은 사람이 왜 거절하는지, 그의 대답에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아내가 여신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자기 입으로 먼저 인정하고 나서 이렇게 말해요. "제가 원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보는 것입니다." 비교해서 이긴 쪽을 고른 게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그다음이 저에게는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결심 뒤에 이어지는 것이 감격이 아니라 작업입니다. 청동 도끼와 자귀와 송곳을 받아 나무 스무 그루를 베고, 구멍을 뚫어 못과 이음새로 잇고, 가장자리에 기둥을 세워 판자를 올리고 파도막이를 두릅니다. 나흘 동안 일한 끝에 닷새째에 떠납니다. 바다에서는 큰곰자리를 왼쪽에 두라는 조언을 따라 별을 보며 방향을 잡고 열이레를 잠들지 않고 건너갑니다. 돌아가겠다는 마음이 도구와 일정과 별자리로 번역되는 이 과정이, 저는 신화적인 장면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읽혔습니다.


물론 그 뗏목은 부서집니다. 폭풍 속에서 그가 내뱉는 혼잣말이 오래 남았어요. 차라리 트로이에서 죽었더라면 장례도 받고 명예도 얻었을 텐데 이제는 아무도 모르는 바다에서 비참하게 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귀향을 택한 사람이 명예로운 죽음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감추지 않고 적어둔 서술이라, 인물이 갑자기 사람 크기로 내려옵니다. 이틀 밤낮을 떠돌다 육지를 발견하는 순간의 비유도 마찬가지예요. 병으로 오래 누워 있던 아버지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을 때 자식들이 기뻐하듯, 그가 숲과 육지를 보고 기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괴물과 신들 사이를 지나온 이야기에 가장 평범한 가족의 안도를 끌어다 붙인 문장입니다.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섬에서는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왕은 이 낯선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한 뒤에, 그러고도 먼저 배와 노잡이를 준비시킵니다. 정체를 확인하고 나서 돕는 순서가 아닙니다. 잔치 자리에서 음유시인이 트로이 전쟁을 노래하자 오디세우스는 겉옷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자기 이름이 이미 남들의 노래가 되어 있는 사람이, 그 노래 앞에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기는 장면이에요. 노래가 멈추면 눈물을 닦고 옷을 내리고, 다시 시작되면 또 가립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오직 곁에 앉아 있던 왕만 그 깊은 한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왕은 이유를 캐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제 밖으로 나가 경기를 하자고 화제를 돌려 그 자리에서 손님을 빼내줍니다. 위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이 오래된 이야기가 알려주는 방식이 이렇게 조용합니다. 배웅하는 대목에서 왕비가 선물 상자의 매듭을 단단히 묶으라고, 잠든 사이 누가 열어 훔쳐가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는 것도 같은 결로 읽혔어요. 좋은 것을 내주면서 세상이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는 어른의 말투입니다.


저승으로 내려가는 권은 읽는 속도가 저절로 느려졌습니다. 태양이 뜰 때도 질 때도 비추지 않는 땅에서 그는 제물의 피를 앞에 두고 칼을 들고 서 있습니다. 어머니의 혼이 나타나 아들을 바라보면서도 말을 걸지 못하는데, 예언자를 먼저 만나야 하니 어머니조차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마음이 무너졌다고 적어놓고도 칼을 내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뒤에 어머니는 자신이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고,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걱정이 목숨을 가져갔다고 말합니다. 세 번이나 팔을 벌려 안으려 했지만 세 번 모두 혼이 그림자처럼 빠져나가고,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이제 서둘러 빛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거라." 만남을 붙잡지 말고 돌아가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전하라는 뜻입니다.


같은 권에서 밝혀지는 아버지 쪽 소식도 걸렸습니다. 라에르테스가 도시로 내려오지 않고 시골에 머물며, 겨울이면 불 가까이 재 위에서 거친 옷을 입고 자고 여름에는 포도밭에 떨어진 잎을 모아 잠자리를 만든다는 대목이에요. 앞서 오디세우스가 낙엽을 끌어모아 몸을 덮고 잠들던 장면이 그대로 겹칩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모르는 채로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던 셈입니다. 부모 세대를 배웅하는 나이가 되면 이 배치가 다르게 읽힐 것 같아요.


예언자가 알려주는 그의 마지막도 뜻밖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전사가 아니라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아주 평온한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합니다. 다만 그 전에 구혼자들을 정리한 뒤 노 하나를 메고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의 땅까지 다시 떠나야 한다는 명령이 붙어요. 누군가 그 노를 보고 곡식을 까부르는 키라고 부르면 그곳에서 멈추라는 것입니다. 도착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오래된 이야기는 숨기지 않습니다.


읽으면서 한 군데는 갸웃했습니다. 어머니의 혼이 팔 사이로 빠져나간 이야기를 막 끝낸 직후에, 오디세우스가 선물을 더 마련해준다면 한 해를 더 머물러도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고, 빈손보다 재물을 가지고 돌아가는 편이 고향에서 더 존경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앞에서는 하루도 견딜 수 없다는 듯 바닷가에서 울던 사람이라 낙차가 컸어요. 고대의 환대와 선물 관습에서는 자연스러운 계산이었을 텐데, 편역본 본문만으로는 그 사정이 충분히 전해지지 않아서 저 같은 독자에게는 숙제로 남았습니다. 이런 자리에 옮긴이 주가 한 줄 더 붙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소식을 통해 이 이름을 처음 들은 분이라면 원작의 뼈대를 확인하는 입구로 쓸 만합니다. 출판사 소개에는 2026년 여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가 이 기획의 배경으로 적혀 있는데, 화면으로 본 장면들이 책에서 어떤 순서로 놓여 있는지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완역본을 두 번쯤 시작했다가 접어둔 경험이 있는 쪽에도 권하고 싶습니다. 고전을 읽었다는 느낌까지 줄어들지는 않게 만들겠다는 것이 엮은이의 원칙이었다고 하는데, 그 약속은 지켜진 편입니다.


해가 눈에 띄게 짧아지는 9월입니다. 저녁 공기가 서늘해지는 이 시기에 귀향 이야기를 읽으면,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오래 버티게 하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2800년 전 사람도 결국 같은 것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어요. 서평단으로 만난 책 가운데 고전은 늘 완독을 걱정하게 되는데, 이 한 권은 마지막 장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불멸을 마다하고 뗏목을 깎아 집으로 향한 사람의 이야기. 2800년 된 귀향의 원형을 완독 가능한 두께로 만난 편역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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